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동주 (東柱, DONGJU : The Portrait of A Poet)
감독) 이준익 / 각본) 신연식 / 주연) 강하늘, 박정민 / 2016년 (110분)
‘동주’는 2016년에 개봉한 대한민국의 영화이며, 흑백 화면으로 만들어졌다. 윤동주의 일대기를 모티브로 한 영화이며, 옥중에서의 윤동주와 윤동주가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을 교차적으로 구성하였다.
○ 스탭 / 연출
감독 : 이준익 / 제작 : 신연식 / 각본 : 신연식 / 출연 : 강하늘, 박정민 외 / 음악 : 모그 / 촬영 : 최용진 / 편집 : 김정훈 / 제작사 : 루스 이 소니도스 / 배급사 : 메가박스 (주)플러스엠 / 개봉일 : 2016년 2월 17일 / 상영시간 : 110분
– 배역
강하늘 : 윤동주 역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인, 윤동주. 청춘이 탄압받던 일제강점기, 그에게도 꿈, 우정, 사랑이 있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조용한 성격의 정적인 인물이다.
의사가 되라는 아버지의 반대에 무릅쓰고 시를 계속해서 쓴다.
박정민 : 송몽규 역
윤동주와 일생을 함께한 독립운동가, 송몽규. 윤동주에 비해서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불의에 맞서는 일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나서는, 윤동주보다는 동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윤동주와 성격의 차이가 있다 보니 독립 운동에 대한 가치관 차이로 동주와 부딪힌다.
김인우 : 총독부 고등형사 역 / 최홍일 : 윤동주의 아버지 역 / 김정석 : 송몽규의 아버지 역 / 최희서 : 쿠미 역 / 신윤주 : 이여진 역 / 김우진 : 효치 교수 역 / 민진웅 : 강처중 역 / 최종률 : 윤동주의 조부 역 / 이선주 : 동주의 어머니 역 / 박명신 : 몽규의 어머니 역 / 이빛나 : 동주의 여동생 역 / 문태홍 : 동주의 남동생 역 / 최정헌 : 문익환 역 / 성홍일 : 명희조 역 / 조성우 : 교실 학생 역 / 김진혁 : 용정 연설 사내 역 / 유명상 : 용정어른 1 역 / 김다흰 : 용정어른 2 역 / 허연정 : 용정아낙 1 역 / 성수연 : 용정아낙 2 역 / 한창현 : 이웅 역 / 김수웅 : 센바 교수 역 / 다케다 히로미츠 : 간수장 역 / 요코우치 히로키 : 히다카 역 / 정운봉 : 윤치호 역 / 조하석 : 신지 대좌 역 / 정준원 : 조선 유학생 1 역 / 윤정일 : 조선 유학생 2 역 / 김준형 : 조선인 죄수 역 / 두경민 : 도망 죄수 역 / 김성훈 : 중국인 사업가 역 / 윤승준 : 일본인 사업가 역 / 임아대 : 시험 감독관 역 / 이재혜 : 간호사 역 / 허옥진 : 기록원 역 / 전재형 : 간수장 역 / 알렉산드라 미첼 해거 : 외국인 여교수 역 / 문성근 : 정지용 역
○ 시놉시스
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
시인을 꿈꾸는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몽규는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도,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진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일본 유학 길에 오른 두 사람.
일본으로 건너간 뒤 몽규는 더욱 독립 운동에 매진하게 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던 동주와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어둠의 시대, 평생을 함께 한 친구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윤동주와 송몽규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 수상 내역
2016년 제36회 황금촬영상 촬영상 동상 – 최용진
2016년 제36회 황금촬영상 신인남우상 – 박정민
2016년 제5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 – 이준익
2016년 제5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신인연기상 – 박정민
2016년 제16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남자신인연기상 – 박정민
2016년 제16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제작자상 – 신연식
2016년 제25회 부일영화상 감독상 – 이준익
2016년 제25회 부일영화상 각본상 – 신연식
2016년 제25회 부일영화상 음악상 – 모그
2016년 제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 – 신연식
2016년 제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상 – 이준익
2016년 제3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10대 영화상
2016년 제17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각본상 – 신연식
2016년 제37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 박정민
2016년 제37회 청룡영화상 각본상 – 신연식
2017년 제22회 춘사영화상 남우조연상 – 박정민
2018년 2018 레지스탕스 영화제 베스트 엑트리스상 – 최희서
○ 영화 이모저모
시인 윤동주와 그의 영원한 벗이자 사촌형이었던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으로 옥중에서의 윤동주와 윤동주가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을 교차적으로 구성하였다.
감독의 의도로 흑백화면으로 제작되었다. 암울한 시대상에 맞추어 의도적으로 흑백화면으로 제작한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는데 1994년에 제작하여 그해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쉰들러 리스트’가 있고 국내 작품으로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지슬’이 있다.
극 중 배우 문성근이 정지용 역으로 등장하는데, 그의 아버지인 목사 문익환은 윤동주의 실제 친구로서 본 영화에서도 초반부에 잠시 등장한다.
시나리오는 ‘러시안 소설’의 신연식 감독이 집필했다. 신연식 감독은 근현대사 예술인 10명의 삶을 영화화 하는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본 영화는 해당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이다.
○ 극중 등장 시
「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 모금에서
하루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하게 뒷 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羊)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 포기나 뜯자.
「참회록」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이십 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뿌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아우의 인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쉽게 쓰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사랑스런 추억」
봄이 오든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차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교외 어는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차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 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민족적 저항 시인, 윤동주 (尹東柱, Yun Dong-ju, 1917 ~ 1945)에 대하여
윤동주 (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는 일제강점기 당시 간도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 시인이자 작가이다. 본관은 파평 (坡平). 중국 만저우 지방 지린성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평양 숭실중학교와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연희전문학교 2학년 재학 중 소년 (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일본에 건너가 1942년 교토 도시샤 대학에 입학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 (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옥중에서 요절하였다. 사인이 일본의 소금물 생체실험이라는 견해가 있고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와 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고종사촌형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본명 외에 동주 (童柱)와 윤주 (尹柱)라는 필명도 사용하였다.
– 윤동주 (尹東柱, Yun Dong-ju)
.출생: 1917년 12월 30일, 중화민국 만저우 지방 지린성 북간도 명동촌 (現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용정 시)
.사망: 1945년 2월 16일 (27세), 일본 제국 후쿠오카현 후쿠오카 형무소
.직업: 시인, 수필가, 독립운동가
.학력: 연희전문 문과 학사, 릿쿄 대학 문학부 영문과 중퇴 (1942년 1학기), 도시샤 대학 문학부 제적
.종교: 개신교(장로회)
.필명: 아명인 윤해환 (尹海煥)과 필명인 尹童柱 · 尹童舟
.활동기간: 1932년 ~ 1945년
.장르: 시, 수필
.부모: 윤영석(부), 김용(모)
.형제: 윤일주(동생), 윤광주(동생),
.친지: 윤하현(조부), 윤재옥(증조부), 윤인석(조카), 김약연(외숙), 김학연(외숙), 송창희(고모부), 윤신영(고모), 송몽규(고종사촌 형), 윤영춘(당숙), 윤영선(당숙), 윤형주(6촌 동생), 윤정주(6촌 동생),
.웹사이트: 연세대학교 윤동주 기념사업회 https://yoondongju.yonsei.ac.kr/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의 시인.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저항시, 삶의 고뇌에 대한 시로 민족의 길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고 이에 대한 부끄러움을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사망한 지 반 년 뒤에 조선이 일제로부터 독립했으므로 생전에 조국의 독립을 보지는 못했다.
○ 생애 및 활동
– 생애 초반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당시 북간도 간도성 화룡현 명동촌 (明東村, 지금의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용정시 지신진)에서 아버지 윤영석 (尹永錫)과 어머니 김용 (金龍) 사이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어려서 요절한 두 동생을 포함하여 4남 2녀였다. 그의 처음 이름은 해환 (海煥)이었다. 본관은 파평으로 간도 이주민 3세였다.
19세기 말,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에 기근이 심해지자 조선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간도와 연해주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윤동주의 증조부인 윤재옥도 집안을 이끌고 1886년경 함경도에서 만주로 이주하였다. 윤동주의 증조부인 윤재옥은 함경북도 종서군 동풍면 상장포에 살다가 1886년 북간도 자동으로 이주하였으며 할아버지 윤하현은 명동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아버지 윤영석은 1910년 독립지사인 김약연의 누이동생 김용과 결혼하여 명동촌에 정착하게 된다. 한학자였던 외삼촌 규암 김약연 (圭岩 金躍淵)은 1899년 종성에서 만주로 건너와 명동촌에 정착하였다.
할아버지 윤하현은 기독교 장로로 부유한 농부였고, 아버지 윤영석은 명동학교에서 교사로 교편을 잡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 윤하현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고모 윤신영은 송창희에게 시집갔는데, 그 고모의 아들이 독립운동가이자 그의 친구였던 송몽규였다. 당숙은 윤영춘으로 후일 가수가 되는 윤형주는 그의 6촌 재종이었다.
– 소년 시절
1925년 명동소학교(明東小學校)에 입학하여 재학 시절 고종사촌인 송몽규 등과 함께 문예지 《새 명동》을 발간하였다. 6년 뒤인 1931년, 14세에 명동소학교 (明東小學校)를 졸업하고,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학교(大拉子學校)에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여, 용정 은진중학교 (恩眞中學校)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35년 소학교 동창인 문익환이 다니고 있는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전학하였다. 그해 10월, 숭실중학교 학생회가 간행한 학우지 숭실활천 (崇實活泉) 제15호에 시 공상(空想)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중학교가 폐교되어, 문익환과 함께 용정에 있는 광명중학교로 편입하였다. 광명중에서 그는 정일권 등을 만나게 된다.
– 연희전문 시절
1937년 광명중학교 졸업반일 무렵, 상급학교 진학문제를 놓고 부친(의학과 진학 희망)과 갈등하나, 조부의 개입으로 연전 문과 진학을 결정한다. 1938년 2월 17일 광명중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京城)으로 유학, 그해 4월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기숙사와 하숙생활을 하며 그는 근처를 산책하며 시상을 떠올리고 시를 짓거나 벗과 담론을 하였다.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조선일보 학생란에 산문과 시를 발표하고 그 해 《소년 (少年)》지에 시를 발표하며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기도 했다. 1940년 일제 경찰의 학생에 대한 감시가 심해지자 후배 정병욱과 함께 연희전문 기숙사에서 나와 북아현동 누상동 등지에서 하숙생활을 함께 하며 시작에 몰두하였다. 그 후1941년 12월 27일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할 무렵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려 했으나 일제의 탄압을 걱정하는 주위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원고를 정병욱에게 증정한 후 일본 대학으로 유학 준비를 하게 된다.
– 대학 시절
1942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10월 교토 도시샤 대학 영문학과에 편입하였다. 도시샤대학은 윤동주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 정지용이 다닌 학교로 일본 조합교회에서 경영하는 기독교계 학교였다.
한편 그의 연보에 의하면 윤동주가 전시의 학제 단축으로 3개월 앞당겨 연희전문학교 4학년을 졸업하면서 1941년 연말에 고향 집에서 일제의 탄압과 동주의 도일 수속을 위해 성씨를 ‘히라누마’로 창씨하였다는 것이다. 개명 후 윤동주는 매우 괴로워했다 한다. 창씨개명계를 내기 닷새 후 그는 창씨개명에 따른 고통과 참담한 비애를 그린 시 ‘참회록’을 썼다.
– 일본 유학생활과 체포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立教大学)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중퇴하여 교토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령선인으로 지목되어 일본경찰의 감시를 당하고 있었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4년 3월 31일 교토지방재판소 제1 형사부 이시이 히라오 재판장 명의로 된 판결문은 징역 2년형을 선고하면서 “윤동주는 어릴 적부터 민족학교 교육을 받고 사상적 문화적으로 심독했으며 친구 감화 등에 의해 대단한 민족의식을 갖고 내선 (일본과 조선)의 차별 문제에 대하여 깊은 원망의 뜻을 품고 있었고, 조선 독립의 야망을 실현시키려 하는 망동을 했다.”라고 적혀 있다. 교토지방 재판소에서 송몽규와 함께 치안유지법 제5조 위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송되었다.
– 투옥과 최후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시신은 화장된 뒤 가족들에게 인도되어 그 해 3월 장례식을 치른 후 간도 용정에 유해가 묻혔다 (향년 27세). 그의 조부 윤하현의 비석으로 마련한 흰 돌을 그의 비석으로 사용하였다.
그가 죽고 10일 뒤 ‘2월 16일 동주 사망, 시체 가지러오라’는 전보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영춘이 시신을 인수, 수습하러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런데 뒤늦게 ‘동주 위독하니 보석할 수 있음. 만일 사망시에는 시체를 가져가거나 아니면 큐슈제대 (九州帝大) 의학부에 해부용으로 제공할 것임. 속답 바람’ 이라는 우편 통지서가 고향집에 배달되었다. 후일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이를 두고 “사망 전보보다 10일이나 늦게 온 이것을 본 집안 사람들의 원통함은 이를 갈고도 남음이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한편,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은 결과이며,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 사후
1947년 2월 정지용의 소개로 경향신문에 유작이 처음 소개되고 함께 추도회가 거행된다.
1948년 2월 윤동주의 3주기 추도식에 맞춰 윤동주의 유작 31편과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루어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간본을 임시로 발간하였고, 같은 해 3월 정식으로 정음사에서 간행하였다. 이후 1962년 3월부터 독립유공자를 대량으로 발굴 포상할 때, 그에게도 ‘건국공로훈장’ 서훈이 신청되었으나 유족들이 사양하였다. 1990년 8월 15일에야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85년에는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윤동주문학상’이 한국문인협회에 의해 제정되었다.
○ 작품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간본 (1948.2.)
윤동주의 시집은 사후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새 명동》
《서시(序詩)》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이 유고시집에 실려 있다. 1948년의 초간본은 31편이 수록되었으나,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시를 추가하여 1976년 3판에서는 모두 116편이 실리게 되었다.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 사조, 경향 및 평가
시는 15살 때부터 썼고, 만주에서 지내던 시절의 시는 대체적으로 신변잡기를 소재로 삼은, 발랄한 형태의 시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20세를 넘어가면서부터 점점 삶에 대한 고뇌, 조국의 어려운 현실에 대한 고뇌가 시의 주제로 등장하게 되지만 30년대까지는 대체적으로 암울한 현실에서 벗어나 옛날의 평화로 돌아가고 싶다는 노스텔지어적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연희전문 시절인 1941년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삶에 대한 고뇌,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 대한 주제의식이 한층 더 강렬하게 표현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윤동주의 유명한 작품인 별 헤는 밤, 서시, 자화상, 참회록 등도 이 시기의 작품들. 더불어 그는 시를 쓴 날짜를 모두 적어둬 그의 연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의 생전에 출판되지 못하고 지인 강처중, 정병욱 등이 윤동주의 자필본을 기초로 1946년에 출판했다. 세간에는 정병욱 (1922~1982)이 이 시집 출간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외적으로는 윤동주의 동기인 경향일보 기자 강처중이 앞장서고 편집 교정 등 출판 실무는 국문학자인 정병욱이 맡아 하였다. 여기에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 등이 합세하여 원래 19수의 시만 있던 시집 (1946)이 31편의 시집 (1948)으로 늘어난다. 그리고 이 시집을 간행할 적 윤동주의 도시샤대학 동창이자 경향일보 주필이던 정지용이 도움을 주었으며 추천사를 써준 것도 정지용이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 정지용과 강처중은 각각 납북, 월북 등의 사정으로 1980년대 후반까지 이름을 언급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바람에 정병욱 교수만이 도움을 주었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윤동주의 7살 터울 여동생 윤혜원씨가 1948년 12월 고향 집에서 윤동주의 미발표시 (85수)들을 품에 안고 내려와 현재의 116편의 시가 실려 있는 시집이 되었다. 본시 윤동주는 연희전문 졸업 기념으로 자선시집을 3부 만들어 자신이 한 부 갖고 스승 이양하 (1904~1963)에게도 증정했는데 정병욱이 증정받아 보존한 유고만 남고 나머지는 여러 사정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민족적 저항시인, 강인한 의지와 부드러운 서정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되며, 1986년에는 20대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선정되었다. 북한에서는 ‘일제말기 독립의식을 고취한 애국적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시는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내용을 서정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색,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진실한 자기성찰의 의식이 담겨 있다고 평가된다.
○ 상훈 경력
.서울 숭실고등학교 명예 졸업장 추서
.1990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국민훈장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
○ 기념관과 기념물
– 기념관
.연세대학교 – 윤동주의 연희전문학교 재학 당시 학생 기숙사로 이용되었던 연세대학교 핀슨.홀 일부가 ‘윤동주 기념관’으로 꾸며져 있다. 향후 핀슨홀 전체를 ‘윤동주 기념관’으로 개편할 계획이다.
.종로구 – 종로문화재단에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 ‘윤동주문학관’을 운영 중이다.
.연변 – 연길의 용정 중학교에 ‘윤동주 기념관’이 있다.
– 기념물
.1968년 11월 2일 연세대학교 등이 모금한 성금으로 연세대에 유작 〈서시〉가 새겨진 ‘윤동주 시비 (詩碑)’가 건립되었다.
.1985년부터 《월간문학지》에서 그를 기념한 「윤동주문학상」 수상자를 매년 선정, 수상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그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92년 9월, 모교인 용정 중학교에 〈서시 (序詩)〉가 새겨진 시비가 건립되었다.
.1995년 일본 도시샤 대학에 친필 〈서시〉와 일본어 번역본이 새겨진 시비가 건립되었다. .2005년에는 윤동주가 가장 좋아했던 시인 정지용의 시비가 그 옆에 건립되었다. 또한 교토 대학 부근 그가 머물던 곳에 기념비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
.1999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에서 20세기를 빛낸 한국의 예술인으로 선정되었다.
○ 윤동주 시들
* 서 시 (序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에 바람이 스치운다.
* 눈감고 가라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감고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 자화상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 별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異國)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쉽게 씌여진 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