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2025년에 들어서 읽은 소설가 한강선생의 세 번째 소설이다. 고정애 사모로 부터 받은 이 책은 2021년에 <문학동네>에서 초판을 찍었고 2024년에 34쇄로 인쇄된 것이다.
이 작품은 1948년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제주 4.3 사건> 당시의 학살현장과 그 학살 속에서도 죽지 않고 생명을 건진 인선이 어머니의 삶의 스토리를 통하여 <역사적 진실과 그 의미>를 찾아가는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인간과 사회의 잔인성과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지만, 사실 이 소설의 주제는 이미 그 제목에서 나타낸 것 처럼 작별, 이별, 기억의 상실을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의 저변에 깔려있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곧 <역사와의 작별, 역사를 잊어버리는 행위는 하나의 범죄와 마찬가지다>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추적하여 서술하는 역사 소설이 아니라, 모든 역사는 잊혀지지 않아야 하고, 지워지지 않아야하며, 따라서 절대로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작별>은 <이별>이 아니다. <이별>은 어떤 피치 못할 상황이나 불가피한 환경 속에서 할수 없이 갈라서는 행동이지만, <작별>은 우리가 스스로 마음먹고,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후 자기의 결단에 따라 갈라서는 작위적 행동이다. 한강은 소설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경하와 인선을 통하여 나와 우리 시대의 독자들에게 분명히 말한다.
<작별해서는 않됩니다> <우리는 결코 역사로 부터 작별 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잊지 않겠습니다> <반듯이 기억하고 있겠습니다>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고, 지난날과 작별하지 않는 역사만이 진정한 역사가 된다. 잊어버리고 기억에서 지워진 역사, 작별한 역사는 역사가 되지 못한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그 어떤 방식으로든 – 사진, 영화, 드라마, 음악, 미술, 시, 소설, 다큐멘타리 등등으로 – 남겨놓지 아니한 과거는 절대로 역사적 사건이 되지도 못하고 역사라고 불리워 지지도 않는다> 이는 역사학자들이 늘 우리들에게 반복해서 경고하고 깨우쳐주는 귀절이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 작별해 버린 역사는 계속해서 다시 일어난다. 역사란 개인적 기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기억이요, 공동체적 기억이다. 역사와 작별한 사람들과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게는 그 어떤 희망이나 가능성도 주어지지 않는다> 한강은 이 책 <작별하지 않는다>와 앞선 소설 <소년이 온다>나 <채식주의자>를 통하여 4.3 뿐만이 아니라 5.18을 비롯하여 우리네 한국사회가 근래에 경험해온 현대사들은 반듯이 기억되어야하고 그 비극적 역사와는 작별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쳐야한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엮어내었으리라고 본다.
– 한강이 이 작품을 통하여 말하고저 하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인간이란 결단코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밝힐려고 한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다. 또 인간은 결코 <도덕적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짐승이다. 짐승 중에서도 가장 포악하고 잔인한 맹수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하고, 폭력적이고, 물어 뜨기를 좋아하고, 물어 뜯는데는 챔피언 같은 존재이다. 아니, 인간은 짐승 보다 못한 존재이다. <짐승 같은 인간>이라고 말해서는 않된다. 짐승들이 들으면 섭섭해 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려고 그 누군가를 물어 뜯어 죽여서 자기의 허기를 채우려고 하는 짐승들과는 차원이 다른 짐승이다. 짐승들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 그 누군가를 죽이지만, 그러나 일단 자기 배가 부르고 나면 더 이상은 물어 뜯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조건적으로 타인을 죽이는 악마이다. 한강은 1948년 그 때 제주에서 벌어졌던 인간의 악마적 행위를 통하여 분명하게 말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도덕적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짐승이다>
둘째, 인간이란 한없이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증언하려고 한다. 인간은 물질 앞에서는 물론이고 이념이나 사상, 신념이나 종교 앞에서도 꼼짝을 못하는 존재다. 인간은 그 어떠한 것도 스스로를 이겨내질 못하는 무력한 존재이다. 물질적 힘, 권력의 힘, 이념이나 사상의 힘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들은 어떤 이데올로기에 한번 포로가 되면 꼼짝없이 그 이데올로기의 하수인이 되어 무차별적 폭력과 난동을 부리는 존재이다. 인간은 남을 보면서도 자기는 보질 못한다. <반면교사>라는 말은 그냥 말일 뿐이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거울을 가져다 주어도 자기의 얼굴을 보질 못한다.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 앞에서 조차도 자기의 모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자신과 맞서지 못하는 무능하고 무력하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이란 마침내는 너도 죽이고 나도 죽는 불쌍하고 슬픈 모습으로 마감된다.
셋째,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역설적이게도, 이 소설은 인간이란, 짐승같은 존재요, 짐승 보다 더 폭력적이요, 비이성적이요, 무능하고 무력하고 연약하기 그지 없는 슬픈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끝까지 바로 그런 인간성을 지닌 인간임을 잊지 아니하고, 그런 비극적 인간의 본질과 작별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이 소설은 인간의 본성을 잊어버리거나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침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것 만이 아니라 비이성적이고 부도덕하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간 존재 자신과도 작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인간은 인간에게서 작별하지 안으려고 몸부림치는 존재다> <인간은 절대로 인간으로 부터 작별할 수가 없다>는 것이 한강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눈과 귀, 입과 소리, 기록과 사진, 그리고 꿈과 현실을 통하여 남겨진 역사만이 아니라 그 역사를 기록해 둔 바로 그 인간 자신으로 부터도 결코 작별하지 않으리라는 다짐과 몸부림과 발버둥이 이 소설을 통해 나타난 작가의 메시지라고 나는 이해한다. 그래서 <작별하지 않는다>는 <자기 자신과의 대결>을 그 저변에 깔고 있다.

–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밑줄 친 문장 몇개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가 있을까?>
<꿈이란 무서운 거야… 모든 것을 폭로 하니까>
<입맛을 잃지 않는 사람이 오래 산대. 엄마는 오래 살 거야>
<인간이 인간에게 그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난 더 이상 놀랄 것 같지 않아!>
<변화는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넘어설 때, 우린 성장할 수 있어!>
– 나의 후기에서
2025년 1월 27일, 나는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 읽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다 읽지를 못한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작별하지 않았다. 아니 작별하지 못한다.
나는 결코 인간과 그리고 나 자신과 작별하지 않을 것이며 작별하지 못할 것이다.
홍길복 목사 (2025. 1. 30)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