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열차의 도착 (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프: L’Arrivee D’Un Train A La Ciotat)
감독) 루이 뤼미에르 / 촬영) 루이 뤼미에르 / 국가) 프랑스 / 개봉) 1895년 12월 28일 / 상영) 50초
‘열차의 도착’ (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프: 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은 세계 최초의 영화로 프랑스의 발명가 형제 오귀스트 마리 루이 니콜라 뤼미에르와 루이 장 뤼미에르의 작품이다.
1895년 12월 28일의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되는데, 이 작품이 ‘열차의 도착’이다.
프랑스의 해변도시 라 씨오타 (La Ciotat)의 기차역에 열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담은 무성영화로, 실제상영시간은 50초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의 첫 상영 당시 영상 속에서 기차가 돌진해오는 모습을 보고 실제로 착각한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상영관 뒤쪽으로 도망쳤다는 일화가 있다.
아무런 스토리도 없이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만 보여주는 50초의 짧은 단편 무성영화이다.
당시 프랑스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상영했다.
50초 분량의 이 영화는 프랑스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부슈뒤론주 라시오타에서 촬영되었다. 초기의 뤼미에르 감독의 영화들처럼 이 영화는 35mm 포맷의 1.33:1 가로세로비로 제작되었다.

○ 제작 / 촬영
.감독: 오귀스트 뤼미에르, 루이 뤼미에르
.제작사: Société A. Lumière et ses Fils
.제작자: 오귀스트 뤼미에르, 루이 뤼미에르
.촬영: 오귀스트 뤼미에르, 루이 뤼미에르
.개봉: 1896년 1월 25일
.언어: 불어
.시간: 약 50초

○ 내용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다.
지금과 비교하면 영화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적은 약 59초의 상영시간을 보여준다. 지금으로 보면 영화보다는 동영상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때 당시엔 이게 영화였다. 내용은 단지 라 시오타 역에 기차가 도착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이고 실제로 소리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극장에 피아노를 설치해 피아노를 연주함과 동시에 상영을 했을 뿐이다.
열차의 도착은 프랑스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상영되었는데 관객들은 기차가 스크린을 향해 달려오는 장면에서 놀라 극장 밖을 뛰쳐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영화도 연극의 연장선으로 취급했기 때문에 촬영기법은 커녕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고 무조건 풀샷으로만 찍던 시절이었으며 클로즈업은 ‘대열차 강도’ (The Great Train Robbery)에서 처음으로 시도하게 된다.
한편 세계 최초의 상업 영화로 흔히 알려져 있으나, 사실 최초의 상업적인 목적으로 상영된 영화는 단편 영화 모음집이었다.
심지어 뤼미에르 기준으로도 최초의 영화는 아니다. 1895년 3월 22일, ‘Workers Leaving the Lumière Factory’가 먼저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당시 영화의 대부분은 기록영상일 뿐이었고 현대 영화의 기반을 자리잡은 최초의 시나리오 영화이자 합성, 컬러작업이 도입된 영화는 ‘Le Voyage Dans La Lune’로 평가된다.

○ 루이 뤼미에르 (Louis Lumière)
뤼미에르 형제를 다루지 않는 영화사는 불가능할 것이다.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들은 파리에서 첫 시사회를 가진 것으로 영화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어떤 책에서는 루이 뤼미에르를 감독이라기보다는 발명가로 인정한다. 아마도 에디슨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가 일종의 발명품이라는 당시의 인식을 반영한 탓이다. 그러나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는 단순한 발명품의 수준을 넘어선다.
키네토스코프가 1894년 파리에 처음 도착하였을 때 루이 뤼미에르는 에디슨 기계의 일부를 보완하여 영사기를 완성하였다. 이 기계는 카메라의 구실뿐만 아니라 인화기의 기능도 하였으며 손으로 돌리는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는 매우 기동성이 뛰어났다. 그들이 행한 업적은 스튜디오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카메라를 세상 밖으로 끌고 나온 것이다.
이들의 이동식 카메라는 거리를 다니면서 무엇이든 흥미있는 소재면 영화로 만들 수 있었다. 뤼미에르의 작품 속에는 사람, 동물, 차들이 카메라 앞을 자주 지나다닌다.
비록 예술로서의 성찰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뤼미에르 형제가 보여준 영상세계는 영화와 현실과의 간극을 극명하게 표현해주는 수단이었다.
또한 영화의 숏이 화면의 사이즈와 같은 기본적인 개념들이 이들로부터 증명되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들의 가장 기념비적인 작품은 <열차의 도착 : L’Arriv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1895)이었으며, 1895년에서 1897년까지 3년간 다양하면서도 많은 수의 작품을 제작한다. 그들은 간단한 소극도 만들었다.
물뿌리는 사람이 물벼락을 맞았다는 <라로세 아로제 : L’Arroseur arros (1895)나 <카드 게임 : A Game of Cards>(1896) 등의 가벼운 코미디는 완벽한 극형태라기보다는 눈요깃감이었다.
이들은 극영화를 만들면서 완벽한 준비가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하지만 실험은 재정적인 문제로 더이상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들의 영화를 보고 희망에 찬 젊은이들이 하나둘 거리를 채우기 시작하였으며 이들이 행한 다양한 화학적 실험들은 영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사실 이들은 자신들도 다 이름 붙이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기록영화들을 남겼다. 그리고 멜리에스의 출현으로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사의 서두를 장식한 채 사라진다.
뤼미에르 형제에게서 발명품을 산 멜리에스는 뤼미에르 형제가 미처 시도하지 못했던 다양한 영화테크닉을 발전시킴으로써 기록영화와 다른 영화적 전통을 세운다. _ 씨네21 영화감독사전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