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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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나는 2025년 새해들어 <소년이 온다>에 이어 두번째로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석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으로 그녀는 2007년 <맨부커상>을 받았고 다른 작품들과 더불어 202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주인공 영혜가 어떻게 채식주의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됨으로 인하여 어떤 폭력을 당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모든 스토리의 증언자는 영혜의 언니 인혜다. 인혜가 이 소설에서는 두드러지지 아니한 주인공이라 할수 있다.
한강은 이 <채식주의자>를 통하여, 독자 중 하나인 나와, 또 더불어 함께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려는 것일까? 그녀가 정말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거듭 생각해 보지만 그리 단순하지 않은 작품이다.
퍽 많은 사람들은 이 소설의 주제를 폭력 혹은 폭력에 굴하지 않는 저항이라고 말한다. 전통적 가부장적 가정과 사회구조 속에서, 혹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삶의 태도를 물리적 힘으로 억누르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하여 폭력으로 굴복시키려는 동물적 문화속에서, 영혜라는 한 여성의 삶이 어떻게 무너져 가는 지를 고발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힘으로 인간의 생각과 의지를 변경 시키려는 아버지나, 그럴듯하게 예술이라는 이름을 씌워 인간을 성적으로 폭행하여 정신병자가 되게하는 형부나, 이들은 모두가 다 물리적 폭행과 정신적 폭력으로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간다는 해석이다. 분명 이 작품의 밑바탕에는 그런 측면이 강하게 흐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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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채식주의자>가 전하려는 메시지, 메신저인 한강이 정말 전하고 싶어하는 또 다른 메시지가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진정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물음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주제는 한강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작가들을 포함하여 거이 모든 문학과 예술 그리고 인문학과 종교들이 던지는 <근본적 물음>이다. 사실 모든 자연과학과 응용과학들과 사회과학들 역시 그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결국 이 질문 앞으로 소환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나’라고 하는 존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사람을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한강은 <참 좋은 질문자이다> 인간의 인간됨은 인간에 대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를 통하여 이 질문 앞에서 하나의 가설을 제시한다. <인간이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다음은 한강이<채식주의자>를 통해서 들어냈던 글에다 나의 생각을 덧 붙이거나 약간 수정하여 잡기장에다 써놓았던 글들이다.>
꿈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 언젠가 우리도 인생이라고 하는 이 꿈에서 깨어나면 그땐 모든 것을 알게 될거야!
사람이 산다는 것은 참 놀랍고도 이상한 일이야! 그 어떤 끔찍한 일을 당하고서도, 말로는 다 할수 없이 잔인한 일을 겪고 나서도 우린 또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얼굴을 씻고, 때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소리내어 웃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잖아!
우리가 한 평생을 살아가는 것은, 일생 동안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먹는 거야! 먹어야 살고,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하는 거야! 고기든, 야채든, 인간은 그 무엇인가를 먹음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존재야! 그런데 인간이 그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먹는다는 것은, 그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죽이는 거야! 고기 같은 동물을 죽이든지 채소 같은 식물을 죽이든지, 하여튼 그 무엇인가를 죽임으로 자기의 생명을 유지해 가는 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이야!
이 소설은 제목처럼 단순히 채소만 먹으려고 발버둥치는 <채식주의자>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작가 한강이 이 작품을 통하여 밝혀보려고 노력하는 주제는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인간들은 채식주의자가 되어보려고 한다. 즉 인간성 속에는 그 누군가를, 그 무엇인를 파괴하거나 죽이지 않으려고 끝까지 발버둥치는 채식주의적 선한 본성이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악한 본성도 함께 공존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그 무엇인가를 죽이고 파괴해야만 한다는 동물적 본성도 같이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인간성 속에는 선한 면과 사악한 면이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란 그가 원초적으로 지니고 동물성 – 파괴적이고 정복적이고 남을 죽임으로 자기의 생존을 지키려는 본능적 동물성을 극복해 내기가 거이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그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죽이고 그걸 먹음으로 자기 자신은 죽지않고 영원히 살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잖아!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채식을 하던, 육식을 하던, 아니면 잡식을 하던 아무리 다른 것들을 죽이고 먹어치워도 그래도 언젠가, 때가 되면 자기 자신도 죽잖아! 인간이 제일 마지막으로 죽이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란 말이야! 참 슬프게도 인간이란 아무리 다른 것들을 파괴하면서 먹고 마셔도 결국은 자기 자신도 역시 죽음에 이르게 되어 있어! 죽음이란 무엇인가? 먹지 못하는 거야! <모든 인간은 그 마지막에는 영양부족으로 죽는다>는 농담 같은 말은 사실이야! 사실 인간이란 먹어도 죽고 안먹어도 죽어!> <왜? 죽으면 안되?> <왜? 죽으면 않되는 거야?> <왜? 어디 죽지 안고 영원히 사는 인간을 본적이 있어?> <정말 인간이란 아무 것도 아니야!>
<난 네가 죽을까봐 그러잖아 ! > 인혜의 염려 섞인 말에 영혜는 이렇게 말한다.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왜? 정말 죽으면 안되는 거야?> 이 물음 속에 한강의 메시지는 분명하게 나타난다. <모든 것은 다 죽게 되어 있다. 있는 것은 없어지고, 존재는 비존재와 동일화 되고, 사람도, 짐승도, 식물 까지도 마침내는 다 사라져 버리는 것 – 그것이 바로 신의 섭리요 자연의 질서다. 아무리 죽이고 부수고 없이하면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쳐도 인간은 죽게 되어 있고, 죽는 것이 인간이다> 여기에서 한강은 허무주의를 예찬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정직하게 인간의 실존을 말하고 있다.
<언니,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난 밥같은 것 안먹어도 돼! 난 그냥 살수 있어! 햇볕만 있으면 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넌 정말 나무가 되었다고 생각해?>
나는 <채식주의자>를 덮으면서 내 잡기장에다 이렇게 써둔다.
<나만 살겠다고 남을 해치면 않된다>
<내 생각만 옳다고 남을 꺽어버리는 것은 절대로 옳은 일이 아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탐욕적 존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죽을수 밖에 없는 존재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홍길복 목사 (2025.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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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