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꿈 (夢, Dreams)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 주연) 테라오 아키라, 바이쇼 미츠코 / 1990년
꿈 (夢, Dreams)은 미국에서 제작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90년 드라마, 판타지 영화이다.
총 8개의 짦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형식이며, 주로 자연파괴나 전쟁 등에 대한 경고나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 다루어 지고 있다.
테라오 아키라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마이크 Y. 이노우에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가 반복적으로 꾸었던 실제 꿈에서 영향을 받았다. 1990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에피소드 1. 여우비가 내리던 날, 어린 구로사와는 어머니의 충고를 잊은 채 숲에 들어갔다가 여우가 시집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여우를 찾아가 용서를 빌라고 하지만, 숲으로 다시 들어간 소년의 눈 앞에는 비온 후 무지개가 걸린 아름다운 산이 보일 뿐이다. 또한 그는 누나들과 함께 복숭아를 따러 갔다가 어느 소녀를 만나게 되고, 소녀의 뒤를 쫓아 간 곳에서 복숭아 나무의 정령들을 만나는데…

○ 제작 및 출연
- 제작진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각본: 구로사와 아키라, 혼다 이시로
.제작: 마이크 Y. 이노우에, 쿠로사와 히사오
.촬영: 하라 카즈타미, 사이토 타카오, 우에다 마사하루
.편집: 미나미 토메
.음악: 이케베 신이치로
.협력프로듀서: 이이즈미 세이키치, 앨런 H. 리버트
.미술: 무라키 요시로, 아키라 사쿠라기
.의상: 와다 에미
.개봉일: 1990년 5월 11일(일본), 1990년 8월 24일(미국), 2004년 4월 16일(대한민국)
.시간: 119분
.국가: 일본, 미국
.언어: 일본어, 프랑스어, 영어

- 출연진
테라오 아키라
바이쇼 미츠코
네기시 토시에
하라다 미에코
이사키 미츠노리
나카노 토시히코
즈시 요시타카
이가와 히사시
이카리야 쵸스케
류 치슈
마틴 스코세이지
유이 마사유키

○ 내용
- 1 Sunshine Through The Rain 日照り雨
화창한 날씨에 갑자기 비가 온다.
유카타를 입은 소년 구로사와는 비를 피해 대문 처마에서 몸을 피하고 있다.
어머니는 해가 나면서 비가 내리는 날은 여우가 시집가는 날인데 여우는 수줍음이 많아 그 장면을 보면 절대 안 된다고 밖에 나가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년은 이미 숲으로 향해있고 저 멀리서 기이한 음악소리와 함께 여우의 신부 행렬이 시작되는데…

- 2 The Peach Orchard 桃畑
소년 구로사와 누나의 히나마쓰리가 한창인 집의 사랑방엔 누나의 친구들이 놀러 와있다.
누나의 친구들에게 경단을 가져다주지만 6명인 줄 알았던 누나의 친구가 5명뿐이다. 이상하게 여긴 소년 구로사와는 사라진 1명을 찾는데 그 소녀는 구로사와의 눈에만 보인다.
그 소녀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복숭아밭으로 향하지만 히나마쓰리 단상에서 튀어나온 듯한 기이한 사람들 (복숭아나무의 현신)이 구로사와의 길을 막는다.
그들은 구로사와에게 히나마쓰리는 복숭아축제와 다름없는데 너의 가족이 복숭아나무를 모두 잘라 축제를 못하게 되었으니 집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소년 구로사와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 3 The Blizzard 雪あらし
엄청난 눈보라가 화면을 뒤덮고 있다. 이런 엄청난 눈보라는 벌써 3일째.
구로사와와 동료 3명은 점점 힘을 잃고 눈 속에 파묻혀 잠이 든다.
잠이 든 구로사와에게 환영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여인이 자신에게 “눈은 따뜻하고 얼음은 뜨겁다”라며 말하며 잠을 깨운다.
정신이 든 구로사와가 눈을 떠서 보니 환영은 사라지고 바람 속에 날리는 천만 보일 뿐…

- 4 The Tunnel トンネル
4번째 에피소드에서는 부하들에게 옥쇄를 명령하곤 자기만 살아 일본으로 돌아온 일본군 장교가 부하들의 원령들을 만나는 줄거리를 다룬다.
원망하는 부하들에게 울며불며 전쟁을 일으킨 우리가 미쳤다며 사죄하는 줄거리라서 일본 극우들에게 비난을 당했다고 한다.
담담히 길을 걷던 군인이 어두운 터널을 맞닥뜨린다.
터널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뒷걸음치던 군인은 터널 안에서 나오는 사나운 개에게 위협을 받는다.
긴 터널을 걸어 나오는 그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걸어온 길을 뒤돌아 다시 쳐다본다.
터널에선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부하 한 명이 걸어나온다.
그는 이미 혼령이 된 상태이지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 5 Crows 鴉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던 구로사와 아키라는 ‘아를르의 도개교’의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강에서 빨래를 하던 아낙들에게 고흐가 있는 곳을 물어 고흐를 찾아가고, 귀에 붕대를 감고 있는 고흐를 만나게 되는데…
구로사와는 고갱과의 말다툼 끝에 귀를 자르고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들판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고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지만, 고흐는 힘차게 달리는 기관차처럼 작품 제작에 여념이 없고 무심하게 떠나버린다.
구로사와는 고흐를 쫓아 여러 가지 그림 속을 돌아다닌다.
고흐가 사라진 밀밭 길 위로 수십 마리의 까마귀떼가 날아오르는데 바로 괴기스러운 [까마귀떼 나는 밀밭] 그림 속의 명장면이다.

- 6 Mount Fuji in Red 赤冨士
6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후지산 부근에 있던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6개가 모두 폭발하면서 수백만이 피난을 시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옷을 말끔히 입은 한 남자와 평범한 옷의 남자, 그리고 어린아이 2명과 함께 있는 한 여자만이 남아 있다.
도망치는 사람들로 인해 북새통이 된 길에 구로사와 아키라가 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잠시 멈추어 후지산을 바라보는데, 후지산이 다시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길에서 마주친 중년의 남자는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고 말해준다.
남자는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바다에 빠져 죽었으며, 저기 헤엄치는 돌고래들도 얼마 안 가 끝장날 것이라고 말한다.
중년의 남자와 아들딸을 돌보던 젊은 엄마와 함께 피난을 가던 와중 다른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중년의 남자는 고통스럽게 죽기 싫다며 바다에 몸을 던진다.
저 멀리서는 붉은색을 띠는 방사선 물질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 7 The Weeping Demon 鬼哭
황폐한 용암 광야를 구로사와 아키라가 걷고 또 걷는다.
그 어떤 생명체도 없는 와중에 안개 속에서 누군가를 발견한다.
그는 바로 도깨비이다.
그가 말하길 방사능과 수소폭탄의 오염으로 이상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며 구로사와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자신의 키보다 큰 민들레와 꽃 속에서 줄기가 나는 장미가 그곳에 있다.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운명인 도깨비의 한탄은 계속되는데…

- 8 Village Of The Watermills 水車のある村
구로사와는 여행길에 물레방아가 있는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만난, 깨진 수차를 고치는 103세 노인은 현대 기술을 거부하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뿐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산다는 것은 고통이라고 하지만 허영이며 솔직히 산다는 것은 좋은 것라며 말하는데…
죽음의 순간이 다가온 이 노인은 죽음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믿기에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는다.
온 마을 사람들과 악대는 신명나는 연주를 하면서 그 노인의 죽음을 축복한다.
○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Akira Kurosawa, 1910 ~ 1998)
구로사와 아키라 (Akira Kurosawa, 일: 黒澤明, 黒沢明, 1910년 3월 23일 ~ 1998년 9월 6일)는 일본의 영화 감독이다.

– 구로사와 아키라 (黒澤明, 黒沢明)
.출생: 1910년 3월 23일, 일본 도쿄도 시나가와구
.사망: 1998년 9월 6일(88세), 일본 도쿄도 세타가야구 세이조
.직업: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가
.활동 기간: 1943 ~ 1998년
.배우자: 야구치 요코
.자녀: 1남 1녀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나루세 미키오와 함께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 영화의 거장이다.
세계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겼고, 잉마르 베리만,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로버트 올트먼, 우디 앨런 등 전세계의 수많은 거장들로부터 존경받았다. 특히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코세이지, 조지 루카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등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쳐서 오늘날 헐리우드 영화의 문법에 직접적인 기여를 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종종 일본 영화계의 천황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모두 내포되어 있는데, 그만큼 독보적인 위상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독불장군 같은 제작 스타일을 비꼬는 것이기도 했다.
아시안위크와 CNN에 의해 20세기에 아시아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한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 생애 및 활동
도쿄부 에바라군 오이 정 (현:도쿄도 시나가와구)의 학교법인일본체육회 (현재 일본체육대학)의 부속지역에서 4남 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키타현 나카센 정 (현:다이센정) 출신의 전직 군장교, 체육교사, 학교법인일본체육회이사였다.
그는 중학교 졸업후 그림공부를 했는데 권위있는 미술상도 받고 일본프롤레타리아 미술동맹에도 참가할 정도로 열정이 있었다.
1936년에 도호의 전신인 PCL에서 조감독으로 영화산업에서의 이력을 시작했다.
그는 야마모토 가지로 (山本嘉次郞)의 조감독으로 일하던 1943년에 《스가타 산시로》로 데뷔하였는데 조감독으로 일하던 도중에도 각본가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초기작들은 전쟁 중인 일본 정황을 관조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종종 민족주의적인 주제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가장 아름다운은 군수공장에서 일하는 여공에 대한 선전영화적인 느낌이 있고, 속 스가타 산시로에서는 명백한 반미감정과 미국 권투에 대한 일본 유도의 우수성이 묘사되어 있다.
반면에 그의 초기 전쟁영화인 우리 청춘 후회없다는 체포된 우익분자의 아내에 관한 영화로 일본제국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을 찍은 후 주연 야구치 요코 <矢口陽子>와 결혼하여 딸과 아들을 두었는데, 손녀는 배우 구로사와 유우 <黒澤優>이다.)
러시아 문학과 존 포드의 영화에 영향을 받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맥베드,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막심 고리키의 밑바닥,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 등을 개작하여 다양한 문예영화를 만들었다.
그런가 하면 칠인의 사무라이, 숨은 요새의 세 악인 등의 순수 오락영화 시대극도 있고, 이키루, 천국과 지옥 등의 휴먼드라마 현대극 등도 있다.
주정뱅이 천사 (1948년)부터 붉은 수염 (1965년)까지 주연으로 미후네 도시로 (三船敏郎)를 자주 기용하였다.

1960년에 자신의 프로덕션을 차려 독립하게 되지만 이후 계속 자금난에 시달리게 된다.
이 시기에 사무라이 오락물이 많이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영화의 침체기에 빠져든 60년대에 그는 오히려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기획들을 내놓았고 영화사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된다.
게다가 그 타협을 모르는 엄격한 제작태도때문에, 영화제작이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붉은 수염 제작 이후 도호와 관계가 악화되어 구로사와는 미국에서 폭주기관차의 제작을 준비하나 제작방침이 바뀐 미국측과의 심각한 대립이 발생하여 영화는 제작되지 못했다 (이후 이것은 안드레이 콘찰롭스키 에 의해 구로사와의 각본을 원안으로 삼아 영화화된다).
1968년에 미일 합작으로 도라 도라 도라의 일본측 감독으로 일하게 되지만, 미국측 제작사였던 20세기폭스나 그 일본인 브로커 등과 촬영 시작부터 스케줄이나 예산 등을 둘러싸고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 감독에서 물러나게 되고 자살 미수사건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구로사와의 대신으로는 마스다 도시로 (舛田利雄), 후쿠사쿠 긴지 (深作欣二) 등이 공동 감독이 되었다 (크레딧에는 공동감독으로 나왔지만 사실은 특수촬영이나 전투기 콕핏신 등에서의 조감독 역할을 했다).
덧붙여 구로사와 본인의 의향에 따라 크레딧에는 이름이 없지만 각본은 구로사와가 쓴 것이 대부분 사용되었다.
그 이후 영화제작에서 멀어져있다가, 소련 영화계의 전면지원으로 데루스 우잘라를, 조지 루커스, 프란시스 코폴라를 프로듀서로 카게무샤를, 프랑스와의 합작으로 란을, 워너브라더스 제작 (크레딧에는 스필버그 제공으로 나온다)으로 ‘꿈’을 만드는 등 해외 자본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팔월의 광시곡, 마다다요를 감독하였으나 차기작으로 예정된 비 그치다의 각본을 쓰던 중 교토의 여관에서 넘어져 골절을 당하는 바람에 영화 제작은 불가능해졌다.
1998년 9월 6일에 뇌졸중으로 사망하였고, 같은해 10월 1일에 일본 국민영예상을 받았다.

○ 영화 이모저모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90년 작품. 총 8개의 짦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형식이며, 주로 자연파괴나 전쟁 등에 대한 경고나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 다루어 지고 있다.
워너브라더스가 제작하였고 제작 중 한 명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참여하였다.
일본 내에서는 제작사를 찾을 수 없어 스필버그 감독에게 각본을 보냈고, 스필버그 감독이 워너브라더스에 어필한 덕분에 제작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림 ‘까마귀가 나는 밀밭’ 속에 들어가 고흐를 만나는 5번째 에피소드는 조지 루카스 감독의 ILM이 특수효과를 담당하기도 했다.
덕분에 미국 영화로 카게무샤와 같이 한국에서 90년대 후반 개봉할 듯 했다가 무산됐다.

- 인간의 꿈을 8개 옴니버스로 영화화
작고한 지 80년도 넘었지만 오늘날까지도 일본 국민들로부터 폭 넓게 사랑을 받고 있는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소설 중에 [꿈 열흘 밤]과 [마음]이라는 작품이 있다.
1908년에 쓰여진 이 소설은 자신이 직접 꾸었던 꿈을 토대로, 열흘 밤 동안의 꿈을 아름답고 환상적이면서도 때로는 공포스럽게 그리고 있다.
“이런 꿈을 꾸었다”로 시작되는 각각의 꿈은 프로이드의 꿈 해석론이 소개되지 않았던 시기임에도 본격적으로 꿈을 파헤친 작품으로 유명하다.
나쓰메 소세키가 이 작품을 쓰기 시작한 1908년도로부터 2년이 지난 후, 구로사와 아키라가 태어났다.
살아오면서 나쓰메의 작품을 익히 읽었던 구로사와는 자신의 나이가 80세 되던 해인 1990년에 영화 [꿈]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나쓰메가 소설 [꿈 열흘 밤]을 쓰기 시작한 1908년으로부터 90년이 지난 1998년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불귀의 객이 되었다.
기이한 것은 나쓰메가 이 소설을 쓰고 나서 8년 후에 죽은 것이나 아키라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고 8년 만에 타계한 것이 일치한다는 점이다.
영화 [꿈]도 나쓰메의 소설 [꿈 열흘 밤]처럼 감독 자신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꾸었던 꿈을 토대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이다.
구로사와 감독은 ‘꿈’에 관한 8개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80세의 나이에 절정에 달한 내공을 발휘하여 스크린 위에 ‘꿈’ 이야기를 미학적으로 풀어놓았다.
- 아카데미 특별공로상을 수상한 거장
영화 ‘꿈’이 개봉되기 두 달 전인 1990년 3월 26일 구로사와 감독은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그 연배의 동양인으로서 (서양인으로서도 결코 작은 체격이 아닌) 187cm에 90kg인 그가 단상에 올랐을 때의 중량감은 단지 이 거장의 체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를 영화적 스승으로 모셔온 할리우드의 타이쿤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바로 구로사와의 곁에 서서 그들의 스승이 80세 생일에 수상한 특별공로상의 가치를 더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대로 미국 영화 (존 포드 감독)로부터 영화를 배운 구로사와, 그리고 구로사와로부터 영화를 배운 스필버그와 루카스의 인간관계는 당시 미국 문화에 대해 무한한 동경을 품어온 일본 문화가 거꾸로 미국 문화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일종의 문화 역수출의 사례로 클로스업되었다
이러한 구로사와와 스필버그, 루카스의 끈끈한 관계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스필버그와 루카스가 일본에서의 영화제작 과정에서 고전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인 ‘토호’ 영화사는 [꿈]의 제작을 거부)하고 있던 구로사와의 영화 가케무샤, 亂, 꿈 등의 제작에 크게 도움을 준 사실이다.
구로사와가 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한 꿈이라는 소재 자체가 너무나 많은 특수효과가 필요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고 일본의 기술력만 가지고는 제작 자체가 불가능한 영화였다.
결국 조지 루카스가 설립한 ILM社에서 이런 시각효과 부분을 담당했으며, 그들이 만들어낸 특수효과에 구로사와 자신도 매우 만족해 하였다. 이 영화에서 화제를 모든 것은 [제5편 – 까마귀]에서 미국의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고흐로 분하였다는 점, 미국 워너브러더스 영화사가 제작비 12백만 달러를 출자하고 구로사와와 스필버그가 공동 제작했다는 점, 그리고 워너브러더스가 전세계 배급을 맡았고, 소니를 비롯한 일본 전자회사와 할리우드의 기술력이 협력하여 구로사와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하이테크 영상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 구로사와의 마지막 [꿈]
감독 자신의 ‘꿈’의 세계는 영화 내에서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잔혹하게 그려져 있고, 각 에피소드는 독특한 스타일로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
각양각색의 꿈을 통해 불안과 희망이 중첩되어지면서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자연과 인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에 대해 역설하고 있고, 일본 특유의 애니미즘에 연유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설명전개의 모호함과 구로사와의 이전 영화들과 비교하여 너무 낯선 영상으로 인해 화제만큼 관객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평단으로부터 찬반 양론의 상반된 평을 받았다.
지금까지 구로사와가 추구해 오던 휴머니즘의 결정판이라는 찬사도 있었지만, 이제는 너무나도 거장이 되어버린 구로사와의 한낱 독백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이후 8월의 광시곡, 마아다다요 등의 소품에도 손댔지만, [꿈]은 1998년 9월에 타계한 구로사와의 마지막 대작을 장식했다.
젊어서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에도 참여했던 화가 지망생 구로사와는 [꿈]을 만들 때 60여 장의 이미지 스케치를 그렸는데, 모두가 화려한 색채와 夢幻的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영화를 만들 당시 초기에 구상하였던 11개의 에피소드는 영화를 만들면서 8개로 축소되었다.
고흐를 만나는 장면에서의 노란 밀밭은 그 색감을 내기 위해 밀밭 전체를 노랗게 색칠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 영화와 인생을 함께 산 구로사와 감독
영화 [꿈]은 세계 10대 영화감독 중의 한 명으로 손꼽히는 구로사와 감독이 20세기에 꾸었던 꿈을 영화라는 꿈의 예술을 통해 창조해낸 것이다.
평생을 영화와 함께 살아 온 구로사와는 과연 그가 살았던 20세기에 어떤 꿈을 꾸었을까?
그의 인생 자체가 바로 꿈이 아니었을까?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잠을 자면서 자신이 나비가 되어서 날아가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을 때,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꾼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영화와 인생을 함께 산 구로사와의 삶과 그가 만든 영화 [꿈]을 마주하게 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구로사와가 영화의 꿈을 꾼 것인지, 영화가 구로사와의 꿈을 꾼 것인지…
그는 죽어서도 우주공간에서 영원히 영화의 꿈을 꾸면서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영원한 우주로 돌아간 구로사와 아키라는 20세기에 탄생한 영화가 20세기에 만들어낸 가장 빛나는 별 중의 하나가 되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