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3년 3월 20일, 잉글랜드의 왕 • 랭커스터 가문의 창시자이자 플랜태저넷 왕조의 왕 헨리 4세 (Henry Ⅳ, 1366 ~ 1413) 타계
헨리 4세 (Henry Ⅳ, 1366년 4월 3일 ~ 1413년 3월 20일)는 잉글랜드의 왕이다. 랭커스터 가문의 창시자이자 플랜태저넷 왕조의 왕으로 에드워드 3세의 손자이며 존 곤트의 아들이다. 1398년 사촌인 리처드 2세에게 쫓겨나기도 하였지만 후에 의회의 지지로 왕위에 오름으로써 랭커스터 왕가를 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헨리 4세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귀족 가운데 왕위를 노리는 사람이 많이 생기고 음모와 반란이 계획되어 이를 막기 위해 몹시 고생하였다.
흑태자 에드워드의 친동생 라이오넬 앤트워프의 외손들이 살아있어 정통성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헨리 4세는 자신이 헨리 3세의 아들 꼽추 에드먼드의 후손인 점을 내세워 정통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귀족들의 반란 외에도 웨일스의 분리독립 봉기가 발생, 이를 진압하였다.

– 헨리 4세 (Henry IV)
.이름: 휘볼링브로크의 헨리 플랜태저넷 (Henry Plantagenet of Bolingbroke)
.출생: 1367년 4월 15일, 잉글랜드 링컨셔 볼링브로크 성
.사망: 1413년 3월 20일,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궁
.매장지: 켄터베리 대성당
.왕조: 플랜태저넷
.가문: 랭커스터
.부모: 부) 곤트의 존, 모) 랭커스터의 블란체
.배우자: 마리 드 보헌, 나바라 왕녀 호아나
.자녀: 헨리 5세, 클래런스 공작 토머스, 베드퍼드 공작 존,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 팔츠 선제후비 블랑슈, 덴마크 왕비 필리파
.형제자매: John Beaufort, 1st Earl of Somerset, Joan Beaufort, Countess of Westmorland 등
.종교: 로마 가톨릭교회
*잉글랜드 국왕, 아일랜드 영주
.재위: 1399년 9월 30일 ~ 1413년 3월 20일
.대관식: 1399년 10월 13일
.전임: 리처드 2세 / 후임: 헨리 5세
*아키텐 공작
.재위: 1399–1400
.전임: 존 2세 / 후임: 헨리 5세
*랭커스터 공작
.재위: 1399년
.전임: 곤트의 존 / 후임: 몬머스의 헨리
*노샘프턴 백작
.재위: 1384년–1399년
.전임: 험프리 드 보헌 / 후임: 스태퍼드 백작부인 글로체스터의 앤
*잉글랜드의 최고궁내경
.재위: 1399년
.전임: 곤트의 존 / 후임: 랭커스터의 토머스

○ 생애 및 활동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에드워드 3세의 4남 랭커스터 공작 곤트의 존과 블랜치의 삼남이다.
사촌동생 리처드 2세로부터 해리퍼드 공작, 더비 백작에 봉해졌는데 아버지 곤트의 존이 실권을 쥐고 있을 때는 별 행동을 하지 않았다.
1386년 곤트의 존이 카스티야로 원정을 떠나자 헨리 4세는 정계에 입문해 리처드 2세에게 반대했다.
그는 토마스 드 모브레이와 함께 청원파의 일원이 되었으며 리처드 2세의 총신들을 범법자로 규정하고 왕에게 이를 강요했다.
이에 리처드 2세는 격노했고 이에 1390년 헨리 4세는 화를 피할 겸 리투아니아와 프로이센으로 십자군 원정을 떠났으나, 리처드 2세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1398년 리처드 2세는 헨리 4세와 노퍽 공작 토마스 드 모브레이와의 불화를 구실로 국외로 추방해 버렸다.
- 즉위
1399년 곤트의 존이 죽자 리처드 2세는 랭커스터 영지를 몰수하고 헨리 4세의 재산을 빼앗았다.
그런데 아직 정국이 안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아일랜드 방문을 강행했고 이 틈을 타 헨리 4세는 잉글랜드를 침략해 뒤늦게 돌아온 리처드 2세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그를 퇴위시켰다.
이어 헨리 4세로 즉위했으며 자신이 헨리 3세와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인 점을 이용해 왕위 찬탈을 정당화시켰다.
- 귀족들의 위협
하지만 결국 찬탈자였기에 몇몇 귀족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고 위협했다.
1400년 리처드 2세의 지지자들이 꾸민 음모를 막아내고, 연달아 일어난 반란을 제압하며 상당히 고생스럽게 왕위를 유지했다.
헨리 4세의 건강이 나빠지자 헨리 4세의 이복동생이자 곤트의 존의 사생아 가문인 보퍼트 가문과 그의 후계자 몬머스의 헨리와의 파벌이 형성되었다.
이에 헨리 4세와 몬머스의 헨리의 사이가 나빠졌으나, 몇 개월 후 헨리 4세가 죽으면서 몬머스의 헨리가 헨리 5세로 즉위했다.
그의 치세 때 엘섬 팰리스에서 1400년 12월부터 1401년 2월까지 동로마 제국의 황제 마누일 2세를 맞이한 뒤 함께 마상창시합도 한 적 있는데, 그는 잉글랜드 땅을 밟아본 유일한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다[7]. 헨리 4세는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마누일에게 금전적 지원을 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말년
헨리 4세는 1408년부터 나병으로 짐작되는 피부병에 걸렸다. 그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되었고, 1410년부터 1411년까지 정부 업무에 전혀 관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장남인 몬머스의 헨리가 아버지를 대신해 섭정했고, 아르마냐크파와 내전을 치르던 중이던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을 지원하기 위해 잉글랜드군을 프랑스로 파견했다. 그러나 1411년 병세에서 어느 정도 회복한 헨리 4세는 장남 헨리의 권세가 지나치게 강해져 사실상 잉글랜드의 통치자가 된 것에 반감을 품었고, 그 대신 차남 토머스를 총애했다. 그는 헨리를 정계에서 퇴출시킨 뒤 1412년 7월 9일에 토머스를 클라렌스 공작에 세우고 중용했다.
토머스 왕자는 아버지를 설득해 1412년 5월 18일 아르마냐크파와 부르주 조약을 체결하도록 했다. 이에 따르면, 아르마냐크 파는 잉글랜드로부터 부르고뉴 파에 대적할 자금과 병력을 제공받는 대가로 아키텐에 대한 주권을 헨리 4세에게 양도하기로 했다. 1412년 6월 8일 잉글랜드군 사령관에 선임된 토머스는 그해 8월에 4천 또는 8천 가량의 병력을 이끌고 아르마냐크파를 돕기 위해 프랑스로 향했다. 그는 코탕탱 판도의 생발라후그에 상륙한 뒤 프랑스 서부를 횡단하며 루아르 강 남쪽 일대를 황폐화시켰다. 이후 부르주에서 아르마냐크파의 명목상 수장이었던 오를레앙 공작 샤를 1세 도를레앙과 합류했다. 한편, 아르마냐크 지도자들은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 1세와 평화 협약을 맺었고,11월 14일에 체결된 부장세 협약에 따라 21만 에퀴를 잉글랜드에 지불해야 했다. 토머스는 이 원정으로 인해 명성과 이익을 많이 확보했다.
1413년 3월 20일, 중병을 앓던 헨리 4세가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예루살렘 방에서 사망했다. 부르고뉴 연대기 작가 앙게랑 드 몽스트렐레(Enguerrand de Monstrelet)에 따르면, 죽어가는 헨리 4세 옆 소파에 왕관이 놓여 있었는데, 왕의 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자 근처에 있던 시종들은 왕이 죽은 줄 알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도착한 몬머스의 헨리 왕자는 왕관을 들고 방을 나갔지만, 얼마 후 시트 밑에서 한숨이 들렸다. 하인들은 실수를 깨닫고 시트를 뒤로 젖혔다. 왕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왕관이 어디로 갔는지 물었다. 시종들로부터 왕자가 왕관을 가지고 갔다는 말을 듣자, 왕은 아들을 불러 왜 왕관을 가져갔느냐고 물었다. 이에 헨리 왕자가 말했다.
“이 사람들이 왕께서 돌아가셨다고 나에게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장자이고, 당신이 죽은 후에는 당신의 왕국과 왕관이 모두 내 것이었으므로 내가 그것을 차지했습니다.”
헨리 4세가 답했다. “그 왕관은 아직 네 것이 아니다. 내 것도 아니었지만.”
헨리 왕자가 말했다. “저는 아버지처럼 검으로 왕국을 지키겠습니다.”
헨리 4세가 답했다. “그렇게 해라. 나머지는 하느님에게 맡길 것이다. 그 분이 내게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간구해다오.”
그후 헨리 4세는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훗날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시대극 <헨리 4세>에서 이 이야기를 차용했다. 하지만 현대 학자들은 이 이야기의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 헨리 4세의 유해는 전임 국왕들과는 달리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아니라 캔터베리 대성당에 묻혔다. 훗날 그의 2번째 아내인 나바라의 호아나의 유해도 그와 함께 묻혔다. 헨리 4세의 무덤 옆에는 토머스 베켓의 무덤이 있다.
○ 가족관계
.부모: 곤트의 존, 랭커스터의 블란체
.형제자매: John Beaufort, 1st Earl of Somerset, Joan Beaufort, Countess of Westmorland 등
.배우자: 마리 드 보헌, 나바라 왕녀 호아나
.자녀: 헨리 5세, 클래런스 공작 토머스, 베드퍼드 공작 존,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 팔츠 선제후비 블랑슈, 덴마크 왕비 필리파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