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감독) 프란코 체피렐리 / 주연) 레너드 화이팅, 올리비아 핫세 / 1968년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는 1968년에 개봉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영화화한 영화이다.
몬태규가의 로미오는 원수 집안인 캐플릿가의 가면파티에 몰래 갔다 우연히 아름다운 여인을 본다.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로미오는 그녀가 바로 원수 캐플릿가의 딸이란 사실을 알고 놀란다. 하지만 그녀에게 끌리는 감정을 막을 수 없었던 그는 밤에 담장을 넘어 창가에서 그녀를 만난다.줄리엣 또한 로미오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이 둘은 신부님의 주례로 몰래 결혼식을 치르고 첫날밤을 보낸다. 그러나, 친구 머큐쇼와 싸움에 휘말린 로미오가 실수로 줄리엣의 사촌오빠인 티볼트를 죽이게 되면서 로미오는 쫓기는 몸이 된다. 그리고 이 둘은 비극적인 운명으로 치닷는다.
○ 제작 및 출연
- 제작진
감독: 프란코 체피렐리
각본: 프란코 체피렐리, 프랑코 브루사티
제작: 존 브라번, 안소니 하베록 알랜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촬영: 파스쿠알리노 드 산티스
편집: 레지날드 밀즈
음악: 니노 로타
미술: 로렌조 몬지아르디노
의상/분장: 다닐로 도나티
제작사: 파라마운트 픽쳐스
배급사: 파라마운트 픽쳐스
개봉일: 1968년 10월 8일
시간: 138분
국가: 영국, 이탈리아
언어: 영어
- 출연진
레오나드 위팅: 로미오 역
올리비아 핫세: 줄리엣 역
존 맥케너리: 머큐시오 역
마일로 오시어: 로렌스 신부 역
팻 헤이우드: 유모 역
로버트 스티븐스: 왕자 역
마이클 요크: 티볼트 역
브루스 로빈슨: 벤볼리오 역
폴 하드윅: 카퓰렛 공 역
나타샤 패리: 캬퓰렛 부인 역
안토니오 피에르페데리시: 몬테규 공 역
에스메랄다 루스폴리: 몬테규 부인 역
로베르토 비사코: 파리스 역
로이 홀더: 피터 역
디슨 러벨
카를로 팔무치
리처드 워릭
○ 원작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서 브룩의 서사시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아서 브룩의 서사시는 1562년 출간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아서 브룩의 서사시에서 줄거리를 가져왔다. 그러나 여러 등장 인물과 세부적인 이야기들은 셰익스피어의 독창적인 창작이다. 1567년 윌리엄 페인터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묶어 《환희의 궁전》이란 제목으로 출간하였으며 여기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삽입되었다. 페인터가 출간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는 당시 라틴어로 쓰인 이탈리아 소설의 전통에 따라 연극의 막과 같이 장으로 구분되어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었으며 셰익스피어 역시 이 구성을 참조하였다.
셰익스피어 당대의 런던 극장가에서는 이탈리아 이야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셰익스피어 역시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법에는 법으로,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 희극을 선보였다. 아서 브룩의 시 역시 이러한 유행에 따라 이탈리아의 작가 마테오 반델로가 1554년 발표한 소설집 속의 〈질레타와 로미오〉를 번역한 것이었다. 반델로의 이야기는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공연되는 동안 프랑스에서도 번역되어 공연되었다고 하나 전해지지는 않는다.
마테오 반델로의 〈질레타와 로미오〉 역시 그보다 앞서 루이지 다 포르토가 1530년 경 발표한 《새로이 발견한 두 귀족 연인의 이야기》 (이: Historia novellamente ritrovata di due nobili amanti)에 수록된 〈질레다와 로미오〉를 토대로 쓰인 것이다. 근래에 들어 베네치아의 베로나를 무대로 하는 카풀렛과 몬타규 가문의 두 연인에 관한 다양한 판본의 비슷한 이야기가 수집되고 있다. 다 포르도 역시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여 재구성 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3세기경 몬테치 가와 카풀레티 가는 이탈리아의 유력한 귀족 가문 중 하나였다. 질레타의 발코니와 무덤은 여전히 베로나의 인기있는 관광 명소이다. 학자들은 그 장소가 실재 무대였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한 줄거리를 가진 이야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마수치오 살레미타노가 1476년 발표한 《서른 세 가지 이야기》에 들어있는 시에라의 〈마리토와 지아노차 이야기〉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의 기원은 고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를 들어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는 포르도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영향은 셰익스피어의 이야기에도 반영되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원치 않는 사랑, 여자 주인공이 죽은 것으로 오해한 끝에 자살하는 남자 주인공 등이 그것이다. 브룩은 이탈리아의 이야기를 번역하면서 제프리 초서의 작품인 트로일로스와 크리세이드를 참조하였다. 한편 에페소스의 작가 에베소의 제노폰은 3세기경 연인을 이별하게 만드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약이라는 설정이 담겨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와 비슷한 희곡인 에베소인 이야기를 썼다. 이러한 설정은 크리스토퍼 말로가 그의 작품 헤로와 레안드로스, 카세지의 여왕 디도 등에서 다시 차용하여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 구성 방식이었다.
○ 이야기의 원형을 찾아서 :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 무엇도 막을 수 없는 불같은 사랑 그리고 비극
원형의 로미오와 줄리엣 : 프랭코 제피렐리의 <로미오와 줄리엣>
프랭코 제피렐리의 1968년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가장 충실하게 영화적으로 번안한 작품이며 뭇 남성들에게 올리비아 허시를 줄리엣의 원형으로 기억하도록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분명 당대의 대중적인 드라마였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는 지식인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지곤 해서 흥행에서 신통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는데,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셰익스피어를 지향했던 제피렐리의 이 작품은 흥행에서 엄청난 성공을 기록하기도 했다. 원작의 주인공들과 거의 같은 나이였던 레오나르도 화이팅과 올리비아 허시는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10대의 열정을 풋풋하게 그려냈고, 첫날밤에 대한 감독의 관능적인 해석이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제피렐리는 시적이고 문어체적인 대사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세팅을 세심하게 배치하고 두 가문의 갈등을 색감을 통해 대비시킴으로써 시대극을 감상하는 쾌미를 선사했다. 청춘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동시에 들려주는 주제곡의 애잔한 멜로디로 영화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해주었다.
- 베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가장 미국적이고 현대적이며 정치적인 로미오와 줄리엣 : 스파이크 리의 <정글 피버>
스파이크 리의 1991년작 <정글 피버>는 집안의 갈등을 흑백간의 인종적 문제로 치환한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던 중견 흑인 건축가 플리퍼(웨슬리 스나입스)는 어느 날 이탈리아계 여비서 앤지(애너벨라 시오라)와 사랑에 빠진다. 불장난처럼 시작된 그들의 관계는 불륜이라는 사실을 차치하고도 인종과 계급 문제와 연관된, 극복할 수 없는 편견과 인종적 갈등 때문에 위기를 맞는다. 플리퍼의 부인을 주축으로 한 흑인 여성들은 플리퍼의 외도 자체가 아니라 그가 피부색이 하얀 여성에게 갔다는 것 때문에 분노하고, 앤지의 아버지는 그녀가 흑인과 놀아났다며 구타를 가하며, 그녀의 친구들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플리퍼와 앤지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목격한 경찰이 그것을 한치의 주저함없이 강간으로 간주하여 제지하는 영화의 장면은 이들이 극복해야 하는 편견의 간극이 얼마나 뿌리깊은 것인지 한눈에 보여준다. 현대사회에서 성인의 결혼에 집안의 반대가 결혼의 결정적인 장애나 비극적인 결말로 곧장 연결되기에 무리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작품이 설정한 인종과 계급이라는 ‘혼사장애’의 구조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장 미국적이며 현대적이고, 정치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두 연인의 죽음으로 두 집안의 갈등이 해소되었지만 이 작품은 이 흑백의 연인이 결국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로맨스의 종말보다 로맨스로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이 더 잔혹하지 않은가.
- 워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가장 타락하고 뻔뻔한 로미오와 줄리엣 : ‘트로마필름’의 <트로미오와 줄리엣>
로이드 카우프먼과 마이클 허츠가 설립한 ‘트로마필름’의 <트로미오와 줄리엣>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갖고 있는 낭만성과 비극성을 실컷 조롱하는 영화다. 로이드 카우프먼과 제임스 건이 감독한 이 영화는 트로마필름의 다른 영화들처럼 초저예산적 상상력과 엽기적인 코드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재해석하는데, 그 모든 금기를 다 걸고넘어지며 아무렇지도 않게 끌어들이는 그 뻔뻔함과 재기발랄함에 배꼽을 잡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작품이 워스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작품 자체에 대한 가치평가라기보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가장 타락한 버전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다. 뉴욕의 저예산 포르노 필름의 공동 설립자였던 몬티Q와 캐플릿은 여자 문제로 갈등이 생겨 원수지간이 된다. 빈민가에서 온갖 범죄에 노출되며 살아온 몬티Q의 아들 트로미오와 캐플릿의 성도착적인 보호 아래 커온 딸 줄리엣은 기괴한 코스튬 파티에서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배우하고 별로 닮지 않은 고무인형들의 여기저기 잘려 피를 줄줄 흘리는 장면이 즐비한 스플래터무비인 이 영화는 동성애는 일상다반사로 여기며 근친상간은 ‘엿먹으라 그래’ 하면서 뛰어넘는다.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에게 바치는 최고의 경의는 그의 작품을 포르노로 패러디하고 정전에 바쳐진 숭고함을 박살내는 것이다.
- 한국형 로미오와 줄리엣, 남남북녀의 건널 수 없는 다리 : 강제규의 <쉬리>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여전히 집안의 결합이라는 의미가 강하기는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것이 결정적인 장애가 되기에는 시효가 조금 지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런 요소가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이 죽음을 통한 사랑의 완성이라는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결말로 이끌지는 않지만 최초의 갈등을 유발하는 효과적인 소재로 활용된다.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던 TV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는 대조적인 두 집안의 가풍과 어머니 사이의 미묘한 갈등이 두 연인의 결합을 방해한다는 것이 기본 설정이었다. 그런 식의 갈등은 홈드라마에서 꾸준히 반복, 변주되었는데 결국은 사랑이 모든 것을 극복하게 된다는 식의 결말에 이른다. 최근 김성욱 감독의 영화 <못말리는 결혼>도 전통을 고수하는 집안과 강남 큰손이라는 대조적인 가풍 탓에 남녀의 결합이 위기를 맞지만 역시 코믹한 해법을 제시한다.
원작의 비장미와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대립을 기반으로 연인의 사랑이 형상화된 작품은 아마도 <쉬리>일 것이다. 여기서 ‘가문’은 남과 북이라는, 타협하기 어려운 조국으로 변주된다.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감추고 캐플릿가의 가면무도회에 참석한 로미오처럼 이방희는 자신의 신분과 조국을 감추고 국가 일급 비밀정보기관의 특수비밀요원 유중원에게 접근해 결혼한다. 거짓으로 시작된 사랑에 진심으로 빠져들면서 둘의 관계는 죽음을 내포한 비극적 결말로 달려가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살상무기인 액체폭탄 CTX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위한 극약에 비견될 만하다. 줄리엣이 마신 극약이 처음에는 둘의 사랑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오해 속에서 둘을 죽음으로 이끈 것처럼 CTX는 이방희가 유중원에게 접근하도록 만드는 전략적 장치의 핵심에 있는 동시에 죽음으로 둘을 갈라놓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문의 대립이 그 안에 속한 개인의 사랑과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보여주는 것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었다면 <쉬리>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개인의 사랑을 얼마나 비극적인 파국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이 비교적 가문에서 자유로워진 이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문제의식이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쉬리>가 제기한 이데올로기로 인한 개인의 비극이라는 문제도 시대착오적 해석으로 전락할 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할 뿐이다.
- 아이콘, 가면무도회 <로미오와 줄리엣>
서로 원한관계에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만날 수 있는 것은 ‘가면무도회’때문이다. 캐플릿과 몬테규라는 줄리엣과 로미오의 성은 그들의 결합을 방해하는 외부적 조건들을 상징적으로 통합한다. 줄리엣이 로미오에게 ‘장미가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해도 달콤한 향기엔 변화가 없을 것을. 로미오도 이름이 로미오가 아니더라도 이름과는 상관없이 사랑스런 완벽함을 간직할거야. 로미오, 그대의 이름을 버려요.’ 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름’이 그들이 극복해야하는 모든 외형적 조건이라면 ‘장미’는 사랑 혹은 존재의 본질일 것이다. ‘가면’은 보통 진정한 자아를 가리는 도구로 사용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외부적 장애물을 초월하여 두 연인이 서로의 눈동자를 맞추며 손과 입술의 ‘기도’(실제로는 입맞춤)를 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제피렐리의 작품에서 우아하게 재현된 무도회장면은 바즈 루어만의 작품에서는 MTV 스타일로 구현되었다. 로이드 카우프만과 제임스 건은 젖소분장을 한 트로미오와 소프트 포르노적인 분위기로 우스꽝스럽게 변주한다. 이처럼 무수한 로미오와 줄리엣들은 ‘가면무도회’의 카니발적 분위기 속에서 사회적 관계로부터 일탈하여 순수한 사랑을 꿈꾼다. _ 글 : 김지미 (영화평론가)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