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5년 11월 28일, 클레르몽 공의회 직후 교황 우르바노 2세가 1차 십자군의 총사령관으로 아데마르 주교 지명

클레르몽 공의회 직후 1095년 11월 28일, 교황 우르바노 2세는 1차 십자군의 총사령관으로 아데마르 (? ~ 1098) 주교를 지명한다.
르퓌의 아데마르 혹은 아데마르 드 몽테유 [Adhemar de Monteil; 잘 알려진 명칭으로 아데마르 (Adémar), 아미마르 (Aimar), 아에라즈 (Aelarz) 등이 있다]는 1087년 남프랑스의 도시 르퓌앙부레 (Le Puy-en-Velay)의 주교를 지냈고, 제1차 십자군 때는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십자군을 지휘했다.
아데마르는 프랑스 남동부 도피네의 귀족이었던 몽테유 영주가문 (Seigneur de Monteil)에서 태어났으나 생년월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
3명의 아이들중 장남인 아데마르는 교회에 들어가기 전 군대에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이 시기 기록은 거의 존재하지 않아 교회에 들어간 이유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군사에 관해 잘 알았기 때문에 훗날 십자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클레르몽페랑 대주교 및 르퓌앙부레 주교를 맡았던 에티엔 드 푸리냑이 1076년 2월 성직매매로 인해 교황 특사 데 드 위그에게 파문당했다.
에티엔은 이 처벌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1077년 3월 직접 로마 교황 그레고리오 7세에게 파문당했다.

그래서 아데마르가 새로운 르퓌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아데마르는 서임권투쟁을 진행하던 그레고리우스 7세의 교회개혁을 지지하는 노선을 따랐기에, 오랫동안 지방의 성직자이며, 유력자 였던 푸리냑 가문과 상당한 대립을 계속했다.
1086년부터 1087년까지 아데마르는 순례에 나서 르퓌에 부재했다는 여러 기록이 있지만, 행선지가 예루살렘이라고 쓴 책도 있고, 행선지가 없는 책도 있어 어느쪽인가는 단정지을 수 없었다.
당시 셀주크 제국은 여러번 성지의 순례길을 봉쇄했었다.
1095년 11월, 10일간 벌어진 클레르몽페랑에서 개최된 클레르몽 교회회의에서 성직매매 및 서임권 등을 둘러싼 현안이 상신되었다.
최종일인 11월 27일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셀주크 제국에게 압박당하던 비잔티움 제국의 구원과 성지탈환을 호소하였고, 아데마르는 이에 열광적으로 호응했다.
우르바누스 2세는 곧 주교 아데마르를 교황 특사로 임명하고, 성지로 향하는 군대의 지휘를 맡겼다.
이후 십자군에서 아데마르는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 제1차 십자군
제1차 십자군 (First Crusade)은 1095년 예루살렘으로 출병한 기독교 사상 최초의 십자군이다.
제1차 십자군의 직접적 원인은 1095년에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가 지원을 호소한 데 있었다.
당시 이슬람 세계는 분열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십자군의 공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레몽, 고드프루아, 보에몽 등 쟁쟁한 군웅들을 앞세우고, 총사령관으로는 명목상이긴 하지만 아데마르 주교가 있었고 은자 피에르도 따라갔다.
제1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에 도착, 먼저 니케아를 공격하고 안티오키아를 공략한다.
그러나 도중에 아데마르 주교가 사망함으로 해서 군웅들 간에 유대감이 사라지고 군웅 할거로 치닫게 되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1099년 십자군은 마침내 예루살렘 정복에 성공한다. 성 안으로 난입한 십자군은 많은 시민들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 시리아에서부터 팔레스타인에 걸쳐 이르는 중동 지역에 예루살렘 왕국을 비롯한 몇 개의 십자군 국가가 세워졌다.
예루살렘 왕국의 왕으로는 가장 존재감 없고 중립적인 고드프루아가 되었으나, 얼마 못되어 죽었다.
보에몽은 아데마르의 후임인 다임베르트와 짜고 예루살렘을 노렸으나 다임베르트는 일찌감치 온 고드프루아의 동생 보두앵에게 밀려나고, 보에몽은 무슬림들에게 붙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며 공식적으로 끝이난다.

- 사후의 십자군
십자군 군세는 지도자 중 한 명인 아데마르를 잃고 제후의 대립이 그치지 않은 상황에서 식량 부족 때문에 예루살렘으로의 전진은 정지되었다.
다른 제후들과는 달리 아데마르에 대해 표면적으로 대립하는 자들은 없었기에 정신적 지도자인 아데마르의 부재는 십자군의 지휘계통에 있어 커다란 타격이었다.
하급병사들의 경우엔 아데마르가 지도자라고 생각하는 맘이 계속되어, 이후 1099년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아데마르의 영혼이 나타나 성벽의 주위를 행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라고 주장하는 병사도 있었다.
실제 성벽의 주위를 돌았던 군세는 도중에 성벽의 약점을 발견하고, 이곳을 통해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