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레닌그라드 : 900일간의 전투 (Leningrad)
감독) 알렉산드르 부라프스키 / 주연) 미라 소르비노, 아르민 뮐러 슈탈, 가브리엘 번, 올가 수투로바 / 2009년
- 장엄한 전장 탈출기! 1941년 … 레닌그라드의 처절했던 전투 재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동유럽의 대부분을 점령한 독일은 러시아 침공을 계획하고 ‘레닌그라드’로 진격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레닌그라드’에 상주해 있던 수많은 각국 기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지만 미국 출신의 여기자 ‘케이트’는 이 가운데 실종되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레닌그라드’에 홀로 남게 된다. 추위와 배고픔 속에 ‘레닌그라드’를 탈출하려던 그녀는 러시아의 여성 경찰 ‘니나’를 운명처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해 지옥 같은 전장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 제작 / 출연
- 제작진
감독: Aleksandr Buravsky
작가: Aleksandr Buravsky, Chris Solimine
제작: Aleksandr Buravsky, Chris Curling, Peter Doyle, David Gamburg, Andre Gromkovski, Leo Zisman
촬영: Vladimir Klimov
편집: Mariya Sergeyenkova
음악: Yuri Poteyenko
개봉: 2009년 9월 19일 (Oldenburg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10년 1월 21일 (Russia)
시간: 110분
국가: United Kingdom, Russia
언어: English, German, Russian - 출연진
Gabriel Byrne as Phillip Parker
Mira Sorvino as Kate Davis
Aleksandr Abdulov as Chigasov
Vladimir Ilyin as Malinin
Mikhail Yefremov as Omelchenko
Mikhail Trukhin as Vernik
Yevgeni Sidikhin as Korneyev
Olga Sutulova as Nina Tsvetkova
Kirill Lavrov as Radio announcer
Armin Mueller-Stahl as Field Marshal Von Leeb
Alexander Beyer as Walter Hoesdorff
Yevgeny Stychkin as Kapitsa
Valentina Talyzina as Valentina
○ 줄거리
1941년 나치 독일은 소련을 침공했고 그들의 군대는 레닌그라드 시를 포위했다.
하루 동안 외신 기자 무리가 출국하지만 그 중 한 명인 케이트 데이비스 (미라 소르비노)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어 비행기를 놓치고 만다.
장기간의 봉쇄로 레닌그라드 러시아인들의 고난은 상상이상이다.
식량과 난방 연료, 의약품 등 일체의 물자가 차단되어 굶어 죽는 아사자가 속출한다.
일부 러시아 군인들과 시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가죽 구두와 허리띠를 삶아 먹고 심지어 도배지에 붙은 풀을 긁어먹으며 버티는 레닌그라드에 남은 케이트는 젊고 이상주의적인 경찰관인 Nina Tsvetkova (Olga Sutulova)의 도움을 받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 함께 싸운다.
○ 영화 이모저모
러시아 사람들은 세계 2차 대전의 종지부를 찍은 결정적 사건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이라기보다는, 러시아의 군·관·민의 처절한 희생 끝에 얻어낸 ‘900일 전쟁’ 승리의 결과라고 말한다.
- 세상을 놀라게 한 900일간의 실화! 추위, 배고픔 …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지옥같은 전쟁실화 영화화!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900여 일간 지옥같은 봉쇄를 견뎌낸 1941년 얼어붙은 겨울을 무대로 참혹했던 레닌그라드의 상황을 영국 여기자 케이트의 눈으로 들여다 본다. 케이트는 엄동설한을 뚫고 탈출에 나서는 혼란한 와중에 사랑하는 연인과 떨어져 홀로 남겨진 여인이다. 그녀가 이상주의자인 러시아 여성 경찰의 도움속에 두 아동과 함께 기아에 시달리며 펼치는 희생과 용기를 따라간다.
내용 전개는 케이트의 영웅적인 모습에만 치중하지는 않는다. 포위된 이들의 가혹한 삶을 따라가며 드라마틱한 작은 사건들을 소소한 스릴러 소재로 결합하여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죽음의 공포와 굶주림, 총탄의 위협이 짖누르는 가혹한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과 시민들이 생존을 위해 몸무림 치며 투쟁하는 모습 역시 담아내면서 작은 감동까지 접할 수 있다.
독일군에 포위된 레닌그라드에서 벌어지는 드라마틱한 사건들을 스릴러로 풀어가는 흥미로운 소재의 이 영화는 2차대전 당시 동부전선을 배경으로 애국적인 선전영화 분위기가 가득한 기존 러시아 작품들과 달리 볼 만하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을 구한 인도주의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여기자 케이트역에 <마이티 아프로디테>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미라 소르비노와 <인 트리트먼트>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출신 가브리엘 번등 헐리우드 명배우들이 러시아 영화에 출연한것도 신선하다고 할 수 있다.
독일 국민배우 아민 뮬러 스탈옹이 연기하는 독일 장군 빌헬름 리터 폰 레프 (Wilhelm Ritter von Leeb) 원수는 레닌그라드 포위전을 시작한 북부 집단군 사령관이었다. 후에 히틀러에게 불만을 품고 자신을 해임시켜달라고 건의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하여 포위전
중도에 해임되어 이후 종전까지 예비역으로 남아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2차대전 기간 동부전선의 역사를 서사 분위기로 담아낸 알렉산드르 부라프스키 감독은 모스크바대학과 러시아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하고 10여 편의 영화와 3편의 미니시리즈 시나리오를 쓴 작가 출신이다. 그는 러시아의 아카데미상이라 할 수 있는 골든 이글상과 러시아의 애미상이라 할 수 있는 TEFI상 등을 수상했다.
- 제2차 세계 대전중 레인그라드 공방전 : 레닌그라드 포위전 (Siege of Leningrad) 또는 ‘레닌그라드 봉쇄’
레닌그라드 포위전 (Siege of Leningrad) 또는 ‘레닌그라드 봉쇄’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동부 전선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인 레닌그라드에서 발발한 독일 북부 집단군의 장기간 군사 작전이다.
포위전은 1941년 9월 8일 마지막 육상 연결 통로가 끊어지면서 시작되었다. 이어 9월 14일에 나치 독일군이 소련 레닌그라드 교외로 진격했다.
비록 소비에트 연방이 1943년 1월 18일 도시로 연결되는 작은 회랑 부분을 해방하지만, 완전한 포위전 종료는 전투 시작 872일 만인 1944년 1월 27일 끝났다.
이 전투는 역사상 가장 길었고 파괴적인 포위전이었을 뿐 아니라 가장 많은 사상자인 약 4백만 명의 사상자를 입은 도시 전투로 꼽힌다.
– 독일의 레닌그라드 포위전
.내용: 제2차 세계 대전 중 동부 전선의 일부
.날짜: 1941년 9월 8일 ~ 1944년 1월 27일
.기간: 2년 4개월 19일
.장소: 소비에트 연방 러시아 SFSR 레닌그라드
.결과: 소비에트 연방의 승리
2년 반 동안의 계속된 포위공격은 대규모의 도시 파괴 및 현대 도시에서 벌어진 전투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전투로 알려져 있다.
히틀러가 명시한 명령에서는 도시 방어 구역 외곽에 위치한 예카테리나 궁전, 페테르호프 궁전, 로프샤, 스트렐나, 가치나와 같은 차르 궁전 및 기타 역사적 건물들에 존재하는 많은 예술품들을 나치 독일로 가져가 약탈하고 파괴했다.
많은 수의 공장, 병원, 학교 및 사회 기반 시설은 공습 및 장거리 포격으로 파괴되었다.
레닌그라드 포위전은 1944년 1월 27일 소련군이 레닌그라드-노브고로드 공세를 펼치며 독일군이 도시 남부로 퇴각하면서 끝났다.
이 공세는 레닌그라드 전선군, 볼호프 전선군 및 1 발트 전선군, 2 발트 전선군이 합동으로 치룬 공세이다.
발트 함대는 30%의 항공력으로 마지막 독일 국방군에 대한 공격을 펼쳤다.
1944년 여름, 핀란드 방어군에게 비보르크-페트로자보츠크 공세를 펼치면서 핀란드군은 비보르크 만과 부오크시 강 건너편으로 후퇴했다.
○ 연대기
– 1941년
4월: 바르바로사 작전과 제네라플랜 오스트의 계획에 따르면, 히틀러는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고 파괴하고자 했다.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추축국이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한다.
6월 23일: 레닌그라드 지휘관인 M. 포포프가 레닌그라드 남부 방어지를 답사한다는 두 번째 명령을 한다.
6월 29일: 루가에 방어 진지 건설이 시작됨. 이와 함께 어린이 및 여성의 대피령이 시작.
6~7월: 독일군이 전진하면서 프스코프와 노브로고드에서 피난을 온 시민 30만명이 레닌그라드로 몰려온다. 북서전선군은 레닌그라드 전방 방어선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자원군 및 징집병을 포함한 전선에 있는 군 병력이 200만명에 도달한다.
7월 19~23일: 북부 집단군의 첫 번째 레닌그라드 공격이 레닌그라드 남부 100km에서 멈추다.
7월 27일: 히틀러가 북부 집단군을 방문하여 진격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화를 냈다. 그는 빌헬름 리터 폰 레프에게 12월까지 레닌그라드를 점령하라고 명령했다.
7월 31일: 핀란드군이 카렐리야 지협의 소련 23군을 공격하면서 겨울 전쟁 이전의 핀란드 국경에 도달했다.
8월 20일~9월 8일: 레닌그라드의 산업, 학교, 병원, 주거 지역에 대해 포격이 있었다.
8월 21일: 히틀러 제34 지침에서 “핀란드군과 함께 레닌그라드를 포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8월 20일~27일: 민간인 대피가 레닌그라드로 이어지는 철도 및 도로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8월 31일: 핀란드군이 방어 태세에 들어서고 전선을 더 이상 진군하지 않는다. 이 전선은 1939년 겨울 전쟁 이전 핀란드의 국경선이다.
9월 6일: 독일 국방군 최고 사령부의 알프레트 요들이 핀란드군에게 레닌그라드 공격을 계속하라고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
9월 2~9일: 핀란드군이 벨루스트로프와 잉구시 북부 해안지대를 점령하고 완전 방어 태세에 들어선다.
9월 8일: 독일군이 라도가 호에 도달하면서 레닌그라드 육지를 완전히 포위한다.
9월 10일: 이오시프 스탈린이 레닌그라드 전선군 지휘관에 클리멘트 보로실로프를 해임하고 게오르기 주코프를 임관하다.
9월 12일: 레닌그라드에서 가장 큰 식품 저장소인 바다예브스키 상점이 독일의 포격으로 파괴되다.
9월 15일: 빌헬름 리터 폰 레프의 4 기갑군이 모스크바 공방전을 위해 전선에서 중앙 집단군으로 재배치된다.
9월 19일: 독일군이 레닌그라드 10km까지 진군하고 정지한다. 시민들이 수비선에서 전투에 참가하기 시작한다.
9월 22일: 히틀러가 “샹트페테르부르크”는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발언.
9월 22일: 히틀러가 “…우리는 민간인 생명을 구하는 데에 전혀 관심이 없다”라고 발언.
11월 8일: 히틀러가 뮌헨에서의 연설에서 “레닌그라드는 굶어죽여야 한다”라고 발언.
11월 10일: 소련군의 반격이 시작되어 11월 30일까지 독일군은 티흐빈에서 볼호프 강으로 퇴각하여 레닌그라드 동부의 스비리 강에서 핀란드군과 조우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다.
12월: 윈스턴 처칠이 그의 일기에서 “레닌그라드는 포위되었지만, 절대로 점령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썼다.
12월 6일: 영국이 핀란드에 선전포고하다. 이후 캐나다, 호주, 인도, 뉴질랜드가 차례로 선전포고한다.
– 1942년
1월 7일: 소련의 “리유반 공세”가 시작되다. 16주간의 공세가 실패하여 2 충격군이 손실을 입었다.
1월: 소련군이 포위를 풀기 위해 네브스키 퍄타초크 교두보 전투를 시작한다. 이 전투는 1943년 5월까지 지속되었지만 부분적인 성공만 거두었다. 양 측 모두 많은 사상자를 입었다.
4월 4~30일: 루프트바페의 레닌그라드 해상에 위치한 발트 함대 공격 작전인 에이스 스토스 작전이 실패한다.
6월 ~ 9월: 38cm 지크프리트 K (E)라는 열차포를 투입하여 포 무게 약 800kg의 포격을 시작한다.
8월: 스페인 청색 사단(División Azul)이 레닌그라드로 배치된다.
8월 14일 ~ 10월 27일: 내빌 데타츠먼트 K가 라도가 호수의 소련 보급로와 충돌하다.
8월 19일: 소련군이 8주 길이의 신야비노 공세를 시작시켜 포위 해제에는 실패했지만, 독일군의 노르드니흐트 작전을 무력화시킨다.
– 1943년
1월 ~ 12월: 레닌그라드 포격이 대폭 증가하다.
1월 12일 ~ 30일: 소련의 이스크라 작전을 통해 라도가 호수를 따라 육지 길이 열린다. 육지 포위망이 해제되었다.
2월 10일 ~ 4월 1일: 포위망을 해제할려는 폴랴르냐 즈베즈다 작전이 실패하다.
– 1944년
1월 14일 ~ 3월 1일: 포위전을 끝내기 위한 소련군의 몇몇 공세들이 시작한다.
1월 27일: 레닌그라드 포위전이 끝나다. 독일군은 도시에서 60~100 km 외로 후퇴하다.
1월: 독일군이 후퇴하기 전에 차르의 역사적인 궁전인 예카테리나 궁전, 페테르호프 궁전, 가치나, 스트렐나를 약탈하고 파괴한다. 샹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다른 역사적 랜드마크 및 교외 주택이 약탈되고, 많은 수의 귀중한 예술품들은 나치 독일 본토로 이동된다.
포위전 기간 동안 레닌그라드 도시 및 교외의 주택 3,200채, 목조 주택 9,000채(모두 태워짐), 공장 시설 840채가 파괴되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