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로윙 윈드 : Rowing In the Wind (Remando al viento)
감독) 곤잘로 수아레즈 / 주연) 휴 그랜트, 리지 맥키너니, 발렌타인 펠카, 엘리자베스 헐리 / 제작) 1988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라이벌이자 우정을 나눈 동료 셀리의 사랑과 방황, 죽음을 그린 영화이다.
곤잘로 수아레즈 감독, 휴 그랜트, 리지 맥키너니, 발렌타인 펠카, 엘리자베스 헐리가 출연한 1988년 작품이다.
18세기가 안고 있던 사상과 상식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천재적인 문학가들의 비극적이고 짧은 삶을 묘사하고 있다.
유부남 셀리 (Percy Bysshe Shelley – 발렌틴 펠카 배우)와 사랑에 빠진 메리 (Mary Shelley – 리지 맥인너니 배우)는 영국으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메리의 이복동생 클레어 (Claire Clairmont – 엘리자베스 헐리 배우)도 이들과 함께 가겠다고 따라나선다.
이들은 바이런 (Lord Byron – 휴 그랜트 배우)의 대저택에 머물고, 클레어는 바이런과 하룻밤을 보내다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메리는 바이런의 충고에 힘입어 공포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메리의 곁엔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가 그녀를 좇아 다니는데 …
3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그의 라이벌이자 우정을 나눈 동료 셸리의 파란 많은 삶을 영화화했다.
<휴 그랜트의 로윙 윈드 (Rowing with the Wind)>는 영국출신 배우 휴 그랜트 (바이런 역)가 실제 연인인 엘리자베스 헐리와 함께 출연한다.
주색과 방랑벽으로 고통받다가 36세에 요절한 천재시인 바이런과 시에 대한 절망과 열등감으로 자살한 셀리, 두 문학가의 일생을 낭만적 영상으로 그렸다.
○ 제작 및 출연
– 제작진
감독 – 곤잘로 수아레즈 Gonzalo Suarez
기획 – 안드레스 빈센테 고메스 Andres Vicente Gomez
각본 – 곤잘로 수아레즈 Gonzalo Suarez
촬영 – 카를로스 수아레즈 Carlos Suarez
음악 – 알레한드로 마소 Alejandro Masso
편집 – 호세 살세도 Jose Salcedo
미술 – 울프강 버만 Wolfgang Burmann
의상/분장 – 이본느 블레이크 Yvonne Blake, 로마나 곤잘레스 Romana Gonzalez
제작사: Ditirambo Films
개봉: 1988년 10월 26일 (스페인)
– 출연진
휴 그랜트 Hugh Grant – 바이런 경 역
리지 맥키너니 Lizzy McInnerny – 메리 셸리 역
발렌타인 펠카 Valentine Pelka – 퍼시 셸리 역
엘리자베스 헐리 Elizabeth Hurley – 클레르 클레르몽 역
호세 루이스 고메즈 Jose Luis Gomez – 존 폴리도리 역
버지니아 마타익스 Virginia Mataix – 엘리사 역
로난 비버트 Ronan Vibert – 플레처 역
호세 카를로스 리바스 Jose Carlos Rivas – 크리아투라 역
케이트 맥켄지 Kate McKenzie – 제인 윌리엄스 역
졸리온 베이커 Jolyon Baker – 에드워드 윌리엄스 역
테리 태플린 Terry Taplin – 고드윈 역
카렌 웨스트우드 Karen Westwood – 파니 역
비비아나 페르난데스 Bibiana Fernández – 포르나리나 역
호세 마리아 포우 Josep Maria Pou
아이타나 산체즈-기요 Aitana Sanchez-Gijon – 테레사 기치올리 역
레베카 오르도바스 Rebeca Ordovas – 알레그라 역
니콜라스 모세르 Nicolas Moser – 윌리엄 역
네스토르 알폰소 로하스 Nestor Alfonso Rojas – 티타 역
○ 바이런과 셸리 일대기 “휴 그랜트의 로윙 윈드” _ 강찬호
시심 (詩心)의 계절. 낭만주의 천재시인 두 명의 삶과 사랑을 그린 우아한 영화 한편이 비디오로 출시된다.
『휴 그랜트의 로윙 윈드』 (원제 : Rowing with The Wind. 우일).
인기배우가 주연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내 개봉은 되지 못했다.
기행으로 일관된 시인들의 삶을 시적으로 그린 영화내용이 난해하다고 판단한 흥행업자들의 기피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인들의 이해하기 힘든 상징적 행동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는 여인들의 섬세한 시각을 접목해 삶과 예술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한번은 느끼면서, 한번은 이해하면서 볼만한 영화다.
24세 때 낸 시집으로 자고나니 유명해진 천재시인 바이런 (휴 그랜트 배우)과 셸리 (발렌틴 펠카 배우)는 시를 지고의 가치로 삼고 현실적인 생활은 철저히 경시하는 극단적 낭만주의자.
독신인 바이런은 숱한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며 유럽을 구름처럼 떠돌고, 유부남 셸리는 애인 메리와 결혼하기 위해 부인을 버리고 친구 바이런이 사는 스위스로 도피한다.
둘은 스스로 천재임을 자처하지만 그것은 돈과 세간의 평가에 압박받는 가운데 나온 자위적 행동이고 그들의 일상은 소외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그런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안타깝게 지켜보는 사람은 메리자매 뿐이다.
런던의 명망가 구드윈 가문 출신의 자매는 안락하지만 속물적인 집안을 떠나 방탕한 시인들을 따르는 길을 선택한다.
셸리의 애인인 언니 메리는 도피생활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괴기소설을 쓰고, 동생 클레어는 바이런의 아기를 임신한다.
넷은 번뜩이는 문학적 수사를 교환하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지만 시인들의 변덕스런 성격 탓에 그 결합은 항상 위태롭다.
이 와중에 메리는 자신의 불안을 응집시킨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소설로 창조해 낸다.
괴물은 소설 속에 머무르지 않고 밤 마다 메리를 쫓아다니며 두 시인의 죽음을 경고한다.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시인과 운명적인 사랑을 불태우고 그 정점에서 이별을 예감하는 감수성 강한 여인의 심리묘사가 뛰어나다.
휴 그랜트의 연인인 엘리자베스 헐리가 영화 속에서도 짝을 이뤄 바이런의 애인 클레어로 등장하지만 스토리의 주도권은 언니 메리 (매키너리 리지 배우)쪽에 가 있다.
스페인의 곤살로 수아레스 감독이 연출한 90년 작품. _ 강찬호
○ 줄거리
유부남 셀리 (Percy Bysshe Shelley: 발렌틴 펠카)와 사랑에 빠진 메리 (Mary Shelley: 리지 맥인너니)는 영국으로 떠나려한다. 메리의 이복동생 클레어 (Claire Clairmont: 엘리자베스 헐리)도 이들과 함께 가겠다고 따라나선다.
이들은 바이런 (Lord Byron: 휴 그랜트분)의 대저택에 머물고, 클레어는 바이런과 사랑을 나눠 임신한다. 서로 번뜩이는 재치와 유머를 논하며 즐거운 생활을 하는 네 사람. 메리는 바이런의 충고에 힘입어 공포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메리의 곁엔 인간의 형상을 한 악마가 그녀를 쫓아 다닌다.
그러던 어느날 셀리와 크게 다툰 바이런의 비서이자 시인인 폴리도 (Polidori: 호세 루이스 고메즈)라는 자신의 문학 작품에 대한 친구들의 혹평에 좌절한다. 셀리와 바이런이 배를 타고 나간 사이 폴리도리는 자살을 하는데, 이를 메리가 제일 먼저 목격하고 몹시 무서워한다.
영국으로 돌아온 이들 일행은 그동안 셀리와 아내가 괴로움을 못이겨 끝내 자살했으며, 메리의 막내 여동생 역시 아버지의 학대에 스스로 죽고 말았음을 알게 된다. 그 후 메리는 아들 윌리암을 클레어는 딸 알레그라를 낳고, 메리와 셀리는 결혼식을 올린다.
자주 악마의 환영에 시달리는 메리는 두려워하며 베니스로 가자고 셀리를 조른다. 결국 그들 모두 바이런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데, 도중에 괴물이 어린 윌리암을 꾀어 죽인다. 비통에 빠진 셀리는 배를 타고 나가 자살하고, 바이런은 자유를 위해 전쟁터로 나간다.
○ 바이런과 퍼시 셸리, 그리고 메리 셸리
– 조지 고든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 1788 ~ 1824)
제6대 바이런 남작 조지 고든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 6th Baron Byron, FRS, 1788년 1월 22일 ~ 1824년 4월 19일)은 영국의 시인이다. 존 키츠, 퍼시 비시 셸리와 함께 낭만주의 문학을 선도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훌륭한 글재주로 주위의 칭찬을 받으며 자랐다.
2살 때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으로 집을 옮겼으나 1798년에 제5대 바이런 남작이 죽었으므로 제6대 바이런경이 되어 조상의 땅 노팅검으로 옮기게 된다.
이듬해, 런던에서 나와 해로우 스쿨에 들어간 뒤 1805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하여 역사와 문학을 전공하지만 학업에 신경을 쓰지 않고 나날을 보냈다.
1808년에 케임브리지를 떠나, 1811년까지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등을 여행하고 귀국한 뒤 런던에 살다가 1812년에는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Childe Harold’s Pilgrimage)를 출판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그 후 《돈 주앙》 (Don Juan) 등 유명한 작품을 계속 발표하여 19세기 낭만파 시인의 대표적인 존재가 되었다.
1815년에 아나운서 안네 이자벨라 밀 뱅크와 결혼하였다. 여기서 태어난 아이가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인 에이다 러브레이스이다.
그러나 이듬해 별거하여 흐트러진 생활로 비판을 받아오다가 영국을 떠나 스위스에서 퍼시 비시 셸리 (Percy Bysshe Shelley)를 만나 스위스 각지를 떠돌면서 퇴폐한 생활을 계속한다.
그리스 문화를 사랑했던 그는 1823년 그리스 독립 전쟁에 참여하여 독립군에게 사기를 북돋워 주었다.
〈오늘 나는 36세가 되었다〉라는 시를 마지막으로 그는 사망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을 노래하고 생각하는 시를 쓴 시인으로서 자유롭게 살다 죽은 낭만주의자였다.
그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가운데 가장 왕성한 창작력을 가진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복누나 어거스터 리 (Augusta Leigh)와의 근친상간 루머가 있다.
– 퍼시 비시 셸리 (Percy Bysshe Shelley, 1792 ~ 1822)
퍼시 비시 셸리 (Percy Bysshe Shelley, 1792년 8월 4일 ~ 1822년 7월 8일)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으로 잉글랜드 서식스 주 필드플레이스에서 태어났다.
명문 이튼을 거쳐 1810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 이듬해 「무신론의 필연성」을 써서 출판한 일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이 무렵 16세 소녀 해리엇 웨스트브룩과 사랑의 도피 끝에 결혼한다.
1812년 1월, 첫 편지를 시작으로 정치사상가 윌리엄 고드윈과 만나며 그의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는다.
당대의 문인들과 사귀며 지적으로 성장하고, 급진적 정치운동에 투신한다.
첫 장편 철학시 「매브 여왕」을 비롯해 사회 개혁적인 산문들을 발표한다.
1814년 여름 해리엇과 헤어지고 고드윈의 총명한 딸 메리와 사랑에 빠진다.
함께 유럽을 여행하고, 1816년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바이런과 만나 우정을 쌓는다.
그해 11월, 해리엇이 자살하고 난 뒤에 메리와 재혼한다.
1818년 3월, 고국을 영원히 떠나 이탈리아를 방랑하며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써낸다.
장편 시극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첸치 일가」, 단편시 「종달새에게」, 「서풍의 노래」, 빼어난 산문 「시의 옹호」 등이다.
1822년 7월, 폭풍우에 배가 전복되는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라틴어 묘비명 ‘Cor Cordium’ (마음들 중의 마음)이 말해주듯이, 그는 생명과 사랑의 시인이었으며 열정적인 사회개혁가였다.
– 메리 셸리 (Mary Shelley, 1797 ~ 1851)
메리 셸리 (Mary Wollstonecraft Shelley, 1797년 8월 30일 ~ 1851년 2월 1일)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마치 한 편의 음울한 동화를 보는 것 같다.
일찍이 페미니즘에 눈을 뜬 어머니는 메리를 낳다가 세상을 떴고, 메리는 멀리 떨어져 지내던 아버지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와 그녀를 미워하던 의붓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의붓여동생은 우울한 성격으로 나중에 자살했다.
그녀에게는 또 의붓 남동생과 아버지가 다른 오빠가 있었다.
어린 메리는 독서를 통해 이런 환경에서 도피처를 찾았고 종종 어머니 무덤을 찾아가 책을 읽었다.
1813년 메리는 퍼시 비셰 셸리 (Percy Bysshe Shelly)를 만나게 된다.
그는 겨우 21세의 나이로 뛰어난 영국시인으로 기대를 받고 있었는데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던 그와 메리는 사랑에 빠져 도피한다.
메리의 아버지는 그녀와 의절했지만 두 사람은 1816년에 결혼한다.
두 사람은 이탈리아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비극이 뒤따라 그녀가 낳은 네 아이 중 셋이 일찍 죽고, 남편마저 서른 살의 나이에 익사해 버린다.
이 때 사살상 메리의 인생은 끝나버렸다.
그후로도 메리는 30년을 더 살았지만 재능있는 남편과 시인 바이런 경 같은 그의 친구들과 어울릴 때처럼 의욕을 불태우지 못했다.
더러 글도 썼지만 계속해서 사랑받았던 유일한 작품은 남편과 보낸 시절에 썼던 것이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