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은막 (銀幕)의 스타들이 우리 곁을 떠난다
대중 (大衆)의 시선과 의식을 지배
대중 (大衆)의 시선과 의식을 지배하다시피 하던 등 은막 (銀幕)의 스타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안개”의 윤정희, “씨받이”의 강수연 씨가 별세했다.
연기자들이 다 그러 하겠지만 최근에 별세한 윤여정씨나 강수연씨는 그들의 삶이 연기자의 화신 (化神)이 된 것처럼 살다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타 중에 스타, 윤정희씨와 강수연씨의 프로필을 검색해 봤다.

윤정희 (1944.7.30 ~ 2023.1.19)
윤정희씨는 1944년 부산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랐다. 조선대 영문학과를 다니던 중 12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신인배우 오디션에 뽑혀 1967년 영화 <청춘극장>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그해 대종상영화제 신인상, 청룡영화제 인기여우상 등을 받고 이듬해 <안개>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시작부터 대중에게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문희, 남정임씨와 함께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던 은막의 스타였다.
그는 세계적이 피아니스트 박건우시와 결혼후, 16년간 스크린을 떠났다가 2010년 <시>로 돌아왔다. 이 역할로 2011년 LA비평가협회와 시네마닐라국제영화제 등 국제 무대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수여하는 ‘문화예술 기사 훈장’을 받기도 했다. 평생 영화를 떠난 적 없는 배우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배우 활동을 하지 않을 때도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제 심사위원을 지냈다.
2016년 윤정희 데뷔 50주년 특별전 ‘스크린, 윤정희라는 색채로 물들다’ 개막식 기자회견에서 고인은 “배우가 하기 싫었던 적은 한번도 없다. 전 하늘나라 갈 때까지 카메라 앞에 설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강수연 (1966 ~ 2022)
강수연씨 (1966 ~ 2022)가 별이 됐다. 한국 영화계를 빛내던 ‘원조 월드스타’가 이제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아역 배우 활동을 시작한 네 살 때부터 50년을 “연기가 좋아” 배우로 산 그다.
영화 <핏줄>(1975)부터 최근 촬영을 마친 넷플릭스 영화 <정이>까지 출연작이 40여편이다. <슬픔은 이제 그만> <고래사냥 2> <씨받이>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아제 아제 바라아제>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스크린은 물론 <고교생 일기> <여인천하> 등 TV드라마로도 대중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영화 <베테랑>을 대표하는 명대사다. 사실 이 말은 <베테랑>이 나오기 오래전부터 고인이 사석에서 영화인들을 챙기며 자주 하던 말이라고 한다. ‘가오’는 ‘폼 잡고’ ‘허세 부린다’는 뜻이 강한 일본어이자 속어다. 하지만 강수연에게는 ‘배우·영화인은 부나 명예 등 다른 무엇보다 자존심이 소중하다’는 의미였다. 실제 그는 배우로서, 영화인으로서의 자존심을 강조했다.
“배우는 오로지 연기로만 말한다”고 했고 “정말 미치도록 연기했다”고 서슴없이 이야기했다.
<씨받이>(1987)로 세계 3대 영화제인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한국 최초로 수상하고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영화제 최우수여배우상을 받은 원동력이다. “당돌한 여배우”를 넘어 <고래사냥 2>(1985)에선 원효대교에서 한강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대역 없이 소화한 “당찬 배우”였다. 그의 배우 인생에는 한국 영화사가, 우리 시대의 변화상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다.
그의 삼성서울병원 빈소에는 영화계는 물론 각계각층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추모 글이 가득하다. “연기를 잘하는 할머니 여배우”를 그리던 고인의 꿈이 모두의 안타까움을 더한다.
“원조 월드스타” “대단한 배우” “등대 같은 분” “자랑스러운 선배” “멋진 누나” “잘 챙기는 맏언니”….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를 기억한다.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불경 ‘반야심경’의 마지막 구절을 차용했다. 그 의미처럼 ‘저 피안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에서 평안한 영면에 들기를 기원한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