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 (마 1:18-23)
은혜로운 성탄절 찬양인도와 특송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신 줄 믿습니다. 오늘은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장 18절에서 23절 말씀입니다. 찾으신 분들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022년 한해를 돌이켜 보면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마치 바람처럼 지나간 것 같습니다. 스쳐가는 바람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미풍인지 찬바람인지 비바람인지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며 일일이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 자리에 함께하신 성도님들의 환한 얼굴을 뵈니까 2022년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참 잘 지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나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겸손하게 간증했던 사도바울처럼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일들이 하나님과 관계없이 생기는 것 같지만 찬찬히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개입하셔서 선한 길로 인도하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교회적으로 큰 사건이 있었다면 아마도 단어도 생소한 비대면 예배의 시기를 극복하고 어느 순간 이렇게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 예배의 기쁨과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대면예배의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그 시절에는 그랬습니다. 이렇게 록다운이 계속되면 교회도 못가고 영원히 영상예배나 드려야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절망하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아득한 옛날 얘기가 아니라 불과 1년 전만해도 우린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후유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구요, 세계는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와 금융위기로 인한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모든 분야에서 여전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교회적으로 볼 때는 한국에서만 코로나 기간중에 무려 12000개의 연약한 교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과 함께 호주를 포함해서 전 세계적으로 30%의 교회가 사라졌다는 가슴 아픈 소식을 듣습니다. 교회가 겪고 있는 위기의 시대에 감사하게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기간에 오히려 녹아지고 낮아져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이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모릅니다. 영상으로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기만 하다가 보고싶은 사람을 직접 만나 함께 예배드리고 식사하고 교제하는 기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깨닫는 코이노니아의 선물을 하나님께서 1년 내내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선물보다도 가장 귀한 선물은 이세상에 생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신줄 믿습니다.
우리 한번 주변에 계신 성도님을 바라보면서 MERRY CHRISTMAS! 함께 있으니 정말 좋습니다. 라고 정겨운 목소리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생이 살아 볼만한 건 어려움, 고난과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반드시 아름다운 결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가 정작 뭔지 아십니까? 그 결실과 기쁨의 순간에는 감격했다가도 며칠만 지나면 금방 잊어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기억은 이렇게 잘도 잊어버리고 때론 변덕스럽고 자기 중심적이지만 오직 한분만이 우리의 모든 삶을 ,머리카락을 세는 것처럼 알고 계시고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릴 지키시며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 분이 누구시죠? 맞습니다. 그 분은 영원전 부터 계셨고 지금도 함께 하시며 영원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오직 한 분,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의 생일날입니다. 오늘처럼 귀한 날 저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저는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이란 제목으로 “성탄절의 의미”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예수 탄생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은 그냥 한 인간이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성육신 (成肉身)하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의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육신으로 낮고도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 그러셔야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자기 힘으로는 죄와 허물로 부터 구원 받을 수 없음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되시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았던 장벽을 허물어 버리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는 주위 사람들과 지난 1년간의 고마움에 대한 감사의 선물을 주고받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새 생명의 선물을 하나님께 받은 날이란 데 있습니다. 잠깐 제 얘기를 드릴까 합니다.
저는 제 아내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22년전인 2000년 12월의 성탄절에 교회의 하계수련회에 참석했다가 수련회의 주강사로 오셨던 강사 목사님의 설교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던 그날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교회는 다니고 있었지만 저는 세상에서 성공해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보려고 가족은 등한시 하고 오로지 일과 성공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 삶이 싫어서 이민까지 온 사람이 그렇게 아둥바둥 살려면 이민은 뭐하러 왔는지 당시에 저도 제자신이 이해가 안되긴 했습니다. 그렇게 성탄절의 감동의 시간이 지나고 그다지도 세상적이고 목표지향적이었던 저의 삶의 방식에 깊은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날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제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여겼지만 제 생각과는 달리 변화는 일순간에 일어나지 않더군요. 그렇게 죄책감으로 몸부림치고 절규했던 회개의 기억도 하루, 일주일, 한달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희미해지더군요. 약 5년이 지난 2005년 3월 어느 새벽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는게 너무나 싫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끈을 동여매고 집의 제 서재에서 새벽기도를 시작하던 첫날이었습니다. 시편의 말씀을 읽고나서 기도하려고 불을 끄고 무릎을 꿇는 순간 성령님의 강력한 임재가 저의 영혼육을 압도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님의 임재가 너무나 강해서 회사에 나오거나 사람을 만날 때나 예배를 드릴 때도 저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성령체험이 그후 몇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그후 제 삶은 오르락 내리락하면서도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하더군요. 지금도 저는 주님께서 성화의 과정을 통하여 여전히 제 삶과 저의 영혼을 만지고 계심을 믿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 인생의 변화의 터닝 포인트는2000년 성탄절날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일을 생각할 때 마다 참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20년도 지난 옛날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마주친 사람이 그 부르심에 결단하지 못하고 삶가운데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면, 얼마나 신앙의 길이 어려워지는지를 저의 케이스를 통해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겉보기에 육신은 건강한 것 같아두요 우리의 영이 죽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의미없는 소리가 되고, 우리의 영이 살아 있을 때만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귀한 신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우리는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이 놀라운 은혜를 그저 받게 되었음을 기억하시고 이제는 하나님께 반응하고 집중하시면서 신앙의 귀한 결실 맺으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기쁨이 없습니다. 주위를 한번 돌아보십시오. 12월 들어서면서 자녀들의 여름방학과 년말 장기 휴가로 공항에는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줄에 줄을 잇습니다. 항공료와 호텔비는 평소보다 2배가 비싼데도 항공자리를 구할 수가 없고 호텔에는 방이 없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화려한 의상과 온 몸에 문신을 하고 술로, 파티로, 무절제한 쇼핑과 향락으로 공허한 마음의 욕구를 채워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허전한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무엇으로도 충족되지 않음을 성도님들은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 기쁜 날 혹시라도 지난 한해 사시는 동안 고단하고 삶의 무게로 힘든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 찬양과 예배가운데 위로받으시기 원합니다. 혹시라도 건강에 어려움이 있으신분들은 예배와 찬양가운데 연약한 부위에 손을 대시고 “하나님 저의 육신의 질병을 고쳐주세요. 치료의 광선을 비추시고 저를 병으로부터 회복시켜주십시오.”라며 간절히 기도하실 때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시고 여러분들의 심령은 평강과 은혜로 가득 채워지기를 축복합니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한 분도 예외없이 도착시기는 다를지 몰라도 큰 결단을 하고 조국 대한민국을 떠나 호주로 오시기 위해 이민이사짐을 싸셨습니다. 생면부지의 땅에서 자신과 하나님만이 아시는 어려움을 겪으시면서 가장으로서 한 가정을 지키시고, 자녀을 양육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지금 껏 일궈오셨습니다. 그동안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의미하지요. 이런 인생의 큰 변화에 적응하는 삶을 살다보면 내가 집착하고 주장하고 소유했던 것들을 포기하거나 버리는 것이 별로 어렵지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삶의 큰 변화 가운데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기만 합니다. 그리고 영어가 안되서 힘들고 무시당한다는 생각으로 상실감과 무력감에 힘들어 할 때 누가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위로해 줍니까? 그 자리에 내가 세상의 가장 어려움을 겪을 때 내 발밑에서 ,내가 넘어지거나 실족하지 않도록 가장 낮은 곳에서 나를 받쳐주시고, 내 어깨를 붙잡아 나의 중심을 잡아 주시는 분은 언제나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은 물질보다 중요하고 믿음은 성공이나 행복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귀합니다. 내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어 버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와 동행하신다는 임마누엘의 믿음을 붙잡고만 있으면요 우리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탄의 또 다른 의미이자 선물은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떠납니다.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구요 권력도 세상 영광도, 물질도 영원히 소유하거나 지배할 수 없기에 언젠간 다 떠나게 됩니다. 자신이 소유했다고 집착하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은 결국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어떤 환난 속에서나 시험 속에서나 너희를 지키고 임마누엘 동행하시겠다는 놀라운 언약이 곧 성탄절에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저는 하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심지어 최근까지도 죄의 권세와 죄의 유혹앞에 얼마나 자주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지금 부터 약 5년 4개월전 쯤, 제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제 죄로 인한 당연한 결과였기에 제가 온전히 감당해야 할 일이었지만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인생의 근간이 되었던 인격, 자신감, 신앙인으로서 가졌던 안정과 평안, 자존감, 인간관계조차도 뿌리가 송두리채 뽑히는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가 걸리면 누구나 일정기간 격리하듯이 죄로인해 제 삶은 기약없는 자가격리, 쿼런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겁니다. 세상인지 너의 하나님이인지 이제 선택하라고 물어보시는데 나의 반응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너무나 결단이 더딥니다. 저처럼 미련한 사람은 죽을 만큼 힘들어봐야 그제서야 하나님 앞에 나가게 되더라구요.
이대로 끝나는 건가? 하나님은 나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실까? 하며 두렵고도 어두운 긴 터널안을 홀로 움추리고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로마서 8장1절과 2절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다시 일어날 힘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지금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은 구원의 능력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를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요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고 진리안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자비하심 때문에 지금 우리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런 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 25:13
저와 제 아내가 한국과 영국을 거쳐서 호주에 돌아온 2021년 2월, 저희 부부는 구세군라이드 한인교회에 등록했습니다. 교우분들의 사랑과 친밀한 교제, 그리고 년중 무휴로 계속되었던 수요성경공부와 김환기 사관님을 통해서 공급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는 조금씩 자신감을 찾고 마지막 때를 살아낼 새힘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정식으로 군세군에 입대하여 병사가 되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저의 죄로인한 쿼런틴 격리 기간에 저는 한국에 있는 예장합동측의 신학대학원을 수료하고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구요 충만교회라는 작은 교회에서 호주선교사로 파송을 받았기에 지금 이자리에 다니엘 선교사로 불리며 서있습니다. 사실 저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고 선교사나 목사로 불려지기도 부끄러운 무익한 종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 살기 원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서 강한 군병이 되어서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말씀안에만 안주하기 보다는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부르고 계신 사역의 자리에 서기를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세상가운데 복음을 외치는 자로 살겠다고 결단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건강하게 오래살았다고 참 잘살았다고 평가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일생을 얼마나 가치있게 보냈느냐에 따라 후에 심판날 하나님의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한정된 시간을 하나님 나라와 소명에 따라 가치있는 일을 행하며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늘 하나님앞에 나가 기도드리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소멸하는 세상의 덧없는 것을 붙잡지 말고 영원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하고, 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시간을 보내고 계시다면 여러분은 시간을 지혜롭고 가치있게 잘 사용하고 계신 겁니다.
요한복음 4장 9-1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가르치시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신 후, 이제 2천년이 지났습니다. 약속하신 재림이 언제인지, 그날까지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더 주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고 모두가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열려있는 구원의 문은 머지않아 닫히게 될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은 분들이 혹시 이자리에 계시다면 간절하게 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의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문이 열려 있을 때,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예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때가 지나면 다시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고 있는 우리는 언제 예수님이 다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늘 재림을 기다리며,그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말고, 오직 서로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4-25)
그날이 내일이 될지, 1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런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당장 오늘 밤에라도 예수님이 오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그러한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함께 모여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드리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야 합니다. 2022년 한해 동안 김환기 사관님의 말씀을 들으며 무려 52번의 주일 예배를 여러분들과 함께 드리고 마지막 주일예배를 성탄절 찬양예배로 드리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드리고 참 좋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들도 좋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성탄절을 맞이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축복이 성도님들과 함께 하시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기쁨과 은혜 충만하시고 감사함과 함께 반드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이 다니엘 선교사
구세군 라이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