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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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언니
이십수년전 구연 동화가이신 고정애 사모님이 내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어린이들과 어른들을 다 모아놓고 <강아지 똥>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려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권정생 선생님에 대해 관심이 생겨나 조금씩 찿아보게 되었습니다.
일제시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7살 때 해방을 맞은 선생은 귀국하여 경상북도 안동 근처의 일직면이라는 시골에서 평생 동안 질병과 가난을 안고 힘들게 살다가 2007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이라 해야 기껏 작은 시골교회에서 종지기로 살면서 틈틈히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와 소설과 시를 써오셨고 이로 인하여 문단에 등단하여 상도 받고 돈도 좀 벌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오직 어린이들을 위해서 쓰도록 하시고 자신은 숨을 거둘 때 까지 병든 몸을 이끌고 가난하게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살아 생전에는 뵙지 못하다가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후 나는 그분이 평생 살았던 빌뱅이 언덕 밑에 있는 허물어져 가는 흙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가난과 질병이 묻어있던 그 오막사리를 방문했던 날, 거기에서, 나는 <진정 사람이란 무엇이고,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질문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남겨놓은 작품들은 여러개가 있지만 나는 이번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몽실언니>를 다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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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죽음, 미움과 아픔 속에서 가난하고 서글픈 배경을 안고 펼치어지는 이야기이지만 몽실언니는 이 작품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뿌러지게 말합니다. <사람이란 아무리 가난하고, 아무리 몸이 불편하고, 또 장애를 지니고 살아간다 하더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생명보다 더 고귀한 것은 없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해 주는 이 청소년 소설은 참 아름답고 따뜻합니다. 거기엔 지난 날 말로는 다 표현 할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여기 까지 용케도 살아온 나와 우리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몽실언니>가 나를 깨우쳐 준 제일 큰 렛슨은 이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데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우리가 그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드리지 못하고, 심지어는 미워하는 것은 우리가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고 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알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알고 사랑하면 그 어떠한 사람이나 사건도 다 감사로 받아드릴수 있다>
다음은 <몽실언니>를 읽던 중 밑줄 친 부분에다 약간은 다듬어서 쓴 나의 조잡한 잡기장입니다.
<남의 것을 훔친 사람도 일부러 도둑이 되고 싶어서 훔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다 어쩔수 없는 아픔과 말못 할 사정이 있습니다. 동네에서 등치 큰 아이들이 작은 아이들에게 싸움을 시키며 히드득 거리며 웃듯이 도둑질도 누군가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까닭은 덮어놓고 그냥 도둑즐한 사람만 나쁘다고 욕을 합니다>
<몽실은 아주 조그만 불행도 그 뒤에는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몽실아, 남과 북은 절대로 적이 아니야! 우리는 모두가 다 잘못하고 있는 거야!>
<이 세상에서 모든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한 우리 모두는 다 불행한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배운다는 것은 어머나의 젖을 먹는 것과 같다. 어머니의 젖은 키를 크게 해 주고, 배우는 것은 우리 머리를 깨우치고 생각을 자라게 해 준다>
<수 많은 어려움이 따라오는 나그넷길을 어떻게 해야 우리는 목적지 까지 무사히 갈수 있을까요? 첫째는 배고프지 않게 먹어야 합니다. 둘째는 튼튼한 신발을 신어야 합니다. 셋째는 목적지 까지 가는 길은 얼마나 되고 그 길은 험한지 평탄한지 먼저 가 본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충고에 따라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린 해방이 되고 어언 50년, 80년이 흘러갔는데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잘 알지 못하여, 서로 내가 옳으냐, 네가 옳으냐 하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모르면 언제든지 속게 되어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어머니, 인생이란 게 뭐예요? / 사람이 태어나서 살아가는 걸 인생이라 하나 보더라. / 그럼 인생이란 팔자 하고 비슷하네요. / 그래, 인생이란 팔자하고 비슷한 면이 많아. / 팔자도 미리 알고 걸어 갈수 있을까요? / 아마 다 알수는 없겠지만 조금 짐작은 할수 있을거야!>
<사랑을 느꼈을 때는 외로움도 함께 느끼는 것이 사람 사는 거야! 사람끼리 통하는 따뜻한 정을 받으았을 때, 우린 즐겁기만 한게 아니라 왠지 모르는 외로움도 느끼게 되잖아?>
<국군하고 인민군하고 누가 더 나쁜 거예요? 그리고 누가 더 착한 거예요? 왜 인민군은 국군을 죽이고 국군은 인민군을 죽이는 거예요? / 몽실아, 정말은 다 나쁘고, 또 다 착하단다. /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 국군 중에도 나쁜 사람이 있고 착한 사람이 있어. 인민군 역시도 나쁜 사람도 있고 착한 사람도 있어! 우리가 진짜 사람을 사람으로 만나서 사람으로 대해주면 다 착하게 사귈수 있는 거야! 신분이나 지위나 자기 이득을 생각하고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 나쁜 사람이 되는거야!>
<6.25란 짐승 같이 나쁜 사람들이 일으켜놓은 전쟁으로 가난하고 착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은 전쟁이야!>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누구든지 배고프면 화냥년도 되고 양공주도 되는 거예요!>
<아버지도 엄마도 절대로 나쁘지 않아요! 나쁜 건 따로 있어요! 누군가가 우리를 나쁘게 만들고 있어요!>
<그날 총알이 날아오던 전쟁은 그쳤다. 그러나 그들은 또 다시 권력을 잡고 휘드르고 자기들의 이권을 잡으려고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쟁은 높은 사람들이 일으켰는데 그 피해는 송두리채 가난하고 착한 백성들이 떠맡게 되었다>
<자선 병원에도 차별이 있었다. 돈 많은 사람들은 뒷구멍으로 진찰권을 쉽게 얻어 먼저 들어갔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세워진 병원이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한다.>
<인간이란 먹고 사는 일이 해결되면 그 다음은 즐기기 위해서 남을 해친다>
<그날 마침내 금년이 아줌마는 죽었다. 그 동안 몇번이나 죽으려고 했는데 그런데 죽지 못하다가 이번엔 무사히 죽었다. 참 다행이다. / 죽는데도 무사히 죽는 게 있어? 그럼 자식들 앞에서 유언을 남기고 조용히 숨을 거두면 그건 무사히 죽는 거야!>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금년이 아줌마는 죽은게 아이고 그 누군가가 죽인거야! 소련 사람하고 미국 사람들이 아줌마를 날마다 못살게 했잖아!>
<언니, 몽실언니… 난남은 기도하듯이 몽실언니를 부른다. 나도, 당신도, 우리도 다 같이 몽실언니를 부른다>
*홍길복 목사 2025.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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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