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제가 정리한 잡기장 하나를 올릴려고 하는데 부탁은 너무 빨리 읽지 마시고 천천히 읽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금년 (2023년)도 하반기에 두권의 소설을 읽었는데 그 두 권 다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시아 이민자들이 쓴 것입니다. 먼저 올리려는 책은 베트남 출신 미국시민 응우옌의 “동조자”이고 다음에 올릴 소설은 한국 출신 이민 2세 그레이스 조가 쓴 “전쟁 같은 맛”입니다. 이 책은 미국 필라델피아 인문학교실에 소개하였더니 2024년 1월 모임에서 독서토론의 주교제로 하겠다면서 반응이 좋았습니다. 하여튼 연휴가 이어지는 때인지라 시간적 여유와 마음의 여유가 계신분들은 제가 요약한 잡기장을 우선 천천히 한번 읽어 보시고 관심이 가시면 그 소설을 한번 읽어 보시길 추천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조자
비엣 타인 응우옌 저 / 김희용 역 / 민음사 / 2023년 5월 30일
다음에 남겨놓는 잡기장은 비엣 타인 응우옌 (Viet Thanh Nguyen)이 2015년에 영어로 쓴 장편소설 <동조자, The Sympathizer>를 읽으면서 밑줄을 쳐 놓았던 부분들과 거기에다 약간 나의 생각을 덧붙여서 썼던 잡문들이다. 한국어판은 2018년에 김희용 교수가 번역하여 민음사에서 출판하였다.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은 1971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1975년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4살 때 보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UC 버클리에서 영문학과 민족학을 공부한 후 현재는 USC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영문학과 소수민족학 등을 강의하는 한편 소설을 쓰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응우옌은 조부모님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의 부모는 응우옌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고향에 남겨놓은채 1954년 북 월맹에서 남쪽 월남으로 넘어온 후 월남에서 결혼하여 응우옌과 위로 형님과 누이, 이렇게 셋을 낳았기 때문이다. 1975년 난민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정착한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며, 자기 말대로, 베트남 음식을 먹으며, 베트남 교회에 다니며, 베트남 집단 거주지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응우옌의 보모님은 미국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하면서 자리를 잡았으며 지금은 은퇴하였다. 형은 의사로써 백악관의 자문위원으로 있다.
이 소설 <동조자>로 인하여 응우옌은 2016년 풀리처 상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상을 받았고, 그의 다른 작품으로는 소설 <난민>과 <동조자>의 후속편이랄 수 있는 <헌신자, The Committed>가 있다. 내가 읽은 <동조자>를 몇 줄로 요약해 본다면 이렇게 표현해 볼수 있으리라…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스파이다. 그는 이중 간첩이며 두 얼굴의 남자요, 두 마음을 지닌 인간이다. <그들은 나의 적이지만 동시에 나의 동지이기도하다. 그들이 사랑하는 도시는 함락되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그 똑같은 도시는 그날 해방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그날이 세상의 종말이었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변화였을 뿐이다.>
한 가지 사건이나, 한 사람의 존재 속에는 늘 양면성이 있다. 베트난 사람이지만 미국의 시민이고 /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이고 / 유라시안 이면서도 동시에 아메라시안이고 / 이 쪽에 있으면서도 저 쪽을 사랑하고 / 저 쪽에 있으면서도 이 쪽을 동정하는, 갈대의 마음이랄까, 아니면 포용성이 넓은 사람일랄까? 꼭 2중 간첩 같은 것이 이민자다. 두 얼굴, 두 마음을 지닌 The Sympathizer – 동조자 ! <그는 타인의 마음에 너무 쉽게 마음을 주고 무너지고 동정하며 그와 하나가 된다> 공산주의에도 동조하고, 자본주의에도 함께 마음을 준다. 차라리 한쪽으로만 마음을 정하고, 한편에만 굳게 선다면 갈등이나 모순은 없어지고 마음은 한결 가볍고 편안할 텐데, 여기도 기웃거리고, 저기에도 마음을 주면서 갈등과 고민 속에서 아파하고 서글퍼하는 것이 이민자다 ! 그래서 이민자들은 동정심이 차고 넘치는 이중간첩이요, 동조자요, Sympathizer 다 !
여기에서 나는 일찌기 이정용 교수가 <마지날리티, Marginality>에서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I am In-Between. I am In- Both. I am In-Beyond> <나는 둘 사이에 낀 존재요, 둘을 함께 지닌 존재요, 그러면서도 그 둘 모두에게서 벗어난 존재이다>
다음은 앞에서 말한 대로 <동조자>를 읽으면서 밑줄을 쳐 놓았던 글들에다 약간은 내 생각을 덧붙인 잡문들이다.
-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의 비밀요원, 두 얼굴의 남자, 두 마음의 남자입니다…. 나는 모든 문제를 늘 양면에서 보고, 양쪽의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 T.S. 엘리엇은 그의 시 <황무지, The Waste Land>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April is the cruellest month>이라고 했는데, 사이공이 함락된 그해 4월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잔인한 달>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해 4월은 그 지긋 지긋한 전쟁이 끝난 달이며 동시에 무엇인가가 다시 시작된 달이기도 합니다.
- 한때 프랑스는 베트남에 대해 <문명화에 대한 사명감>으로 충만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녔던 그 문명화에는 복음화도 함께 있었습니다.
- 공짜가 세상에선 제일 비싼 물건입니다.
- 베토벤에게도 16분의 1 정도는 흑인의 혈통이 있어 !
- 호찌민은 프랑스로 부터 독립전투를 하는 동안 늘 미국의 CIA가 자기를 도와 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 호아저씨의 적들은 호가 늘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는 동시에 이쪽과 저쪽을 함께 보았던 사람입니다.
- 일관성을 지닌 사람들은 대체로 생각이 깊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인생이란 평생을 통하여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싶지 않은 법입니다. 한번 자기의 입장이나 주장을 정한 후 평생토록 그 입장과 주장을 한번도 바뀌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사실 편견과 고집에 얽매어 있는 사람이거나, 인생에 대한 깊은 사색과 고민이 모자란 사람일수 있습니다.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이를 가르켜 <어리석음의 일관성>이라 했습니다.
- 인생살이에 모순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입니까! 우린 모순이 있어서 존재하고 모순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인생살이에 모순, 갈등, 이해 않됨, 의심, 의혹이 있다는 것이 이 세상을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게 만드느 일입니까?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
- 전쟁에서는 죽이는 것이 의무이고, 죽는 것이 곧 사명입니다.
- 그들은 우리를 향해 잡종새끼, 똥개, 튀기, 혹은 메티스(캐나다에서 프랑스 백인과 북미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를 부르는 말)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유라시아 혼혈아이고, 아메라시안이라고 젊잖게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두 얼굴을 지닌 인간이 맞습니다. 우리 속에는 두개의 피가 흐르고 두 마음과 두 인격이 공존합니다.
- 세상에는 사랑으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 법적으로 인정 받지 못한 사람들, 합법과 불법 사이의 경계에서 태어나 그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
- 막여살려야 할 가족이 있는 남자들 가운데서는 정직한 인간을 찿아 보기가 무척 힘든 법입니다.
- 내가 타인에게 동조하는 것은 나는 본래부터 잡종새끼이기 때문입니다.
- 배우들은 자신의 슬픔을 잊어버리기 위해 연기를 하는 겁니다.
- 스파이들은 자신이 스파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나쁜 사람들은 자기가 나쁜 인간이라는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스파이가 자기를 스파이라고 인정하면 그는 더 이상 스파이가 아니고, 악한 사람이 자신의 악을 솔직하게 인정하면 그는 더 이상 악인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려고 몸부림 치는 사람들입니다.
- 아메라시안은 두 사이에 끼어 있지만 자신이 어느 쪽에 속한 존재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 서양에서는 동양적 특성들이 거이 부정적으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서구 사회에서는 동양의 혈통을 지닌 사람들이 심각한 전체성의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 동양인들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문화적 토양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예로 부터 이어 온 유교적 잔재를 없애버리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이것이 아메라시안들이 지닌 어려움 중 하나입니다.
- 동양 – 좀처럼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 서양 – 자기 의견을 확실히 하는 편이다.
동양 – 권위를 존중한다. / 서양 – 자기를 존중한다.
동양 – 다른 사람을 걱정한다. / 서양 – 타인에 대해서는 천하태평이다.
동양 – 대개 말 수가 적은 편이다. / 서양 – 자기에 대해 말을 많이 한다
동양 – 찻잔이 반쯤 밖에 없다고 말한다. / 서양 – 찻잔이 반이나 남아있다고 말한다.
동양 – 아닌데 싶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 서양 –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동양 – 주로 과거에 얽매인다. / 서양 – 주로 미래를 생각한다.
동양 – 뒤따라 가는 것을 선호한다. / 서양 – 주로 앞장 서는 것을 좋아한다.
동양 – 연장자를 공경한다. / 서양 – 젊은이들에게 가치를 둔다.
동양 – 자기가 손해를 본다. / 서양 – 이해 타산을 따진다.
- 교회는 영혼을 구하는 일도 하지만, 동시에 돈을 벌고 아끼며 축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열심히 가르칩니다. 교회는 하느님과 맘몬을 동시에 잘 섬기는 것을 가장 잘 가르치는 곳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결코 물질을 멀리하고 오직 하느님만 섬기게 하는 집단이 아니라, 어떻게든지 이 둘, 즉 하느님과 맘몬을 똑같이 잘 섬길수 있는지를 훈련시키는 집단입니다.
- 호주, 미국, 캐나다 등 영어문화권 속으로 이민와서 자급자족 하려고 애쓰는 아메라시안 공동체에는 주로 다음과 같은 직업군들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 정치인, 경찰관, 군인, 은행가, 외판원, 기술자, 의사, 간호사, 변호사, 회계사, 목사, 사제, 수녀, 수도사, 요리사, 청소부, 가정부, 공장주, 정비사, 사무원, 스몰 비지네스, 도둑, 매춘부, 청부 살인자, 작가, 가수, 배우, 교사, 교수, 정신 이상자들, 유능한 사람들, 평범한 사람들, 어리석은 사람들, 애국자, 반역자, 중립주의자, 정직한 사람들, 부패한 사람들, 아무래도 좋은 사람들 등등…
- 우리는 서양에서 살면서도 늘 동양적 냄새가 나는 곳을 주로 찿아 갑니다. 우리 끼리 모이고, 우리 끼리 산책이나 피크닉을 가고, 우리들의 교회와 성당을 찿아가고, 우리 나라 마트를 찿아가고, 우리끼리 우리들의 음식을 만들어 봉지에 담아주곤 합니다. 우리는 피시소스가 없으면 음식을 먹을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수상한 비릿내를 좋아하고, 그 냄새를 용케 찿아가고, 그 냄새로 하나가 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수상한 비린내가 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들의 <역겨운 악취가 나는 치즈>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마른 오징어의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지, 치즈의 추억은 없는 사람들입니다.
- 나는 정직이라는 죄를 범했습니다. 사실 이런 죄는 어른이 되고 나서는 좀처럼 범하기가 어려운 죄인데도 불구하고 그만 그런 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 서양사람들은 동양인들의 뜻모를 수줍음이나 미소, 혹은 남몰래 흘리는 눈물과 통곡의 깊은 슬픔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하늘에 있는 천국이란 여기 땅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최고급 나이트 클럽일수도 있습니다.
- 우리는 미국에서 정기적으로 공급해 주는 복지혜택과 동시에 정기적으로 날아오는 굴욕도 함께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비극이기는 하지만 결코 살인죄는 아니잖아!
- 공산주의는 세상을 바꾸어 보려고 했고, 기독교는 인간을 바꾸어 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그들의 뜻을 한번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 나에게는 그를 죽이는 것이 옳은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어떻게든지 살아야하는 것이 하늘이 준 권리였습니다.
- 우리에게 주어진 비극은 옳음과 그름 사이에서 옳음을 골라내는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옳음과 옳음 사이에서 경험한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었습니다.
- 호아저씨와 예수님은 똑같이 <돈이, 물질이 모든 인간과 사회를 타락 시키는 주범>이라는 생각에서는 일치된 견해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 호아저씨가 추구했던 사회주의 베트남이나,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던 교회 공동체는 지금 똑같이 그 주범들에게 완전하고 철저하게 점령 당하고 말았습니다.
-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자들은, 방글라데시인들의 1인당 연간 소득 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그들의 애완동물들을 위해서 쓰고 있습니다.
- Victory와 Vietnam과 Vote – 이 3개의 V자로 그들은 선거에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승리를 약속하곤 했습니다.
- 미국인들은 색맹입니다. 그들은 백색 이외의 다른 색갈들은 모두 다 똑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 전에는 프랑스인들이, 그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위협하고 굴욕감을 주었지만, 지금은 우리들끼리, 우리 동포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위협하며 못살게 합니다.
- 늘 그렇듯이 막지막에는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합니다.
- 미국에서 전 국민을 구워삶는 방법은 영화입니다. 미국에서 영화는 지나간 전쟁의 속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음에 치룰 전쟁의 예고편이기도 합니다.
- 모두가 다 죽고, 죽임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면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드디어 평화가 왔어 ! 평화의 세상이 왔어 !>
- 미국사람들은 하느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을 잘 부릅니다. <Oh, My God !> 그들은 하느님을 믿지도 않으면서 성호를 긋거나 기도를 드리는데 아주 익숙합니다.
- 그 병원에서는 의사들 이름 뒤에 MD 혹은 PH.D라고 쓰곤 하는데 그 의미는 MD란 Manila Doctor란 뜻이고, PH.D란 Philippine Doctor라는 뜻이었습니다.
- 나치당원들과 강제수용소 소장들도 베토벤의 교향곡 제 9번을 아주 좋아했고 즐겨 들었습니다. 히틀러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과 1937년 자기 생일 파티 때 베를린 필하모니를 불러 이 교향곡 마지막 악장, <환희의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클라식 음악이 야만적인 무리들을 선하게 만들거나 문명적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 백인들에게는 <유죄가 입증될 때 까지는 무죄>라는 말이 적용 되지만, 황인종들에게는 <무죄가 입증 될 때 까는 유죄> 입니다.
-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거이가 사교술이 부족합니다.
- 그 사람의 강점은 어김없이 그 사람의 약점이 되고, 그 사람의 약점은 그 사람의 강점이 될수도 있습니다.
- 나는 하느님은 무섭지 않지만 유령은 두렵습니다. 하느님은 잘 나타나지 않지만 유령은 자주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유령들은 늘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5:5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 넓은 국토를 지닌 러시아, 중국, 미국, 캐나다, 브라질, 인도, 호주, 그리고 엄청나게 큰 부동산을 소유한 재벌들 – 이들은 모두 다 <마음이 온유한 자들이어서> 그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은 것일까요?
- 러시아의 3대 수출품은 첫째가 보드카, 둘째가 무기, 그리고 셋째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고 합니다.
- 맥아더 장군의 고별 연설문에는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오늘날 미국은 말합니다. <전쟁은 결코 죽지 않는다. 다만 잠시 쉴 뿐이다>
- Diaspora Vietnam 사람들의 American Dream은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 베트남으로 돌아가 거기에서 사는 것입니다.
- 한가지 언어, 영어 밖에 다른 나라 말은 못해도 별로 고통 받지 않고 살아가는 미국사람들은, 이중언어를 쓰지 않으면 결코 살아갈수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미국인들은 남녀간의 데이트도 투자와 수익에 관한 비지니스 차원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 미국의 본질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보면, 미국은 공산주의의 적이 아니라, 그들과 굉장히 가까운 친구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코카콜라는 해롭기는 해도 달콤하고 시원합니다. 미국인들은 단점을 알면서도 그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미국이란 나라의 정체성입니다.
- <당신은 행북하십니까?> 미국에서는 이 물음을 이렇게 들을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연봉이 얼마나 됩니까?>
- 미국에서는 절대로 <나는 불행하다>고 말해서는 않됩니다. 미국인들은 어떤 사람의 삶이 불행한 것은 일종의 도덕적 실패요, 반사회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은 어떤 사람이 불행한 것은 그가 종교적으로 잘못된 사람이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는 결코 불행해서는 않됩니다.
- 디즈니랜드는 단순히 어린이 공원이 아닙니다. 디즈니랜드는 미국인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는 곳으로 <미국은 행복한 나라, 재미있는 나라,기쁨이 가득한 나라>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 인도 차이나는 무너졌지만 그래도 우리는 태국, 타이완, 싱가포르, 한국, 일본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공산주의 파도에 맞서는 우리 미국의 좋은 방파제들입니다.
- 스탈린과 소비엣트, 지금의 러시아는 국가적 기질에 있어서 서양 보다는 동양에 가깝습니다. <냉전>은 국가간의 이념적 충돌만이 아니라, 사실은 문명 간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전>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충돌이라기 보다는 동양과 서양의 문명적 충돌에 가깝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사실 서구의 문명을 배워본 적이 없는 아시아 문명권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 미국은 왜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는가? 미국은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기독교 문화의 영향권 안에 있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인간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여기는 동양철학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무에서 왔다가 다시 무로 돌아간다>고 믿는 동양사람들은 인간의 생명을 서양 처럼 중시하지 않았습니다. 삶과 죽음을 같은 것으로 여겨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고 하는 사람들과 싸웠던 것이 베트난 전쟁이었습니다. 미국은 꼭 <살아야만 한다> 생각하며 싸웠는데 베트남 사람들은 <죽어도 좋다> 고 생각하며 싸웠기 때문에 미국은 손을 들고 철수했고 베트남은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사즉생, 死卽生>의 정신이 월남전에서 베트남이 이긴 승리의 철학입니다.
- 베트남 전쟁, Vietnam War 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전쟁의 정확한 이름은 <베트남 땅에서 벌린 미국전쟁> <American War in Vietnam>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전쟁, Korean War도 그 정확한 명칭은 <한반도에서 치룬 미-쏘전쟁, Soviet – U.S. War in Korea>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 낙과주의는 미국의 마약성 진통제입니다.
- 놀라지 마십시요. 사실 우리 아버지는 신부 (神父, Father) 입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고 서약했던 신부님이 저를 낳아 주셨습니다.
- 진짜로는 참 무겁지만 전혀 무게가 나오지 않는 것은 허무주의라는 겁니다.
- 전쟁에서 군인들이 사람을 죽일 때, 그들은 상대를 전혀 인간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모든 적은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 신부 앞에서 하는 고해성사나 교회에서 하는 통회자복 기도 만이 성사가 아닙니다. 공산당에서는 동지들 앞에서 자아를 비판하는 것도 성사(聖事)로 여깁니다.
- 소크라테스는 자기를 돌아보지 않는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공산당에서도 소크라테스를 따라 자아비판이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고 가르치면서, 문화혁명이 지속되는 동안 내내 수 많은 자술서와 자아비비판을 강요했습니다.
- 지성인의 언어나 말은 명확하고, 간결하고, 단순하고, 직설적이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전혀 민중들을 위한 글이 아닙니다.
- 미움 받는 것이 무시 당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은 법입니다.
- <난 하나도 배가 않고파 !> 그때 그렇게 말했던 그 어머니 만끔 나이를 먹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젠 말할 수 있습니다. <엄마, 나도 하나도 배가 않고파요 !>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 왜 이 세상에는 배고픈 사람들이 이리도 많을까? 부자들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 한공기씩 나누어주면 배고픈 사람들이 없어질까? 처음 나는 사랑과 자비와 종교적 선행으로 가난의 문제를 극복 할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부터 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불가능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오직 혁명 뿐이라고 확신하고 이를 위해 혁명을 이르켰습니다. 그런데 그 혁명은 실패했습니다.
- 영어 단어 <Sentence>는 <문장> 이라는 뜻과 함께 <선고>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모든 문장은 선고>라는 생각을 갖고 글을 써야 합니다.
-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삼위일체를 베트남에 적용하면 북부 베트난, 중부 베트난, 그리고 남부 베트남은 모두 한 베트남이란 뜻입니다.
- 수용소에 갇혀있는 내 사랑하는 남편을 꼭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서, 수용소를 지키고 있는 간수를 찿아가 몸을 내어주고 남편을 면회하는 여인을 이해 할수 없다면, 사실 당신은 아직도 인생을 안다고 말 할수는 없습니다.
- 성공할 확율, 출세할 확율, 돈을 벌수 있는 확율, 병을 고칠수 있는 확율 – 이런 확율들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에게 100% 똑같이 나타나는 확율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100% 죽는다!>
- <보트 피플, Boat People>은 전에는 없었던건데 20세기에 혜성 처럼 나타난 새로운 인종입니다. 그들은 태평양과 남중국해에서 머리를 들고 나타난 새로운 해초류이고 그 동안은 전혀 몰랐던 새로운 양서류입니다. <보트 피플>이라고 불리우는 이 새로운 인종은 모든 생명체들에게 가장 큰 희망을 주는 존재입니다. 나는 이 소설을 이렇게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보트 피플이다 ! 우리는 끝까지 살아 남을 것이다 !>
<후기 – 나의 생각>
- 베트남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 약 300만명 쯤 죽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보트에 몸을 싣고 고국을 떠나 오다가 태평양과 남중국해에서 목숨을 잃은 보트피플들은 몇십만이나 되는지 정확히 알수가 없다. 지금 미국에 와서 살고 있는 베트남 사람들은 약 400만명 쯤 된다. 캘리포니아 오랜지 카운티에는 베트남 전쟁 기념관이 있다. 그곳은 <리틀 사이공>이라고 불리운다. 그들은 거기에서 두 얼굴의 사람, 두 마음을 지닌 인간, 그리고 똥개, 튀기, 잡종새끼, 유우라시아 혼혈인, 그리고 아메라시안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설 <동조자>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이런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비슷한 전쟁을 치루고 호주에 와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이야기 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오늘날 서구 문화, 서구 제국주의 역사 및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지난날 전쟁을 경험한 아시아 이민자들>의 이야기 이기도하다. 슬프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울수 없는 이야기이다.
- 이 소설은 우리 중 그 누구도 <역사의 옳바른 편>에 설수 없음을 말해 준다.
- 이 작품은 <인간이란 지극히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비인간적 존재> 임을 밝혀 주려고 애쓴다.
- 저자는 이 비극적 전쟁의 책임을 프랑스인들이나 미국인들에게만 돌릴려고 하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을 더 많이 죽이고, 베트남 여인들을 더 많이 강간한 것은 그들 외국인들이 아니라 실은 동족인 베트남 사람들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비극은 국적을 넘어서 인간존재 그 자체들이 만드는 것이다.
- 모든 피해자들은 언젠가는 다시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 응우옌은 이 소설을 통하여 나를 비롯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