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성지 답사기 중에서 (3)
<시드니 인문학교실 제 2차 인문학여행팀> 여러분! 모두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홍길복입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 부터 어디 여행을 하게 되면 그때 그때 마다 여행일기를 쓰는 것이 하나의 습관 처럼 되어 왔습니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썻던 여행일기가 아마도 한 200일 분은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더해 가는지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여행일기를 쓸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올리는 글은 16년전에 썻던 글 중 일부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2007년 1월 15일 부터 약 3주에 걸쳐 서울에 있는 장로회신학대학 <성지 답사팀>과 더불어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등 5개국을 방문했을 때 썻던 <여행 일기> 중 한 부분입니다. 저는 그 때, 여행 중에 썻던 일기를 당시 시드니에서 발행되던 주간지의 요청에 따라 주 1회 씩 59회에 걸쳐 1년이 넘게 연재했었습니다. 물론 그 일기는 전문성을 지닌 글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이 읽으시면 잘못된 것들도 적지 않게 지적해 내시리라 생각되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2023년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 준비하고 있는 <제 2차 인문학여행>의 참가자들과 함께 오래 전에 경험하고 생각했던 보잘 것 없는 이런 작은 여행 이야기 이지만 나누고 싶어서 우리가 방문하게 될 <이집트> 부분만을 추수려서 1주일에 한번 정도씩 몇번에 걸쳐 올려드릴려고 합니다. 이 글이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서로 더 가깝게 사귈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르비딤, 엘림, 마라를 지나 스에즈 운하를 건너다
새벽 2시 부터 시작한 시내산 등정과 <성 카트리나 수도원> 답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니 벌써 11시가 되었습니다. 저녁에 지친 몸으로 몇자 써서 남겨두는 여행일기이니 카트리나 수도원과 <시내산 사본>에 얽힌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여 따로 이야기도 하고 기록도 남겨 놓으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고, 서둘러 짐을 챙기어 버스에 올랐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는 길은 그 옛날 출에굽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방향과는 정 반대입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북진을 했었는데 지금 우리는 가나안 땅에서 이집트를 향하여 남진을 합니다. 우리 시야에서 시내산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시간에 쫓긴 우리는 엘리야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호렙산 동굴>에는 들리지 못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 가이드는 차 속에서 손가락으로 <저기가 호렙산 동굴> 이라고 가르키는 것으로 통과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 19:8-9) 그 날의 음성이 <너희들은 어찌하여 여길 와 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 처럼 들렸습니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왼쪽으로는 홍해를 끼고, 오른 쪽으론 신광야를 거쳐, 르비딤과 엘림과 마라를 지나 스에즈 운하를 향하여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시내산을 떠난지 한 50킬로미터 쯤 되었을 때 우리는 르비딤에 도착했습니다. 르비딤은 시내반도에서 제일 큰 <파이란 오아시스, Pairan Oasis>가 있는 곳 입니다. 수천 그루의 종려나무와 대추야자(Date Palm)들과 복숭아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이 삭막한 광야 가운데 어떻게 이런 오아시스가 만들어 졌을까? 파이란 오아시스는 그 길이만 해도 4킬로미터가 더 된다고 합니다. 안내서에 쓰여져 있는데로 르비딤은 정말 <시내반도의 진주>라고 불리울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모세는 엑서더스 후, 이곳 르비딤에서 처음으로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이었습니다.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싸우라 내일 내가 지팡이를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무찌르니라> (출 17:8-16) 그때 쯤 되어 나는 무릎이 무척이나 아팠습니다. 걷가가 힘들었습니다. 새벽 부터의 강행군이 무리가 된 듯 했습니다. 젊은 신학생들은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받쳐주었다고 전해지는 <타훈, Tahoun> 언덕에 올라가 그 곳에 세원진 기념교회를 보고 왔는데 우리 몇몇 나이든 사람들은 할수 없이 그냥 언덕 아래 오아시스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신광야 가운데 있는 이곳 르비딤은 원래 물끼라고는 하나도 없던 메마른 땅이요, 사막이었다고 합니다. 엑서더스 후 뜨거운 태양빛 아래 목이 타오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 르비딤에 도착할 즈음 더는 참을수가 없어서 모세를 향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우리에게 물을 마시게하라! 왜 어찌하여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냈느냐? 우리가 목말라 죽게 되었다!>(출 17:1-7) 바로 그 때 였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명에 따라 지팡이를 들어 한 반석을 내려쳤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폭포수 같은 물길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날 이후로 오늘까지 이곳 르비딤에는 단 한번도 물이 마르지 않고 점점 물이 풍성해지고 수목이 우거지기 시작하더니 이렇듯 <파이란 오아시스>가 만들어지게 되어 3천 5백년이 지난 오늘날엔 시내반도 최대의 오아시스가 된 것이라고 합니다.
성서에 의하면 출애굽 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으로 맑고 시원한 물을 찿아낸 곳은 엘림입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그루가 있는지라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출15:27) 오늘 우리가 도착한 엘림에도 커다란 오아시스가 있었습니다. 풍부한 샘물과 아름들이 종려나무들과 각종 야채와 과일들이 널려있었고 이곳 저곳엔 캠프 사이트(Camp Site) 있어 여행객들이 야영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여기서 부터 스에즈운하 까지는 거리가 약 100킬로미터 쯤 남았습니다.
엘림에서 시원한 생수를 마신 후 우리는 마라로 향하였습니다. 마라에서 스에즈운하 까지는 한 30킬로 정도이고 홍해 까지는 불과 11킬로 밖에 않됩니다. 성서에 나오는 <마라>를 오늘날 사람들은 <아윰 무사, Ayun Musa>라고 부릅니다. <아윰 무사>란 <모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곳에는 <아윰 무사> 뿐만이 아니라 모세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이름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세의 산, 모세의 우물, 모세의 마을, 모세의 길들이 있습니다. 그날 우리가 들렸던 식당 이름도 <모세의 식당>이었습니 3천년전의 모세가 지금도 이곳 저곳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마라는 그 옛날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한 후 사흘 만에 도착한 첫 기착지였습니다. 그 때 그들은 이 곳 마라에서 목이 말라 물웅덩이 하나를 찿아냈는데 안타깝게도 그 물은 써서 도저히 마실수가 없었습니다. 고대에는 언어가 지금처럼 많질 않아서 <쓰다>는 말과 <짜다>는 단어가 함께 쓰였다고 합니다. 아마도 홍해가 가까이 있으니까 짠 바닷물이 내륙으로 스며들면서 우물물도 짜게 되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하여튼 백성들의 원망하는 음성을 들은 모세는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근처에 있던 나무가지 하나를 꺽어 물 속에다 던졌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렇게도 써서 마실수 없었던 물이 아주 상쾌하고 시원한 단물로 변했습니다. 여기에서 하느님이 들려주신 말씀이 바로 그 유명한 <치료하는 하느님, 여호와 라파, The Healing God>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출 15:26)입니다.
해질 무렵이 되어 마침내 우리는 스에즈 운하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이어주는 터널 앞에 이르렀습니다. 스에즈 운하란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여 물이 흐르도록 만든 웅대한 토목공사의 결과입니다. 이 스에즈 운하로 인하여 사람과 배와 물건과 문화가 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지 않고도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가 만나 가깝게 왕래하며 교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에즈 운하의 건설 역사는 아주 오랜 옛날 부터 시도되어 왔습니다. <바로 느고> 시대부터 시작하여, 기원 전 6세기 <다리우스 1세>는 홍해와 <비터 호수, The Great Bitter Lakes>와 나일강을 연결하는 대수로 공사에 성공한 적이 있었습니다. 18세기 나폴레옹은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구상하고 설계까지 했지만 착공하지는 못하고 그만 권좌에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1869년 프랑스와 영국은 10년에 걸친 공사 끝에 스에즈운하 개통에 성공하였습니다. <스에즈 운하, Suez Canal>는 그 길이가 처음엔 161km였으나 현재는 173km로 연장이 되었습니다. 폭은 평균 약 200m정도이고 평균 수심도 200m 정도입니다. 하루 평균 약 백여척, 1년 평균 약 3만 5천 척의 선박들이 운하에 들어서고 또 빠져 나갑니다. 통과 시간은 약 15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전 세계 물동량의 약 15% 정도가 스에즈 운하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스에즈 운하는 건설 후 90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가 소유권을 갖고 운영했으나 1956년 부터는 이집트의 낫세르 대통령이 국유화를 선언함으로 그때 부터는 이집트가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에즈운하를 건너 이집트로 가는 지점은 모두 4개의 터미날들이 있어서 다리를 넘어 사람과 트럭과 버스를 포함한 자동차들이 오고 갑니다. 물론 여기에는 해전 터널도 있습니다. 오래 전 파나마시티에서 콜론에 이르는 길이 80km의 파나마 운하를 여행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크루즈를 타고 이 볼 것 많은 스에즈운하를 한번 관광했으면 하는 마음을 뒤로 한채 시내광야를 떠났습니다. 우리들의 전용 버스는 다리가 아닌 해저 터널로 들어서더니 1.4 킬로미터를 달려 마침내 중동에서 북아프리카 땅 이집트에 발을 디뎠습니다. 여기는 스에즈 운하로 인하여 건설된 호반의 도시 <이스말리야>입니다. 홍해가에 세워진 멋진 <호텔 머큐어, Hotel Mercure>에 여장을 풀었습니다. 새벽 2시 부터 시작되었던 일정이 저녁 9시가 되어서여 마무리 되었습니다. (계속)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