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데아 (Chaldea) 우르 (Ur) 유적을 발굴한 영국의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 (Charles Leonard Woolley, 1880 ~ 1960)
이라크에 있던 전설적인 도시 우르 (Ur)를 발굴한 영국의 고고학자 찰스 레너드 울리 경(Charles Leonard Woolley, 1880년 4월 17일 ~ 1960년 2월 20일)은 1923년부터 성경에 언급된 우르를 발굴하는데, 이곳에서 수백 개 무덤이 있는 묘지가 발견됐다.
이는 이집트 피라미드 문명 발굴이후 20세기를 수놓은 가장 극적인 고고학적 발견이다.
– 레너드 울리 (Charles Leonard Woolley)
.출생: 1880년 4월 17일, 영국 런던
.사망: 1960년 2월 20일, 영국 런던
.학력: New College
.배우자: 캐서린 울리 (Katharine Woolley)
.형제자매: Geoffrey Woolley, George Cathcart Woolley
.수상: Huxley Memorial Medal and Lecture
레너드 울리 (Charles Leonard Woolley, 1880년 4월 17일 ~ 1960년 2월 20일)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 (Ur)를 발굴한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영국의 고고학자다. 그는 체계적인 방법으로 발굴하고 신중한 기록을 유지해 고대의 삶과 역사를 재구성 한 최초의 고고학자 중 한 명이다. 울리는 고고학 분야에 기여한 공로로 1935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는 함께 근무하던 고고학자 캐서린 울리 (Katharine Woolley, 1888 ~ 1945)와 결혼했다.
○ 생애
– 초기 생활
울리는 성직자의 아들이었고 Geoffrey Woolley, George Woolley와 형제였다. 그는 현대 런던의 Upper Clapton에서 출생해 옥스퍼드에 있는 St John’s School, Leatherhead 및 New College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어린 때부터 발굴에 관심이 있었다.
– 경력
1905년 울리는 옥스퍼드에 있는 Ashmolean 박물관의 조수가 되었다. Arthur Evans가 Francis Haverfield를 위해 Corbridge (하드리아누스의 벽 근처)에 있는 로마 유적지를 발굴하기 위해 자원하여 1906년에 그곳에서 발굴 경력을 시작했고 나중에 Spadework에서 “나는 책에서도 고고학적 방법을 연구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측량이나 평면도를 만드는 방법을 전혀 몰랐다.” (Woolley 1953:15)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orbridge Lion’은 그의 감독하에 발견되었다.
울리는 다음으로 Nubia를 방문하여 David Randall-MacIver와 함께 펜실베니아 대학 박물관의 후원으로 진행된 누비아로의 Eckley Coxe Expedition에서 작업했다. 1907년과 1911년 사이에 그들은 Areika, Buhen 및 Meroitic town of Karanog를 포함한 유적지에서 고고학 발굴과 조사를 수행했다. 1912 ~ 1914년에 T. E. Lawrence (일명 ‘아라비안의 로렌스’)를 조수로하여 히타이트 도시인 Carchemish를 발굴했다. 로렌스와 울리는 영국 해군 정보국에서 일하면서 독일의 베를린-바그다드 철도 건설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 1차 세계 대전 중 로렌스와 함께 울리는 카이로에 배치되어 거트루드 벨을 만났다. 그런 다음 그는 알렉산드리아로 옮겨 해군 스파이 활동을 맡았다. 터키는 그가 타고 있던 배를 붙잡아 비교적 편안한 전쟁 포로 수용소에 2년 동안 가두었다. 그는 전쟁이 끝날 때 프랑스로부터 훈장 (Croix de Guerre)을 받았다.
다음 해에 울리는 Carchemish로 돌아와 이집트의 Amarna에서 일했다.
– Ur에서 발굴
울리는 1922년부터 영국 고고학자 캐서린 울리 (Katharine Woolley)를 포함하여 대영 박물관과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공동 탐험을 이끌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Copper Bull과 Bull-Headed Lyre를 포함한 중요한 발견을 했다. 왕실 공동 묘지와 덤불 인형에서 양 한 쌍을 발굴한다. 이 과정에서 아가서 크리스티 (Agatha Christie)의 소설인 Murder in Mesopotamia는 왕실 무덤 발견에서 영감을 받았다. 아가서 크리스티 (Agatha Christie)는 후에 울리의 젊은 비서인 Max Mallowan과 결혼했다.
우르는 수메르 왕족이 많았던 매장지였다. 울리는 금색과 은색 보석, 잔 및 기타 가구와 함께 절정에 있는 고대 수메르 문화의 큰 그림을 포함하는 물질적으로 부유한 무덤을 발견했다. 가장 호화로운 무덤은 “퀸” 푸 아비의 무덤이었다. 놀랍게도 푸 아비 여왕의 무덤은 약탈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무덤 내부에는 수메르어로 그녀의 이름이 새겨진 원통형 인장을 포함하여 잘 보존된 많은 품목이 발견되었다. 그녀의 시신은 죽은 후에도 계속 그녀를 섬기기 위해 독살 된 것으로 추정되는 두 명의 시신과 함께 묻힌 채 발견되었다. 울리는무덤에서 발견된 물건으로 Pu-Abi의 장례식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1936년 우르가 발견된 후 울리는 고대에게 해와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이의 관계를 찾는 데 관심이 있었다. 이것은 그를 시리아 도시인 알 미나로 이끌었다. 1937년부터 1939년까지 그는 Tell Atchana에 있었다.
– 창세기 지역 홍수 이론
울리는 창세기에 묘사된 홍수가 “길이 400마일, 폭 100마일” 우르의 홍수 지층을 확인한 후 지역적이라고 제안한 최초의 고고학자 중 한 명입니다.
– 제 2차 세계 대전
그의 고고학적 경력은 영국이 제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중단되었고, 그는 연합군의 기념비, 미술 및 기록 보관소 섹션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Alalakh로 돌아와 1946년부터 1949년까지 계속 일했다.
○ 발굴 유적들
– 아브라함의 고향 칼데아 (Chaldea) 우르 (Ur)
“테라는 아들 아브람과, 아들 하란에게서 난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인 며느리 사라이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칼데아의 우르를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하란에 이르러 그곳에 자리 잡고 살았다. 테라는 이백오 년을 살고 하란에서 죽었다” (창 11:31-32).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으로,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손이라고 나와 있다. 창세기는 또 아브라함의 고향을 칼데아의 우르라고 가르쳐준다 (창 11:28).
성경에는 칼데아의 우르에 대한 자세한 언급 없이 지명만이 등장한다. 칼데아 (Chaldea)는 바빌로니아 남부를 가리키는 고대 지명으로, 우르 (Ur)는 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강 가까운 곳에 있던 수메르의 도시국가다. 일부 학자들은 이곳을 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있는 텔 엘 무카이야르 (Tell el─Mukayyar)로 추정하기도 한다.
아브라함의 고향인 칼데아의 우르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수메르 (Sumer)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수메르는 바빌로니아 남부에 있으며, 세계 최고 문명이 발생한 지역이다. 이곳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으로 형성된 지역으로 BC 5000년경부터 농경민이 정착하기 시작한 곳이다.
우르는 남부 유프라테스강 가까운 곳에 있는 수메르의 발달된 도시국가다. 따라서 우르는 과거 세계 최고의 문명도시이기도 하다. 우르는 BC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북부지역에서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 정착민이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레너드 울리 (1880 ~ 1960)는 1923년부터 성경에 언급된 우르를 발굴하는데, 이곳에서 수백 개 무덤이 있는 묘지가 발견됐다.
묘지 안에서는 왕으로 보이는, 황금 투구와 황금 칼을 찬 채 누워 있는 사람들이 발견됐다. 또 당시 풍습을 엿볼 수 있는 그림과 금ㆍ은으로 만든 술잔, 금 장신구, 보석 등이 함께 발견됐다. 이것은 칼데아의 우르가 부유했을 뿐 아니라 높은 수준의 문화와 예술을 향유했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칼데아의 우르에 산 것으로 추정되는 BC 18세기경에는 평민의 집은 대개 편리하게 잘 지은 2층 집이었으며, 사생활이 보장되고 기후에 맞는 건축양식으로 가족, 노예, 손님을 위한 편의시설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수메르 문화는 세계 최고 문명으로서 오리엔트 역사에 수많은 공적을 남겼다. 이곳은 지리적 특성상 일찍부터 이웃 나라들과 무역을 하며 크게 번영했고, 동시에 수메르 문명을 오리엔트 각지로 전파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수메르는 셈족에 동화됐고, 이후 수메르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일흔 다섯 살에 고향과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난다 (창 12:4).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위험한 행위였다. 당시 아브라함은 세상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에서 살았지만 주님 부르심을 받아 어딘지도 모르는 미지의 장소로 떠난다. 성경 저자는 여기서 아브라함의 강한 믿음을 강조했다.
– 우르의 깃발 (Standard of Ur)
우르의 깃발, 우르의 스탠다드 (Standard of Ur)는 옛 고대 도시 우르 (지금의 이라크 바그다드 부근)에서 발굴된 유물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초기 왕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그 연대는 약 4,600년 전으로 추정된다. 1928년 영국의 고고학자 레오나드 울리 경이 우르 왕실의 묘지를 발굴하던 중 발견하였으며, 현재는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27년부터 1928년까지 레오나드 울리 경은 메소포타미아 우르 왕궁의 묘지를 발굴하던 중 처음으로 이 유물을 발견했다. 여러 가지 재료로 인물과 장면의 형상을 겉에 박아놓은 나무상자였다. 이 상자는 고대군의 기수로 추정되는 남성의 유해의 어깨 부분에 놓여 있었다. 울리 경은 이 유물을 막대기에 고정시켜 전장으로 가져간 것이라고 추측하였고, 따라서 이 유물의 이름은 ‘우르의 깃발’이 되었다. 다만 최근 학자들은 깃발이라기보다는 고대 현악기의 공명 부분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상자에 박힌 장식판은 총 두 개이며, 각각의 판에는 인물과 동물이 있는 장면들을 묘사한 세 개의 수평층으로 나뉘어 있다. 아래에서 위로 차례대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각각의 층은 어느 한 장면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장식 재료는 조가비, 붉은 석회암, 청금석이 쓰였는데, 조가비는 인물 형상으로 깎아 박아넣고 검은색으로 세부적인 표현을 했다. 청금색은 조각내어 배경에 박았고, 석회암은 장식적인 효과를 위해 첨가되었다.
.전쟁의 판
두 개의 장식판 중에서 우선 ‘전쟁의 판’이라고 불리는 장식판에는 전쟁을 이끄는 왕과 전장에서 적군을 잔인하게 물리치는 왕의 군대를 묘사하고 있다. 투창과 도끼를 휘두르며 적군을 죽이고, 전투가 끝난 뒤에는 포로를 발가벗긴 채 꽁꽁 묶어 왕 앞으로 데려간다. 왕은 창을 들며 포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왕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크게 묘사되어, 모자이크의 가장자리 선에 해당하는 ‘천장’을 뚫고 나올 정도로 거대하게 그려졌다. 이는 수메르 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인물은 위계질서에 따라 재현되고 그 크기는 권력에 따라 정해진다.
한편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하는 인물들의 이동 방향에서 각각의 걸음걸이를 다양하게 표현함으로써,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내었다. 특히 맨 밑줄의 당나귀들은 처음에는 걷다가 잰걸음으로 가고, 급기야는 전속력으로 적진을 향해 달린다. 당나귀의 다리 사이가 벌어지고 결국에는 앞발이 지면에서 떨어져 나아가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한편 이 전쟁의 판은 수메르 군을 묘사한 최초의 작품 중 하나로, 군대의 잔인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찬미하고 있다.
.평화의 판
그 반대편의 ‘평화의 판’에는 전승 축하연의 왕과 귀족들을 보여주고 있다. 평화를 회복한 왕과 귀족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의식용 의복인 ‘카우나케’ (모직 치마)를 입고 앉아 있다. 왕과 귀족들은 오른손으로 술잔을 들어올리며 신에게 감사하고 있다. 시종들은 왕과 귀족의 시중을 들고 음악가는 수금으로 세레나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도 왕은 귀족들보다 크고, 두르고 있는 카우나케도 보다 섬세한 문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아랫단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황소, 염소, 생선 따위의 전리품을 연회장으로 가져가기 위해 행렬을 이루는 모습이다.
– 우르,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떠나기 전 살았던 문명도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이라크 남부 나이시리아.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살던 곳이다. 1900년대 초 창세기의 땅 갈대아 우르에 대한 고고학 발굴이 시작되었다. 발굴을 통해 4000년 전 전설의 땅이 실제 역사의 현장으로 드러났다.
‘높은 곳’ 혹은 ‘신전 탑’을 의미하는 지구라트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각 지역마다 건축되어 신들을 섬기는 예배장소가 되었다. 가장 튼튼하고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지구라트는 갈대아 우르의 것이다. 높아지면서 좁아지는 탑의 맨 위쪽에서 달신 난나를 섬겼다.
영국의 레너드 울리 (1880 – 1960) 경은 1923년부터 성서에서 언급된 우르를 발굴해 아브라함 시대의 주거지와 도시의 생활상을 밝혀냈다. 울리 경은 우르에서 수 백개의 무덤이 있는 묘지를 발견했다. 묘지에서 왕으로 보이는 황금 투구와 황금 칼을 찬 채 누워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수많은 시체가 함께 매장된 점으로 보아 순장제도가 있었고, 함께 매장된 금은 술잔과 정교한 금 장신구, 보석들은 우르의 발달된 문명을 말해 주었다. 4000년 전의 일이다.
발굴을 주도했던 울리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브라함 시대에 우르에 살았던 사람들은 우아하고 호화스런, 번영된 도시생활을 누렸다. 우르의 한 잘사는 사람은 14개의 방이 갖추어진 커다란 2층집에서 살았다.”
우르의 발굴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왔다. 수 백년 동안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그의 가족과 가축들에 둘러싸인 유목민으로 상상했는데, 그는 오히려 대도시의 시민이었으며 발달된 문명을 누린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당시 단순한 유목민의 신분이 아닌 번영된 문명인이었으며,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화려한 도시생활을 등지고 가나안을 향했던 것이다.
○ 저서
Dead Towns and Living Men. Being Pages From An Antiquary’s Notebook, Jonathan Cape, 1920
Ur of the Chaldees, Ernest Benn Limited, 1938 [1929] republished by Penguin Books, revised 1950, 1952
The Excavations at Ur and the Hebrew Records, George Allen and Unwin, London, 1929
Digging Up The Past, 1930 , based on talks originally broadcast by the BBC
Abraham: Recent Discoveries and Hebrew Origins, Faber and Faber London, 1936
Ur: The first phases, Penguin Books Harmondsworth, 1946
Syria as a Link Between East and West, 1936
A Forgotten Kingdom, Penguin Books, 1953
Spadework: Adventures in Archaeology, 1953
Excavations at Ur: A Record of 12 Years’ Work, 1954
Alalakh, An Account of the Excavations at Tell, Oxford University Press, 1955
History of Mankind, 1963 (with Jaquetta Hawkes)
The Sumerians, 1965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