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섀도우랜드 (Shadowlands) : C. S. 루이스의 사랑 이야기
감독) 리차드 아텐보로 / 주연) 안소니 홉킨스, 데브라 윙거 / 1993년
‘섀도우랜드’ (Shadowlands)는 영국에서 제작된 리차드 아텐보로 감독의 1993년 드라마, 멜로 · 로맨스 영화로 C. S. 루이스의 이야기를 영화화 했다. 안소니 홉킨스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고 리차드 아텐보로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 영화가 개봉된 1993년도는 C. S. 루이스 타계 30주년이 되는 해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모든 광대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찾아보라고 해도 그녀의 얼굴,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손길을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죽었다. 죽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알기 어려운 말인가?” – C. S. 루이스 ‘헤아려본 슬픔’ 중에서
– C. S. 루이스의 사랑 이야기
1952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의 영어 영문학과 교수인 루이스(잭)는 독신으로 여자와는 거리를 둔채 조용히 살고 있다.
루이스는 친구들 사이에서 잭이라 불리는데 그는 이성적이고 냉철하며 감정적인 문제에 흔들림이 없다.
그런 잭의 삶에 나타난 조이 그레샴, 그녀는 감성이 풍부한 미국인 시인이자 작가이다.
놀랍게도 잭은 조이에게 이끌리는데…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59세에 조이 (Joy)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당시 조이가 암에 걸렸음을 알았지만 두 사람은 1957년 3월 조이의 병실에서 성공회 (Anglican) 혼인예식에 맞게 결혼식을 올렸고, 4년간의 짧고도 행복한 결혼 생활중 결국 조이는 암으로 그의 곁을 떠난다.
4년만에 결국 사별로 끝나고만 이 아름답고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는 훗날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 연극 대본을 기초로 하여 영화 ‘섀도랜드’ (Shadowlands)가 제작된다.
루이스가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글인 ‘A Grief Observed’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가명으로 출판된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같은 날, 루이스는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 스탭 / 출연
– 스탭
리차드 아텐보로 Richard Attenborough – 감독
제작: 리차드 아텐보로, 브라이언 이스트만
각본: 윌리엄 니콜슨
음악: 조지 펜튼
촬영: 로저 프래트
편집: 레슬리 워커
국가: 영국
– 출연
안소니 홉킨스 Anthony Hopkins – C. S. 잭 루이스 역
데브라 윙거 Debra Winger – 조이 그레샴 역
조셉 마젤로 Joseph Mazzello – 더글라스 그레샴 역
줄리안 펠로우즈 Julian Fellowes – 데스몬드 역
에드워드 하드윅 Edward Hardwicke – 워니 역
로버트 플레밍 Robert Flemyng – 클라우드 역
제임스 프레인 James Frain – 피터 역
스콧 핸디 Scott Handy – 스탠디쉬 역
로저 애쉬톤 그리피스 Roger Ashton Griffiths – 닥터 에디 역
○ C. S.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 1898~1963)에 대하여
1898년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생으로,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의 모들린 칼리지에서 강의하다가, 1954년 케임브리지의 모들린 칼리지 교수로 부임하여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신앙을 버리고 완고한 무신론자가 되었던 루이스는 1929년 회심한 후,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변증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뛰어난 저작들을 남겼다. 1963년 작고했다.
지성적이며 논리적인 신학자로 개신교, 성공회, 로마 가톨릭 등 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였다. 그리고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로 영국 3대 판타지 소설가로 꼽히는 유명한 작가이다. 그는 확고한 무신론자였다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자 소설가인 톨킨과 다른 친구들의 영향으로 30세 때인 1929년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성공회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다.
가까운 친구들 사이에선 “잭 Jack”이라 불린 그의 본명은 클리브 스태플스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이다. 1898년 11월 29일 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태어났다. (3년 먼저 태어난 형 워런 Warren은 역사학자였고 그의 평생에 걸친 절친한 친구였다.) 9살 때 어머니 플로라 Flora 여사를 암으로 여읜 루이스는 기숙사가 딸린 학교들 몇 군데를 전전하다가, 커크패트릭 W. T. Kirkpatrick이라는 가정 교사에게로 보내졌는데, 엄격한 이성주의적 무신론자였던 그에게서 엄밀한 논리적 사고 훈련을 받았으며, 본래 성공회 배경을 가졌던 루이스는 이 무렵 확고한 무신론자가 된다.
어린 루이스는 사람을 닮은 동물을 매우 좋아했고, 비트릭 포터 이야기에 빠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자신이 직접 동물 이야기를 상상해서 글로 쓰기도 하였다. 루이스는 형 워니와 함께 동물들이 다스리는 ‘복센 세계’를 창작하기도 했다. 그는 독서를 매우 좋아하였다. 루이스의 아버지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루이스가 읽지 않은 책 한권 찾기는 풀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렵다고 하였다.
루이스가 십대 소년일 때, ‘노던니스 (Northernness)’라는 스칸디나비아 고전 문학의 시나 전설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이러한 전설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루이스는 ‘기쁨 (joy)’이라고까지 표현하였다. 루이스는 자연에 대한 애정도 컸다. 루이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은 곧 북쪽 (the North) 이야기였고, 북쪽 이야기는 곧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십대 때 쓴 글은 복센 이야기로부터 멀어졌고, 북유럽 신화나 자연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담은 서사시나 오페라 같은 다른 형식으로 쓰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커크패트릭에게 배우면서 그리스 문학과 신화에 점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논쟁과 추론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1916년 옥스포드 대학교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장학금을 받고, 이듬해 1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자원입대하였다. 19번째 생일날 프랑스의 섬므 밸리의 최전선에 나가 참호전을 겪었으며, 서머셋 보병 연대 서드 배탈리온에서 장교로 복역하였다. 엉덩이에 영국군 포탄의 파편 조각이 박히는 부상을 입어 요양캠프에서 치료를 받다가 전쟁이 끝나자 다시 옥스퍼드로 돌아와 학업을 계속한다. 루이스는 장교훈련 기간 중 알게 된 패디 Paddy라는 친구가 전사하자, 약속한 대로 그의 어머니 무어 부인 Mrs. Moore을 자신이 평생 보살폈다.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문학과 철학 동아리인 잉클링스의 멤버였던 그는 1923년 옥스퍼드를 세 부문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University College)에서 잠시 철학을 강의했으며, 1925년부터 모들린 대학 (Magdalen College)에서 30여 년간 영어와 문학을 가르친다. 1954년부터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와 르네상스 문학 교수로 재직했는데, 이 무렵 『실락원 서문 : A Preface to “Paradise Lost”』 『사랑의 알레고리 : The Allegory of Love』 등 뛰어난 영문학 학술서적들을 여러 권 저술한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접근을 늘 의식하고 있던 루이스는, 1929년 어느 날 밤 마침내 신 앞에 항복하게 된다. 그런데 이 날의 회심은 ‘복음적 신앙’으로의 회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유신론’으로의 회심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31년 어느 가을 밤, 옥스퍼드의 동료 교수이자 가톨릭 신자인 톨킨 J. R. R. Tolkien과 성서와 신화를 주제로 나누었던 긴 대화를 통해 마침내 기독교 신앙의 핵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루이스는 자신의 소명은 교회 밖 (언저리)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교파에 국한되는 교리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어 온 기독교의 정수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를, 전문 신학 용어가 아닌 현대인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노력했고, 그러한 분투는 결국 그에게 “회의자를 위한 사도”라는 별명을 안겨준다.
루이스의 삶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루이스보다 열여섯 살 연하였던 조이 (Joy Gresham)이다. 그는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들을 발표한 미국 작가로서, 애초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그의 저술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었다. 시인이며, 재치와 지성미를 갖춘 여인으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던 루이스는 58세에 그녀에게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조이와 결혼을 한다. 이때 조이는 이미 불치의 골수암에 걸린 상태였음이 뒤늦게 알려지고, 죽음의 신이 연적이 된 상황에서 조이에 대한 루이스의 사랑은 급속히 깊어졌다.
1957년 3월 조이의 병실에서 성공회 (Anglican) 혼인예식에 맞게 결혼식을 올렸으나 4년만에 결국 사별로 끝나고만 이 아름답고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는 훗날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 연극 대본을 기초로 하여 영화 ‘섀도랜드 (Shadowlands)’가 제작된다.
루이스가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글인 『A Grief Observed』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가명으로 출판된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같은 날, 루이스는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홍성사가 역간한 루이스의 저작으로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 『고통의 문제』, 『예기치 못한 기쁨』, 『천국과 지옥의 이혼』, 『헤아려 본 슬픔』, 『시편 사색』, 『네 가지 사랑』, 『인간 폐지』,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개인 기도』, 『기적』, 『영광의 무게』, 『루이스가 메리에게』, 『피고석의 하나님』, 『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 『기독교적 숙고』, 『당신의 벗, 루이스』, 『순례자의 귀향』, 『세상의 마지막 밤』, 『실낙원 서문』, 『오독』, 『침묵의 행성 밖에서』, 『페렐란드라』, 『그 가공할 힘』이 있다.
○ 영화 ‘섀도랜드’ (Shadowlands)의 원작 ‘헤아려 본 슬픔’ _ C. S. 루이스 (홍성사, 2019)
– 슬픔이 짓누르는 시간,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아내를 사별한 C. S. 루이스의 슬픔의 일기
지은이가 N. W. 클러크 (N. W. Clerk)라는 가명으로 썼던 책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아내에 대한 그리움, 다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격정적으로, 깊은 묵상 가운데 그려 낸 일기. 전작 『고통의 문제』가 고통에 대한 이성적·철학적 변증이라면, 『헤아려 본 슬픔』에서는 아내를 잃고 고통을 겪는 개인적, 직접적 고백이 전면에 드러난다. 지은이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59세에 조이(Joy)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당시 조이가 암에 걸렸음을 알았지만 두 사람은 4년간의 짧고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렸고 결국 조이는 암으로 그의 곁을 떠난다. 이 책의 출간 이후 지은이의 양아들 더글러스 그레셤은 “노골적이리만치 정직하고 꾸밈없는 단순성이 특징이며, 흔히 찾아볼 수 없는 힘을 보여 준다. 그것은 솔직대담한 진실의 힘이다!”라고 썼으며, 타임스 문학부록은 “애도자 (哀悼者)를 판에 박힌 태도에서 끌어내어, 슬픔에 대한 자신의 견해에 동참하도록 초대한다”라고 평했다.
– 목차
머리말
1~4장
해설
– 역자 : 강유나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와 동 대학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현대극의 멜로드라마적 전통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교양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언 와트의 『근대 개인주의 신화』, 『소설의 발생』(이상 공역), C. S. 루이스의 『예기치 못한 기쁨』, 『헤아려 본 슬픔』, 『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에드워드 올비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등을 번역하였다.
– 책 속으로
슬픔이 마치 두려움과도 같은 느낌이라도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 p.19
내게 종료적 진리에 대해 말해 주면 기쁘게 경청하겠다. 종교적 의미에 대해 말해 주면 순종하여 듣겠다. 그러나 종교적 위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당신은 모른다’고 나는 의심할 것이다. — p.46
하나님은 가장 자비로운 듯 보일 때마다 실은 다음 번 고문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 p.52
나는 내가 어떤 상태를 묘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슬픔의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슬픔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그것은 지도가 아닌 역사서를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임의로 어느 지점에서 그 역사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영원히 멈출 이유를 찾지 못할 것 같다. — p.87
만일 지상에서 그녀를 결코 다시 보지 않음으로써 암을 고칠 수 있다 했다면,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않으려 애썼을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다. — p.98
– 출판사 서평
세계적인 기독교 사상가이자 변증가인 루이스는 독신으로 살다 59세에 여류 시인 조이 (Joy)를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불과 4년만에 아내 조이는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은 그가 사별이라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써내려간 일기로,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아내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다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 안에 귀착하기까지의 마음의 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추스릴 수 없는 격정 가운데, 그리고 때로는 깊은 묵상 속에서 그가 만난 인생의 의미, 그리고 하나남의 존재가 본문 가운데 가득하다. 이미 ‘셰도우랜드’라는 영화로도 잘 알려진 루이스의 사랑, 그리고 아내를 향한 한 지성인의 애절한 순애보를 만날 수 있다.
○ 관람평
샤도우랜드 (섀도우랜드) – C. S. 루이스의 사랑
이 영화를 관람한 2013년도는 C. S.루이스 사망 50주년이라고 한다.
그를 매우 좋아한다고 자처하면서도 이런 소식에는 무디다.
하지만 여기 저기서 그의 소식을 많이 듣고 있긴 하다. 그들에게 이 영화 소개가 조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모든 광대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찾아보라고 해도 그녀의 얼굴,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손길을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죽었다. 죽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알기 어려운 말인가? – [헤아려본 슬픔] 중에서
C.S.루이스의 애칭은 ‘잭’이다. 그리고 그녀는 ‘조이’
[헤아려본 슬픔]에서는 조이가 H라고 표현됐다. 이 책은 잭이 조이를 잃고난 후 쓴 일기를 편집하여 낸 책이며 영화는 잭과 조이의 사랑을 다루었다.
그들의 사랑은 조금 특별하다. 영화는 사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역시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는지라 그와 그녀가 만나게 된 배경에 대해 충분히 설득력을 주지는 않는다.
어쨌든 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도 나타나지만 잭은, 그의 학문적 지식과 통찰력 그리고 비범한 표현력 때문에 논쟁이나 토론에서 그와 겨룰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와 겨룰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그가 왜 꽤나 오랫 동안 독신으로 살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헬렌 조이 그래셤을 만났을 때 사랑에 빠진 이유는 알만하다.
그녀 역시 대단한 지성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의 지성은 잭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정직한 종류였다.
그는 그녀를 이렇게 기억했다.
“좋은 아내는 한꺼번에 여러 사람 역할을 한다. H가 내게 어떤 사람이들 되지 못했으랴?
그녀는 나의 딸이고 나의 어머니였으며, 나의 학생이자 선생, 나의 신하이자 군주였다.
그리고 언제나 이러한 모든 것들이 녹아 있는 내 믿음직한 동지요 벗이며 한 배를 탄 선원이자 전우였다.
나의 애인이자, 동성의 친구들이 내게 베풀 수 있는 그 모든 것을 베풀어 주는 사람이었다. 더 이상을 해 주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해도 우리는 항상 함께였을 것이며 그리하여 스캔들을 일으켰을 것이다.
바로 이런 뜻에서, 나는 한때 그녀의 ‘남성적인 미덕’을 찬미한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곧 제동을 걸어 ‘당신을 당신의 여성적인 미덕으로 찬미한다면 어떤 기분이겠냐’고 했었지.
그건 재지 있는 대꾸였소, 여보. 그렇지만 당신에게는 펜테실레이아나 카밀라 같은 부분이 있었다오.
그리고 나만큼이나 당신도 자신에게 그런 점이 있다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았나 말이오. 내가 그런 점을 알아보았으므로 당신은 기뻐했었지 않소.” – [헤아려본 슬픔] 중에서
그녀가 처음 잭을 만나러 영국으로 왔을 땐 그녀가 겪고 있었던 병이 조금 회복할 즈음이었다. 폭넓게 책을 읽던 중에 잭의 책을 접하게 되고 그녀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편지로 궁금한 것들을 써 보내며 둘은 우선 지성적으로 친구가 되었다. 영국에 아주 머물러 살게 되면서 둘은 계속 지적인 우정을 이어갔다.
그 전에 결혼한 사람으로서 낭만적으로만은 받아들일 수 없는, 둘은 그 우정 관계에서 조이의 필요에 의해 합법적인 부부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 조이는 잭에게서 재정적인 후원을 받아야 할만큼 가난했으며 영국에서 살기 위해 결혼이 필요했다. 그녀가 오래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야, 그들은 비로소 진짜 부부가 되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함께 살았다.
영화가 얘기하듯, 그들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기에 더 애틋했고, 더 소중했고, 더 사랑할 수 있었다.
잭은 조이가 떠난 몇년 후 역시 세상을 떠났다.
조이를 보살피던 때에 잭의 나이는 이미 60대 초반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지켜보느라 지쳐있었으며 그 역시 골다공증 등으로 몸이 쇠약해져 있었다. 그녀가 떠난 뒤에는 한층 더 정신적인 괴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스무살 때 처음 봤던 이 영화는 짧게 편집되어 있었다.
어제 저녁 남편과 함께, 거의 10년이 다되어서야 영화 전부를 보게 된 것인데, 다소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내가 아는 만큼도,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잘 다뤄지지 않았다. 그저 사실에 기반한 연인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렇다하더라도 만약 그의 책에 관심이 있다면, ‘헤아려본 슬픔’을 읽기 전 후로 한 번 보는 것은 추천한다.
영화보다도 책을 더 추천하며, 이 극심한 고통을 겪기 전에도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던 ‘고통의 문제’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겪고, 또 그 고통이 남들은 쉽게 알 수 없는 극심한 것일 때도 있다.
한 없는 무력감과 동시에 고통으로 인한 분노를 느낄 때, 믿지도 않았던 신에게 호소하거나 따지고 드는 것은 일반적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