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 (Patton)
감독) 프랭클린 J. 샤프너 / 주연) 조지 C. 스콧, 칼 말든 / 1970년
《패튼 대전차 군단》(Patton)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의 미국의 조지 S. 패튼 장군에 대한 1970년 미국의 전기 전쟁 영화이다.
프랭클린 J. 샤프너가 감독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에드먼드 H. 노스가 각본을, 제리 골드스미스가 음악을 맡았다. 이 영화는 65밀리미터 Dimension 150으로 촬영되었다.
“어떤 놈이건 간에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죽은 놈은 없다. 누가 조국을 위해 죽었겠는가? 제군들! 미국이 싸우고 싶지 않고 전쟁에 개입 않겠다는 말은 순전히 개소리다.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싸우기를 좋아한다. 진짜 미국인들은 싸움의 열기를 사랑한다. 자네들은 어렸을 때 구슬놀이, 챔피온, 가장 빠른 육상 선수, 야구 선수 등 강인한 권투 선수들을 존경했다. 미국인들은 승자를 좋아하고 패자를 용납 못한다. 지고도 웃는 사람은 상대할 가치도 없다. 그러기에 미국인들은 져본 일이 없고 전쟁에서도 이길거다. 왜냐하면 진다는 생각 자체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략) 30년 후쯤 제군들의 손자 녀석들이 할아버지는 2차대전에서 뭘 했냐고 물으면 루이지아나에서 똥 치우고 있었다는 소리는 안해도 될거다. 좋다 제군들. 내 말 뜻 알겠지? 나는 자랑스럽다. 전장에서 자네들과 함께 있는 것이 언제, 어디서라도 말이다. 이상이다.”
천여 년 동안 전쟁에서 돌아오는 로마의 정복자는 승리의 환호와 축복을 만끽했었다. 퍼레이드를 했고 정복지의 동물들과 보물과 획득한 무기가 선보여줬지. 정복자는 승리의 전차를 타고 앞에는 포로들이 넋을 잃은 채 걸었다. 어떤 때는 하얀 옷을 입은 그의 자녀들이 그와 함께 전차나 말을 타고 갔다. 정복자 뒤에는 왕관을 든 노예가 서 있었고 그의 귀에 대고 모든 영광은 일순간 뿐이라고 속삭였다.
○ 제작 및 출연
- 제작진
감독: 프랭클린 J. 샤프너
제작: 프랑크 맥캐시 (Frank McCarthy)
원작: 라디슬라스 프라고 (Ladislas Farago), 오마르 N. 브래들리 (Omar N. Bradley)
각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Francis Ford Coppola), 에드먼드 H. 노스 (Edmund H. North)
촬영: 프레드 J. 쾨니캠프 (Fred J. Koenekamp)
음악: 제리 골드스미스 (Jerry Goldsmith)
편집: 휴 S. 파울러 (Hugh S. Fowler)
미술: 유리에 맥클리어리 (Urie McCleary), 길 파론도 (Gil Parrondo), 안토니오 마테오스 (Antonio Mateos), 피에르 루이스 테브네 (Pierre-Louis Thevenet)
의상/분장: 델 아세베도 (Del Acevedo), 다니엘 C. 스트라이피크 (Daniel C. Striepeke)
캐스팅: 마이클 맥린 (Michael McLean)
배급사: 20세기 폭스
개봉일: 1970년 4월 2일(미국), 1971년 6월 17일(대한민국)
- 출연진
조지 C. 스콧: Gen. 조지 S. 패튼 주니어 역
칼 말든: Gen. 오마르 N. 브래들리 역
스티븐 영: Capt. 체스터 B. 핸슨 역
마이클 스트롱: Brig. Gen. 호바트 카버 역
캐리 로프틴: Gen. 브래들리의 운전기사 역
앨버트 듀모티어: 모로코 성직자 역
프랑크 라티모어: Lt. Col. 헨리 데이븐포트 역
모건 폴: Capt. 리차드 N. 젠슨 역
칼 마이클 보글러: 에르빈 롬멜 역
빌 힉맨: Gen. 패튼의 운전기사 역
팻 주리카: 알렉산더 스틸러 역
제임스 에드워즈: Sgt. 윌리엄 조지 믹스 역
로렌스 돕킨: Col. 개스톤 벨 역
데이빗 바우어: Lt. Gen. 해리 뷰포드 역
존 배리: 아더 코닝엄 역
리차드 뮌치: Col. Gen. 알프레드 조들 역
지그프리트 라우흐: Capt. 오스카 스타이거 역
마이클 베이츠: 필드 마샬 서 버나드 로 역
폴 스티븐스: Lt. Col. 찰스 R. 코드맨 역
제랄드 플루드: 에어 치프 마샬 아더 테더 역
잭 그윌림: Gen. Sir 해롤드 알렉산더 역
에드워드 빈스: Maj. Gen. 워터 베델 스미스 역
존 두셋: Gen. 루시안 K. 트루스캇 역
더글라스 윌머: Maj. Gen. 프란시스 드 귄갠드 역
아브락사스 아란: 윌리 역
- 수상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주연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각본상, 최우수 편집상, 최우수 시각효과상 등 모두 6개 부문을 석권
○ 줄거리
1943년 아프리카 카세린 요충지 튜니지아 (Kasserine Pass Tunisia).
롬멜 장군이 이끄는 최강의 독일군과 격렬한 공방전을 전개 중인 미국 제2기갑병단에 패튼 장군(Gen. George S. Patton Jr. : 조지 C. 스캇 분)이 부임해온다.
화력의 열세로 독일군에게 연패를 하고 있던 이 기갑병단을 재건해야 할 병단장으로서 유능한 부관 브래들리 소장과 함께 온다.
패튼은 기갑병단을 엄격한 훈련으로 강화하여 롬멜 군단을 분쇄한다. 그는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 (Field Marshal Sir Bernard Law Montgomery : 마이클 베이츠 분)을 지원하기 위해 시칠리아섬 침공의 제2병단 사령관으로 영전되어 이탈리아로 재배치된다.
패튼은 자신의 공만을 세우려는 몽고메리 장군을 지원하지 않고 독단적인 결정으로 팔레보에 진격하여 가볍게 탈환한다.
몽고메리 측에서는 패튼의 이러한 결정을 탐탁해 하지 않으며, 패튼이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메시나 탈환에 실패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메시나로 진격한 패튼은 무리한 강행군을 통해 부하들을 이끌며 몽고메리 장군보다 먼저 고지를 탈환하고 다시 한번 그의 위용을 과시한다.
그러나 어느 날 전쟁 노이로제에 걸린 병사들을 구타한 사건으로 사령관직에서 해임된다. 영국으로 전속을 명령받지만 그곳에서도 폭언을 하여 상부로부터 문책을 당한다.
브래들리는 곤경에 빠진 패튼 장군을 극비리에 진행되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 재임명하여 독일군의 눈을 돌리는 유인부대 역할을 맡게 하고, 이를 성공리에 끝낸 후, 독단적인 결정으로 독일 함락을 위해 전진한다.
그러나 이때 공격 부대가 독일군에게 포위되어 고립되는 일이 발생하자 이 문제에 대해 난감해하던 연합군은 확률 제로의 이 작전에 패튼을 투입한다.
작전 성공을 장담하였건만, 독한 강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좌절의 위기를 만나는 패튼.
그러나 다행히 날씨가 좋아지고, 사기 충천한 부하들과 패튼은 아무도 해내지 못하리라고 예상했던 바스톤 구출 작전에 성공하게 된다.
패튼은 파리를 해방시키고 벌지 전투에서도 전과를 올린다.
독일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도 끝나지만 소련을 자극하는 발언이 또 물의를 일으켜 실의 속에 지내다 자동차 사고로 죽는다.
○ 영화 이모저모
빠삐용, 혹성탈출 등 영화로 알려진 프랭클린 J. 샤프너 (1920~1989)가 감독한 1970년 영화로 조지 C. 스콧, 칼 말든 주연했다.
원작은 라디슬라스 파라고 (Ladislas Farago)가 쓴 패튼의 전기인 ‘패튼: 시련과 승리’ (Patton: Ordeal and Triumph)와, 오마 브래들리 원수가 쓴 회고록 “한 병사의 이야기’ (A Soldier’s Story)이다. 음악은 제리 골드스미스가 맡았다.
조지 S. 패튼에 대하여 가장 잘 그려낸 영화로 평가받는 전쟁 영화 명작이다.
- 험난했던 제작 과정
그동안 조지 S. 패튼의 삶이 여러 번 영화화될 뻔 했지만 유족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구타 사건 등으로 이런 저런 물의를 일으켰고 전쟁에 미친 사람으로 그려지기를 바라지 않았던 것이 한 이유. 아내 베아트리스 배닝 에이어 패튼 (Beatrice Banning Ayer, 1886 ~ 1953)은 적어도 가정에서 엄격하면서도 상냥한 남편을 전쟁 미치광이로 나오는 걸 보기 싫다고 결사거부했다. 그래도, 이전부터 꾸준히 영화로 만들고자 준비했는데 우선, 20세기 폭스는 1951년 오마 브래들리가 쓴 자서전 영화 판권을 일단 사두었다. 베아트리스가 죽고 나서도 군인과 결혼한 딸 루스나 아들이자 현역 미군장교이던 패튼 4세 (1923 ~ 2004, 6.25 전쟁 및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하여 중장까지 올랐다) 역시 영화화를 반대했다. 그럼에도 폭스 측은 계속 준비했고 패튼에 대하여 매우 정확하게 썼다고 평가받던 헝가리 출신 역사가인 라디슬라스 파라고 (1906 ~ 1980)가 쓴 < Patton : Ordeal and Triumph>도 1963년에 영화 판권을 사둬서, 이 책과 브래들리가 쓴 책을 바탕으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각본을 썼으며 공동 각본을 쓴 에드먼드 할 노스 (Edmund H. North, 1911 ~ 1990)는 나중에 참여했다.
결국 아내 베아트리스가 죽고 나서 15년이 지난 1968년에서야 드디어 후손들에게 여러 조건 하에 영화 제작을 허락받았다. 막상 영화로 만들어지자 오마 브래들리 전직 미군 원수도 비록 내 자서전에서 썼듯이 그에게 당신은 너무 전쟁을 즐긴다라고 생전 그에게 비난하던 말을 했으나, 영화가 선배인 패튼을 너무 미치광이로 그려내지 않길 바란다는 말도 했다.
제작진은 1969년 2월부터 스페인과 모로코를 오고가면서 영화 촬영을 시작하며 영화 판권을 사두고 거의 20년만에 영화가 만들어지게 된 셈이다. 흥행 성공과 같이 197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에 후보에 올라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주연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각본상, 최우수 편집상, 최우수 시각효과상, 모두 6개 부문을 석권했다. 우습게도 예전 영화 월간지 로드쇼에서는 92년쯤에 “지옥의 묵시록’ 감독인 코폴라가 이런 ‘지옥의 묵시록”과 정반대 같은 각본을 쓰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평한 바 있는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절대로 패튼을 찬양하지 않고 전쟁을 멋지다고 찬양하지도 않는다. 1260만 달러로 만들어져 미국에서 6,18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도 성공했다.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 시절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 여담
영화상에선 패튼의 모습은 전쟁광으로 실제 패튼과 매우 똑같다.
영화상에서 유럽 전선에 금방 파병되어 지칠대로 지친 아군에게 쉴 시간을 줄 것을 요구하던 대대장 대신 대대참모인 소령에게 지휘권을 주면서 닥치고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린 후 차를 타고 떠날 때, 소령이 멀어져가는 패튼을 가리키며 “대대장님, 저 패튼이 죽어버리길 바라는 병사가 5만 명은 됩니다.”라고 욕을 퍼붓자, 대대장이 아무 말없이 무언의 공감을 한다든지, 이 전투 이후 미군이 이겼지만 미군 사상자도 많았기에 붕대와 피투성이로 미군 부상병들이 곁을 지나면서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가거나, 멀어져가는 그를 보고 미군 사병들이 “저기 보라구! 피와 배짱의 미친 장군이 나간다!”, “그래, 우리의 피와 놈의 배짱.” 이런 대사들 보면 그가 전쟁터에서 부하들에게 어떤 소리 들었는지 알만하다. 극중 이탈리아에서 한 농부가 당나귀들을 끌고가다 다리 위에서 당나귀들이 말을 듣지 않아 미군 진군이 늦춰지자 직접 가서 그 당나귀들을 전부 쏴죽이고 치워버린 일도 역시 재현했다. 그리고 이것들은 패튼이 실제로 일으킨 실화다.
전사자가 가득한 전쟁터에 가서는 “하느님, 용서하십시오. 저는 전쟁이 너무 좋습니다.”
여기에서 오마 브래들리는 “선배님과 제가 다른 게 뭔지 아십니까? 전 훈련을 받아서 이 일을 하죠. 하지만 선배님은 전쟁이 즐거워서 전쟁을 하십니다.”라고 일침을 놓는데, 패튼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그의 유족들은 이 영화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패튼의 손자이자 영화각본가, 소설가인 벤자민 패튼 (1965 ~ )은 “이 영화를 통해서 할아버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고, 외손자는 “내가 어릴 적 뵈었던 외조부의 모습과 똑같다.”고 말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