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 : 세계적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과 후학들의 20년에 걸친 필생의 대화와 논쟁
프리먼 다이슨 / 생각의길 / 2017.8.28
지난 1993년 4월 6일. 세계적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 편지는 미국 어느 대학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강좌의 수강생 마흔여섯 명이 보낸 편지였다. 학생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가 실제로 답장을 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자유롭게 정부의 핵 정책, 일반 과학기술과 환경 지속가능성, 과학과 종교의 역할 등에 관해 질문했다. 놀랍게도, 편지를 받은 프리먼 다이슨은 사흘 만에 답장을 주었다.
그렇게 1993년에 시작된 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는 20년 이상 학문적.개인적 교류로 이어졌다. 2014년에 수강한 어떤 학생은 그동안 편지로 주고받은 ‘과학 강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 수업의 학생들은 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질문을 이어왔다!” 프리먼 다이슨 교수 역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개인적 이야기를 사례로 들며 후학들에게 가깝게 다가가 ‘과학, 기술, 인간 종교, 사회, 나아가 삶과 우주 속 지구의 의미’에 대해 함께 대화했다.
드와이트 교수는 ‘존중, 정직함, 의구심, 열정’이 담긴 이 강의의 기록을 책으로 엮어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했고, 프리먼 다이슨과 후학들이 20여 년에 걸쳐 주고받은 필생의 대화와 논쟁은 이렇게 <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라는 한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 목차
들어가는 글 7
감사의 글 10
01 다이슨으로부터 온 첫 번째 편지 14
놀라운 교류의 시작
02 질문과 함께 살아가기 27
이 수업은 정답을 찾지 않습니다
03 과학은 육면체다 68
과학을 싫어하는 세 가지 이유, 사랑하는 세 가지 이유

04 마사와 메리에게 98
선택의 기로에 선 젊은이를 위하여
05 영혼이 있는 엔진 140
우리가 쓰는 기계에 관한 토론
06 원격 조종 169
정체성과 통일성에 관한 대화
07 모기가 일으킨 전쟁 189
전쟁과 테러의 목적과 수단
08 세계 2차 대전과 원자 폭탄 225
핵무기에 대한 반성
09 어리석음이라는 것에 대하여 265
세계 2차 대전과 경제의 군사화
10 우주를 향한 무한한 상상 309
한 점의 지구에서 쓰는 편지
11 핵무기 실험장의 완벽한 정적 338
정적의 재발견
12 기계톱과 떡갈나무 이야기 353
회색기술과 녹색기술
13 “내가 왜 신경을 써야 하죠” 392
가치와 윤리에 대한 논쟁
14 누가 신이 되려 하는가 420
유전공학과 복제
15 시공간을 초월한 연대 450
과학이 만드는 다양한 관계
16 세상을 대하는 두 개의 눈 490
과학과 종교의 이름으로
17 과학과 종교를 향한 극단주의 516
두려움과 모순의 원칙
18 대지와 천공의 꿈 541
의식과 무의식
19 할아버지와 함께 걷기 566
삶의 우선순위에 관한 고백

○ 저자소개 : 프리먼 다이슨
20세기의 과학 부흥을 이끈 천재 물리학자이며 미래학의 전설이다. 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으로 양자역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오리온 프로젝트’에서 핵 펄스 추진 로켓을 담당해 인류의 외우주 탐사에 이정표를 제시했다. 한편으로는 항성 에너지를 완벽하게 활용하는 ‘ 다이슨 구체’를 고안하여 인류 문명의 장기적 생존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프리먼 다이슨은 과학계의 동향이나 이론, 연구 프로젝트를 강연과 책을 통해 대중과 공유함으로써 젊은 과학자들과 과학 콘텐츠 작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인류와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향후 전략을 수립하는 데 정통했는데, 이 전략 역시 미국 정부와 전 세계 민간기구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지금도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주제로 강연 및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 지식과 사고를 이 책에 담았다. 프리먼 다이슨은 물리학, 수학, 생명공학, 천문학 등에서 역사에 남을 여러 업적을 남겼다. 그 결과 로렌츠 메달(1966년), 하비상(1977년), 울프상(1981년), 마테우치 메달(1989년), 엔리코 페르미상(1993년), 템플턴상(2003년) 등을 수상했다. 프리먼 다이슨은 ‘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으로 수차례 노벨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는 못했다. 이를 두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노벨위원회가 다이슨을 밀어냈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살아 있는 지성이라 불리는 프리먼 다이슨은 20세기 인류 역사의 분수령이 되는 순간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전략폭격 사령부에서 분석가로 활동했고 전후에는 프린스턴대학 등 여러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담당했으며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와 미국 물리학협회,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 런던 왕립학회에서 활동했다.
– 엮은이: 드와이트 E. 노이엔슈반더
1952년 로스웰, 뉴멕시코에서 태어나 1976년 남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 학위를 받았다. 이후 아리조나 주립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미시간 주립대학, 서던내저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물리학생회와 ‘시그마 피 시그마’ 클럽에서 지도하며, 특히 물리학생회의 출간물을 기획, 편집했고 후학 양성의 헌신을 인정받아 시곤달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물리학부생들을 위한 물리학 책을 다수 집필했다.
최근에는 20여 년간 프리먼 다이슨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교양강좌를 이끌었던 기록을 《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라는 책으로 펴내어 많은 주목을 받았다.
– 역자: 하연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과를 졸업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너무 무서워서 잠 못 드는 공학 이야기』, 『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 『프랑스 아이들은 왜 말대꾸를 하지 않을까?』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뜯어먹는 영어일기』가 있다.

○ 출판사 서평
세계적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과 후학들의 20년에 걸친 필생의 대화와 논쟁! 전쟁 기기의 부품이 된 과학자의 길에 관한 깊은 인류적 성찰과 반성, 그가 우리에게 던진 <마지막 강의>!
- <과학과 기술, 삶과 종교>에 관한 세계적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의 <과학 강의>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지난 1993년 4월 6일. 세계적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 편지는 미국 어느 대학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강좌의 수강생 마흔여섯 명이 보낸 편지였다. 학생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가 실제로 답장을 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자유롭게 정부의 핵 정책, 일반 과학기술과 환경 지속가능성, 과학과 종교의 역할 등에 관해 질문했다. 놀랍게도, 편지를 받은 프리먼 다이슨은 사흘 만에 답장을 주었다. 해당 대학의 드와이트 교수는 그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다이슨 교수는 단순히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수준을 넘어, 관련된 이야기와 그의 경험을 제시하며 성심껏 응대해줬다. 우리는 토론에서도 주로 서로의 체험을 공유했다. 맨 처음 주고받은 편지에서 그는 질문 중 ‘한두 건’이 아니라 여섯 건 모두에 대해 장문의 답변을 보내왔다. 마치 오랜 세월 알고 지냈던 할아버지처럼 다이슨 교수의 어투는 다정했고 격의 없었다.”
그렇게 1993년에 시작된 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는 20년 이상 학문적 · 개인적 교류로 이어졌다. 2014년에 수강한 어떤 학생은 그동안 편지로 주고받은 ‘과학 강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 수업의 학생들은 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질문을 이어왔다!” 프리먼 다이슨 교수 역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개인적 이야기를 사례로 들며 후학들에게 가깝게 다가가 ‘과학, 기술, 인간 종교, 사회, 나아가 삶과 우주 속 지구의 의미’에 대해 함께 대화했다.
드와이트 교수는 ‘존중, 정직함, 의구심, 열정’이 담긴 이 강의의 기록을 책으로 엮어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자 했고, 프리먼 다이슨과 후학들이 20여 년에 걸쳐 주고받은 필생의 대화와 논쟁은 이렇게 《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라는 한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 그가 후학들에게 전하는 과학자의 길이란 무엇인가?
양자전기역학, 고체물리학, 천체물리학, 원자력공학 등을 넘나들었고 ‘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으로 노벨상 후보에 오른 프리먼 다이슨은 1999년 과학자 최초로 ‘템플턴상’ 수상자로 지목되었다. 종교 분야의 노벨상인 템플턴상은, 특정 신앙 전통이나 신에 대한 관념을 부각시키기보다 신의 다양한 현현(顯現)을 이해하려는 인류의 끝없는 노력과 여정을 기리는 상이며 성인 혹은 신학자만이 수상해온 상이었다. 하지만 다이슨 교수가 과학과 종교를 분리하지 않고, 끊임없이 그 타협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후학들에게 모범이 되면서 수상자로 지목된 것이었다. 이듬해 5월, 템플턴상 수상 연설에서 다이슨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과 종교는 사람들이 저 거대한 우주를 고찰하고, 우주 안에 속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해 들여다보는 두 개의 창입니다.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질문은 ‘지속되는 과학 혁명을 통해 빈부 격차가 격심해지지 않고 모든 이들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입니다. 기술이 부유층의 심심풀이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윤리를 기반으로 적용, 발전되어야 합니다. 과학과 종교가 손잡고 현대에 만연한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다이슨 교수는 이렇게 과학과 종교를 가르지 않고 인류를 위해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스스로 실천하는 삶으로, 올바른 과학자의 길을 찾기 위해 분투하는 후학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 전쟁 기기의 부품이 된과학자의 길에 관한 깊은 인류적 성찰과 반성, 그가 우리에게 던진 <마지막 강의>
《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는 과학자의 윤리와 행동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만드는 프리먼 다이슨의 값진 마지막 강의다. 후학들은 이 위대한 과학자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고, 다이슨 역시 어떤 질문도 소홀히 다루지 않았다. 다이슨 교수는 냉전시대였던 1960년대 미국의 군비규제 및 군축 정책과 국제교섭을 담당하는 미국 군축청과 함께 (구)소련 정책을 연구한 적이 있다.
다이슨 교수는 1939년, 2차 대전 발발이 임박했을 때 유럽연합군의 폭격부대 사령부에서 일하며 자신의 기술을 총 동원해 전쟁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1944년 1월,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후에야 ‘공군력을 통한 승리’라는 폭격부대 사령부의 낙관적 슬로건이 환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같은 나이 또래 군인 수천 명이 사지로 내몰리는 동안 자신은 안락한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프리먼 다이슨은 끝없는 죄책감과 내적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2001년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여름학기 수강생들이 당시의 심정을 물었고, 다이슨 교수는 저서를 인용하며 그때의 경험을 이렇게 회상하고 반성한다.
“전쟁이 끝난 뒤 아이히만이 이끈 나치 친위대 고위 간부들에 대한 재판 기사를 읽었다. 그들은 사무실에 앉아 사람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는지 계산하며 제안서를 작성했다. 내가 했던 짓이었다. 다만 그들은 전범으로 감옥에 가거나 교수대에 섰고 나에겐 자유가 주어졌다는 점이 달랐다. 나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꼈다. 아마도 대부분은 내가 폭격사령부를 혐오했듯 나치를 혐오하면서도 나처럼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대부분은 나처럼 전쟁이 지속된 6년 내내 시신을 직접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다이슨 교수는 전쟁기기의 부품이 된 자신을 격하게 비판했다. 그는 전쟁 초기만 해도 간디의 추종자로서 비폭력을 지지했던 자신이 전쟁 확대와 함께 수용 불가능했던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고 설명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자신의 모습에 대해 다이슨 교수는 이렇게 전한다. “윤리적 원칙을 하나둘씩 버리다 보니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처럼 프리먼 다이슨은 후학들의 질문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가며 그가 직접 겪은 경험과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자기반성과 성찰로 응대했다. 이 책은 과학자도 사람이기에 세계에 대한 어떤 철학과 자기 견해를 가지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하게 증언할 뿐만 아니라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과학 강의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