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파리넬리 (Farinelli the Castrato, Farinelli : Il Castrato)
감독) 제라르 코르비오 / 주연) 스테파노 디오니시 / 1994년
파리넬리 (이: Farinelli – Voce Regina)는 이탈리아의 영화이다.
영화 ‘파리넬리’는 18세기를 떨쳤던 유명 카스트라토 파리넬리의 일생을 그린 영화이다. 199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으며, 같은 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최고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였다.
어릴 적 거세를 당한 카를로 브로스키는 거리의 공연에서 명성을 얻어 순식간에 세계적인 성악가로 발돋움한다. 유럽 전역에서 공연을 펼친 그는 자신의 곡을 작곡해 주는 형 리카르도와 함께 옛 스승 포포라를 돕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향한다. 헨델이 국왕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왕립극장과 경쟁 관계에 있는 노블레스 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카를로는 순식간에 모든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왕립극장의 경영을 어려움에 빠뜨린다. 하지만 좋은 음악에 굶주린 카를로는 리카르도와 포포라의 음악에 만족하지 못하고 헨델의 음악을 갈구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카를로는 자신의 거세와 어린 시절을 둘러싼 비밀을 알게 되는데…
○ 출연 / 스탭
제라르 코르비오 Gerard Corbiau – 감독
스테파노 디오니시 Stefano Dionisi – 카를로 브로스키 / 파리넬리 역
엔리코 로 베르소 Enrico Lo Verso – 리카르도 브로스키 역
엘자 질버스테인 Elsa Zylberstein – 알렉산드라 역
예로엔 크라베 Jeroen Krabbe – 헨델 역
.제작: 앙드레 코르비오
.각본: 제라르 코르비오, 앙드레 코르비오, 마르셀 보리유
.음악: 크리스토프 로세, 리카르도 브로스키, 니콜라 포르포라,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
.수상: 다비드 디 도나텔로 어워드 의상상,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수상 후보 선정: 세자르상 의상 디자인상,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편집: Joëlle Hache
.배급사: 소니 픽처스 클래식스
.개봉일: 1994년 12월 7일 (프랑스)
○ 줄거리
1728년 나폴리의 한 광장. 카스트라토 (거세된 남자 소프라노 가수), 파리넬리가 트럼펫 연주자와 대결을 벌인다. ‘파리넬리의 목소리’와 ‘트럼펫 소리’가 각자 지닌 기교와 음역을 넘어 절정에 달하자 군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무릎을 꿇고 마는 트럼펫 연주자. 이 날 나폴리에서 파리넬리는 영국왕실의 공인 작곡가인 헨델과 첫번째 만남을 갖는다.
헨델은 파리넬리에게 영국으로 함께 갈 것을 제안하지만 리카르도는 파리넬리를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에 이를 좌절시킨다.
유럽 순회공연에서 여러해 동안 형제는 유럽의 각 나라를 돌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신의 모습으로 치장한 파리넬리가 영혼을 뒤흔드는 목소리로 노래하면 여자들은 기절하고 남자들마저 환호했다.
모든 여자들에게 사랑을 받지만 파리넬리는 어떤 여자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줄 수가 없다. 거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는 파리넬리. 형 리카르도는 그런 그를 마약으로 위로하며 거세는 중병에 시달리는 어린 파리넬리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고 거짓말한다.
파리넬리는 여자를 유혹하지만 사랑을 나누는 것은 그의 형 리카르도다. 형 리카르도는 자신의 음악만을 연주할 악기로서 파리넬리를 이용하지만, 형의 얄팍한 음악에 환멸을 느낀 파리넬리는 동시대 가장 위대한 음악가였던 헨델의 음악을 노래하고 싶어하는 열망에 사로잡히고,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알렉산드라는 파리넬리를 위해 헨델의 악보를 훔쳐내기에 이른다.
악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헨델은 모든 시종을 시켜 악보를 찾게 되고, 하프시코드 소리를 듣게 된다. 헨델의 다락방에서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사람은 바로 리카르도였고 헨델이 악보의 행방을 추궁하자, 리카르도는 헨델이 동생의 마음을 훔치고 자기와 갈라놓았다고 오히려 헨델에게 화를 낸다. 사실 리카르도는 파리넬리가 자신에게 한 일갈에 어찌하면 좋을지 직접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며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헨델은 흠칫 놀라는데, 알고보니 리카르도는 평생을 파리넬리의 매니저로 사느라 단 한 번도 작곡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기교에만 의존하는 조잡한 곡만 쓴다고 혹평받았지만 그건 사실 동생만을 위한 작품을 만들겠단 일념으로 지금껏 그 누구의 코칭도 없이 무작정 독학해서 곡을 만들었던 탓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 음악천재였던 것. 헨델은 그런 리카르도의 집념과 천재성에 감동해 그의 곡을 코칭해주고 술을 나눠 먹으면서 사연을 듣는다. 사실 리카르도가 파리넬리 및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던 “파리넬리가 낙마한 기억”은 리카르도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기억일 뿐이었다. 즉,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거세 후유증에 빠져 혼수상태가 된 파리넬리에게 아편을 먹였고 트라우마가 생각날 때마다 그것을 잊기 위해 아편을 먹어왔던 것이다. 말에서 떨어진 건 리카르도가 꾸민 것과 파리넬리의 고통과 금단증상이 섞여진 결과이다. 이미 파리넬리는 거세의 고통에 반쯤 아편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헨델에게서 훔쳐온 곡으로 파리넬리가 공연한다고 했을 때, 관중들은 야유를 보냈고 마가렛 부인은 경멸감을 느낀다. 하지만 파리넬리의 목소리에 사람들은 감동을 하게 되고, 헨델마저 감동하고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다. 막이 내려가자 헨델은 다시는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한다.
다음막은 그 유명한 ‘울게 하소서’가 나오는 부분인데 파리넬리가 거세를 하면서 느낀 고통이 중첩된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꽃잎이 날리는 가운데 헨델은 졸도한다.
그리고 3년 뒤의 처음 시점으로 돌아간다. 파리넬리는 왕실 가수로 발탁된 뒤, 알렉산드라와 스페인의 궁정으로 들어가게 되고 리카르도와는 연락이 끊기게 된다. 오르페우스를 완성한 뒤 파리넬리를 찾으러 노숙까지 하면서 다녔지만 이제서야 찾은 셈이다. 하지만 리카르도가 파리넬리를 자신의 새장 안에 가두려고 한 것이 상처로 남아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한다. 리카르도는 파리넬리를 만나지 못해 미쳐만 가고, 파리넬리는 괴로워한다. 알렉산드라는 그것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다.
파리넬리는 마굿간에서 리카르도가 자고 있는 사이에 악보를 훔친다. 그는 형의 머리맡에서 가져온 악보를 보게 되고, 리카르도가 파리넬리의 방에 찾아오지만, 파리넬리는 여전히 리카르도를 외면한다. 하지만 파리넬리는 형의 악보를 칭찬하기는 한다. 리카르도는 파리넬리를 설득하면서 작곡의 고통을 말하지만 파리넬리는 자기의 고통에 비할바 못된다고 소리지른다.
일식날, 궁정의 사람들은 천문기구를 놓고 관측한다. 일식이 진행되고 어둠이 찾아오자 궁정의 높으신 분들이 파리넬리에게 노래를 시킨다. 파리넬리가 노래를 부른 곡은 다름아닌 리카르도가 작곡한 오르페우스의 아리아!
리카르도는 파리넬리의 노래에서 파리넬리의 고통을 알게 되고 죄책감에 흑요석 렌즈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다행히 리카르도는 손목에 부상만 입었을 뿐 죽지는 않는다. 깨어난 리카르도는 동생이 자신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능히 알렉산드라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목격한다. 여기에 리카르도는 파리넬리를 너무 자신의 새장 안에만 가두었다고 여기고 파리넬리를 놓아준다. 그리하여 리카르도는 파리넬리의 곁을 떠나게 되고 마음속에 있었던 오르페우스의 악보를 지워버린다. 얼마 후, 알렉산드라는 잉태를 한다.
이탈리아 출생의 카스트라토이자 소프라니스트, 파리넬리 (Farinelli, 1705 ~ 1782)
‘파리넬리’ (Farinelli, 1705년 1월 24일 ~ 1782년 9월 16일)는 18세기에 유명했던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혹은 소프라니스트이다. ‘파리넬리’는 예명으로 본명은 ‘카를로 브로스키’다.
이탈리아 출신이며 영국, 스페인에서 궁정 가수로 일했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페르난도 6세의 총애를 받아 오래 머물렀으며 카를로스 3세가 즉위하자 이탈리아로 돌아와 여생을 보냈다. 또한 성악가로 활동하며 목소리의 극대화를 위해 스스로 거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 파리넬리 (Farinelli)
.본명: 카를로 브로스키
.출생: 1705년 1월 24일, 이탈리아 안드리아
.사망: 1782년 9월 16일 (77세), 이탈리아 볼로냐
.성별: 남성
.국적: 이탈리아
.별칭: 노래하는 기계 (헨델이 지은 것)
.직업: 가수, 카스트라토, 소프라니스트, 에스파냐 대공
.부모: 부) 살바토레 브로스키, 모) 카테리나 베레세
.친척: 리카르도 브로스키 (1698 ~ 1756, 친형)
.활동시기: 18세기를 풍미했던 카스트라토
○ 생애 및 활동
– 어린 시절
원래 파리넬리의 본명은 ‘카를로 마리아 미켈란젤로 니콜라 브로스키’ (이: Carlo Maria Michelangelo Nicola Broschi)이다.
1705년 이탈리아의 나폴리 왕국 풀리아주 안드리아에서 작곡가 살바토레 브로스키 (이: Salvatore Broschi, 1676~1717)와 나폴리 사람이었던 카테리나 베레세 사이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 (이: Riccardo Broschi, 1698~1756)도 아버지를 따라 작곡가가 되었다. 그가 12살 때 아버지에 의해 거세당했으며, 당시 유명한 작곡가였던 니콜라 포르포라의 제자가 된다. 그 후 놀라운 속도로 그의 노래 실력이 향상되었으며 이때 메타스타시오를 만나게 된다. 그 후 메타스타시오와 파리넬리는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했으며, 그의 예명 ‘파리넬리’는 그의 후원자였던 ‘파리나’ 형제의 성을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 유럽으로 진출하다
1724년 파리넬리는 빈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된다. 그 후 나폴리 등 여러 곳을 다녔으며, 1726년 파르마와 밀라노를 방문했을 때 플루티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요한 요아킴 콴츠도 그에 대해 호의를 표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름답고 힘이 있었으며, 풍부한 기교와 유연한 장식음 등으로 많은 찬사를 얻었다고 한다.
– 파리넬리와 런던
1734년 포르포라와 같이 런던으로 왔던 파리넬리는 영국 런던에서 카스트라토 인 세네지노를 만나게 된다. 세네지노는 헨델과 공연을 하고 있었으며 자연스럽게 둘은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었다. 헨델과 파리넬리의 사이는 서로 좋지 않았다고 하며, 헨델은 파리넬리를 ‘노래하는 기계’라고 혹평을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파리넬리는 형 리카르도와 작곡가 요한 아돌프 하세 와 같이 공연을 하였으며 어떤 부인이 파리넬리에게 “One God!, One Farinelli!”란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세네지노와 적대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하세의 오페라 (이: Artaserse)에서 같이 공연을 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 스페인에서의 파리넬리 그리고 죽음
1737년 스페인의 펠리페 5세의 부인 엘리자베타에 의해 초청을 받는다. 엘리자베타는 펠리페 5세의 우울증 치료를 부탁하였으며 파리넬리는 펠리페 5세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는 10년 동안 4곡의 노래를 반복하여 불렀으며 펠리페 5세는 그의 노래를 듣고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759년까지 스페인에 머물면서, 흥행사로서 권력을 행사했으며, 공적인 활동도 활발히 했다. 카를로스 3세와의 정치적인 견해 차이로 궁정의 직위를 잃었지만 이미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에서 여생을 평온하게 보냈다. 은퇴 후에도 수많은 음악가들이 찾아왔으며 모차르트, 글루크 등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는 은퇴 후에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렸으며 가끔은 자신의 화려했던 전성기의 모습을 회상하고는 했다. 1782년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재산을 하인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로마교황령 볼로냐에 묻혔으나 나폴레옹 1세에 의해 무덤이 훼손되었다가 최근에 그의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그가 남긴 수많은 편지들은 볼로냐 대학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 평가
파리넬리는 18세기를 풍미했던 카스트라토였다.
풍부한 성량과 기교로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지만 그의 연기력은 풍부한 성량에 걸맞지 않게 좋지 않았다고 하며, 화려한 무대 의상과 장식으로 인해 세간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 영화화
1994년 영화 파리넬리가 제작되어 1995년 4월 8일 개봉을 한다.
보통 ‘Farinelli – Il Castrato’라는 제목으로 쓰였으며, 이탈리아판으로는 ‘Farinelli – voce regina’라는 제목으로 개봉이 되었다.
감독은 제라르 코르비오이며, 주인공 파리넬리 역은 스테파노 디오니시가 맡았고, 형 리카르도 브로스키는 엔리코 로 베르소가 맡아 열연을 했다.
영화 ‘파리넬리’는 1995년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최고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외국어영화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