카뮈 (Albert Camus, 1913 ~ 1960)와 부조리 (不條理, Absurdism)의 역설
카뮈 (프: Albert Camus, 1913년 11월 7일 ~ 1960년 1월 4일)는 『이방인』, 『페스트』, 『시시포스신화』, 『반항하는 인간』과 같은 작품 속에서 1차 세계대전 이후에 전개되는 유럽의 이상한 징후를 부조리 (不條理, Absurdism)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그는 이 부조리라는 용어가 그 어떤 형이상학적 표현보다도 더 적나라하게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파헤쳐 줄 수 있는 용어라고 확신한다. 특히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의 과제라고 생각하는 카뮈에게는 이 부조리라는 개념이야말로 중요한 개념인 것이다. 카뮈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자살이라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이 부조리의 징후를 언급한다. 자살은 우리가 부조리의 세계에 내던져져 있다는 증거이며 우리의 삶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부조리의 징후는 우리의 삶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카뮈는 그의 『시시포스신화』에서 이러한 부조리의 문제를 다루는데, 그는 이곳에서 부조리현상이 지니는 다양한 철학적인 의미들을 논의하고 있다. 그는 키엘케고르, 야스퍼스, 하이데거, 니체와 같은 철학자들의 실존개념이 이러한 부조리의 개념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카뮈는 이들의 실존개념이 자신이 말하는 부조리의 의미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이들 실존철학자들의 실존은 이러한 부조리의 세계로부터의 도피 또는 초월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카뮈는 부조의 세계를 살아가는 부조리의 인간은 이러한 부조리의 세계 속에서 반항, 희망의 포기, 정열이라는 부조리적 범주를 매개삼아 살아가는 존재로 규정한다. 카뮈는 이러한 부조리의 인간의 전형으로서 언덕위로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가는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를 언급한다. 시시포스는 부조리에 내던져진 전현적인 인간의 예이며, 부조리한 세계에 처한 인간의 슬픈 운명을 드러내준다. 그러나 카뮈는 언덕에서 굴러 내려가는 바위를 응시하는 시시포스의 시선 속에서 부조리의 역설을 읽어내면서 우리에 부조리가 지는 궁극적인 의미들을 제시한다. 그것은 끊임없는 반복 속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형이상학적 가치의 허구성을 자각하고 삶과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서규, 카뮈의 부조리철학에 대한 고찰 : Eine Untersuchung über die Absurdität bei Camus,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철학논집, 2013, vol.35, pp. 139-178)
– 부조리 (不條理, absurdism)
부조리 (不條理, absurdism)는 불합리 · 배리 (背理) · 모순 · 불가해 (不可解) 등을 뜻하는 단어로서, 철학에서는 ‘의미를 전혀 찾을 수 없는 것’을 뜻한다. 원래는 조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논리적 의미만을 표시하는 말이었으나, 합리주의 철학의 한계 속에서 등장한 실존주의 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용어가 되었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의미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인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완전히 알 수 없고, 모든 일을 완전히 해낼 수도 없으며, 반드시 죽기 마련이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영원’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거나, 다가올 내일에 대해서 희망을 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미래를 위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결국 미래는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죽음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소설 《구토》 (1928년)에서 “마로니에 나무의 뿌리와 같은 ‘사물 그 자체’를 직시할 때에 그 우연한 사실성 그것이 부조리이며 그런 때에 인간은 불안을 느낀다”라고 말하였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그것을 다시 일보 전진시켜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 (1942년)에서 “부조리란 본질적인 관념이고 제1의 진리이다”라고 말하였다. 알베르 카뮈는 이 에세이를 통해 “삶의 끝이 결국 죽음이라면 인생은 부조리한 것이다. 하지만 비록 인간의 삶이 부조리한 것이라 해도, 난 계속해서 ‘오직’ 인간이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 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생각하는 능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내 이성을 사용해 끊임없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적이지 못한’ 신의 구원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며, 미래나 영원에 대해 희망이나 기대를 갖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나는 바로 지금, 바로 여기의 삶에 충실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의 첫째 줄에서 진실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한 가지, 즉 자살의 문제라고 했다. 습관과 타성으로 진실에의 욕망을 속이며 살아가던 인간에게 어느 날 문득 죽음이라는 근원적인 사실이 떠오르고, 죽음에 질문을 던지는 자는 당연히 삶에 질문을 던진다. 애초에 대답 없는 이 물음들로 인해 인간에게는 소위 ‘부조리의 감수성’이 태동한다. 세계 내에 던져진 실존의 ‘부재하는 존재 이유’와 그 부재의 존재 이유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불굴의 이성’이 공존하게 된다. 부조리는 그 양자 간의 화해 없는 대립, 괴리, 갈등으로부터 태어난다. 알베르 카뮈는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왜 사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을 때 사람들이 취하는 반응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살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일상으로 돌아와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세 번째는 운명에 도전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반항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이 중 마지막 반응은 비극적 결말을 낳는다고 했다.
알베르 카뮈는 “인간이나 세계가 그 자체로서 부조리한 것은 아니다. 모순되는 두 대립항의 공존 상태, 즉 이성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상태가 바로 부조리한 상태이다. 코스모스가 카오스의 부분집합이듯 합리는 부조리의 부분집합이다. 부분이 전체를 다 설명할 수 없는 까닭에, 부조리의 합리적 추론이란 애당초 과욕인 것이다. 요컨대 부조리란 논리로써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감정으로써 느낄 수 있을 뿐이다”라고 부조리를 규정하면서 인간은 부조리한 세계에 대하여 좌절을 각오하고 인간적인 노력을 거듭하여 가치를 복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알베르 카뮈는 소설 《이방인》 (1942년)를 통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서구 합리성에 절망한 젊은 지식인들에게 새로운 정신적 도덕을 제시했고 실존주의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이 소설을 통해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의 감정이나 감각에 빠져 절망이나 자살에 이르는 허무주의를 긍정하는 대신 인간과 세계, 의식과 현실의 긴장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반항적 인간’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부조리 인간 (l’homme absurde)’은 ‘부조리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인간’, 즉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이라는 뜻이지 ‘부조리한 인간’이라는 뜻은 아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