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5년 2월 18일, 티무르 제국 (Timurid Empire)의 창시자 티무르 (Timur: 티무르 베그 구르카니, 1336 ~ 1405) 서거
티무르 베그 구르카니 (Timur, 우: Amir Temur ko‘ragoniy ibn Amir Tarag‘ay ibn Amir Burqul, 1336년 4월 9일 ~ 1405년 2월 18일)는 중앙아시아의 튀르크몽골인군사 지도자이며, 티무르 제국의 창시자 (재위: 1370년 ~ 1405년)이다. 그의 이름은 본래 투르크·몽골어계 인명인 테무르이나, 그것의 페르시아어형인 티무르라는 표기로 더 많이 쓰인다. 유럽권에서는 태멀레인 또는 타메를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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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무르 (Timur)
.출생: 1336년 4월 8일, 차가타이 칸국 케쉬 (현, 샤흐리 삽즈)
.사망: 1405년 2월 18일, 우트라르
.매장지: 사마르칸트, 구리 아미르
.왕조: 티무르 왕조
.배우자: 사라이 물크 카눔, 출판 물크 아가, 알자즈 투르칸 아가, 투칼 카눔, 딜 샤드 아가, 투먼 아가, 등
.자녀: 자한기르, 우마르 셰이크, 미란 샤, 샤 루흐
.종교: 이슬람교
* 구르칸의 제1대 아미르
.재위: 1370년 4월 9일-1405년 2월 14일
.대관식: 1370년 4월 9일, 발흐
.전임: (신설) / 후임: 피르 무함마드 이븐 자한기르, 할릴 술탄 이븐 미란 샤, 샤 루흐 미르자
.휘: 아미르 티무르 코라고니 이븐 마이르 타라가이 이븐 아미르 부르쿨
.별호: 절름발이 티무르 (Tamerlane, 타메를란)
○ 이름
티무르’는 몽골어 ‘테무르 (Temür, 현대 우즈베크어로는 ‘Temur’)’의 이란어형이다. 테무르는 철 (鐵)을 의미하는 몽골어에서 나온 것으로, 투르크-몽골인들의 이름에 흔히 사용되었다. 철(鐵)이라는 뜻의 테무르는 현대 투르크어에서 테미르 (temir)로 변형되어 그대로 통용되고 있고 남성의 이름에 자주 사용되고 있다.
티무르의 시대의 투르크-몽골의 전통은 칭기즈 칸의 후예가 아닌 사람이 한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한을 자칭할 수 없었다. 그는 대신 ‘아미르’(지휘관)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때때로 그 앞에 ‘부주르그 (buzurg)’ 또는 ‘칼란 (kalān)’, 즉 ‘위대한’을 붙여 ‘위대한 아미르’라 했다.
그가 칭기스 칸의 후손들을 허수아비 칸으로 세워 그의 이름으로 통치한 뒤에는 ‘부마‘ (몽: хүргэн/kürügän)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이는 ‘사위’라는 의미인데, 그가 칭기스 가문의 공주와 결혼했기 때문에 이런 호칭을 사용할 수 있었다. 티무르의 후손들인 무굴 제국의 군주들은 이를 근거로 스스로의 왕조를 ‘구르칸 (Gurkān) 왕조’라고 불렀다.
이란의 사서들에서 그는 티무리 랑 (Tīmūr-i Lang)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절음발이 티무르라는 의미이다. 그의 적들은 그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싶을 때 그를 이렇게 불렀다. 유럽에서 그를 부를때 사용하는 태멀레인 (Tamerlane)은 ‘티무리 랑’의 변형이다.
○ 배경
1340년대 차가타이 칸국은 동과 서로 분열되었다. 마 와라 알나흐르를 중심으로 한 서부 지역에서는 1346년에 유력한 아미르인 카자간이 군주인 카잔 한을 살해하고 실권을 잡았다. 권력을 장악한 카자간은 헤라트와 인도 방면에 대한 원정을 기도했지만, 1358년에 암살당하고 만다. 카자간의 죽음이후 마 와라 알나흐르 지역은 다시 무정부 상태로 돌아갔다. 이때 동차가타이 한국에서는 투글루크 티무르가 한으로 즉위하면서 칸의 권력이 확고하게 되었다. 투글루크 티무르는 이슬람을 수용하고 카자간의 암살 이후 혼란에 빠진 마 와라 알나흐르에 두 번이나 진군해 차가타이 울루스를 재통일했다. 티무르가 역사의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때이다.
티무르가 속한 바를라스부는 칭기스 칸이 차가타이에게 부여한 4개 천호의 하나이다. 티무르의 가문은 바를라스부의 명문에 속했지만, 티무르가 태어날 무렵에는 소수의 하인을 거느린 가문에 불가했다. 그러나 그의 가문의 사회적 명망은 아주 높았었다. 그의 가문은 칭기스 가문과 공통적인 조상을 가지고 있었다. 또, 티무르의 아버지 아미르 타라가이는 부유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바를라스부 내부에서는 존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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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젊은 시절 티무르는 차가타이 한국의 동서분열과 혼란을 틈타 하인들을 데리고 가축을 약탈하는 도적질을 일삼았지만, 뛰어난 군사지휘자로서 그 재능을 발휘하면서 서서히 인망을 모아 서차가타이 한국의 유력자로까지 성장하였다.
1360년 동 차가타이 한국의 투그르 티무르가 침공하자 티무르는 그에게 복종하여 발라스부의 옛 영지를 하사 받았다. 그러나 곧 동 차가타이 한국을 배신하고, 카라우나스부의 아미르 후사인과 결탁하여 세력을 확대해 본거지로써 사마르칸드를 손에 넣었다. 이 기간 전장에서 다리 한쪽을 다쳐 ‘절름발이 티무르’를 뜻하는 Tīmūr-i Lang이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서양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이 되어 타멜랑 (또는 타메렝, 크리스토퍼 말로위 [Christopher Marlowe]에 따르면 타메를란 [Tamerlane])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 후 패권을 둘러싸고 후사인과 대립하여 1369년에 후사인의 본거지 발흐를 공격해 후사인을 죽이고 트란스옥시아나의 패권을 장악한 뒤 1370년에 후사인이 내세운 칸인 카불 샤를 처형하고 그 대신에 오고타이의 후예 슈르가드미슈 란 왕자를 칸으로 옹립하였다. 그해 후사인의 과부로써 칭기스칸의 자손이기도 한 왕녀를 왕비로 맞이하여 칭기스칸 가문의 사위 (큐레겐)를 자칭했다.
칭기스칸의 자손이 아닌 티무르와 그의 후계자들은 스스로 칸에 즉위하지 않고, 다른 유목부족의 장군들과 같이 아미르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명목상은 칸이었던 칭기스칸 가문의 사위로써 칸의 곁에 있는 아미르의 최고 유력자로써 권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1370년 중앙 아시아에서 티무르 가문의 권력이 확립되고, 티무르 가문에 의한 지배가 진행되면서 이를 티무르 왕조 (티무르 제국)이라고 불렀다.
티무르는 칭기스칸이 쌓아 올렸던 세계제국의 꿈을 이상으로 삼았고, 또한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투에서 승리를 계속해, 전리품을 휘하의 여러 부족에게 분배해 주어야 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에 대외 원정을 계속 되풀이하였다. 트란스옥시아나를 통일한 후 10년간 동 차가타이 한국을 지배한 모그리즈탄 (동 투르크스탄)에 원정을 되풀이해, 코기란트 부족이 지배하던 호라즘을 병합하고, 주치의 후예 토그타미슈를 지원하여 토크다미슈를 주치 우르스의 칸에 추대해주고, 주변의 여러 세력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두었다. 1380년부터는 일 한국왕조의 해체후 분열상태로 있던 이란에 진출하여 호라산을 정복하고, 1386년부터 시작된 3년간의 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등까지 지배하에 두었다.
1388년 토그타미슈가 티무르 제국을 공격한 것을 계기로 잠시 3년 전쟁을 종료한 티무르는 토그타미슈를 격파한 뒤 다시 이란에 대한 원정을 재개하여 1392년부터 시작하여 5년 전쟁에서 무자파르 왕조를 멸망시키고 이란 전역을 지배하에 두게 되었다. 바그다드에 입성하여 맘루크 왕조와 대치하게 된 티무르는 여기서 북상하여 카프카스를 넘어 토크타미슈를 격파하여 볼가강 유역에까지 진군하여 주치 우루스의 수도 사라이를 파괴하고 루시제국 (諸國)까지 침입한뒤 1396년에 귀환했다.
1398년 티무르는 인도 원정을 결심하고, 델리 술탄 왕조를 격파하고 델리를 점령했다. 1399년 시작된 7년 전쟁에서는 아제르바이잔에서 반란을 일으킨 3남 미란 샤를 굴복시키고, 그루지아, 아나톨리아 동부에서 시리아로 들어가서 다마스커스를 점령하고, 거기서 이라크로 전진해 모술을 정복했다. 1402년 중앙 아나톨리아에 진출한 티무르군은 앙카라 전투에서 바예지드 1세가 이끄는 오스만 제국군을 격파하여 오스만 제국의 확대를 저지하고, 아나톨리아의 오스만 영지를 바야지드에게 영토를 빼앗겼던 옛 영주들에게 반환해 준 뒤에 귀환했다. 이 원정을 통해 몽골 제국의 서쪽 절반에 해당하는 곳이 티무르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오스만 제국, 맘루크 왕조가 티무르에게 명목상 복속하여 티무르의 지배영역은 대제국으로 발전하였다.
1404년말 티무르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명나라를 격파하여 원나라의 옛 영지를 탈환한다는 목표를 갖고 중국 원정을 개시했다. 그러나 티무르는 원정 도중에 갑자기 병이 나서 1405년 2월 오트라르에서 병사했다. 그는 죽기 직전에 맏아들 자한기르의 둘째 아들 피르 무함마드를 후계자로 지목했다.
○ 평가
티무르는 군사에 있어서는 천재적인 인물로, 생애에 걸쳐 벌인 전투에서는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정을 할 경우 특별한 이슬람교적인 문화로서의 도시건설을 할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원정은 그곳을 다스리기 위함이라기보다 약탈하고 파괴하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또한 칭기즈칸은 항복하거나 투항하는 적을 살려주었던 반면에 티무르는 투항하는 적도 여지없이 살육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티무르 1대에 쌓아올린 티무르 왕조는 그 지배도 티무르의 개성에 크게 기대고 있었고, 티무르 생전에 확고한 지배체제가 준비되지 못했다. 그 때문에 티무르의 사후 그의 제국은 급속도로 동요하고 분열되어 갔다.
○ 일화
구리 아미르 사당 (“아미르의 묘”란 뜻)에 있던 티무르의 검은돌로 된 관 속에는 “내가 이 무덤에서 나올 때, 가장 커다란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어 아무도 관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1941년 6월 19일 소련의 조사에 의해 처음으로 개봉되어 다리의 장애 등이 있음을 확인했다. 그 일이 있은 후 3일 후 바르바로사 작전 (독일에 의한 소련 침공)이 실행되어 이것이 소련에서 본 제2차 세계대전의 발단이었다. 후에 두려움을 느낀 소련에 의해 뚜껑이 납으로 용접되어, 이후 두번 다시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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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무르의 후손들
*티무르의 아들들
자한기르 b. 티무르
우마르 셰이흐 b. 티무르
미란샤 b. 티무르
샤루흐 b. 티무르
*티무르의 손자들
*자한기르의 아들들
무함마드 술탄 b. 자한기르 b. 티무르(어머니 한자다 베굼을 통해 모계로 칭기스 가문의 피를 이어받음)
무함마드 자한기르 b. 무함마드 술탄
(무함마드) 할릴 술탄 b. 무함마드 자한기르
사디 와카스 b. 무함마드 술탄
피르 무함마드 이븐 자한기르
카이두 b. 피르 무함마드
자한기르 b. 피르 무함마드
*우마르 셰이흐의 아들들
피르 무함마드 b. 우마르 셰이흐(어머니 마리카트 아가을 통해 모계로 칭기스 가문의 피를 이어받음)
루스탐 b. 우마르 셰이흐
이스칸다르 b. 우마르 셰이흐(어머니 마리카트 아가을 통해 모계로 칭기스 가문의 피를 이어받음)
아흐마드 b. 우마르 셰이흐(어머니 마리카트 아가을 통해 모계로 칭기스 가문의 피를 이어받음)
바이카라 b. 우마르 셰이흐(어머니 마리카트 아가을 통해 모계로 칭기스 가문의 피를 이어받음)
만수르 b. 바이카라
후세인 b. 만수르
바디 알자만 b. 후세인
무자파르 b. 후세인
*미란샤의 아들들
아바 바크르 b. 미란샤
우마르 b. 미란샤
할릴 술탄 b. 미란샤(어머니 한자다 베굼을 통해 모계로 칭기스 가문의 피를 이어받음)
술탄 무함마드 b. 미란샤
아부 사이드 b. 무함마드
술탄 아흐마드 b. 아부 사이드
술탄 마흐무드 b. 아부 사이드
술탄 마수드 b. 술탄 마흐무드
바이순구르 b. 술탄 마흐무드
술탄 알리 b. 술탄 마흐무드
미르자 칸 b. 술탄 마흐무드
우마르 셰이흐 b. 아부 사이드
자히르 알딘 무함마드 바부르 b. 우마르 셰이흐(이후 무굴 제국으로 이어짐)
자한기르 b. 우마르 셰이흐
나시르 b. 우마르 셰이흐
이칠 b. 미란샤
*샤루흐의 아들들
울루그 베그 b. 샤루흐(가우하르샤드의 아들)
압둘 라티프 b. 울루그 베그
아흐마드 b. 압둘 라티프
무함마드 주키 b. 압둘 라티프
압둘 아지즈 b. 울루그 베그
이브라힘 b. 샤루흐
압둘라 b. 이브라힘
바이순구르 b. 샤루흐(가우하르샤드의 아들)
알라 알다울라 b. 바이순구르
바이순구르
이브라힘 b. 알라 알다울라
술탄 무함마드 b. 바이순구르
야드가르 무함마드 b. 술탄 무함마드
아불 카짐 바부르 b. 바이순구르
샤 마흐무드 b. 아불 카짐 바부르
소유르가트미쉬 b. 샤루흐(어머니 마리카트 아가를 통해 모계로 칭기스 가문의 피를 이어받음)
무함마드 주키 b. 샤루흐
아바 바크르 b. 무함마드 주키
무함마드 카심 b. 무함마드 주키
티무르 제국 (Timurid Empire)에 대하여
티무르 제국 (Timurid Empire, 우: Temuriylar)은 중앙아시아에 발흥했던 정권 중 하나로서, 중앙아시아부터 이란에 걸친 지역에 있었던 이슬람 왕조 (1370년~1507년) 이다. 전성기의 판도로 북동쪽은 동투르키스탄, 남동쪽은 인더스 강, 북서쪽은 볼가 강, 남서쪽으로는 역사적 시리아・아나톨리아 방면까지 이르러, 과거 몽골제국의 서남부 지역도 지배하였다. 창시자인 티무르 재위 중에 티무르 제국이라 불렸다. 왕조의 시조 티무르는 발라스부의 출신으로 언어적으로 투르크화하고, 종교적으로는 이슬람화했다. 15세기 후반에는 사마르칸트와 헤라트의 두 정권이 남았다. 결국 16세기초에 우즈베크의 샤이반 왕조에 의해 정복당해 모두 살해당하게 되며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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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14세기 후반 서 (西)차가타이 한국 (汗國) 출신의 티무르는 스스로를 칭기즈 칸의 후손이라 칭하고 몽골 제국의 재건을 기도했다. 그는 사마르칸트에 도읍하고 1380년 카르토 왕조를 멸망시킨 뒤, 1393년에는 자라일 왕조의 군주 아마드를 바그다드에서 몰아냈으며 동서 차가타이 한국·일 한국을 병합하였고, 킵차크 한국과 북인도에 침입했다. 이어 소아시아 방면에서 일어난 오스만 투르크를 앙카라에서 격파해 구 (舊)몽골 제국의 서반부를 영유하는 제국을 건설했다. 티무르는 명(明)의 정벌을 기도했으나 원정 도중 오트라르에서 병사했다. 티무르의 사후 왕실의 상속 싸움이 계속되었는데 샤 루흐 시대에 일시 번영을 되찾았다. 하지만 울루그 베그 사후 제국의 분열이 표면화되어 사마르칸트와 헤라트에 각각의 정권이 세워져 대립하였다. 결국 우즈베크족의 침입으로 1500년에는 사마르칸트가 함락되고, 7년 뒤 헤라트도 함락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연대기 작가들은 티무르 왕조가 칭기스 칸과 티무르의 혈통을 이었다는 이유로 칭송했다.
○ 문화
수도인 사마르칸트는 국제적인 상업 도시로서 번영하여 왕년의 바그다드를 능가할 정도로 번영했다. 예술 · 문화면에서는 이란 문화의 영향이 강하고 역대 군주의 보호 및 장려에 의해서 티무르풍 (風)의 이슬람 문화가 발달했다. 건축 양식에서는 중국식의 탑과 유목 민족의 천막을 조합한 독특한 사원(寺院)이 만들어졌고, 회화 (繪畵)에서는 이란풍의 미니아튀르 (세밀화, 細密畵) 예술이 발달했다. 이란 문학에서는 시인 자미의 이름이 가장 알려졌고 아라비아 수학·천문학·의학· 지리학·역사학 등도 발달하여 이슬람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 티무르 왕조의 통치자
– 티무르 제국의 통치자
티무르 (1370년 ~ 1405년)
할릴 술탄 (1405년 ~ 1409년)
샤 루흐 (1409년 ~ 1447년)
울루그 베그 (1447년 ~ 1449년)
압드 알라티프 (1449년 ~ 1450년)
압둘라 (1450년 ~ 1451년)
아부 사이드 (1451년 ~ 1469년)
– 사마르칸트 정권
술탄 아흐마드 (1469년 ~ 1494년)
술탄 마흐무드 (1494년 ~ 1495년)
바이순쿠르 (1495년 ~ 1496년)
술탄 알리 (1496년)
바이순쿠르 (2번째, 1497년)
바부르 (1497년 ~ 1498년)
술탄 알리 (2번째, 1498년 ~ 1500년)
– 헤라트 정권
샤 루흐 (1405년 ~ 1449년)
아불 카짐 바부르 (1449년 ~ 1457년)
샤 마흐무드 (1457년)
이브라힘 (1457년 ~ 1459년)
술탄 아부 사이드 구르간 (1459년 ~ 1469년)
술탄 후세인 이븐 만수르 이븐 바이카라 (첫 번째 지배: 1469년)
야드가르 무함마드 (1469년 ~ 1470년)
술탄 후세인 이븐 만수르 이븐 바이카라 (두 번째 지배: 1470년 ~ 1506년)
바디 알자만 (1506년 ~ 1507년)
– 그 밖의 통치자
미란 샤
피르 무함마드 이븐 자한기르
자한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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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