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동물 농장 (Animal Farm)
감독) 존 스티븐슨 / 주연) 지미 케오, 조 테일러, 앨런 스탠포드, 저 올리어리, 노엘 오도노반 / 1999년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의 세계적인 장편소설 ‘동물 농장’을 원작으로 하는 이 흥미로운 영화는 혁명과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가 그 이후의 전제주의적 상황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에게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인간을 내쫓고 ‘동물 농장’을 세운다는 큰 줄거리 아래 독재자와 사회주의 사회의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한 장편소설로,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까지의 소련의 정치상황을 소재로 했다.
‘플림스톤’, ‘베이브’, ‘피노키오’, ‘101마리 달마시안’, ‘닥터 두리틀’ 등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작업에 주로 참여해온 존 스티븐슨 감독의 이력을 기억하면 이 영화의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그리 놀랄 일은 아닌 듯하다.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은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인상적이라는 점은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영화적 재미를 준다.
또 마치 ‘핑크 플로이드의 벽’의 애니메이션 장면을 연상케 하는 영화 전체의 음악적 완성도는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미덕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동물들 눈높이의 카메라 앵글은 시각적인 재미를 더해 준다. 이런 모든 구성요소들이 이 탁월한 정치적인 우화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 제작 및 출연
– 제작진
감독: 존 스티븐슨
제작: 그렉 스미스 (Greg Smith)
기획: 로버트 할미 시니어 (Robert Halmi Sr.)
원작: 조지 오웰 (George Orwell)
각본: 앨런 제인스 (Alan Janes), 마틴 버크 (Martyn Burke)
촬영: 마이크 브루스터 (Mike Brewster)
음악: 리처드 하비 (Richard Harvey)
편집: 콜린 그린 (Colin Green)
– 출연진
.조 테일러 (Joe Taylor)
.앨런 스탠포드 (Alan Stanford)
.저 올리어리 (Jer O’Leary)
.노엘 오도노반 (Noel O’Donovan)
.줄리아 루이스 드레퓌스 (Julia Louis-Dreyfus)
.패트릭 스튜어트 (Patrick Stewart)
○ 등장인물
– 돼지들
.메이저 영감: 존스 씨가 동물 농장의 주인으로 있을 때의 대장. 카를 마르크스를 상징하며 블라디미르 레닌도 부분적으로 상징한다.
.나폴레옹: 버크셔 종의 돼지. 스노볼을 쫓아내고 독재자가 되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을 상징. 첫 프랑스어 번역에서는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이 가진 상징성 때문에 ‘세자르(시저)’로 번역되었다.
.스노볼: 나폴레옹이 독재자가 되기 전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과 함께 공동 대장을 맡았다. 스탈린에 의해 쫓겨난 레프 트로츠키와 그의 휘하에 있던 혁명가들을 상징한다.
.스퀼러: 나폴레옹의 영원한 충복. 동물 농장의 동물들이 나폴레옹에게 충성하도록 애를 쓴다.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혹은 프라우다를 상징한다.
.미니무스: 나폴레옹을 기리는 시를 지어 퍼뜨린다. 막심 고리키 혹은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를 상징한다.
.핑크아이: 나폴레옹의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먹어본다. 검사원을 상징한다.
.새끼 돼지들: 나폴레옹의 새끼들로 동물 농장의 다음 지배자가 될 세대이다. 소련 공산당의 일당독재 혹은 권력세습을 상징한다.
.혁명 돼지들: 나폴레옹의 독재에 반기를 들려다 반역자로 몰려 개들에게 살해당한다. 트로츠키파로 몰려 숙청당한 일군의 공산당원들을 상징한다.
– 돼지 외 동물들
.복서: 소박하고 부지런하기만 한 말로,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참을성 많고 강인하지만 지배층의 뜻에 휘둘린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 공산혁명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풍자했으며, 마지막에 복서가 팔려나가는 장면은 나폴레옹을 비롯한 혁명을 이끈 지도층이 민중을 배신했다는 은유이다.
.클로버: 복서의 동료로 말이다. 돼지들을 의심하지만 자꾸 일곱 계명을 까먹곤 하여 자책한다.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았지만 무기력한 중산층을 상징한다.
.몰리: 흰색의 말이다. 동물 농장의 규칙을 어기고, 각설탕에 눈이 멀어 몰래 옆 농장에서 일을 한다. 러시아 혁명으로 축출된 부르주아를 상징한다.
.벤자민: 혁명에 대해 신랄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당나귀이다. 다른 동물들보다 지적이지만 혁명에 대해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소련 내에 존재하던 유대인들, 현실도피하던 지식인들 혹은 조지 오웰 자신을 상징한다는 시각이 있다. 복서가 팔려나갈 때, 돼지를 제외한 동물들 중 처음으로 그가 도살업자에게 팔려나간다는 것을 알아챘다.
.뮤리엘: 글을 천천히 읽을 줄 아는 늙은 염소이다. 덕분에 신문 조각을 가지고 와 동물들에게 읽어 준다. 소설의 마지막에 뮤리엘이 죽는 것은 남아있던 지식인층의 소멸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한다.
.닭들: 집산주의에 따른 사유재산 금지와 재산 국유화에 저항하던 쿨라크(부농 계층, 러시아어 발음으로는 꿀락)를 상징한다. 나폴레옹이 달걀을 몰수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반발하여 높은 지붕에 올라가 그곳을 떠나지 않고 알을 낳으며 저항하였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닭들에게 식량을 주지 않기로 하여 결국 9마리가 굶어 죽었다.
.9마리의 개: 암캐인 블루벨에게서 태어나자마자 나폴레옹에 의해 격리 교육된 개들. 성장하여 나폴레옹의 호위대가 된다. 나폴레옹이 스노볼을 처음 내쫓을 때 등장해 이후 줄곧 나폴레옹의 친위대로써 겁을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스탈린 시대의 비밀경찰이었던 내무인민위원회를 상징한다.
.모세(모지스): 러시아 정교회를 상징하는 까마귀로, 존스 씨의 스파이다. 혁명 이후에 존스 씨와 함께 동물 농장을 떠났다가 풍차 전투 이후에 돌아온다. 일각에서는 모세가 러시아 정교회 수도사인 라스푸틴을 상징한다고 주장한다.
.양들: 우둔하며 스탈린을 광신적으로 따르는 우매한 민중을 상징한다.
.들쥐들: 소련 북쪽의 원주민들을 상징할 가능성이 있다. 또는 중앙아시아인이나 캅카스주민들도 상징한다.
.고양이들: 러시아 혁명과 공산주의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던 민중들을 상징한다. 농장 일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
– 사람들
.존스 씨: 그는 원래 성실하고 부지런한 농장주였지만 큰 소송에 패하면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농장에서 동물들에 의해 쫓겨난 뒤, 프레드릭과 필킹턴의 도움을 받아 농장을 탈환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알콜 중독자가 되어 수용소에서 사망하였다.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 2세를 상징한다.
.프레드릭: 프레드릭은 아돌프 히틀러, 그의 농장 핀치필드는 나치 독일을 상징한다.
.필킹턴: 필킹턴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을 상징하며 그의 농장 폭스우드는 자본주의 국가를 상징한다.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카드 게임은 테헤란 회담을 상징하는 것이다. 나폴레옹과 동시에 “스페이드 에이스”를 뽑은 것은 냉전을 뜻하며 오웰이 돼지와 인간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표현한 것은 소련과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보인 행태가 다를 바 없었다는 말이었다.
.윔퍼: 나폴레옹이 인간 세상에 동물 농장을 알리기 위해 고용했다. 1930년대 당시 소련 체제의 진실을 보지 못한 채 소련을 찬양한 서구 지식인들(장폴 사르트르, 버나드 쇼 등) 혹은 체제와 관계없이 소련과 거래하는 중립국들을 상징한다.
○ 줄거리
매너 농장(Manor Farm)의 가축들은 농장 주 존스 씨의 숨이 막힐듯한 경영에 지쳐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농장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돼지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이 농장의 동물들을 모아 놓고 존스 씨와 그의 부인을 농장에서 쫓아내자고 설득한다. 결국 농장주 부부를 쫓아낸 동물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새로운 농장의 주인은 동물이며, 따라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신조(일곱 계명) 아래 그들만의 사회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일곱 계명의 내용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동물들끼리의 삶은 잠시 동안 만족스럽게 지속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농장의 리더들에게서 존스와 똑같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교적 지능이 발달한 돼지인 나폴레옹, 스노볼, 그리고 스퀼러의 지도와 계획 아래 모든 동물들은 평등한 동물 공화국 건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돼지들의 주도하에 일요회의도 열고 문맹 퇴치의 학습시간도 갖게 되어 말과 오리새끼에 이르기까지 주인 의식을 갖고 농장의 운영에 참여하게 되어 그야말로 평등의 이념에 입각한 이상적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풍차 건설을 계기로 동물들 사이의 권력 투쟁이 노출된다. 이상주의자 스노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축출된다. 나폴레옹은 간교한 스퀼러를 대변자로 내세워 동물들을 설득도 하고 조작도 하며 개 9마리를 앞장 세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완전한 독재 체제를 세운다. 농장 운영의 방침도 바뀌어 중의를 모으던 일요회의도 폐지되고 모든 일은 나폴레옹과 그의 측근들이 임의로 결정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원래 스노볼의 계획이었던 풍차의 건설을 빙자해서 동물들의 자유를 허물어뜨리고 존스가 다시 쳐들어온다는 위험, 스노볼에 대한 반동 낙인, 동물들의 내적 불만을 외적인 공포 분위기로 제압한다. 돼지들은 불평하거나 항의하는 동물을 첩자로 몰아 숙청하기도 하고 옛날처럼 작업량을 늘이고 식량 배급을 줄이기로 한다.
반면에 나폴레옹을 둘러싼 지배계급은 존스 시대의 인간보다 더 사치스러운 생활 속에서 호의호식한다. 그들은 존스 부부가 살던 집으로 이사해서 술을 마시고 침대에서 자며 옷을 걸쳐입고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한 교실을 짓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적인 인간들과 상거래를 트고 돈을 만지기 시작한다. ‘동물 농장’은 인간 사회의 악폐라고 주정하던 그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던 혁명은 완전히 실패하고 정책마다 위협과 명분만이 동원될 뿐이었다.
7계명도 수정되고 우직할 정도로 성실하게 일만 하던 복서는 인간의 도살장에 팔렸고 마침내 그들은 두 다리로 서서 채찍을 들고 동물들을 감시한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던 구호는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욱 좋다”는 구호로 둔갑을 했고,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는 구호는 “어떤 동물들은 더욱 평등하다”로 바뀐 것이다.
늙고 현명한 돼지 올드 메이저는 인간의 노예상태에 있는 매너 농장의 동물들에게 애니멀리즘이라는 철학을 심어준다. 그의 생각을 그대로 수행하려는 돼지 스노우볼은 성공적인 혁명을 지도한다. 그러나 혁명의 수행 이후 올드 메이저의 사상을 자기에게 맞게 변화시키고 더 강한 권력을 탐하는 돼지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그는 사나운 개들을 풀어 스노우볼을 추방하고 자신을 우상화하고 반대파를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펼친다. 텔레비전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현실의 고달픔을 잊도록 한다. 하지만 동물들에게 주어진 것은 황폐화된 현실뿐이다.
– 외양간 전투
동물 농장 주위에는 핀치필드 농장과 폭스우드 농장이 있었는데, 존스는 두 농장에게 힘을 빌려 동물 농장을 침입했다. 스노볼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책을 읽고 작전이 떠올랐는데, 제1차 공격은 36마리의 비둘기가 인간들 머리 위에 똥을 싸 정신을 잃을 때 제2차 공격을 시작했는데, 울타리에서 숨어있던 거위떼가 몰려와 인간들의 종아리를 물어뜯었다. 또 인간들이 도망치려다 말과 암소, 돼지들이 몰려와서 마당 입구를 막아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은 총을 쏴 스노볼의 등 쪽에 살짝 스쳐 가서 스노볼이 등에 부상을 입었고, 스노볼 옆에 있던 양이 죽고 말았다. 하지만 인간은 크게 져 도망갔다. 특히 복서는 아주 열심히 싸웠고 스노볼은 전투를 이길 수 있는 작전을 세웠으니 1등 동물 훈장을 수여했고, 죽은 양에게는 2등 동물 훈장을 추서했다.
– 풍차 전투
풍차 전투는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나오는 동물들과 인간들의 2차에 걸친 전투 중 두번째로, 풍차의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있었던 독소 전쟁을 의미한다. 여기서 나오는 핀치필드 농장은 나치 독일, 농장주인 프레드릭은 아돌프 히틀러를 상징한다.
나폴레옹은 동물농장에 있는 목재를 팔기 위해서 윔퍼 씨를 통해 프레드릭과 필킹턴(영국, 미국을 상징)과 협상하고 있었다. 프레드릭이 동물농장의 목재에 더 관심을 보였지만, 제 가격을 지불하려 하지 않았고 동물농장의 동물들 사이에서는 프레드릭이 동물농장을 습격해 풍차를 파괴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책의 묘사에 따르면, “동물들은 필킹턴을 인간이란 이유로 신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프레드릭보다는 좋아했다. 여름이 다 가고 풍차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자, 반역자들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더욱 무성하게 나돌기 시작했다. 향간의 소문에 따르면 프레드릭은 총으로 무장한 20명의 남자들을 거느리고 올 계획이며 치안판사들이나 경찰을 이미 매수해 놓았기 때문에, 만일 그가 동물농장의 토지문서를 손 안에 넣기만 하면 치안판사나 경찰도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등이 있다. 한편 가을이 되자 풍차(풍차 건설은 소련의 5개년 경제 개발 계획을 상징하며, 특히 풍차는 계획의 상징이었던 드네프르 댐을 상징함)건설이 완료되었다. 이 풍차의 이름은 나폴레옹 풍차라고 명명되었고, 한편 이틀 뒤 나폴레옹은 프레드릭에게 목재를 팔았다고 하였다. 표면적으로는 필킹턴과 우호관계를 맺는 듯 보이게 하면서도 실제로는 프레드릭과 비밀리에 협정을 맺었던 것이다(독소불가침조약을 의미). 이 일로 폭스우드 농장과 그 농장주인 필킹턴과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나폴레옹은 모욕적인 메시지를 필킹턴에게 전달했으며 비둘기에게 핀치필드 농장에 가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표어 역시 프레드릭 타도에서 필킹턴 타도로 바꾸었으며 프레드릭이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은 거짓이라고 했다. 하지만 프레드릭이 준 5파운드짜리 지폐는 위조지폐였고(윔퍼 씨가 그 사실을 알렸다) 나폴레옹은 프레드릭에게 ‘끓는 물에 집어넣는’ 사형 선고를 내렸다. 한편 농장으로 통하는 요소마다 보초가 세워졌고 비둘기 네마리가 필킹턴과 다시 우호관계를 맺고 싶다는 나폴레옹의 메시지를 가지고 폭스우드 농장으로 파견되었다.
위조지폐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습격이 있었다. 동물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때 파수꾼들이 아서 프레드릭과 그의 일꾼들이 다섯 개의 빗장이 걸린 문을 통과해 들어오고 있다고 알렸다. 동물들은 나가서 싸웠지만 적은 프레드릭을 비롯한 15명의 남자였고 그중 절반 가량이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작중의 묘사에 따르면 50야드 정도 되는 거리에서부터 발포했다고 했다. 나폴레옹과 복서가 독려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패배했고 금방 풍차를 포함한 목장의 거의 전체(건물을 제외한)가 점령되었다. 나폴레옹은 폭스우드 농장의 도움을 기대하였지만 필킹턴은 ‘깨소금 맛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한편 프레드릭은 폭탄으로 풍차를 날려버렸다(나폴레옹이 새로 지은 풍차는 벽이 두꺼워 괜찮을 것이라고 했지만 당나귀 벤자민은 인간들이 풍차 밑에 구멍을 뚫는 것을 보고 폭파시켜버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동물들은 용기를 되찾았고 결국에는 인간들을 쫓아냈다.
동물들의 피해는 암소 한 마리, 양 세 마리, 거위 두 마리가 죽었고 나폴레옹을 비롯한 거의 모두가 부상을 입었다. 인간들 또한 피해를 입었는데 한 명은 복서의 발굽에 얻어맞아 머리가 깨지고 한 명은 암소 뿔에 배를 받혔으며 다른 한 명은 제시와 블루벨에게 바지가 찢겼다. 물론, 가장 심한 피해는 폭약으로 인한 풍차의 파괴였다. 바람 때문에 무너진 옛 풍차와는 달리, 돌이 수백야드 밖으로 날아가 다시 그 돌을 이용할 수도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나폴레옹은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일곱발의 예포를 쏘았고 풍차 훈장을 제정하여 스스로에게 수여하였으며 동물에게는 사과 하나, 새에게는 2온스의 옥수수, 개에게는 세 개의 비스킷을 승리에 대한 선물로 지급했다.
○ 중요한 상징들
.술에 너무 취해 닭장의 작은 구멍을 닫는 것을 잊고 갈짓자 걸음으로 마당에 걸어가면서 손에 달린 등불이 크게 흔들림: 제정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집권 당시 러시아 사회가 혼란스럽고 무능한 정치상황을 상징한다.
.동물들의 합창소리에 깨서 존즈 씨가 농장에 여우가 침입했다고 단정하고 총을 쏨: 1905년 러시아에서 왕궁 경비대가 민중의 평화 시위에 발포한 사건인 피의 일요일 사건을 상징 할수도 있다.
.존스 씨를 실의에 빠지게 한 “큰 소송”: 러일 전쟁을 상징한다. 이 소송이 있었다는 사실이 첫 장면에서 언급된 것도 그것을 암시한다.
.동물들의 반란: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를 추방한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상징한다.
.영국의 짐승들: 인터내셔널가를 상징한다.
.동물주의: 사회주의를 상징한다. 돼지들이 메이저의 가르침을 사상체계로 발전시켰다.
.동물 공화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국가명이 지정된 것을 의미한다.
.녹색 식탁보에 흰색으로 발굽과 뿔을 X자로 그려 넣음: 소설에서 의미하는것은 녹색은 드넓은 농장을 상징하고 발굽과 뿔은 농장 동물들의 합침을 뜻한다. 하지만 실제로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며 녹색 식탁보가 빨간 기를 의미하고<혁명을 의미> 발굽과 뿔이 낫과 망치<노동자의 단결을 의미>를 의미한다. 즉, 구소련의 깃발이기도 하다.
.외양간 전투: 러시아 혁명 얼마 후 서구 세력의 사주를 받아 일어난 러시아 내전(1917년-1922년)을 상징한다.
.풍차 건설: 스탈린의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을 상징한다.
.풍차: 드네프르댐을 의미한다. 실제로 드네프르댐은 스탈린의 5개년 경제개발을 상징했다.
.나폴레옹의 강제 달걀 수집: 스탈린의 집산주의를 상징한다.
.암탉의 반란: 집산주의에 의한 재산 및 토지 국유화에 저항한 쿨라크들을 상징한다.
.나폴레옹과 프레드릭 연합: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과 히틀러-스탈린 연합을 상징한다.
.풍차 전투: 불가침조약이 맺어지고 나서 얼마 안 가 발발한 독소 전쟁을 상징한다.
.풍차 파괴: 드네프르 댐의 폭파를 의미한다. 히틀러를 상징하는 세력이 풍차를 파괴하였다고 서술된 소설과는 달리, 실제 역사에서는 스탈린이 폭파를 명령하였다.
.스퀼러의 역사 조작: 소련이 이후 모든 역사적 사실을 러시아 혁명과 공산당에 맞추어나간 것을 상징한다.
.메이저 영감의 유골 전시: 레닌의 시체를 방부 처리해 붉은 광장에 안치한 것을 상징한다.
.스노볼의 풍차 계획: 스탈린은 트로츠키가 세운 5개년 경제 계획을 훔쳤으며, 그것이 트로츠키의 계획임을 말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풍차 건립 계획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일은 나중에 영국 기술자가 소련에서 기술을 전수해준 것을 상징한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 복서의 모토인 이 말은 베니토 무솔리니가 실제로 “무솔리니는 언제나 옳다”라는 식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오웰이 그것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나폴레옹의 “영국의 짐승들” 금지: 1943년에 스탈린은 인터내셔널가를 금지시키고 대신 소련 국가를 부르게 했다. 1799년에 나폴레옹이 라 마르세예즈를 금지시킨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동물 농장” 명칭을 “메이너 농장”으로 바꾼 것: 붉은 군대(Red Army)의 정식 명칭은 “노동자 농민의 붉은 군대”에서 “소비에트 군대”(Soviet Army)로 교체되었다.
.혁명 이념: 나폴레옹이 수확을, 스노우볼이 다른 농장의 혁명 봉기를 추구한 것은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러시아 내 혁명이 우선이라는 혁명 이론)와 트로츠키의 “영구혁명”을 상징한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레닌의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4월 테제)”라는 구호를 상징한다.
○ 내용 및 해설
매너 농장 (Manor Farm)의 가축들은 농장 주 존스 씨의 숨이 막힐 듯한 경영에 지쳐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농장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것으로 알려진 돼지 스노우볼과 나폴레옹이 농장의 동물들을 모아 놓고 존스 씨와 그의 부인을 농장에서 쫓아내자고 설득한다.
결국 농장주 부부를 쫓아낸 동물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새로운 농장의 주인은 동물이며, 따라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신조 아래 그들만의 사회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동물들끼리의 삶은 잠시동안 만족스럽게 지속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농장의 리더들에게서 존스와 똑같은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조지 오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흥미로운 영화는 혁명과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가 그 이후의 전제주의적 상황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늙고 현명한 돼지 올드 메이저 (마르크스)는 인간의 노예상태에 있는 매너 농장의 동물들에게 애니멀리즘 (공산주의)이라는 철학을 심어준다. 그의 생각을 그대로 수행하려는 돼지 스노우볼 (트로츠키)은 성공적인 혁명을 지도한다. 그러나 혁명의 수행 이후 올드 메이저의 사상을 자기에게 맞게 변화시키고 더 강한 권력을 탐하는 돼지 나폴레옹 (스탈린)이 등장한다. 그는 사나운 개들을 풀어 스노우볼을 추방하고 자신을 우상화하고 반대파를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펼친다. 텔레비전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현실의 고달픔을 잊도록 한다. <플림스톤>, <베이브>, <피노키오>, <101마리 달마시안>, <닥터 두리틀> 등 동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작업에 주로 참여해온 존 스티븐슨 감독의 이력을 기억하면 이 영화의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그리 놀랄 일은 아닌 듯하다.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은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가 인상적이라는 점은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영화적 재미를 준다. 또 마치 <핑크 플로이드의 벽>의 애니메이션 장면을 연상케 하는 영화 전체의 음악적 완성도는 이 영화의 또 하나의 미덕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동물들 눈높이의 카메라 앵글은 시각적인 재미의 솔솔함을 더해 준다. 이런 모든 구성요소들이 이 탁월한 정치적인 우화를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2000년 제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김윤아)
○ 책 ‘동물농장’의 저자 ‘조지 오웰 (George Orwell)
조지 오웰 (George Orwell)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1903년 6월 25일)로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이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교에서의 학창시절 역시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점차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가 작가수업을 쌓았다. 유럽으로 돌아와 파리와 런던에서 부랑자 생활을 하고 잠시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거쳐 영국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조사 활동에 참여했다. 이때를 토대로 한 소설이 1933년의 첫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과 1935년 ‘버마 시절’이다.
전체주의를 혐오한 그는 스페인 내전에도 참가했는데, 그 체험을 기록한 1936년 ‘카탈로니아 찬가’는 뛰어난 보도 문학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에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그 와중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전체주의의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을 출간했다. ‘1984년’은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한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나라이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런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을 꾀하지만, 오히려 함정에 빠져 사상경찰에 체포되고, 혹독한 고문 끝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 ‘골드스타인’을 만났다고 자백하고, 결국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1984년’은 오웰을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날로 악화되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작품을 발표한 이듬해인 1950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지 오웰은 지난 1999년 영국 방송 BBC가 조사한 ‘지난 1천 년간 최고의 작가’ 부문에서 셰익스피어, 제인 오스틴에 이어 3위에 선정되었다. 게다가 영문학에서는 ‘오웰주의’, ‘오웰주의자’라는 뜻의 Orwellism이나 Orwellian이라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그가 서양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의식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또 일찍이 스탈린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거기서 다시 현대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악몽과 같은 전체주의의 풍토를 작품에 정착시켰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들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왜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읽고, 보아야 하는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을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젖어들게 했던 것은 순전히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신은 위대하지 않다’(알마, 2008) 때문이었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조지 오엘을 가리켜, “나는 예전에 조지 오엘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있는데, 만약 내가 영웅으로 우러러 본 사람이 있었다면 오엘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p.26)
“돼지 공포증은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현대의 가장 매력적이고 유용한 우화중 하나인 조지 오엘의 《동물 농장》이 이슬람권에서 여전히 금서로 묶여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p.64)
“세월이 흘러 신이 절대적인 권력을 주었다는 독재자들의 주장이 현대적인 권력 이론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천국의 이상이라고 할 만한 것을 모델로 지상에 유토피아 국가를 건설한다는 사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이상을 명분으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곤 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에덴동산 같은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려는 시도가 처음 현실로 나타난 것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파라과이에 전체주의적 사회주의 국가를 세웠을 때였다. 이 나라는 최대한의 평등주의와 최대한의 부자유가 결합된 형태였으며, 이 나라를 유지 할 수 있는 수단은 최대한의 공포밖에 없었다. 인류를 완벽하게 다듬고자 했던 사람들이 이 나라의 사례를 경고로 받아들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사실 인류를 완벽히 다듬겠다는 목적(이것은 전체주의적 충동의 뿌리이자 원천이기도 하다)은 근본적으로 종교적 색체를 띠고 있다. 소설을 통해 전체주의 국가 국민들의 삶을 우리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킨 금욕적인 불신자 조지 오엘은 이 점에 관해 추호도 의심을 품지 않았다.”(p.336) 라고 써 놓았다.
그러자 두 가지 질문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위인일까?”와 “근본적으로 종교적 색체를 띠고 있다.”는 말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자신의 논리를 확고하기 위해 좀 더 확장해 해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하지만 오엘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소설은 늙은 수퇘지 메이저가 죽기 전에 남긴 꿈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꿈의 내용인즉, “인간이 사라지고 난 다음의 이 지상에 대한 꿈이었소.”이다. 그리고 죽기 전에 그는 여타의 동물들에게 “잉글랜드 짐승들”이라는 노래를 가르쳐 준다. 이것은 마치 애국가처럼 그들의 노래가 된다. 메이저가 죽고 나서 동물들 중에서는 돼지가 제일 똑똑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동물들을 가르치고 조직하는 일은 자연스레 돼지들의 몫이 되었다. 메이저의 가르침은 이들 돼지(스노볼, 나폴레옹, 스퀄러)에 의해서 “동물주의”라는 사상체계로 발전된다. 메이저가 예언한 반란은 생각보다 일찍 왔고, 존슨 일가는 동물들에 의해 물러났다. 그리고 곧 그들은 일곱 계명을 발표함으로써 동물들이 준수해야 할 불가변의 법률을 만들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둘째,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셋째,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넷째,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다섯째,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여섯째,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
일곱째,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존슨 일가가 물러나고 잉여물의 착취에 해당되는 노동이 아닌, 노동자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행하는 참다운 노동을 하게 된다. 일요일에는 모두 쉬었고, 일요일 아침 식사는 다른 때보다 한 시간 늦추어 먹기로 했고, 식사후에는 매주 빠짐없이 거행되는 의식이 있었다. 이것은 “동물 공화국”의 체계로 이행되었다. 그리고 총회는 “회의”라는 명칭으로 게재되었고 결의안 제출과 토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때쯤에 그들은 지금껏 메이저 농장이라고 불렸던 이름을 철폐하고 동물농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또한 이때 존슨 일가의 반격이 시행되나, 동물들은 그들을 물리친다. 이들은 그들의 역사에서 이것을 외양간 전투라 칭했다.
번번히 의견대립이 심했던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문제가 붉어진 것은 스노볼이 발표한 풍차계획으로 인해 도화선이 되었다. 스노볼은 자신이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개를 키웠는데, 그것들을 이용해 스노볼을 무리에서 퇴출시킨다. 그때부터 스노볼은 하나씩 계명의 해석을 달리하며 자식의 권자를 지켜나가는데, 그들 무리에서 스퀼러는 무리의 단점인 무식함을 이용해 나폴레옹의 정치를 합리화 시킨다. 나폴레옹의 입장은 동지에서 지도자로 바뀌고, 그는 어느 순간 모든 것에 신적인 위치까지 이룬다. 일이 실패할 때는 사라진 스노볼을 탓하고 존슨 시대의 회귀에 대한 불안감을 무리들에게 전파시키는 등 악질적인 정치 행각을 벌인다. 그리고 인간들과의 거래도 트게 된다. 이유는 모두의 안녕을 위해서라는 거시적인 목표가 있었다. 하지만 동물들의 눈에 비친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 무리들은 전에 있었던 존슨과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방관자로 활동하다가 무리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죽었을 때 딱 한번 나서는 당나귀 벤자민이라는 캐릭터가 있다. 그는 회의론자를 대표하는 캐릭터이며, 지금보다 더 나아 질것은 없고 더 나빠질 것이다는 결론을 내세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한번도 행동하지 않는다. 어쩌면 무리속에서 일도 하지 않고 불평 불만만 하는 잉여 존재이다. 그렇지만 어느 누구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돼지들이 권력을 상징한다면 벤자민은 무리의 지식인, 철학자로 상징되어도 좋다.
소설을 읽으면서,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말대로 천국의 이상은 허실이며,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대중들은 오히려 독재 체제를 완벽히 동조하는 꼴이 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회의라는 것이 있었지만 스노볼이 권력을 잡고 나서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았고, 한때 메이저의 무덤에 인사를 하던 풍습도 사라졌다. 이것은 마치 소비에트연방이 무너져 내림을 먼저 알고 있었던 조지 오엘의 안목과도 흡사하다. 이상을 향하던 권력이 그 실에 존폐유무가 달릴 때 쯤에 과거로서의 공포를 자극하게 되고, 사람들은 현실의 고통보다 과거의 각인된 공포에 매료되게 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잘 살고 있다는 이상한 논리에 쌓이게 되는데. 지금 어떠한가? “그러나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이미 분간할 수 없었다.”(p.123) 어쩌면 이글은 혁명을 부정할 수 도 그렇지 않을 수 도 있는 이중의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작가가 우려하는 것은 전체주의이다. 어느 쪽으로든 좋은 방향으로 가면 되겠지만, 문제는 좋은 방향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 있다. 얼핏 이런 생각도 든다. 작가가 원했던 것은 무정부주의가 아닐까? 국가주의에 빠져 들며 어쩔 수 없이 전체주의적 사고에 젖어 들게 된다. 젖어든다는 말은 무의식적인 세뇌에 따른 고통을 수반한다.
정리하자면 동물 농장은 결론이 없다. 대안 없는 현실을 우화라는 형식을 빌려 보여주고 있는 것 뿐이다.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 모두가 평등한 사회는 존재할 수 있을까?
메이너 농장에 사는 늙은 돼지 메이저는 농장 동물들에게 인간의 지배하의 비참한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동물들끼리의 자유롭고 평등한 농장을 만들자고 설득했다. 그리하여 동물들은 돼지들을 주축으로 주인 존스를 몰아내고 ‘동물 농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직접 농장을 경영한다. 동물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노동이 인간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을 위한 것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어간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똑똑했던 돼지들 중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은 풍차를 건설하는 것을 두고 권력 다툼이 일고, 이 다툼을 통하여 나폴레옹은 함께 의사결정을 하던 평등한 회의를 없애고 자신의 의견대로 농장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한다.
나폴레옹은 함께 정한 ‘일곱 계명’을 몰래 바꾸고, 나폴레옹이 농장을 지도한 후 더욱 살기 좋아졌다고 선전을 하며 다른 동물들을 억압하기 시작한다.
조지 오웰은 인도의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성장했고, 장학생으로 입학한 이튼교에서도 계급 차이를 경험하며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사회 계급에 대해 생각했다. 특히나 이 작품은 당시 지식인들로부터 시작하여 평등한 사회를 꿈꾸던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권력자가 어떤 식으로 민중을 속이고 억압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동물 농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우화로 표현했다.
우리는 분명 헌법 제11조 ①에 의하여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정하고 있지만, 가족, 직장, 학교 외 여러 관계 속에서 위계와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조금 더 똑똑했던 돼지들이 다른 동물들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더욱 봉사하던 단계일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돼지들은 자신들 또한 동물이라는 사실을 잊는다. 돈에 의하여, 권력에 의하여, 조직에 의하여, 인간은 자신에게 아주 작은 권력만 생겨도 누군가를 짓밟고 모욕하고, 자기 뜻대로 휘두르고 싶어한다. 그렇게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고도 하등하게 여기며 스스로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 자문하지조차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은 상대적이어서 누군가 앞에서는 군림하고, 누군가 앞에서는 고개를 조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알량한 위계가 누군가를 지배해도 된다는 뜻일까?
처음 우리가 평등을 꿈꾸었을 때,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미래는 모두가 평등하고, 자기 능력에 따라 일하며,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주는 그런 사회였다. 조그마한 약점만 보여도 짓밟기 바쁜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