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성지 답사기 중에서 (8)
<시드니 인문학교실 제 2차 인문학여행팀> 여러분! 모두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홍길복입니다. 저는 아주 오래전 부터 어디 여행을 하게 되면 그때 그때 마다 여행일기를 쓰는 것이 하나의 습관 처럼 되어 왔습니다. 정확하게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썻던 여행일기가 아마도 한 200일 분은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더해 가는지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여행일기를 쓸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올리는 글은 16년전에 썻던 글 중 일부입니다. 부족한 사람이 2007년 1월 15일 부터 약 3주에 걸쳐 서울에 있는 장로회신학대학 <성지 답사팀>과 더불어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등 5개국을 방문했을 때 썻던 <여행 일기> 중 한 부분입니다. 저는 그 때, 여행 중에 썻던 일기를 당시 시드니에서 발행되던 주간지의 요청에 따라 주 1회 씩 59회에 걸쳐 1년이 넘게 연재했었습니다. 물론 그 일기는 전문성을 지닌 글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이 읽으시면 잘못된 것들도 적지 않게 지적해 내시리라 생각되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2023년 시드니인문학교실에서 준비하고 있는 <제 2차 인문학여행>의 참가자들과 함께 오래 전에 경험하고 생각했던 보잘 것 없는 이런 작은 여행 이야기 이지만 나누고 싶어서 우리가 방문하게 될 <이집트> 부분만을 추수려서 1주일에 한번 정도씩 몇번에 걸쳐 올려드릴려고 합니다. 이 글이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가 서로 더 가깝게 사귈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기 예수 피난교회와 벤 에즈라 회당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우리는 서둘러서 콥틱교회당 중에서 가장 오래된 옛 교회들이 모여있는 올드 카이로 (Old Cairo)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곳은 카이로에서 가장 많은 콥틱교회당들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처음 찾은 교회는 <아기 예수 피난 교회>라고 알려진 <아브 사르가 기념예배당, Abu-Sarga Church>이었습니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 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 까지 거기 있었으니 …. 이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마태 2:13-15)
이곳에 세워진 콥틱교회는 예수가족이 이집트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아브 사르가>라는 분은 로마의 막시필리안 황제 때 순교당한 이로써, 그의 신앙과 순교를 기념하기 위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가이드는, 잔악한 살해의 현장을 피해서 깊은 밤, 유대 땅 베들레헴을 떠나, 여권도 없고 비자도 없이, 망명객이요 난민의 신세로 이집트로 숨어들어 온 예수가족은 원래 이 교회당 터의 지하 동굴에서 지냈다고 설명했습니다. 세월은 흘러 주후 7세기 경에야 콥틱교회 신도들은 이 곳에서 아주 예전 아기 예수의 피난 자리를 찾아내어 예배당을 건축하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찾아온 이 예배당은 10세기 경에 재건축한 것으로 천년도 더 되는 아주 오래되고 낡은 것이었습니다.
<아기 예수 피난교회>를 둘러 보면서 예수의 또 다른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피난민 예수 (Jesus, A Refugee), 보트 피플 예수 (Jesus, A Boat People), 도망다니는 예수 (Jesus, A Refugee), 집없는 예수 (Jesus, A Homeless), 가난한 예수, 조국이 없는 예수, 방랑자 예수, 이민자 예수 (Jesus, A Migrant), 동양인 예수 (Jesus, An Asian) 등등… 한 시대와 역사 속에서 소외된 하느님의 아들 예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가는 곳 마다 우뚝 솟아 위용을 자랑하는 이슬람의 모스크 숲속에서, 우리는 가난하고 어둠 침침한 올드 카이로의 낡은 예수 피난교회당을 나서면서 우리 시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해야 할 새로운 사명이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기 예수 피난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아주 오래된 유대교 회당이 하나 있습니다. 기원전 587년 바빌로니아에 의해서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 중 일부가 선지자 예레미야를 따라서 이곳 이집트로 피난을 왔다가 지은 회당이 첫 건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렘 43, 44장). 물론 현재의 건물은 11세기경 유대교의 유명한 랍비 <아브라함 벤 에즈라, Abraham Ben Ezra>가 재건축한 것으로 그의 이름을 따라 <벤 에즈라회당, Ben Ezra Synagogue>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회당 입구에는 <다윗의 별>로 장식된 이스라엘의 국기가 동판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회당 안으로 들어서니 선지자 예레미야의 가묘가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벤 에즈라 회당>은 <모세 기념회당>이라고도 불리웁니다. 그것은 이 회당이 세워진 자리가 아주 오랜 옛날 아기 모세가 갈대상자 속에 넣어져서 버려졌던 자리가 바로 이 곳이라고 믿고 있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리가 회당으로 찾아간 날, 그곳의 안내인은 아주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알고 오셨겠지만 이곳은 바로의 딸이 갈대상자 속에 있는 아기 모세를 발견한 자리입니다. 지금의 나일강은 여기서 부터 한 400미터 쯤 밖에서 흐르고 있습니다만, 모세시대에는 나일강이 지금의 이 회당 바로 밑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벤 에즈라회당이 이집트 밖에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이같은 전설 때문이 아니라, 1894년 미국의 역사학자 <슈히터, Shichter>가 이곳에서 5경이 포함된 <게니자 사본들, Geniza Manuscripts>을 대량으로 발굴해 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왕정시대 유대나라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제사를 드리며 유대교의 신앙전통을 지켜 왔습니다만 바벨론에 의해서 성전이 무너지고 포로로 잡혀간 때 부터는 성전이 없음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다 회당을 지어서 회당중심으로 유대교의 생명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후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되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회당, Synagogue>에 모여서 모세의 율법책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지난날의 두루마리 율법책이 낡아져서 더 이상 읽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책을 새로 써서 읽었고 이전에 읽던 낡은 율법책들은 회당의 한쪽 구석에다 보관해 두었습니다. 모세의 오경, 시문서, 예언서, 장로들의 유전 등, 낡아서 더 이상 읽을 수 없어 보관해 두었던 창고를 <게니자>라고 부릅니다. 중세 이후 각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의 회당에 있던 게니자에서는 많은 고문서들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이곳 <벤 에즈라회당>의 <게니자>에서는 유명한 <벤 시락의 책>을 비롯하여 당시 이집트에 와서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의 종교생활과 사회생활, 결혼명부, 사법 계약서 등 여러가지 귀중한 문서들이 많이 발견되어 당시 유대인들의 역사, 종교, 문화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대단히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