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세 번째 잡기장 (84)
외로움과 고독
비슷한 것은 비슷할 뿐이지 사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린 아주 쉽게 ‘비슷한 것은 똑같은 것’ 이라고 판단하곤 합니다. ‘어쩜 저렇게 비슷하지 ? 정말 똑같아 ! 똑같애!’ 라고 말할 때가 그렇습니다. 내가 보기에 비슷하게 보이고, 내가 보기에 똑같은 것 처럼 보일 뿐이지, 내가 보고있는 대상 그 자체는 결코 똑같은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린 ‘똑같다. 비슷하다’고 주관적으로 판단합니다. 언어적으로도 ‘비슷하다’는 것은 사실 ‘똑같은 게 아나라’는 뜻을 함축합니다.
저는 쌍둥이 딸도 있고, 쌍둥이 손녀도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우리 아이들을 늘 ‘비슷하게 생겼다’ ‘똑같이 생겼다’ ‘일란성인가 보다’라고 말을 하지만, 저와 저희 식구들이 보기엔 비슷한 것 보다는 다른 것이 더 많고, 똑같은 것 보다는 판이한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비슷한 것이나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아이들 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비슷한 것은 다른 것이지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외로움’과 ‘고독’이 그렇습니다. 우린 아주 쉽게 외로운 것과 고독한 것은 비슷한 것이고,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 둘은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영어로 ‘외로움’은 loneliness 라고 쓰고 ‘고독’은 solitude, solicitude 라고 씁니다. 외로움이나 고독은 다같이 ‘혼자있는 상태’이며 ‘쓸쓸하게 보이는 모습’ 이지만 시인들과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이 둘을 다른 것으로 보고 달리 해석합니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로 부터 거부당하거나 왕따를 당하여 단절되어 ‘혼자있다’ 는 느낌인데 반하여 ‘고독’이란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를 외롭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나 자신을 타인으로 부터 떼어놓고 단절시켜 자기 자신을 생각하며 자기 자신과 사귀는 상태라고 말합니다. 외로움은 타인과 공동체로 부터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심리적 상처인데 반하여, 고독은 스스로 자기가 홀로 있음으로 자아를 성찰하고 자신을 찿아가는 자발적 외로움이라는 것입니다.
설리반은 ‘외로움이란 관계가 끊어짐으로 혼자되는 부정적인 것’이고 ‘고독은 스스로 선택하여 나를 찿아가는 긍정적인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외로움이란 너도 잃고 나도 잃어버리는 것’ 이고 ‘고독이란 너는 멀리 두지만 나는 가까이 두어 나를 만나는 것’ 이라 하겠습니다.
오래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은 사회적 동물’ 이라 했습니다만, 오늘날 우리는 점점 더 ‘사회성’은 잃어버리고 ‘개인적 동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Socialize 가 아니라 Individualize 를 더 선호하고 있습니다. 1인 가족, 혼밥, 혼술만이 아니라 혼자 여행하고 혼자 낚시하고 혼자 등산하고 혼자 살다가 아무도 없이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오늘 우리 시대는 외로움만 남고 고독은 잃어버린 시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외로움을 이겨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 중 제일 많이하는 것이 각종 SNS, Tweeter, Face time, Katok 들과 smartphone 입니다. 특히 스마튼폰은 현대인들을 외로움에서 구출해 주는 구세주 처럼 되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24시간 끼고 살다싶이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만나 앞에서 이야기를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먼저 받는 것은 보통이고 일하고 먹고 놀고 화장실에 갈때, 잠잘에 들때도 머릿맡에 두고 잠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스마트폰을 들고 텍스 메시지를 보내면서 다가오는 자동차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외로와서, 그거 하나라도 친구삼고 싶어하는 모습이 우리의 자화상 입니다.
어제는 온 종일 늦은 봄비가 내렸습니다. ‘금년 봄엔 비가 자주 내리는 걸 보니 bush fire 는 적게 일어나겠군!’ 아침에 혼자서 중얼거리며 늘 하던대로 ABC FM을 틀었습니다. 비는 계속내렸습니다. 이내 음악 CD 로 바꾸었습니다. 목포의 눈물, 타향살이, 굳세어라 금순아, 황성옛터로 부터 시작하여 모닥불, 꽃반지 끼고, 긴머리 소녀, 하얀 손수건, J에게를 지나 내님의 사랑은, 한 사람, 네 꿈을 펼쳐라, 세노야 세노야를 거쳐 조개껍질 묶어, 우리들의 이야기, 마리아, 축제의 밤, 목장길 따라,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로 이어졌습니다. 좋았습니다. 외로움과 고독, 과거와 현재, 어제와 오늘, 거룩함과 속됨이 내 마음 속에서 조화를 빗어내는 듯 했습니다. 외로와서 좋았고 고독해서 감사했습니다.
그리곤 지난 10월 전현구 시인이 우리 카톡방에 올린 시, “인생”을 천천히 다시 읽었습니다.
인생
외로움은
나를 묶어놓는 구속
고독은
나를 풀어놓는 자유
반복되는 구속과 자유는
그림자와 같은 운명이 된다
밀려오는 파도 처럼
하나의 파도로 낮아지면
낮아진위에 또 다른 높은파도로
밀려오다
산산히 뷰서지는
포말이 되기도 한다
외로움이라는 날실과
고독이라는 씨줄로
곱게 엮어 문양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앞서거니
뒷서거니
화사한 길동무가 된다
그 어떤 인문학적 설명 보다 훨씬 더 진솔하고 아름답게 외로움과 고독을 풀어주었 습니다.
아 ! 시인은 외로움과 고독을 이렇게 나누면서, 또 이렇게 하나로 엮어 내는구나 ! 마음을 따뜻하게 만져 주었습니다.
Carpe diem !
Bonam fortunam !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