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베켓 : Becket
감독) 피터 글렌빌 / 주연) 리처드 버튼 / 1964년
영화 ‘베킷’ (Becket)은 미국에서 제작된 피터 글렌빌 감독의 1964년 드라마 영화이다. 리차드 버튼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할 B. 월리스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 출연 / 스탭
.피터 글렌빌 Peter Glenville – 감독
.리처드 버튼 Richard Burton – 토마스 베켓 역
.피터 오툴 Peter O’Toole – 헨리 왕 2세 역
.존 길거드 John Gielgud – 루이스 왕 7세 역
.지노 세르비 Gino Cervi – 잠벨리 추기경 역
.제작: 할 B. 월리스
.각본: 에드워드 안할트
.음악: 로렌스 로젠탈
.촬영: 죠프리 언스워스
.편집: 앤 V. 코츠
.개봉: 1964년 3월 11일
.시간: 148분
.국가: 미국 / 영어
.수상 후보 선정: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아카데미 프로덕션 디자인상,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골든 글로브 작품상 – 드라마 부문,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 영화, 드라마 부문
제2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1965) 남우주연상-드라마 피터 오툴 Winner
제2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1965) 작품상-드라마 피터 글렌빌 Winner
제18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1965) 의상상 마가렛 퍼스 Winner
제18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1965) 미술상 존 브라이언 Winner
제18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1965) 촬영상 죠프리 언스워스 Winner
○ 줄거리
영국의 왕 헨리2세가 교회와 세금 문제로 싸움을 하는 도중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죽는다. 왕은 그 자리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토마스 베켓을 캔터베리의 대주교로 임명한다. 헨리 2세와 토마스 베켓은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죄를 지은 성직자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토마스 베켓은 성직자를 교회에서뿐만이 아니라 세속 법정에서도 재판 할 수 있도록 한 클라렌드 칙령을 거부한다. 이 사건으로 그는 프랑스로 추방된다. 토마스 베켓은 이 사실을 교황에게 상소하였지만 헨리 2세와 반목하기를 원치 않았던 교황은 이를 묵인한다.
토마스 베켓은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의 보호를 받는다. 그리고 그 덕분에 헨리 2세와 평화 협정을 맺고 영국으로 귀향한다. 그러나 그는 헨리2세의 기사들에 의해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살해당한다. 그 후 헨리 2세는 공적으로 참회하고 토마스 베켓을 순교자로 시성한다.
○ 관람평
세상에는 부나 권력이나 명예나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런 것들보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동시에 사랑할 수가 없고 어느 한쪽으로 기울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마태복음 6:24). 성경은 우리가 부, 권력, 명예, 쾌락,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그 같은 성경의 요구에 충실한 크리스천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성직자들마저도 쉽게 부와 권력과 세상 명예와 쾌락에 넘어가기 쉬운 세상에 성경의 요구대로 살았던 진정한 ‘신앙의 대가’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그런 의미에서 커다란 자극과 도전과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1964년에 발표된 피터 글렌벨 감독의 ‘베켓’은 크리스천으로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지요.
영국 왕 헨리 2세 (피터 오툴)는 귀족들과 성직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변방의 색슨족을 탄압하고 그들 위에 군림합니다. 헨리 2세에게는 토마스 베켓(리처드 버튼)이라는 둘도 없이 친한 친구가 있어 그들은 늘 바늘과 실처럼 같이 다니면서 왕과 신하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는 독특한 관계였습니다. 베켓은 왕을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왕의 색슨족 탄압정책이나 방탕한 엽색행각을 좋아하지 않는 올곧은 사람이었는데 왕은 그러한 토마스 베켓을 대법관 자리에 앉히고, 얼마 후 왕과 교회가 세금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는 도중 캔터베리 대주교가 죽자 그 자리에 토마스 베켓을 앉힙니다. 토마스 베켓은 졸지에 영국에서 왕 다음에 중요한 자리인 대법관과 대주교가 되면서 기뻐하기보다는 난감한 마음이 됩니다.
헨리 2세는 자신과 둘도 없는 친구인 토마스 베켓을 대법관과 대주교 자리에 앉히면 자기편이 되어주어 반대자들을 제압하고 국정운영을 자기 뜻대로 해나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헨리 2세의 계산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대법관과 대주교가 된 토마스 베켓이 왕의 요구대로 무조건 응해주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원칙과 정직과 진실만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토마스는 자신에게 대법관과 대주교를 임명한 것은 왕이었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여 그 때까지의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법관과 교회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토마스의 그와 같은 자세는 매우 중요하므로 그가 대주교로 임명받고 대관식 (취임식)을 앞두고 고뇌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주여,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주여, 제가 사람들에게 뭐라고 해야 합니까?
자주 주님을 외면했던 제가,
자주 주님께 무관심했던 제가
어떻게 말해야할지 (대관식에서)
막막합니다. 뭐라고 해야 됩니까?
주님을 외면했던 제가, 자주 무관심했던 제가
이런 일로 기도하는 것이 너무 어색합니다.
저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충분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충분히 깨닫지
못합니다. 전에는 주님의 사랑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주여, 저는 나약하고 어리석습니다.
잔꾀를 부리려고도 했습니다.
편안함과 즐거움만 찾으려했습니다.
방탕한 왕에게 충실했습니다.
그와 함께 여인들을 가까이했습니다.
주님께 대한 의무를 갖기 전에는요.
하지만 이제부터 당신의 성도들의
인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교회의
보호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여,
제게 응답해 주세요. 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가르쳐주십시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십시오.
가치 있는 일을 하게 해 주십시오.
이 왕국 (영국) 속에서 진정한 하나님 왕국의
명예를 찾도록 해 주십시오….
평소에 토마스 베켓을 나쁜 사람으로 오해하면서 혐오하고 있던 한 젊은 수도사는 토마스의 이 기도소리에 이끌려 몰래 듣고 있다가 무릎을 꿇고 그의 손에 입 맞추며 사죄합니다. “제가 몰랐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모든 공직자들이 탐하는 대법관, 모든 성직자들이 오르고 싶어 하는 대주교에 오른 토마스는 기뻐하기보다 책임감으로 고뇌가 깊어집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왕국에 충성하기보다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기로 단호하게 뜻을 정합니다. 그러나 돌변한 그의 태도는 그 후부터 세상나라 (영국)와 충돌하면서 고난과 화를 부르고 죽음을 재촉합니다.
토마스는 왕과 의원들과 성직자들의 부당한 요구에 응하지 않고, 가깝게 지냈던 왕을 멀리하고, 왕을 공적인 태도로만 대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그러한 돌변에 가장 크게 당혹해진 사람은 왕 (헨리 2세)이었습니다. “토마스, 네가 누구 덕에 대법관이 되고 대주교가 되었는지 모르고….” 전보다 자신에게 더 충성할 줄 알았던 기대와는 반대가 되어버린 토마스의 태도에 왕은 실망과 배신감과 질투와 분노의 감정까지 나타내며 토마스 베켓을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마치 사랑에 배신당한 여인 (혹은 남자)의 보복처럼… 대비와 왕후와 왕자들보다도, 신하들보다도 오직 ‘변심’한 토마스에게만 병적인 집착을 보여 가며 토마스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하여 미친 듯 날뜁니다. 왕은 토마스를 하나님께 빼앗겼다고 여기며 하나님을 마치 경쟁자처럼 여깁니다. 왕후와 대비와 모든 공직자들과 성직자들도 토마스의 변심 때문에 이성을 잃어가는 왕을 보며 덩달아 토마스를 시기질투하며 미워하게 되지요.
‘괘씸한’ 토마스를 프랑스로 추방해 놓고도 토마스를 잊지 못해 프랑스까지 찾아간 왕은 왕의 자존심까지 팽개치고 사정하고, 공갈하고, 협박합니다.
“제발 나에게 돌아오게. 나를 멀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입니다. 전하를 위해서입니다. 전하께서 하나님께 저항하면 저는 전하를 저항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토마스는 왕의 조치로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 대주교로 복귀하게 되지만 그를 미워하는 왕의 아첨꾼들에 의해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예배를 집전하던 중 끝내 살해당하고 말지요. 토마스가 죽고 나서도 토마스를 잊지 못하는 헨리 2세는 백성들 앞에서 공적으로 참회하고 토마스 베켓을 순교자로 공표하면서 그를 기립니다. 교회와 세상나라가 충돌하면 물리적으로는 세상나라가 이기지만 영적으로는 교회가 이기지요. 교회는 세상을 물리적인 힘으로 이기려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교회가 세상나라를 물리적인 힘으로 이긴다면 영적인 생명력을 잃게 되지요.
종교와 정치의 구분이 분명하지 않았던 중세시대의 유럽기독교 국가에서는 종교인들과 정치인들의 권력다툼이 극심했었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상천외한 권모술수가 횡행했지요. 물론 왕이 권력순위 1위가 되어 휘두르면서 종교적인 문제까지 깊이 개입하여 어용종교인들이 숱하게 생겨나 교회를 타락시켰습니다. 그러나 드물게는 어용종교인이 되기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목숨을 내걸고 하나님께만 충성하면서 양심과 신앙의 원칙을 고수했던 훌륭한 종교인들이 있었는바, 헨리 2세 때의 대법관이자 대주교였던 토마스 베켓과 헨리 8세 때의 대법관이었던 토마스 모어는 대표적인 ‘신앙의 거인’이었습니다. 토마스 모어에 관한 이야기는 ‘사계절의 사나이’로 영화화 되었습니다.
성경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가르치고 있지요. 종교인들은 세속의 물리적 힘 (정치의 힘)에 타협하거나 항복해서도 안 되고, 세속나라의 제도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서 13:1-7; 베드로전서 2:11-15). 크리스천은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 외에 다른 일, 즉 국가의 모든 법질서와 제도 등에는 순복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비롯한 모든 사도들과 초대교회는 그 점을 가르치면서 손수 본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세상에 의해 신앙을 타협하거나 포기해서도 안 되며, 세상의 법제도를 거부해서도 안 되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교회와 성직자들은 세상나라에 충성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존재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상과 같은 여러 가지 점들을 생각해 본다면 유익할 것입니다.
영국이 낳은 정통 연극배우 출신 명배우 리처드 버튼과 피터 오툴은 순교자 토마스 베켓과 다혈질 헨리 2세를 각각 연기하며 그들의 뛰어난 연기력을 확인케 합니다. 50-70년대를 풍미한 리처드 버튼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성의’ (53년)로 잘 알려졌지만 일반 영화팬들에게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남편이었던 배우로, 수많은 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명배우로 기억에 남아있고, 피터 오툴은 ‘아라비아의 로렌스’ (62년)에서 로렌스 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그 후로 수많은 영화에서 명연기를 펼친 걸출한 배우입니다. 그 외에 영국의 명배우 존 길거드가 프랑스의 루이 7세로 나옵니다. 1964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등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던 화제작. 극본상 수상.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24)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