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2025년 설교 (1)

본문 : 에베소서 4장 13~16절
제목 : 목표 업 그레이드 (Up Grade) 하기
목표 업 그레이드 (Up Grade) 하기 (에베소서 4장 13~16절)
제가 인문학교실에서 자주하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어떤 집에 어머니는 없이 초등학생 아들과 아버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녁 아버지가 국수 두 그릇을 삶아 오셨습니다. 그런데 한 그릇에는 국수 위에 삶은 계란이 한개 얹혀 있었고 다른 그릇에는 계란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했습니다. “아들아, 네가 좋아하는 것을 먼저 골라라” 아들은 당연히 계란이 올려져 있는 국수 그릇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국수를 한참 먹다 보니까 아버지 그릇에는 밑바닥에 계란이 두개나 있었습니다. 아들은 말했습니다. “아빠, 내가 잘못 골랐네요” 그때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세상 만사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란다. 이 세상엔 보이지 않는 세계가 언제나 더 큰 법이다.” 몇일 후 아버지는 또 국수 두 그릇을 식탁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날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한 그릇에는 계란이 있었고, 다른 한 그릇에는 계란이 없었는데 아버지는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오늘도 네가 먼저 골라라” 아직 어린 아이였지만 경험적 학습상 그날 아들은 서슴치 않코 계란이 없는 국수를 자기가 먹겠다고 하면서 그걸 가져다가 먹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아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던 거지요. <이 그릇 밑바닥에는 아마 계란이 두개 있을거야> 그런데 웬걸, 국수를 다 먹을 때 까지 계란은 한개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실망한 표정이 역역하게 보이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겠지만 인간의 경험이란 한계가 있단다. 너무 지나치게 네가 한번 겪어본 일에만 의존해서는 않된다. 네가 한 경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아마 너도 좀 더 크게 되면 알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제 머리에는 늘 바울 사도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 13장:11>
물론 이 스토리의 주제는 국수나 계란 이야긴 아니지요. 여기에서 우리는 그날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됩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큰 법이다. 인생을 너무 간단하게 여기지 말아라. 그리고 네가 해본 경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살다보면 지난날 나의 경험이 오히려 나를 실망시킬 때도 많은 법이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우리 인간이란 어떻게 해야 올바로 생각하고, 바르게 성장하며, 또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갈수 있는지를 많이 생각하게 해 줍니다.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쉬지않고 성장하며 자라납니다. 처음에는 외형, 겉모습이 자라납니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나면 그후부턴 속이 영글어집니다. 사람도 태어날 때는 보통 한 3킬로 안팍으로 세상에 나오지만 그후 꾸준히 자라나 스무살 쯤 되면 키도 1미터 7,80이 되고 몸무게도 6-70킬로가 됩니다. 하지만 그후에도 계속해서 그렇게 성장하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마 그러다가는 사람도 코끼리 처럼 대단한 등치를 지닌 동물이 될 것입니다. 육체적 성장엔 한계가 있고 그후엔 정신적 성숙으로 이어지는 것이 인간 발달의 과정입니다. 성장에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처음은 외적, 신체적 성장이고 그 다음은 내적, 지적 및 정신적 성장입니다. 성장이란 단순히 살만 찌고 키만 크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성장, 균형잡힌 성장과 발달은 외적 성장과 함께 내적으로 영글어가고, 육체와 더불어 인격과 성품이 다듬어지는 성장을 말합니다. 몸집이 커졌다고 해서 건강해 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비만은 오히려 건강의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 두고 온 조국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나라나 회사나 사업이나 교회도 까지도 외형은 비대해졌는데 여전히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인격적으로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히 어딘가 병이 든 것이요,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저마다 어떤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정부도, 회사도, 개인 비지니스도 나름 성장의 목표를 세웁니다. 세계은행과 Australia Reserve Bank와 한국은행을 비롯하여 정부나 회사는 그 해의 성장율과 매출액을 세워 금년에는 몇 퍼센트 성장이 목표라고 발표합니다. 하지만 너무 기대치만 높여서 목표를 잡았다가는 실패하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적절하고 적당하고 합리적이어야합니다. 소나 말이나 돼지는 태어난 후 한 서너달만 되면 금세 30킬로, 50킬로, 100킬로로 몸집이 커집니다만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이런 짐승들은 대체로 1,2년 안에 모두 도살장으로 끌려갑니다.
사람도 출생 이후 꾸준히 성장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성장과 발달은 굉장히 느립니다. 20년 쯤 자라도 혼자서는 밥벌이도 못할 정도로 성장과 발달이 더딥니다.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하지만 등치 크고 힘센 사람이 크고 위대한 인물은 아니잖습니까? 소크라테스, 플라톤, 바울, 요한, 뉴우톤, 아인슈타인, 세종대왕, 안중근, 안창호가 어디 크고 힘이 세어서 역사상 위대한 사람이 된 것은 아니잖아요?
저는 지난해 80을 넘어서고 목사 안수 받은지도 50년을 넘어섰습니다. 철없던 나이 서른살에 목사가 되었으니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일들이 어디 한 두 가지이겠습니까? 죽을 때가 되면 철이든다더니 이제서야 ‘인간이란 진정 무엇이고 정말 목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뭔가 조금씩 보이는 듯합니다. 사실 그동안 예수님을 이용한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수님 때문에 잘먹고 잘 살았고, 목사님 목사님, 소리 들으면서 존경도 받고 이름도 날리고 심리적 우월감을 갖고 살아온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즈음은 지난날의 인생과 목회를 반성하며 남은 생애가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좀 더 성숙한 인간, 좀더 철든 신앙인으로 살다가 가야 할텐데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정작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은, 이런 개인적 혹은 사회적 성장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성장, 곧 우리 믿음의 성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바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에베소서도 크게 보면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장 부터 3장 까지는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 믿는 이유, 예수 믿는 목적은 무엇인가? 등등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대한 교리적 설명들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다음 4, 5, 6장에서는 주로 <그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즉 신앙인의 실제적 삶에 대해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라. 예수 믿기전에 지녔던 구습을 따르지 말고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려라. 새롭게 되어라. 빛된 삶을 살아라.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종과 주인, 윗 사람과 아랫 사람은 주종의 관계가 아님을 명심하여라> 등등,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이 모든 말씀과 교훈의 핵심입니다.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계속해서 꾸준히 자라나는 신앙인이 되어라. 한번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이 아니다. 구원 이후, 구원 받은 그 다음도 계속적 성장해야한다. 제발 좀 철든 기독교인들이 되거라> 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물론 그 첫 단계는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그 주님을 내마음 속에 영접하는 단계>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단계>로 이는 기독교 신앙의 제 1단계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고 전도하는 일이나 미전도 종족들에게 나아가 선교하는 일도 <믿음의 제 1단계>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신앙고백을 하고, 셰례를 받고 지금까지 교회생활을 해 온 것도 모두 제 1단계 신앙을 통과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제 1단계는 잘 통과한 교인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전부냐?>는 물음인데 성경은 그게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제 2단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입으로 고백하고 마음으로 믿는 단계>를 넘어서서 <매일 매일의 삶, 일상의 생활 속에서> <신앙을 고백한 사람답게, 진짜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야 그것이 성숙한 신앙인이요, 온전한 믿음의 사람> 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두 번째 단계를 오늘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고 … 그에게까지 자랄지니 그는 곧 그리스도라>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립니다. 우리 신앙의 제 1단계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2단계가 있습니다. 로마서 3장이나 갈라디아서 2장을 넘어서 로마서 8장이나 에베소서 4장과 야고보서 까지 나아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성화된 삶을 살아가는 단계가 바로 제 2단계 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내 인생의 목표로 삼고, 주깨로 더 가까이 나아가, 주님께서 사셨던 것 처럼 살아갈 때, 그때, 우리의 구원은 완성이 됩니다. 한번 받은 구원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니 이제 부터는 그냥 아무렇게 살아도 나는 절대로 지옥 갈리는 없다고 하면서 함부로 막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그에 합당한 삶의 태도가 요구됩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에 합당한 삶의 태도, 우리가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 더 높은 방향과 목표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항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성장과 성숙의 목표는 아주 분명합니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니 그는 곧 그리스도라> 성경은 여러 곳에서 거듭하여 이 말씀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넘어 서서 완전한 데로 나갈 지니라, 히 6:1-2>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너희도 온전하여라 마태 5:48>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는 어딘가? 도대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누구를 바라보며, 누구를 삶의 모델로 삼고 이 인생길을 걸어야하고 신앙 생활을 할 것인가? 분명합니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완전해야하고> <예수님께서 사신 것 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와 신앙생활의 최고 모델은 베드로나 요한이 아닙니다. 바울이나 스데반이 아닙니다. 마더 테레사나 이태석 신부가 아닙니다. 주기철목사님이나 손양원목사님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들도 인생의 목표, 인생 최고의 롤 모델은 다 예수님으로 삼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중간에 끼어든 사람들만 처다볼 것이 아니라 직접, 스트레이트로 예수님만 바라고, 예수님을 목표로 삼고, 예수님 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란 <예수님 처럼 사는 사람이고, 크리스챤이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사람이지> 바울이나 베드로나 요한을 본받으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론 예를 들어 이런 이런 사람들도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거울로 삼아 존경 할수는 있지만 그들 자체가 우리 삶의 목표는 아닙니다. 교회사에 나타난 그 어떤 위대한 신앙적 인물도 우리 신앙의 직접적 대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히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우리 신앙의 단계를 높여야 합니다. Up-Grade 시켜야 합니다. 아시다싶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산 입니다. 8848미터입니다. 지구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등반에 처음으로 성공한 산악인은 뉴질랜드 등반가 Edward Hillary와 네팔의 셰르파 텐징 노르가였습니다. 지금부터 70년 전인 1953년이었습니다. 그 때를 전후하여 수 많은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를 향하여 도전했지만 1988년 까지 성공한 산악인들은 고작 몇십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산악인들이 히말라야에서 돌아오지 못한채 그들의 몸을 눈속에 묻었습니다. 그런데 1988년 이후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하여 정상에 깃발을 꼿는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물론 그 사이 산악인들의 체력과 훈련은 많이 상승이 되었고 산악장비 역시 엄청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 보다도 인간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전하고 정복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역활을 한 것은 베이스 캠프의 고도화였습니다. 1987년 이전 까지는 에베레스트의 등정의 베이스 캠프가 겨우 3440미터에 위치한 바자르였는데, 그후 많은 연구와 노력과 투자를 거듭한 끝에 5364미터 지점에 새로운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는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베이스 캠프를 높여야한다. 베이스 캠프를 새로 설치해야한다. 그래야 인간은 더 많은 사람들을 에베레스트에 오르게 할 수 있다> 베이스 캠프가 무엇입니까? 베이스 캠프는 정상 등반을 위한 최고의 전진 기지입니다. 모든 산악인들은 일단 베이스 캠프까지 잘 올라간 후, 그곳을 발판으로 삼아 최고봉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3400미터에서 5400미터로 베이스 캠프의 높이를 2000미터 쯤 엎 그레이드 시키고 나니 에베레스트 등반의 역사는 바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베이스 캠프 까지 오르는 산악인들만 해도 1년에 천여명을 넘어섯고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에 성공하는 산악인들이 1년에 약 200명 이상이나 됩니다. 베이스 캠프를 높이 설치해야 합니다. 전진 기지를 높이 두어야 합니다. 목표를 상향조정하고 높여야 합니다. 목표를 엎 그레이드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더 많은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 하듯이 국가와 교회, 개인과 공동체의 질적 수준, 영적 목표를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인생살이의 방향과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신앙생활의 기본적 틀과 근본을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Standard와 Criterion, Base Camp와 Level을 한단계 엎 그레이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교회는 아무리 힘쓰고 애쓰고 눈물 흘리며 기도해도, 그래도 역사 속에서 나날이 도퇴 됩니다. 몇 십년전과 같이 지금도 예수 믿고 복받고, 예수 믿고 부자 되고, 예수 믿고 병고치고, 예수 믿고 아이들 좋은 대학에 보내 성공하여 출세 시켜야지 하는 식의 미신적 수준은 반듯이 넘어서야 합니다. 지난해 말, 한국에 가보니 거리 마다 타로와 점집들이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랐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인사동, 낙원동, 익선동 근처에는 한집 건너 한집이 <사주, 팔자, 궁합, 타로>집들이었습니다. <연애운, 직장운, 학업운, 재물운, 사업운>들을 푯말로 세워놓았는데 들여다보니 요즘은 점집도 옛날과는 달리 컴퓨터를 켜놓고 젊은 사람들이 주인으로 앉아서 상담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이런 입간판을 세워놓고 있었습니다. <운명이란 맹신하면 어리석은자요, 무시하면 경솔한 자요, 참고하면 현명한 자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교회는 이제 정신 바싹 차려야 합니다.
사실 오랫동안 우리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일반 사회와 비교해 볼때, 그 질적, 정신적, 영적 수준이 많이 낮았습니다. 지금 세상은 교육과 정보, 지식과 기술의 수준이 얼마나 높습니까? 그들은 모두들 베이스 캠프의 수준을 아주 높게 상향 조정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교우들을 여전히 유치부 수준에다 묶어두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지가 얼마인데 지금도 어른들을 유치부 애기들의 성경퀴즈타임으로 시간을 낭비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정말 이 나이 쯤 되었으면 성경퀴즈하고 선물 주는 단계는 좀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성경 퀴즈나 통성기도의 제목도 한단계 높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진정 예수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내 생활 속에서 참으로 주님 가신 발자취를 따라가려면 무엇 부터 해야 할까?> <내 신앙생활을 한단계 엎 그레이드 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런 기도제목들을 놓고 통성기도하자고 말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게 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 신앙의 목표, 반드시 엎 그레이드 시켜야 합니다. 주께서 이 아침도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주님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지니 그는 곧 그리스도라> <너희는 이제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넘어서 온전한데 까지 나아갈 지니라> 2025년, 한층 더 엎 그레이드된 신앙 속에서 거룩한 영적 성장을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