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은퇴목사 주일예배설교 (37)
주제 : <죽음 – 제 3의 이민>
오늘의 본문 : 사도행전 7장 54절 – 8장 3절
오늘의 제목 : (37) 스데반의 죽음 – 그가 죽음으로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 : 그가 죽음으로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4절 ~ 8장 3절)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하루에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날로 확장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러가지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과부들을 포함하여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이었습니다. 유대파와 헬라파 출신의 유대인들 사이에, 누구는 더 많이 도와주고, 누구는 덜 도와준다는 불평과 불만이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이 새로운 신앙공동체에서는 처음으로 집사라는 직분을 만들어서 그들에게 이 문제를 전담토록했습니다.
사도들은 오직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토록하고 그외 각종 구제나 봉사의 일들은 이들 집사들에게 맡기는 행정 씨스템을 창안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처음으로 공동의회를 열고 7명의 집사를 선택했는데 그 중 제일 먼저 불려진 이름이 스데반이란 사람이었습니다. <무리가 이 말을 듣고 기뻐하여 스데반과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니골라를 선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그들이 기도하고 안수하여 세우니라>
스데반은 그 이름에서 나타나는 대로 본래는 유대인이었으나 선대 때에 이방 땅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마침 오순절이 되어서 잠간 모국을 방문했다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습니다. <스데반>이라는 이름은 헬라식 이름이고 그의 유대식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헬라어에서 <스데반, Stephanon>란 <면류관>이란 뜻입니다. 처음부터 알고 지은 이름인지는 몰라도 정말 이란 그의 삶과 죽음을 아주 잘 나타낸 아름다운 이름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스데반은 집사였지만 구제나 봉사의 일 외에도 남다른 은혜를 받아, 기사와 표적도 행하고, 또 지혜와 권능으로 설교도 잘했습니다. 특히 그는 당시 예루살렘에 모여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유창한 헬라어로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행전 6장 9절 말씀에 주목합니다. <이른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스데반과 논쟁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매 그들이 능히 감당하질 못하더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스데반이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 등 지중해 연안에서 온 여러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 여기에서는 그들을 가르쳐서 자유민들 –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하여튼 이들 유대인 이민 3, 4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는데 그들이 스데반과 논쟁을 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들, 자유민이라 불리우는 유대인 이민자들은 스데반을 논리적으로 이길수가 없었습니다. 이민자들의 가장 큰 걸림돌은 이민자들입니다. 도저히 말과 지혜로는 스데반을 이길수가 없었던 이 사람들은 스데반을 모함하고 체포하여 공회에 회부했습니다. 그들은 돈을 주고 사람들을 매수하여 거짓 증언을 하게 했습니다.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했다. 나사렛 예수가 이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했다. 모세가 전해 준 율법은 고쳐야 한다>는 소리를 우리가 들었다고 하면서 스데반을 신성모독자로 만들어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하고 체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은 이렇게 불법적으로 체포된 상태에서 스데반이 산헤드린 공회와 거기 모인 회중들에게 선포했던 역사적 설교입니다. <여러분 형제들이여, 들으소서>하는 말로 시작되는 이 평신도 집사 스데반의 역사적 설교는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부르짖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의 이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은 회개는 고사하고 오히려 <귀를 막고, 이를 갈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스데반을 성밖으로 끌고가 돌로 쳐서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인간들이란 이성적 존재도 아니고 영적 존재도 아닙니다. 인간이란 참 사악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포악하고 악령에 사로잡힌 무리들에게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스데반은 성령에 충만하여 하늘을 울어보며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바라 보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꼭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렸던 모습 그대로 스데반도 주님 처럼 기도하고 주님 곁으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이 스데반의 죽음을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로 규정합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이든, 그 후이든 교회사에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도 가롯유다와 사도 요한을 제외한 10명의 제자들이 모두 다 순교했습니다. AD 313년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 네로를 포함한 로마의 10 황제들은 정말 말로는 다 표현 할수없이 잔인하게 콜로세움을 비롯한 곳곳에서 성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기독교가 정식으로 인정 받은 후에도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초기 천주교의 박해로 김대건 신부를 포함하여 103위 성인순교자들과 수천명의 순교자들이 있었으며, 평양 대동강에서 죽임당한 토마스 선교사를 비롯한 많은 선교사들과 일제 강점기의 주기철목사님 등 많은 순교자들이 있어서 그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알고,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 세워졌고, 스데반은 바로 이 거룩한 순교사의 첫 주춧돌을 놓은 사람입니다. 스데반은 12제자나 사도들의 반렬에는 들지 않는 평신도 집사였습니다. 교회가 제대로 만들어지기도 전, 전문적 성직자가 정식으로 임명도 되기 전부터, 스데반은 그져 한 사람의 평범한 신앙인으로써 자신의 목숨을 받쳐 죽음으로써, 이 땅에 주님 교회의 터를 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설교자들과 성서 주석가들은 스데반의 순교를 다룰때 주로 그의 설교와 체포와 죽음, 그리고 끝까지 성령에 충만하여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포악한 인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데 촛점을 맞춥니다. 소나귀 처럼 쏟아지는 돌세례 가운데서도 스데반은 이렇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나를 이 환난과 고통에서 건져 주시옵소서. 주여, 니로 하여금 이 고난을 이기게 해 주시옵소서> 보통 우리들 같으면 이렇게 기도했을 탠데 스데반은 달랐습니다. <주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고난에서의 건짐이나 구원이 아니라,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고 축복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니지요. 바로 이런 기도가 성령에 충만한 사람이 드리는 기도라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아름다운 메시지가 담겨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는 좀 다른 측면에서 스데반의 죽음이 주는 교훈 한두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첫째는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복음이 온 땅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날, 그가 그렇게 죽임당한 것이 시발점이 되어 예루살렘에서는 본격적으로 환난과 박해가 시작되었고 마침내 성도들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예루살렘 중심의 교회, Jerusalem-centered Church>를 <세계를 향한 교회, Worldwide Church, Global Church>가 되게 했습니다. 여기 8장 1절과 4절 말씀입니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더라> 무슨 말씀입니까? 스데반의 순교사건이 출발점이 되어 드디어 예루살렘교회에는 커다란 환란과 박해가 시작 되었고 이는 마침내 복음이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성경에 쓰인 <흩어졌다>는 말은 그리스어 dia와 spero의 합성어인 diaspero에서 온 말입니다. Dia는 <넘어서다, 퍼져나간다>라는 뜻을 지닌 말로, 영어의 over에 해당되고 Spero는 <씨를 뿌린다, 여기 저기 흩어 놓는다>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는 뜻입니다. 이 diaspero에서, 지금 우리들이 흔히 쓰는 <디아스포라, Diaspora>라는 단어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민족과 국가, 언어와 문화를 넘어서서 온 땅으로 넓게 퍼져나가는 현상과 이에 참여하여 흩어져서 사는 사람들을 통칭하여 <디아스포라>라고 이름합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기독교를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하여 똘똘 뭉쳐서 흩어질 줄 몰랐던 사람들에게 스데반의 죽음과 핍박은 믿는 사람들을 산지 사방으로 흩어지게 하여 <이곳 저곳에 가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게 만든> 디아스포라의 전환점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말씀을 따라가 봅니다.
이들 흩어진 사람들이 사마리아와 다메석, 두로와 시돈, 룻다와 욥바, 가이사라와 안디옥, 구브로와 구레네, 실루기아와 살라미, 루스드라와 더베,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 등등 사방으로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사도행전은 2차, 3차 전도를 통해서 이들 <흩어진 사람들, 디아스포라 크리스챤들>이 갈라디아와 아시아, 밤빌리아와 비두니아, 라오디게아와 두아디라, 사데와 서머나, 버가모와 에베소, 데살로니가와 빌립보, 고린도와 아데네, 알렉산드리와 에디오피아, 그리고 마침내는 로마를 거쳐, 이후 파리와 런던, 뉴욕과 시카고, 서울과 시드니에 이르기 까지 온 세계로 흩어져서 복음을 확장해 나가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자칫하다가는 하나의 신흥 종교로 유대교 안에서, 한 민족 종교의 분파로 남아 Jewish Christianity가 될뻔했던 상황에서, 참 놀랍게도 스데반의 죽음과 이어지는 환난과 박해는 기독교를 세계적 종교, Worldwide Christianity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2천년전 예루살렘성 밖, 돌무더기 속에서 피흘리던 스데반의 순교현장을 다시 방문해 봅니다. 그때, 그가 거기에서 그렇게 죽었고, 환란과 박해가 시작되었기에 2천년 후 지구의 반대편에 있던 우리도 예수를 알고, 믿고, 영접하여,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폭군들이 죽으면 역사는 종식되지만, 성자들이 죽으면 역사는 새로와진다>는 말은 그래서 백번, 천번 옳은 말씀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우리가 구원얻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세계사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과 그의 발 자취를 그대로 뒤 따라 가,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으로 인하여 뒤집혀졌고, 넓혀졌고 새롭게 만들어졌습니다. 만약 예수님만 있었고 스데반이 없었더라면 기독교는 그냥 유대교의 한 작은 분파로로 남아버렸을지도 모르고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알길도 없었고, 믿고, 구원 얻을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다음, 스데반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두번째 교훈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사망에서 건지는 힘과 능력은 오직 용서와 이해, 사랑과 자기 희생이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예수님의 죽으심을 따라서 죽은 스데반을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연속적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복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과 토마스목사님 처럼 죽음으로, 자기를 버림으로 복음의 징검다리를 만들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생명의 역사는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세계로 나가는 교두보를 확보했습니다.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죽어줌으로 나는 살게 되었고, 그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희생해 줌으로 우리에게는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무릇 모든 생명이 있는 곳에는 반듯이 그 누군가의 희생과 죽음이 있습니다.
쉽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란 마치 타이타닉호와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라는 타이타닉호를 타고 가는 여행객이요, 손님들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아시다싶이 타이타닉호는 5만 2천톤이 넘는 증기 여객선으로 당시로써는 세계 최대의 호화 여객선이었습니다. 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호는 2,224명의 손님들과 승무원들을 태우고 영국의 사우샘프턴 항을 출발했습니다. 목적지는 미국 뉴욕이었습니다. 출항 후 손님들은 모두들 축제 분위기 속에서 하루 하루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4일째 되던날 4월 14일 밤, 타이타닉호는 그만 북극에서 떠내려오는 빙산에 부딪쳤습니다. 배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고 점점 침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엄청난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그로 부터 2시간 40분 만에 완전히 침몰되었습니다. 배에는 20척의 구명보트가 탐재되어 있었으나 구출된 사람들은 모두 710이었고 끝내 차디찬 북극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1,574명이나 되었습니다.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구명보트에 탈수는 없었습니다. 선장은 어린이들과 여성들을 우선 구명보트에 태우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에도 잘 나타나 있기는 하지만 다음 이야기들은 영화에서 본 장면이 아니라 그후 생존자들의 증언을 책과 글에서 읽은 내용중 일부입니다.
- 타이타닉호에는 당시 세계 최대의 부자 에스타씨도 타고 있었습니다. 당시 그는 타이타닉호 같은 여객선 10척도 더 만들만한 큰 부자였습니다. 그는 임신 5개월이 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우면 입을 맟추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유명한 부호 에스타씨를 알아본 선원이 말했습니다. <사장님, 타세요. 타셔도 됩니다.> 그러자 에스타는 말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말입니까?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요! 세상에는 돈이나 생명 보다 중한 것이 여럿 있습니다. 사랑, 양심, 희생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한 아일랜드 여성을 구명보트에 태우면서 말했습니다.
- 그날 타이타닉에는 미국의 유명한 메이시백화점의 창업자 슈트라우스도 타고 있었습니다. 그도 아내 로잘리를 향하여 어서 배에 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로잘리는 끝끝내 구명보트에 오르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있는 곳에 언제나 당신과 함께 있을 거예요. 죽음도 우리를 절대로 갈라놓을수는 없어요. 그게 우리 결혼 서약이었잖아요> 그러면서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함께 차디찬 얼음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았습니다.
- 신혼여행 중이던 신부 리더파스는 혼자서는 절대로 구명보트에 오를수 없다고 버티며 남편을 꼭 껴안았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그녀를 주먹으로 내리쳐서 기절을 시킨 후 구명보트에 태운 후 자신은 타이타닉과 함께 어두운 바다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후 리더파스는 구조된 후 평생을 재혼하지 않고 남편의 몸이 아니라 남편의 영혼을 안고 살았습니다.
- Mrs. 스미스의 회고록에는 이런 귀절이 나옵니다. <당시 제 두 아이들은 구명보트에 올랐는데 저는 타질 못했습니다. 만석이 되어서 더 이상은 태울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한 여성이 보트에서 내리면서 제 팔을 끌어당기면서 말했습니다. <올라 오세요. 아이들에게는 꼭 엄마가 있어야 해요. 저는 아직 아이가 없어요> 그리곤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타이타닉이 가라앉는 순간, 그들은 서로 서로 안아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정말로 사랑해요. I love you. I love you. Really I love you.> 그러면서 그들은 함께 찬송을 불렀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또 하나, 다른 예입니다. 이번 주는 1950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74년이 됩니다. 1950년 6월 부터 3년 동안 이어진 전쟁에서 우리나라는 민간인을 제외한 국군만해도 모두 13만 7,899명이 목숨을 잃었고 45만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유엔군은 모두 16개국에서 277만 8,905명의 군인들이 와서 우리 조국을 지켜주었는데 그 중 5만 6442명이 우리를 위하여 그들의 아까운 목숨을 바쳤고 10만 4천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받친 미국군인들은 모두 3만 6,940명, 영국군인들은 1,078명, 터키군인들은 724명, 그리고 4번째는 호주였습니다. 호주는 육해공군 모두 1만 7천명이나 한국에 와서 가평전투, 박전 전투 등 여러 전투에서 339명이나 목숨을 잃었고 1,300명 이상이나 되는 분들이 부상을 입고 평생 불구의 몸으로 살았습니다. 지구상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던 Korea를 위하여 그들은 왜, 무엇을 위하여 그들의 고귀한 목숨을 받쳤을까요? 우리 최정복 목사님은 왜 지난 4월 25일 ANZAC DAY 때 Gosford 현충탑을 찾아가서 Our Glorious Dead, <우리들의 영광스런 죽음> Korean War 1950-1953 앞에서 기도를 받치고 사진을 찍어서 우리와 함께 공유하게 하셨던 것일까요?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그들이 죽은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잃었던 자유와 평화를 되찿아 주기 위하여 자신들이 지닌 자유와 평화를 기꺼이 희생했던 사람들입니다. 스데반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그렇게 죽어줌으로 인하여 오늘 우리는 이렇게 생명과 평화를 누리며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우리들이 운이 좋아서일까요? 아닙니다. 한분은 골고다 언덕에서 못박혀 죽으시고, 또 한분은 성밖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으시고, 다른 이들은 톱에 켜서 죽고, 또 다른 이들은 사자의 밥이 되어 죽고, 칼에 찔려 죽고, 어떤 이들은 차디찬 얼음 바다에 자신을 던져 죽고, 또 많은 이들은 비오듯 쏟아지는 총과 폭탄 가운데서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듯 생명과 평화를 누리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스데반,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어 자기를 버리고, 그때, 거기서 그렇게 죽음을 선택했던 이름없는 사람들의 사랑과 희생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아침 죽은 스데반은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모든 생명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누군가 그를 대신해서 희생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그 누군가 다른 사람이 꼭 살게 되어 있습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