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사티아그라하 : The Protest, Satyagraha
감독) 프라카시 자 / 주연) 아미타브 바흐찬, 카리나 카푸르, 아제이 데브간, 아르준 람팔, 암리타 라오 / 2013년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는 Amitabh Bachchan, Ajay Devgn, Kareena Kapoor, Arjun Rampal, Amrita Rao, Manoj Bajpayee 및 Vipin Sharma가 주연을 맡은 Prakash Jha가 감독한 2013년 인도 정치 드라마 영화다. 이 영화는 2013년 8월 30일에 출시되었지만 하루 전인 8월 29일에 UAE에서 출시 되었다.
– 부패에 저항하는 중산층의 분노를 다룬 아미타브 바흐찬 주연의 대 서사극
다섯 명의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 격렬한 폭동의 와중에서 서로의 삶이 얽혀있음을 발견한다. 비통에 잠긴 한 아버지가 정부 관료를 모욕하자, 그것은 집단적인 분노에 뿌리를 둔 일련의 폭발적 사건들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된다. (2013년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 제작 / 출연
– 제작진
감독: 프라카시 자
제작: Prakash Jha, Ronnie Screwvala, Siddharth Roy Kapur
캐스팅: Bachchan Amitabh, Devgn Ajay, Kapoor Kareena, Rampal Arjun, Bajpayee Manoj, Rao Amrita
각본: Prakash Jha, Anjum Rajabali
촬영: Sachin Krishn
미술: Udai Prakash Singh
효과: Rakesh Ranjan
음악: Salim – Sulaiman
제작사: Prakash Jha Productions & UTV Software Communications Ltd
배포사: UTV Motion Pictures
– 출연진
아미타브 바흐찬
카리나 카푸르
아제이 데브간
아르준 람팔
암리타 라오
마노즈 바즈빠이
○ 감독 : 프라카시 자 (Prakash JHA)
인도 비하르 태생으로 작가, 감독, 제작자인 프라카시 자는 푸네 소재 인도영화방송학교에서 연출을 잠시 공부했으나 시위로 임시 휴교하자 뭄바이로 가서 경력을 쌓았다.
.출생: 1952년 2월 27일, Bettiah, India
.배우자: Deepti Naval (m. 1985–2002)
.자녀: Disha Jha
.TV shows: Raktanchal, Saare Jahan Se Acha
.학력: Ramjas College, Film and Television Institute of India, Sainik School Tilaiya, Kendriya Vidyalaya No.1 Bokaro
.수상: Filmfare Critics Award for Best Film 등
자의 영화는 액티비즘영화로 유명하며 <반디쉬>(1996), <라훌>(2001), <라즈니티>(2010), <차크라비유>(2012) 등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 줄거리
Ambikapur의 은퇴한 교사이자 전 교장인 Dwarka Anand (Amitabh Bachchan)는 엔지니어 아들 Akhilesh와 며느리 Sumitra와 함께 사는 이상주의자이다. 그의 엔지니어 아들 Akhilesh의 친구 Manav (Ajay Devgn)는 야심 찬 자본가다. Manav는 Akhilesh 살해의 배후인 인도 장관 Balram Singh (Manoj Bajpayee)의 동생인 Sangram Singh가 수행한 악의적인 교통사고로 갑자기 사망한 친구 Akhilesh (Indraneil Sengupta)를 그리워 한다. Balram Singh은 Akhilesh의 아내 Sumitra (Amrita Rao)가 관공서에 매일 신청서를 제출했음에도 실현되지 않는 답변만 듣게된다. 격분한 드와르카는 폭력을 행사하고 투옥된다. Manav는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여 Arjun Singh (Arjun Rampal)과 언론인 Yasmin (Kareena Kapoor)과 연계해 그를 석방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한다. 희망에 찬 학생, 굶주린 노동자, 분노한 중산층 시민들이 가세하고 규모가 커지자 그때야 정치인들은 패닉에 빠지기 시작한다. 결국 Dwarka Anand는 Balram Singh의 압력으로 불만을 철회한 후 자유를 얻는다.

Dwarka Anand는 전체 지역에서 보류 중인 모든 청구를 취소하기 위해 정부에 통지를 제출한다. 일련의 극적인 사건이 있은 후, 그는 단식 투쟁에 참여하고 정부에 해당 지역에 조례를 제정할 것을 요청한다.
한편, 청년 랄 바하두르는 동요를 지지하기 위해 자살하고, 4명의 경찰이 폭도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이 직후, 폭동이 일어나 발람 싱은 준 군사 조직을 파견해야 한다. 그의 부하가 마나브의 무릎에서 사망한 드와르카 아난드를 쏘고 대중에게 폭동을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 이후 발람 싱은 경찰에 붙잡힌다. 마나브와 아르준은 부패를 근절하고 공동의 복지를 위한 시스템을 재건하기 위해 지역 정당을 구성하기로 결정한다.
○ 내용
‘사티아그라하’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주창한 불복종 비폭력 저항운동이다. 원래 힌디어 의미는 ‘진리의 힘’을 의미하지만 간디는 이 힘을 불의와 억압에 대한 저항의 도구로 삼았다. 영화는 이 저항운동을 현재의 부패한 인도 권력층을 비판하고 개혁하는 의미로 불러온다. 인도의 작은 마을 암비카푸르의 은퇴한 교육자인 드와르카 아난드는 탐욕으로 부패한 인도사회를 끊임없이 비판하며 타협없이 살아간다. 어느 날 정부의 도시개발 사업에 참여했던 아들 아킬레쉬가 사고로 죽게 되고, 그의 보상금 문제로 지역관료와 다툼으로 인해 투옥된다. 아킬레쉬의 친구인 마나브는 드와르카를 석방시키기 위해 미디어를 이용해 석방운동을 일으키고, 이 운동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정부에 대한 현대판 ‘사티아그라하’로 발전한다. <사티아그라하>는 그러나 부패한 권력을 처벌하는 낭만적인 서사를 택하기 보다, 이 저항운동의 핵심인 평화와 진리에 주목한다. 진리를 찾는 자에겐 그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운다.
○ 영화 관련 이모저모
18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영화의 창’ 섹션에 초청된 인도 출신 프라카시 자 감독의 영화 <사티아그라하>는 부패에 저항하는 중산층의 분노를 소재로 한 153분의 러닝타임을 가진 대 서사극이다. ‘사티아그라하’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주창한 비폭력 불복종 저항 운동이다.
영화는 도시 개발사업에 얽힌 문제로 투옥된 친구를 석방하기위해 미디어를 활용하게 되면서 현대판 ‘사티아그라하’로 발전해나가는 양상을그려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 격렬한 폭동의 와중에서 서로의 삶이 얽혀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마하트마 간디 (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 ~ 1948)가 비폭력 무저항 운동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 시작 (1906년 9월 11일)
1906년 9월 11일은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년 10월 2일 ~ 1948년 1월 30일)가 비폭력저항운동인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를 공식 선포한 날이다.
같은 해 8월 간디가 머물고 있던 남아프리카에서는 인도인들이 지문을 등록하고 증명서를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차별법이 제출됐다.

이 법에 반대하는 의사를 밝히기 위해 요하네스버그의 한 극장에서는 9월 11일 대중 집회가 열렸다.
간디는 이때 연설을 통해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 즉 대중 불복종을 투쟁을 위한 방법으로 채택하게 됐다.
–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의 정의 및 세 가지 원칙
일반적으로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는 ‘시민적 불복종 운동’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한국에서는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번역된다.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 산스크리트어 ‘사티야그라하’)는 마하트마 간디에 의해 시작된 비폭력 저항 운동의 철학이다. ‘사티아’는 진리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며, ‘아그라하’는 노력, 열정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사티아그라하라는 말 자체는 “진리를 찾으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티아 – 진리; 정직 및 평등, 개방을 함께 의미하기도 한다.
.아힘사 – 타인에 대한 상해 불가
.타파시아 – 자발적인 자기 희생
–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의 전개
사티아그라하 (Satyagraha)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894 ∼ 1914년에 간디가 아프리카 남부에서 현지 인도인 노동자들의 공민권 획득투쟁을 하던 중이었다.

점포 · 공장 등의 전면적 작업정지인 하르탈이나 영국과의 비협력 등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하는 이 투쟁은 20세기 초의 B.G.틸라크, B.C.팔 등의 민족파 지도자들의 ‘수동적 저항’ 운동을 답습하는 것이었다.
간디는 이것을 근본적인 사상으로 삼아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말로 설명했는데, 간디의 지도와 투쟁은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 ∼ 22년과 세계공황에 인도가 휩쓸린 때였다.
1930∼34년 2차로 전개된 사티아그라하는 농민을 포함한 인도 전역에 파급되어 거의 모든 계급 ·계층의 사람들을 규합했다.
1차 세계대전 종료 후인 1919년 봄, 영국 정부의 독립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간디는 사티아그라하 투쟁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때 400명의 인도인이 영국군의 무자비한 발포로 학살당하면서 운동은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