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韓非子) 서 – 한비와 그 후학이 쓴 법가 서적

전한시대에 정리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비자와 그 후학들이 쓴 논저이다. 55편 20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한비자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저서는 오두, 현학(顯學), 고분이다.
– 상세
성인은 드물게 나니 평범한 사람들로도 운용가능한 제도 구축에 노력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 역설하였다. 성인의 현능함을 이용하는 것이 무용하다고 역설한 것은 법가의 공통된 견해이다. 또한 한비자는 다른 학자들이 옛성인들을 언급하는 것을 비판했다. 한비자 본인도 옛사람들이나 그들의 시대가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인정한다. 허나 시대가 바뀐 까닭에 옛날과 같이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옛날에는 사람의 숫자가 적었으므로 재화가 넉넉하였다는 것이다. 허나 오늘날을 돌이켜 보면 백성들은 아들 다섯을 부양하기에 많다고 여기지 않으나, 이 다섯 아들이 제각기 다섯 아들을 낳으면 할아버지는 스물 다섯의 손자가 생기니 자연히 차지할 수 있고, 재화가 줄어들어 다툼이 생긴다. 그러므로 새 시대에 맞는 새 정책이 필요하며, 한비자는 이를 옛 성인의 시대라 할지라도 제각기 다른 시대의 성인의 계책을 실행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며 다시금 수주대토에도 빗대어 설명하였다.
법(法)과 술(術)과 세(勢)를 중시했다. 이는 한비자가 최후의 법가이자 동시에 법가를 집대성한 법가의 거두로 불리는 이유이다.
한비자 이전의 법가에는 크게 3가지의 계통이 있었다.
첫째로 신도의 계통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세를 중시했다.
둘째로 신불해의 계통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은 술을 중시했다.
셋째는 상앙의 계통인데 이들은 법을 중시했다. 한비자는 어느 하나라도 빼놓을 수 없다고 여겼다.
한비자에 따르면 세는 군주에게 있어서 밑천이다. 일찍이 신도가 두 신하와 한 군주가 세력의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를 언급했다. 임금은 두 신하 중 하나를 쳐서 세력의 절대우위를 점하라는 충신의 간언을 무시하였다가 한 명의 신하가 다른 신하를 쳐서 세력을 흡수하자 열세에 놓여 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세는 군주에게 있어서 기본적인 밑천이다. 술은 군주가 신하를 부리는 술수이다. 군주는 적절한 신하를 뽑아 임용해야 하며 신하의 실적에 따라 상벌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군주가 신하를 제대로 부리지 못하면 국정은 온전히 운영될 수 없다.
법은 신하가 백성을 다스리는 규칙이다. 법이 엄정하지 못하면 나라가 어지럽다. 세, 술, 법을 적절히 병용하는 것이 치국의 요체이다. 법과 술은 군주의 수단이며 세가 없으면 수단을 부릴 힘이 없다. 한비자의 많은 부분은 술에 할애되어 있다.
고분편에서 한비자는 술과 법을 다루는 선비에 대해 논한다.
지술지사, 술을 아는 선비는 식견과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사리사욕을 취하려는 신하들이 꾸미는 음모를 밝힐 수 있다.
능법지사는 법을 아는 선비인데 굳세고 곧아야 한다. 굳세고 곧지 못하면 간교함을 바로잡을 수 없기에, 이를 등용해 사리사욕을 꾸미는 간신과 귀족을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세를 따르지 못할 경우 법술지사는 누명이 씌워져 죽거나, 자객의 손에 목 숨을 잃을 것이다.
법술지사는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저러한 운명에 취할 것이다.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이므로 순자의 영향을 받았다. 순자는 유가 중에서도 상당히 논리적인 부분을 중시했는데 이는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명가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비자는 명가의 영향도 받았다.
명가의 주된 노력 중 하나는 이름과 실질을 알맞게 부합시키려는 것이었다.
유가에서는 이것이 부모가 부모답고 자녀가 자녀다운 윤리론으로서 나타난다.
한비자에서는 이름과 실질의 부합이 관직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여긴다. 재무부 장관이라는 이름이면 재무부 장관다운 실적이 있어야 하며, 임명한 이후에는 명과 실이 잘 부합되는가 심사하여 상벌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법가의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형명(形名)이다.
다시 말하자면 재무부장관은 관명이다. 재무부장관이 해야 할 일은 이름의 내용이자, 직(職)이다. 재무부장관, 곧 재무부장관 직을 맡은 사람이 바로 실이며, 다른 말로는 형이다. 형명상합, 명실상합등은 명과 실, 직과 형이이 조화로운 상태를 이른다. 순명핵실(循名核實), 종합명실(綜合名實)은 이를 잘 판단해 상과 벌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이는 술에 속하는 것이다. 한비자는 상벌은 군주의 두 가지 권병, 도구라 말한다.
그러기에 한비자는 순자의 제자이기 때문에 더욱 상벌을 중시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은 본디 호오의 감정을 지닌 존재이다. 이익을 좇고 해를 꺼린다. 그러므로 이해로써 사람을 부릴 수 있다. 인간이 선하지 않음은 모든 법가가 주장하는 바이지만 한비자는 더욱 강하게 주장한다. 한비자 육반편에는 부모 자식의 관계에 멋지게 빗대어 설명한다.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에도 아들은 기뻐하나 딸은 꺼린다. 같은 몸에서 나왔으나 아들과 딸 사이에 구별이 생기는 것은 부모가 훗날의 장기적인 이익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대할 때에도 계산하는 마음이 있는데 부모자식도 아닌 관계는 어떠하겠는가?
외저설좌상편도 비슷하다. 품꾼을 샀을 때 주인이 돈을 주고 밥을 맛있게 해주는 것은 품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품꾼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품꾼이 열심히 일하는 까닭은 주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열심히 일해야 반찬이 맛있고 품삯도 쉽게 받기 때문이다. 주고 받음이란 이러하다. 마음의 모든 작용은 한결같이 자신을 위하는 마음과 함께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익이 걸리면 적이라도 화해하나 손해가 생기면 부모자식간에도 원망한다.
앞서 옛날에는 사람이 적었고 재물이 많았으며, 오늘날에는 사람이 많아 재물이 적어졌다고 한비자는 말한다. 봄에는 형제끼리도 양식을 양보하지 않지만 가을에는 나그네에게도 밥을 준다. 사람의 인성이 옛날에는 관대했고 오늘날 야비하지 않다. 다만 환경의 차이이다. 형벌과 정치는 그러므로 시대에 따라 강하고 약하고 차등이 필요하다. 현학편에서 한비자는 공맹의 덕치와 예치는 무시한다. 흉포를 막는 것은 위세일 뿐이지, 덕후(德厚) 따위로는 혼란을 막을 수가 없다고 한다. 남이 내게 선행할 것을 의지치 않고, 남이 내게 감히 나쁜 짓을 못하도록 하겠다. 남이 내게 선행할 것을 의지하면 한 나라 안에 열댓 명도 의지할 수 없겠지만, 감히 악행을 저지르지 못하게 한다면 한 나라를 숙정할 수 있다. 통치자는 다수에게 통할 방법을 택해야 하므로 덕은 버리고 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은 필연이지만, 선행은 우연인 것이다.
한비자의 사상은 도가 사상과도 통한다. 한비자와 명가도 그렇듯 당대의 제자백가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법가의 통치술과 도가의 통치술은 본래부터가 서로 통하는 바가 많았다. 개중에서도 대단한 지혜를 가진 성인이 쓸데없다고 주장하는 거나 무위의 통치술 등은 도가와 법가가 특히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이다. 도가의 통치술은 많은 부분이 무위의 통치술로 화를 피해 은거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는 앞서 논한 신도가 세를 중시함과 통한다. 군주는 현명함으로 세에 거스르는 일을 꾸밀 필요가 없이 세에 따라서 행동하라는 것이다. 앞서 두 명의 신하와 한 명의 군주의 이야기를 했는데 군주가 세에 따라 두 명의 신하 중 한 명을 쳐서 세를 흡수했거나, 한 명의 신하가 승리한 후에는 늦더라도 왕위를 내려놓고 은거했다면 화를 피했을 것이다. 따라서 신도는 때로는 법가로 분류되고 때로는 도가로 분류된다.
본래 무위의 술은 공자가 먼저 주창한 것이다. 공자의 주장에 따르면 순이 바로 무위의 술을 활용하였다. 순은 그저 조정에 장중하고 단정하게 앉아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유가에서 말하는 덕치라고 할 수 있다. 덕으로 사람을 교화한 경지를 말하는 것이다. 반면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는 작위가 없어 몸이 안전한 은자의 경우를 이른다. 한비자는 이를 결합시킨 것이다. 무위는 무위이되 그 꾸밈이 없음은 유가도 아니고 도가도 아니다. 세에 있어서 무위는 두 신하와 한 명의 군주의 경우처럼 세를 따라가는 무위를, 술에 있어서 무위는 군주가 직접 일을 하지 않고 신하를 세워서 상벌을 다루는 것을, 법에 있어서 무위는 역시 군주가 직접 일을 하지 않고 신하가 법을 적용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이를 보면 신도는 법가와 도가의 다리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때로 법가로 분류되고 때로 도가로 분류되는 것이 각자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양권편은 자못 명가와 도가의 흥취가 섞여 있다. 군주는 중앙에서 세를 쥐고 있으면서 신하들을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군주는 신하의 일처리를 관찰하며 형과 명의 기준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이치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각 사물과 재료는 그에 적합한 일과 용도가 있다. 모든 것이 적합한 곳에 처하면 군신 상하는 무위의 도로 다스릴 수 있다. 닭은 새벽을 알리고, 고양이는 쥐를 잡는다. 신하가 그와 같다는 것이다. 군주는 닭과 고양이를 기르면 그만이지 결코 쥐를 잡을 재능, 새벽을 알릴 재능이나 근면함을 갖출 필요가 없다. 만약 군주가 어떤 능력을 특별히 더 귀중하게 여긴다면 신하는 그 능력을 이용해 군주를 기만할 것이다. 논변과 총명함을 군주가 사랑한다면 신하가 그 능력을 이용할 것이니 결코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명가와 도가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군주는 이처럼 신하에게 일을 맡긴 채, 명과 실의 조화를 살펴 상벌이라는 두 권병을 이용해 그들의 공효를 평가한다. 이전 버전의 한비자 문서에서는 한비자가 도가와 통하지만 노자에 국한되지 장자와는 별 관련이 없다고 말했으나, 장자 천도편에도 비슷한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도덕경을 인용하는 해노, 유노 편 등은 비록 사마천은 한비자의 저작으로 여겼지만, 사실 후세의 편집이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이들이 도가와 통하기는 한다. 말하자면 장자는 그냥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면 알아서 잘 살지 않겠냐고 했다. 노자는 덜 욕심내고 무지한 상태에 머물면 순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도가의 일파는 사물이란 영위할 만한 것은 못 되지만 영위하지 않을 수 없고, 일은 은닉되어 있지만 도모하지 않을 수 없고, 법은 조잡하지만 실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여겼다. 이들은 분수, 형명, 인임, 원성, 시비, 상벌 등을 논하긴 하였으나 역시 하늘, 도덕, 인의 등을 중시했다. 그러므로 한비자는 도가와 통하되, 또 다르다.
현학편에서는 자유주의 경제학 비슷한 이야기도 한다. 곧 유가에 대한 비판인데, 유가는 빈궁한 자에게 토지를 나눠주자고 하지만 똑같은 조건 하에서 빈궁한 자와 부유한 자는 그 노력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유가의 주장은 공리공담에 불과하며, 오히려 그냥 내버려두면 모두 열심히 일할 것이기 때문에 생산이 증가될 것이라는 얘기도 한다.
훗날 이른바 신도가, 곧 현학의 무리들도 이 통치술과 연결되는 바가 있다. 하지만 대차게 망하고 말았다.
– 평가
사상이 비슷하기 때문에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비교되기도 하지만 비슷한 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은 정치에서 ‘인의’ 또는 ‘도덕’에 큰 무게를 두지 않기에 비정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마키아벨리는 정치적인 면을, 한비자는 법에 의한 복종을 강조하기 때문에 접점이 별로 없다. 대표적으로 ‘신용’에 대한 둘의 관점은 ‘신용’ 목적이 아니고 나라를 다스리는 도구라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하지만, 마키아벨리는 할 거짓말 다 하면서 어떻게든 ‘신용’이 있는 척만 하면 되는 데 반해서 한비자는 끝까지 신용이 있는 척 가장할 수는 없기에 실제로 ‘신용’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또 작은 틈이 어렵게 쌓아놓은 ‘신용’을 무너뜨릴 수 있기에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더 본질적인 면에서 보면, 흔한 대중의 오해와는 달리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는 비정한 권모술수주의자가 전혀 아니고, 윤리적 원칙의 중요함을 부정한 인물도 아니다. 다만, 현실주의자 로써 윤리적 원칙, 즉 ‘정의’가 덕이나 인의만 내세운다고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강제력도 섞어서 지켜지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한 것 뿐이며, 이러한 현실주의가 오독되어 마치 세상에는 덕도 인의도, 윤리도 필요 없고 그저 실질적인 강제력이 세상의 규범 전부가 되야한다고 주장한 것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또한 그리스-로마 철학 이래 수천년간 축적되어 온 ‘서양 철학의 기반 위에 세워진’ 마키아벨리의 사상과 제자백가 이래 수천 년간 축적되어 온 ‘동양 철학의 기반이 된’ 한비자의 주장을 같은 선에 놓고 비교하기는 대단히 곤란하다. 누가 더 낫고 더 못하다는 차원이 아니라, (법가와 한비자의 용어를 빌리자면) 한비자는 ‘법’과 ‘술’과 ‘세’를 모두 자신이 제시해야 하는 입장었지만 수천년간의 사유를 통해 ‘법’의 개념이 상당히 명확해진 시대에 살았던 마키아벨리는 기존에 형성된 ‘법’에 대한 공감대 위에서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세’와 ‘술’을 섬세하게 설명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 그래서 한비자는 법가 철학을 집대성한 이이고, 마키아벨리는 근현대 정치학의 시초인 것이다.
한비자의 정치개혁이 지나치게 법과 세를 중시하여 비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일례로 땅도 작고 머릿수도 적으며 사방이 강대국인 약소국에게 ‘외교로 살아남으려 하기 보다는, 법치로 강대국이 되어 이 위기를 벗어나면 된다.’라는 주장도 보인다. 한비자의 주요 글들이 쓰인 전국시대 후기의 상황을 보면, 이미 진나라가 나머지 6국을 합친 것만큼 강대해진 상황에서 6국이 귀족들의 반대가 없더라도 수년이 걸릴 정치개혁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시간이 촉박했다. 이러한 점은 통치에 대한 일반 이론에 대한 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당시 한나라 임금에게 국정개혁에 대해 바쳤을 편들에서도 보인다. 그리고 이는 적어도 대등하거나 강대한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대한 언급이기에 통일 제국의 통치자를 염두에 두고 쓴 글도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비판은 이론서와 실정에 대한 구분을 잘 하지 못하는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비자가 쓴 한비자는 이론서이며 각주에 달린 비판은 실정에 맞춘 임기응변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비자의 저술이 당대 실정에 맞지 않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장구한 이론서를 쓰고자 할 때 그와 같은 것은 시간과 노력과 페이지가 남았을 때 하는 두 번째 고려사항이지 첫 번째 고려사항이 될 수 없다.
○ 한비자서의 편장 구성
각 편장들의 제목과 간략한 내용은 다름과 같다.
1. 초진견初秦見. 한비가 진왕에게 상주하기 위해 저술한 것이지만 실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그의 저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2. 존한存韓. 한의 보존을 위해 진왕에게 상주한 글이다. 역시 한비의 저술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한다.
3. 난언難言. 역시 군주에게 올리는 상주문이며, 설득의 어려움을 군주에게 알리는 형식이다.
4. 애신愛臣. ‘총애받는 신하’라는 머릿글자를 딴 편이다. 신료를 통제하고 군주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법으로 명확한 관계를 세워야 함을 역설한다.
5. 주도主道. ‘군주의 길’. ‘노자’와 흡사한 운문으로 이뤄져 있으며, 무위의 치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담고 있다. ‘노자’에 대한 독후감인 편장과 더불어 노자와 법가를 혼합한 황로파의 사상이 한바와 멀지 않은 진/한시기에 있었다는 점을 시사해주는 문헌이다.
6. 유도有度. ‘법도의 존재’. 신료에게 법을 철저히 적용시킬 것을 이야기한다.
7. 이병二柄. 상·벌권을 함께 손에 쥐어야만 군주로서 군림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편장이다.
8. 양권揚權. 5편 〈주도〉와 함께 운문으로 이뤄진 편장이다. 여기서는 군주의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전개된다.
9. 팔간八姦. 군주권을 침해하는 요소들을 여덟가지로 유형화하며 그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10. 십과十過. 군주가 나라를 잃는 원인으로 저지를 수 있는 과오들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다양한 옛 이야기들이 인용되어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옛 이야기의 내용 자체는 다른 문헌과 그리 다르지는 않다.
11. 고분孤憤. 법술지사가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부분으로, 핵심적인 편장 가운데 하나다.
12. 세난說難. 3편과 유사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13. 화씨和氏. 편장 제목은 화씨의 옥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법술에 의한 통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한탄이 있다.
14. 간겁시신姦劫弑臣. 군주를 해치는 신하들의 유형을 분석한 편장이다. 매우 치밀한 모습을 보여준다.
15. 망징亡徵. 말 그대로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징조가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분석해 낸 장이다. 역시 대단히 치밀하다.
16. 삼수三守. 군주권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를 서술했다. 핵심은 정보와 결정권의 불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있다.
17. 비내備內. 부인 및 자식들 역시 군주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는 냉정한 분석이 이뤄진다.
18. 남면南面. 편장의 제목은 군주가 마주하는 방향을 통해 군주의 군림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낱말이다. 신료들을 상호 견제시키고, 스스로의 발언에 책임을 묻게 하는 방법 등의 군림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
19. 식사飾邪. 미신을 타파하자는 ‘합리주의적’ 성향이 드러나 있다. 한비는 여기서 어떠한 것도 법 이상의 기준일 수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
20. 해로解老. ‘노자’에 대해 쓴 편장 가운데 하나. 노자 자체보다는 법가와 도가의 절충적 지점 즉 황로파에 가까운 해석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인용되는 ‘노자’의 문구들은 문헌학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된다.
21. 유로喩老. ‘노자’에 대해 쓴 편장 가운데 하나. 좀 더 독자적인 비유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22·23. 설림說林 상/하. 옛 이야기들이 다수 포함된 자료집으로 보인다.
24. 관행觀行. 행동의 관찰에도 역시 법술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논지다.
25. 안위安危. 국가를 잘 보존하는 원칙과 위기에 빠지는 길에 대한 유형화. 법에 대한 존중은 역시 그 핵심이다.
26. 수도守道. 나라를 지켜나가는 방법에 대하여 서술한다. 역시 객과적 기준에 대한 강조가 눈에 듼다.
27. 용인用人. 하늘(天)이 언급되는 등 그 형이상학적 근거에서 황로파의 저작임을 알 수 있다. 역시 법술과 신상필벌의 원리가 무위의 치와 결합되어 있다.
28. 공명功名. 역시 황로파의 저작 같다. 군주가 공을 세우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언급된 요소들은 천시, 인심, 재능, 세이며 이 가운데 재능을 제외하면 모두가 황로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들이다.
29. 대체大體. 역시 황로파의 저작같다. 군주와 신하 상하간의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는 동력은 바로 도이며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다.
30. 내저설內儲說 상, 칠술七術. 경經과 전傳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경에서는 군주가 취해야 할 일곱가지 방법을, 전에서는 그 구체적 사례를 해설하고 있다.
31. 내저설 하, 육미六微. 역시 경과 전으로 나뉘어 있다. 경에서는 군주가 감지해야 할 나쁜 징조들을에 대해 이야기하며 전에서는 그 구체적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32·33·34·35. 외저설外儲說 좌상/좌하/우상/우하. 역시 경/전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한비 사상의 핵심적 주제인 객관적 법法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인 술術, 초월적 권위인 세勢 등을 확보하는 것이 군주권을 지키는 데 있어 핵심적인 것으로 경에 소개된다.
36·37·38·39. 난難 1-4. 한비가 스스로의 관점에서 가한 역사 비평들이다. 제목은 비판의 의미이다.
40. 난세難勢. 세勢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곳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현명함과 세 개념 사이의 관계다. 한비는 세는 현명하다고 쓸 수 있다고 어리석다고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유효한 지점은 중질정도의 군주가 군림할 때라는 점 또한 밝힌다.
41. 문변問辯. 변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묻는다. 한비는 변론을 무의미한 것으로 간주해 강하게 비판한다.
42. 문전問田. 서술은 논어나 맹자에서처럼 대화를 받아 적은 방식으로 되어 있다. 한비자를 ‘한자(韓子, 한 선생님)’라고 표현하는 것 때문에 약간 후대에 쓰인 것일 수도 있다는 설이 있다.
43. 정법正法. 역시 문답 형식이다. 법과 술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44. 설의說疑. 사이비를 가려내어 명확하게 밝힌다는 뜻이다. 군주에게 해만 입히는 걷만 뻔지르르한 경우에 대한 비판과 군주의 경계를 촉구한 편장이다.
45. 궤사詭使. 당시의 실제 정치가 법과 술에 의한 통치의 성격과는 크게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한비가 우려와 울분을 토해내고 있는 편장이다.
46. 육반六反. 군주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인간형이 민의 칭송을 받고, 민의 비난 대상이 군주에게 도리에 존숭되는 모순을 여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했다.
47. 팔설八說. 법치에 반하는 여덟 종류의 인간상을 비판한 편장이다.
48. 팔경八經. 여덟 가지의 통치 원칙을 들고 있다.
49. 오두五蠹. 혼란을 조장하는 다섯 가지 벌레들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주로 유가, 묵가를 비롯한 다른 학파들을 뜻한다. 타 학파에 대한 평론이 성행하던 전국시대 말기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50. 현학顯學. 유가와 묵가에 대한 상당히 공격적인 비판이 이뤄져 있다.
51. 충효忠孝. 유가의 충효에 기반을 둔 질서나 정통 도가적 지식인 · 합종가 · 연횡가의 주장이 비판을 받는다.
52. 인주人主. 군주로서 신하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논한다.
53. 칙령勅領. 한길사판 번역자 이운구에 따르면 상앙의 ‘근령’을 발췌한 부분이라고 한다. 법을 확립하고 명령을 확실히 하는 것이 정치를 안정시키는 길이라고 한다.이하 편장에는 상앙의 영향이 드러나 있다.
54. 심도心度. 민의 심리를 고려한 상·벌을 통해 민이 군주에게 복종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요지다.
55. 제분制分. 상·벌의 명확한 구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효과를 분석한다.
– 기타
당시의 다른 사상가들과는 다르게 세상이 진보하고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상당히 혁신적인 사상이다. 당시의 사상가들은 주로 옛 성인들에게 가탁해 주장을 수립하기를 즐겼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중국 고대 사상가 중에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니 새 시대가 찾아올 때마다 새로운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선언한 사상가이다. 다만 사회변화에 대한 인식과는 달리, ‘오두’등지에서 상공업에 대한 인식은 당대의 다른 사상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나쁘게 보았다. 다만 시대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 고대 중국은 어디까지나 농업 중심의 사회였으며, 상공업은 당연히 농업보다 급수가 떨어지고 저울눈을 속이는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고대 국가 입장에서 통제를 하기 위한 품이 많이 들었다. -특히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의 시대에서-상업은 물자의 이동이라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보다도, 실제로 생산하는 것이 없음에도 중간에 자기 이윤만 챙기는 모습이 더 눈에 잘 들어온다. 또한 한비자가 살던 시대의 공업은 좀 더 나은 농기구나 병장기 같은 부국 강병에 도움이 되는 물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기 보다는, 주로 사치품 제작을 의미했다.
위에 말한 ‘신용’을 당장의 결과보다 우선하였기에 일종의 과학적 방법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누군가 어떤 사업을 함에 있어, 그 사업의 결과가 사업 전에 그가 예상한 것보다 나쁘게 나오면 사업 실패를 이유로 처벌해야 하지만, 그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도 속임을 이유로 처벌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결과에 따라 사전의 예상에 대한 평가를 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원칙에 따라 틀릴 때가 있는 점이나 신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이용하기 부적합하다고 하였다. 이는 수천년 후의 칼 포퍼의 ‘반증’과도 유사점을 보인다.
‘한비자의 나라가 망하는 징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망징亡徵 : 이렇게 되면 망한다.
1. 나라는 적은데 군신(群臣)의 저택은 크고, 군주의 권력은 약한데 대신의 세력이 크면 멸망한다.
2. 법령, 금제를 소홀히 하여 그에 따르지 않고, 모략에 열중하여 국내를 다스리지 못하고, 외국의 원조만 믿고 있으면 멸망한다.
3. 군신(群臣)이 학문을 닦고, 귀족의 자제가 공허한 변론을 즐기며, 상인이 정부를 배경으로 남몰래 축재를 하며, 아래 백성들이 군주가 베풀어 준 것을 받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 망한다.
4. 군주가 궁전과 누각과 정원과 연못 같은 토목 건축을 좋아하고, 수레와 말, 의복과 기이한 물건 그밖에 오락물에 골몰하고, 그 때문에 백성들을 고달프게 하여 재정을 낭비하면 망한다.
5. 군주가 날짜나 시간 따위의 길흉에 마음을 쓰고, 귀신에 혹하여 점쟁이의 말을 믿고 굿하기를 좋아하면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6. 군주가 신하의 진언을 들어 관작을 수여하는데 실제의 공적을 조사하지 않고, 다만 한 사람의 총애하는 신하를 밖의 정세를 보고하는 창구라고 믿고 있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7. 중신의 알선으로 관직이 주어지고, 뇌물을 바쳐 작록을 얻을 수 있는 나라는 망한다.
8. 군주의 성격이 아둔하고, 일을 처리한 적이 별로 없으며, 의지가 유약하고 결단력이 미약하며, 기호가 분명치 않고, 남에게 의지하여 자립정신이 없으면 그 나라는 망한다.
9. 군주가 탐욕스럽고 만족할 줄 모르며, 어떤 일이든 이득을 보겠다고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10. 군주가 자기 마음대로 포상하기를 좋아하고, 법규를 따르지 않으며, 말만 앞세우고 실용성을 따지지 않고 겉치레에만 골몰하여 전시효과만을 노리면 그 나라는 망한다.
11. 군주의 사람됨이 천박하고, 밖에서 쉽게 엿볼 수 있으며, 비밀을 가슴속에 간직해 두지 못하고 바로 누설시키며, 주의는 산만하고 신하들의 말을 밖에 알리는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12. 군주가 억지를 부리며 심술궂고, 사람과 화목하지 못하며 충고를 배척하고, 남을 공격하기를 좋아하며, 국가를 돌보지 않고 경거망동하며, 더욱이 자신이 있다는 듯이 서두르는 나라는 망한다.
13. 동맹국의 원조를 믿고, 이웃 나라를 가벼이 여기면 그런 나라는 망한다.
14. 외국에서 들어온 자가 처자를 외국에 둔 채, 위로는 모사를 일삼고 아래로는 민사에 관계하고 있는 나라는 망한다.
15. 신하와 백성은 재상을 믿고 있지만, 군주에게는 심복할 수 없다고 하는 데도 군주는 그러한 재상을 신임 총애하고 있으면 권력은 아래로 옮아가므로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16. 자기 나라의 탁월한 인물은 등용하지 않고, 도리어 외국의 인재를 초청하여, 공로에 의해서 그 재능을 시험하지 않고, 다만 소문만으로 좌우시키며 외국인을 발탁하여 높은 자리에 앉히고, 종래의 신하를 천대하는 나라는 망한다.
17. 적출의 공자는 경시되고 서자가 세력이 있으며, 태자를 아직 책봉하기도 전에 군주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
18. 군주가 소탈하여 과실을 후회하지 않고 나라가 혼란한데도 자기 재능만을 믿고, 제 나라의 실력도 모르고 이웃 나라를 경시하는 나라는 망한다.
19. 자기 나라가 소국인데도 대국에 대하여 겸손하지 않고, 무력하면서 강대국을 경계하지 않고 탐욕적인 서투른 외교를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20. 태자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부왕이 강대국의 공주를 정부인으로 맞아들이게 되면 태자의 지위가 위태해진다. 그렇게 되면 신하들은 마음이 변하여 부인 편에 서게 되는데 그런 나라는 망한다.
21. 군주가 겁쟁이이며 지조가 없고 미리 알고 있으면서도 손을 쓰지 못하고, 단행해야 된다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결행하지 못하는 나라는 망한다.
22. 군주는 망명하여 다른 나라에 있는데 그 나라에서 다른 군주를 추대하거나, 타국에 인질로 가 있는 태자가 귀국하지 않고 있는데 군주가 다른 자식을 태자로 옹립하거나 하면, 민심이 국가에서 이탈할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나라는 망한다.
23. 군주가 대신을 모욕하면서도 때로는 너무 허물없이 대우하고, 아래 백성에게 함부로 형벌을 가하거나 하면, 그들의 원한은 그칠 줄 모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도처에서 난동이 일어나고, 그 나라는 망한다.
24. 두 대신이 동일한 권력을 가지고 있고, 군주의 백숙부나 형제가 권력 기구에 참여하여 세력을 펴고, 국내에는 도당이 있어 외국의 원조를 얻어 권력 싸움을 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25. 군주가 몸종이나 시녀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총신이나 광대의 계획을 실행하면, 궁정의 안팎에서 원성을 듣게 될 것이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거듭 불법을 행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
26. 대신을 소홀하게 대우하고 일족의 존장에게 무례를 범하며, 서민을 못살게 굴고 죄 없는 자를 죽이면 그 나라는 망한다.
– 관련 한자성어
.수주대토(守 지킬 수/株 그루 주/待 기다릴 대/兎 토끼 토)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힘을 들이지 않고 요행으로 일이 성취되기를 바라거나 어떤 착각에 빠져 되지도 않을 일을 공연히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 우리 속담의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 기다린다’와 비슷하나, 수주대토는 단순히 요행수를 바라는 것 뿐 아니라 자신의 좁은 식견만 믿고 아둔하게 구는 경우를 뜻하는 때도 가끔 있다.
도박이나 복권 등으로 대박이 나자 생업을 포기하고 그쪽에만 몰빵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원전은 한비자. 한비자는 이 고사를 통해서 요순시대를 이상으로 보는 ‘왕도정치’는 낡은 복고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그런데 현대 중국어에서는 어째서인지 좀 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단순히 막연하게 우연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나름 계획을 짜고 적들이 걸려들기를 대기한다는 의미이다. 유래는 다음과 같다.
송나라에 한 나무꾼이 있었다. 하루는 나무를 하다가 잠깐 쉬고 있는데 토끼 한 마리가 누군가에게 쫓기는지 쏜살같이 달려와 그루터기에 머리를 들이받고 목이 부러져서 죽었다.
나무꾼은 토끼를 잡아 집으로 돌아와서 토끼를 요리해 먹으면서 “아, 나무하기보다 토끼잡이가 쉬운 줄을 미처 몰랐네. 이제부터는 나무를 하지 말고 토끼잡이를 하면서 살아가야지.” 나무꾼은 매일매일 그루터기에 앉아서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쳐서 죽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커녕 아무것도 잡히지를 않았고 나무꾼은 동네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수주대토나 송양지인 같은 고사는 사실 상나라(은나라)의 후예인 송나라에 대한 당대의 비하적 인식도 담겨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 비슷하게 망한 왕조인 하나라의 후예인 기나라도 기우 같은 우스꽝스러운 고사성어가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한 번의 큰 이익을 목격한 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을 기대하며 가진 재산을 몰아넣은 뒤 무작정 기다리는 행위를 “존버”라 일컫기도 한ㄷ.
.역린(逆鱗; 거스를 역, 비늘 린)
“무릇 용이란 짐승은 길들여서 탈 수 있다.
그렇지만 용의 목 아래에는 지름이 한 척 정도 되는 거꾸로 배열된 비늘, 즉 역린逆鱗이 있다.
만일 사람이 그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용은 그 사람을 죽이고 만다. 군주에게도 마찬가지로 역린이란 것이 있다. 설득하는 자가 능히 군주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 설득을 기대할 만하다.” _ 한비자 세난(說難)편
용의 몸에 붙어 있는 81개 비늘들 중 딱 하나, 목 아래에 거꾸로 붙어 있다고 하는 비늘, 이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날뛴다고 하는 일종의 급소다.
유래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법가사상서 한비자 중 역린지화(逆鱗之禍)의 고사. 여기서 용은 나라의 왕이나 직장상사 같이 전권이 있는 지배층/윗사람을 의미하며, 그 사람의 눈에 들어서 실세가 되면 올라타는 것이다. 그리고 역린은 윗사람의 약점, 아킬레스건, 콤플렉스 혹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권한을 뜻한다.
역린은 용의 약점부위이며 누군가 이 역린을 건드리면 용은 그 역린을 건드린 사람을 지구 끝까지라도 좇아가서 반드시 죽인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군왕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도 민감한 사항에까지 칼을 들이대는 바람에 왕의 분노를 사게 되어 결국 비명에 간 개혁가가 한 둘이 아니다. 아주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조광조다.
서양에서 딱히 역린 전설은 나타나진 않지만, 드래곤의 몸에 딱 한곳 비늘이 없다는 이야기는 있다. 하지만 이곳을 건드린다고 날뛴다는 이야기는 없고 그냥 찔러 죽인다. 사실 서양에서는 드래곤 뿐만이 아니라 유사하게 ‘권력’을 상징할 수 있는 대형 괴수들(거인 등)은 대개 이런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용과 드래곤이 별개인 것처럼 이런 전설도 각자 따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역린과 약점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그것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완전히 다르다. 역린이 ‘죽기 싫으면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지만 드래곤의 약점은 ‘살고 싶으면 기필코 찔러야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관련된 이야기를 보아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애초에 서양의 드래곤과 동양의 용은 그 대접이 조금 다르기에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양쪽 다 인간을 뛰어넘은 힘을 가진 강력한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동양의 용은 신성한 존재로 신에 비유되는 반면, 드래곤은 재앙과 같은 존재로 인간의 적에 가깝다. 즉 동양의 용은 신성한 성수로 떠받드는 존재이며 서양의 용은 사악한 마수로 맞서 싸워 극복할 존재에 가까운 것.
요즘엔 굳이 이런 상하관계가 아니라도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함부로 건드리거나 논란거리가 될 만한 민감한 주제를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