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년 2월 18일, 이탈리아의 화가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1390/95 ~ 1455) 별세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1390/95년 ~ 1455년 2월 18일)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이다. 원래 이름은 귀도 디 피에트로 (Guido di Pietro)이다. 바사리 (Vasari)의 기록에 따르면 ‘이 헌신적인 수도사는 기도치 않으면 붓을 들지 않았고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그릴 때면 언제나 볼에 눈물이 흘렀다’고 하는데, ‘천사와 같은 수도사 (Fra Angelico)’이라는 말은 당시 수도사들의 그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었고 오늘날도 그렇게 불린다. 1417년 San Niccolo di Bari의 형제회에 가입했고, 1418년 Santo Stefano al Ponte의 제단화를 그렸다는 기록이 있어 그가 수도사로서 살기 전 평신도 화가로 활동했음이 밝혀졌다. 1418/20년 Firenze 근교 Fiesole의 San Domenico 수도원의 성직자가 되었고 후에 수도원장이 되었다. 프레스코화에 뛰어났으며 피렌체파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작품으로 <수태 고지>, <성모의 대관>, <최후의 심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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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출생: 1390/95년
.사망: 1455년 2월 18일
.직업: 화가, 채식사, 제도사
.종교: 가톨릭
.사조: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 르네상스
.형제: Benedetto da Fiesole
.주요 작품: Cortona Triptych, 니콜리나 경당, Fiesole Altarpiece, San Marco Altarpiece, Annunciation
프라 안젤리코 (Fra Angelico), 곧 천사 같은 수도자 화가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안젤리코는 맑은 심성, 깊은 신심에 뿌리내린 삶에서 우러나온 영성적인 체험이 녹아 있는 많은 종교화들을 남겼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주로 활동했던 그의 원래 본명은 귀도 디 피에트로 (Guido 야 Pietro), 혹은 조반니 다 피에솔레 (Giovanni da Fiesole)라고도 불렸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사 신부로서 그의 생애는 수도자로서의 성덕과 화가로서의 재능이 조화를 이룬 것이었다.
그에게 프라 안젤리코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준 것은 유명한 시인이자 라틴어 학자인 코렐라의 도미니코 (Domenico da Corella) 신부가 그를 ‘천사 같은’ (angelic) 화가라고 부른데서 비롯됐다. 여기서 ‘프라’는 ‘수도자’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프라테’ (frate)의 줄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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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및 활동
이탈리아 피렌체 근교의 비키오 (Vicchio)라는 곳에서 1400년에 태어난 안젤리코는 1417년 형 베네데토와 함께 피렌체의 한 필사본 작업장에서 일했다. 여기에서 형은 필사가로 안젤리코는 채색 화가로 교육을 받았다.
20세 때 그는 형과 함께 피에솔레 (Fiesole)의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했으나 얼마 뒤 코르토나 수도원으로 옮겨 10여년 동안 코르토나, 토리노, 피에솔레 등에서 지냈다. 당시 안젤리코는 조반니 다 피에솔레라는 이름으로 작품 활동을 했고, 신앙심 깊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 뒤 1463년에 피렌체의 성 마르코 수도원으로 옮겨 생활했다.
당시의 유럽 사회는 교회의 대분열과 흑사병 등으로 인해 엄청난 혼란기를 겪고 있었는데, 안젤리코는 교회와 수도원 개혁을 주도했던 도미니코회의 복자 요한 도미니치, 베드로 카푸치, 리파 프라타의 라우렌시오, 피렌체의 성 안토니오 등과 함께 생활했다. 피렌체의 성 안토니오는 특히 후일 자신이 피렌체의 주교가 됐을 때 성 마르코 수도원의 프레스코화를 보고 “천국을 보지 않고서는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경탄했다고 한다.
1445년에는 교황 에우제니오 4세 (1431~1447)의 부름을 받아 베드로 대성전의 경당과 바티칸 궁내에 있는 경당 및 니콜라오 5세 교황 (1447~1455)의 방에 프레스코화를 그렸는데, 현재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파손됐다.
1447년에는 오르비에토 주교좌 성당의 프레스코화를 제작했다.
그는 재능을 인정받아 화가로서 높은 명성을 누렸지만 정작 일상 삶에서는 청렴한 생활을 유지했다. 교황 니콜라오 5세가 자신을 피렌체의 대주교로 임명하고자 했을 때에도 그는 같은 수도회의 다른 신부를 적극 추천하기도 했다.
1450년경 피렌체로 돌아간 그는 약 2년 동안 피에솔레 수도원 원장을 역임하고 1453년 경 다시 로마에 왔다가 이곳의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1455년 2월 18일 세상을 떠나 산타 마리아 델라 미네르바 성당에 안치됐다.
1960년에 시복됐고 198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에 대한 공식적인 전례를 승인했으며, 1984년에는 예술가와 미술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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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세계
안젤리코가 화가로서 활동하던 시기는 피렌체에 르네상스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때였기 때문에, 그의 초기 작품에는 장식적이고 우아한 고딕양식의 영향과 보다 사실적인 묘사에 충실했던 르네상스 양식이 결합되어 있다. 성서와 성인의 이야기를 다룬 교회적인 내용이 주된 주제였으며, 여러 성당과 수도원을 위하여 제단화를 비롯한 많은 종교적인 작품을 제작하였다. 안젤리코는 그림을 통해 예수를 더욱 충실히 전달하려했고, 자신이 묵상하고 체험한 종교적인 영성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을 찬미하고자 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형식적인 면에서 일련의 변화를 보였는데, 초기에는 등장인물의 의상 등에 나타난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장식, 황금색의 사용 등 고딕적인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러나 인체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명암법, 단축법, 원근법에 매우 충실했고, 당시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등 르네상스 시기의 새로운 흐름에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젤리코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438~1445년, 산 마르코 수도원에서 작업한 그림들에는 급격한 변화를 보인다. 색채는 극히 제한되고 구성은 단순해지며 배경묘사도 사라진 압축적이고도 간결한 표현이 주를 이루는데, 이는 수도자들의 명상과 기도를 돕기 위하여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곳에서 안젤리코는 건축과 회화를 조화시킨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수도원 북쪽 복도에 그려진 [예수 탄생 예고]다. 그는 이 작품을 상대적으로 어두운 곳에 위치시킴으로써 빛에 의한 효과를 극대화하였으며, 프레임을 그려 넣어 2차원의 벽에 3차원적인 환영을 부여하여 그림이 조각처럼 보이도록 하였다.
화면 전면에 가로로 세워진 기둥들은 15세기 이탈리아 회화에서 성모 마리아의 집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고린토 양식의 주두인 반면에, 대각선으로 세워진 기둥은 산 마르코 수도원 건축에 실제로 사용된 이오니아식 주두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은 예수 탄생 예고가 이루어진 곳이 성서에 기록된 대로 나자렛에 있는 마리아의 집인 동시에 수도원이라는 것을 이중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하여 수도자들에게 순명의 자세를 지닐 것을 강조하는 교훈적인 효과를 이끌어 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의 로마 시기 작품은 산 마르코 수도원 시기의 단순함과 소박함에서 벗어나 건축적이고 웅장해졌으며, 구성면에서도 한층 탄탄해진 모습을 선보였다. 종교적인 주제전달은 물론, 형식과 공간 탐구에 탁월하였던 안젤리코는 파브리아노 (Gentile da Fabriano)와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 (Domenico di Michelino)를 제자로 두었으며,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 등 그의 뒤를 따르는 피렌체의 많은 화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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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안젤리코가 활동하던 시기는 피렌체에 르네상스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초기였다. 이에 따라 그의 초기 작품에는 장식적이고 우아한 고딕 양식의 영향과 보다 사실적인 묘사에 충실했던 르네상스 양식이 결합돼 있다.
성서의 내용과 성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교회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뤘고 여러 성당과 수도원을 위해 제단화를 비롯한 많은 종교적인 작품들이 제작됐다. 그는 그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충실하게 전하고자 했고 자신이 묵상하고 체험한 종교적인 영성을 그림으로 표현함으로써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서 화가로서의 활동은 곧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었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를 그리는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형제들이 목소리나 집필로 했던 웅변적인 설교를, 그는 붓을 통해 최고의 형태로 드러냈던 것이다. 오늘날까지 그가 남긴 작품들의 교회적 가치는 다른 어떤 설교도 들리지 않는 곳에까지 웅장한 설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미니코회에서는 일찍부터 그를 복자로 존경했으며, 1904년 수도회 총회에서는 그에 대해 성인으로서의 공인을 교황청에 요청했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2년 그를 시복했다.
혹자들은 안젤리코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이나 단테의 작품들처럼 보편적인 진리를 그만의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말한다. 그는 본래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해 칭송받는 것을 원치 않고, 명예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기의 소득을 나눠주기를 즐겼고, 또한 기도를 드린 후가 아니면 결코 붓을 들지 않았다고 한다.
안젤리코는 인정받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특별한 고생을 요하지도 않았다. 그의 작품은 처음부터 칭찬받았고 그는 반세기 동안 이 도시 저 도시로 다니며 제단 장식을 비롯해 많은 그림들을 그렸다. 그가 이런 작업들을 하면서 요구한 것은 오직 하나, 온 힘을 다해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봉헌했다는 확신 뿐이었다. 그의 이러한 겸허한 삶은 앞서 언급했듯이 피렌체의 대주교직을 마다하고 오직 그림을 그리고 남는 시간은 병자를 간호하는데 바친데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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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 주요작품
예수의 부활 – 1450, 템페라, 38.5x37cm,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저승에 내려간 그리스도 – 1450, 프레스코, 183×166 cm,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무덤에 안장되는 예수와 성도미니코 -1441, 프레스코,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함 – 1439-1442, 템페라, 성마르코(성당) 제단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 템페라, 185×176 cm,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게쎄마니에서의 기도 -1450, 프레스코, 177×147 cm,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아기 예수 경배 – 1433, 템페라, 39×56 cm,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아기 예수 경배 – 1432-1434, 템페라, 23×35 cm, 코르토나 디오체사노 박물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 1432-1434, 템페라, 23×35 cm, 코르토나 디오체사노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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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arly works, 1408–1436
.Unknown
Saint James and Saint Lucy Predella, five panels, tempera, c. 1426 to 1428
.Rome
The Crucifixion, panel, c. 1420–1423, Metropolitan Museum, New York. Possibly Fra Angelico’s only signed work.
.Cortona
Annunciation, c. 1430, Diocesan Museum, Cortona
.Fiesole
Coronation of the Virgin, altarpiece with predellas of Miracles of St Dominic, Church of San Domenico, Louvre, Paris
Virgin and Child between Saints Thomas Aquinas, Barnabas, Dominic and Peter Martyr, San Domenico, 1424
Christ in Majesty, predella, National Gallery, London.
.Florence, Basilica di San Marco
Dormition of the Virgin, 1431
.Florence, Santa Trinita
Deposition of Christ, said by Vasari to have been “painted by a saint or an angel”, National Museum of San Marco, Florence.
Coronation of the Virgin, c. 1432, Uffizi, Florence
Coronation of the Virgin, c. 1434–1435, Louvre, Paris
.Florence, Santa Maria degli Angeli
Last Judgement, Accademia, Florence
.Florence, Santa Maria Novella
Coronation of the Virgin, altarpiece, Uffi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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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 Marco, Florence, 1436–1445
Altarpiece for chancel – Virgin with Saints Cosmas and Damian, attended by Saints Dominic, Peter, Francis, Mark, John Evangelist and Stephen. Cosmas and Damian were patrons of the Medici. The altarpiece was commissioned in 1438 by Cosimo de’ Medici. It was removed and disassembled during the renovation of the convent church in the seventeenth century. Two of the nine predella panels remain at the convent; seven are in Washington, Munich, Dublin and Paris. Unexpectedly, in 2006 the last two missing panels, Dominican saints from the side panels, turned up in the estate of a modest collector in Oxfordshire, who had bought them in California in the 1960s.
The Deposition from the Cross, Museo San Marco
The Madonna enthroned with Saints Cosmas and Damian, Saint Mark and Saint John, Saint Lawrence and three Dominicans, Saint Dominic, Saint Thomas Aquinas and Saint Peter Martyr; San Marco, Florence
Altarpiece ? – Madonna and Child with Twelve Angels (life sized); Uffizi.
Altarpiece – The Annunciation
San Marco Altarpiece
Two versions of the Crucifixion with St Dominic; in the Cloister
Very large Crucifixion with Virgin and 20 Saints; in the Chapter House
The Annunciation; at the top of the Dormitory stairs. This is probably the most reproduced of all Fra Angelico’s paintings.
Virgin Enthroned with Four Saints; in the Dormitory passage
Each cell is decorated with a fresco which matches in size and shape of the single round-headed window beside it. The frescoes are apparently for contemplative purposes. They have a pale, serene, unearthly beauty. Many of Fra Angelico’s finest and most reproduced works are among them. There are, particularly in the inner row of cells, some of the less inspiring quality and of the more repetitive subject, perhaps completed by assistants. Many pictures include Dominican saints as witnesses of the scene each in one of the nine traditional prayer postures depicted in De Modo Orandi. The friar using the cell could place himself in the scene.
The Adoration of the Magi
The Transfiguration
Noli me tangere
The Three Marys at the Tomb.
The Road to Emmaus, with two Dominicans as the disciples
The Mocking of Christ
There are many versions of the Crucifix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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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te works, 1445–1455
.Orvieto Cathedral
Three segments of the ceiling in the Cappella Nuova, with the assistance of Benozzo Gozzoli.
Christ in Glory
The Virgin Mary
The Apostles
.Niccoline Chapel
The Chapel of Pope Nicholas V, at the Vatican, was probably painted with much assistance from Benozzo Gozzoli and Gentile da Fabriano. The entire surface of the wall and ceiling is sumptuously painted. There is much gold leaf for borders and decoration, and a great use of brilliant blue made from lapis lazuli.
The Life of St Stephen
The Life of St Lawrence
The Four Evangeli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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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scovery of lost works
Worldwide press coverage reported in November 2006 that two missing masterpieces by Fra Angelico had turned up, having hung in the spare room of the late Jean Preston, in her terrace house in Oxford, England. Her father had bought them for £100 each in the 1960s then bequeathed them to her when he died. Preston, an expert medievalist, recognised them as being high-quality Florentine renaissance, but did not realize that they were works by Fra Angelico until they were identified in 2005 by Michael Liversidge of Bristol University. There was almost no demand at all for medieval art during the 1960s and no dealers showed any interest, so Preston’s father bought them almost as an afterthought along with some manuscripts. The paintings are two of eight side panels of a large altarpiece painted in 1439 for Fra Angelico’s monastery at San Marco, which was later split up by Napoleon’s army. While the centre section is still at the monastery, the other six small panels are in German and US museums. These two panels were presumed lost forever. The Italian Government had hoped to purchase them but they were outbid at auction on 20 April 2007 by a private collector for £1.7M.] Both panels are now restored and exhibited in the San Marco Museum in Flo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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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