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3년 2월 28일,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에켐 드 몽테뉴 (Michel de Montaigne, 1533 ~ 1592) 출생
미셸 에켐 드 몽테뉴 (Michel de Montaigne, 1533년 2월 28일 – 1592년 9월 13일)는 프랑스 철학자, 사상가, 수필가이다.
몽테뉴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프랑스 페리고르 지방의 몽테뉴 성(城)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라틴어로 교육을 받고 소년 시절에는 당시 프랑스에서 유명한 보르도 시의 기엔느 중학교에 다니면서 고전 공부에 열중했다. 16세부터 툴루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24세에 보르도 고등법원의 재판관이 되었다.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광신적인 종교 시민전쟁의 와중에 종교에 대한 관용을 지지했고, 인간 중심의 도덕을 제창했다.
그러한 견해를 피력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밝히려고 에세 (essai)라는 문학 형식을 만들어냈다.
1571년 고향으로 돌아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1580년 유명한 ‘수상록’을 완성시켰는데, 그는 이 책에서 인간의 거짓 없는 모습을 그렸다. 그와 같은 인간의 연구가·관찰가를 프랑스 문학사에서는 모랄리스트 (인간 연구가)라 부르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모랄리스트 문학의 토대를 쌓았을 뿐만 아니라 수필 문학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처음에는 금욕적인 인생관을 가르쳤으나,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고, 신대륙이 발견되는 등 상식이 붕괴되자 충격을 받아, 인간 이성의 한계를 주장하면서 개혁을 혐오하고 보수주의를 신봉하였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자유주의를 지지하고, 귀족보다는 농민의 태도를 찬양하였으며, 형식주의적 법 이론을 배척하여 인간애를 고취하는 등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였다.
그의 수상록은 인간 정신에 대한 회의주의적 성찰과 라틴 고전에 대한 해박한 교양을 반영한다. 그는 프랑스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심오하고 무거운 주제를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재와 자전적인 이야기로 쉽게 풀어 쓴 글로 유명하다. 방대한 분량의 에세이를 묶은 수상록은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수필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는 글이다. 몽테뉴는 셰익스피어, 에머슨, 니체, 루소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미셸 에켐 드 몽테뉴 (Michel de Montaigne)
.출생: 1533년 2월 28일, Château de Montaigne
.사망: 1592년 9월 13일, Château de Montaigne
.학력: College of Guienne (1539년–), 프랑스 툴루즈대학 (1546년–), 툴루즈 – 쟝 조헤스 대학
.영향을 준 인물: 소크라테스,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에피쿠로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등
.자녀: 레오노어 드 몬테인
미셀 드 몽테뉴 (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는 페리고르 지방의 몽테뉴 성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라틴어로 교육을 받고 소년 시절에는 당시 프랑스에서 유명한 보르도 시의 기엔느 중학교에 다니면서 고전 공부에 열중했다. 16세부터 툴루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24세에 보르도 고등법원의 재판관이 되었다.
16세기 후반 프랑스의 광신적인 종교 시민전쟁의 와중에 종교에 대한 관용을 지지했고, 인간 중심의 도덕을 제창했다. 그러한 견해를 피력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밝히려고 에세 (essai)라는 문학 형식을 만들어냈다.
그의 ‘수상록’은 인간 정신에 대한 회의주의적 성찰과 라틴 고전에 대한 해박한 교양을 반영한다. 그는 프랑스 르네상스 시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으며 심오하고 무거운 주제를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재와 자전적인 이야기로 쉽게 풀어 쓴 글로 유명하다. 방대한 분량의 에세이를 묶은 수상록은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수필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는 글이다.
몽테뉴는 셰익스피어, 에머슨, 니체, 루소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생애 및 활동
몽테뉴 (Montaigne, Michel Eyquem de. 1533. 2. 28~1592. 9. 13)는 프랑스 최대의 사상가, 모럴리스트 또는 프랑스의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문학가이다.
1533년 프랑스 남부 페리고르 지방의 몽테뉴 성 (현재의 생 미세르 드 몽테뉴 마을) 출생으로, 어려서 라틴어 교육을 받았고, 1554년 페리그 재판소에 근무하여 1557년 보르도 고등법원 참사관이 되었다. 1565년 프랑수아즈 드 라 샤세뉴와 결혼, 1568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테뉴 영주가 되었다. 아버지의 명으로 번역한 15세기 에스파냐 신학자 레이몽 스봉의 ‘자연신학’ (自然神學)을 1569년에 간행하였다. 1571년 37세로 법관생활에서 물러나 독서와 저작 생활로 들어갈 결심을 하였으나, 신·구파의 종교전쟁에 휩쓸렸다. 1580년 써 모은 수필을 간추려 ‘인생 에세이’ (2권)를 보르도에서 간행하였고, 이 해 신장결석 치료를 겸하여 독일·스위스·이탈리아 관광길에 올라 1년 반을 외국에서 보냈다. 이 여행에서 ‘여행기 Journal de voyage’ (1774)가 나왔다. 1586년에 몽테뉴 성으로 돌아가 ‘수상록’에 증보와 수정을 가하고, 그 뒤 집필을 계속하여 1588년 3권 107장의 에쎄 ‘수상록’ 신판을 간행하고, 독서와 글을 쓰면서 지내다 1592년 자택에서 사망했다.
‘수상록’에서 몽테뉴는 인간성의 공통보편이라는 논거에 입각하여 그 자신의 성격·행동·체험·주장을 솔직하게 적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독자는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와 직접 부딪쳐 인간성 일반에 대해 고찰하도록 이끌고 있다. 또 자연과 사회의 사물·사실을 병립 또는 대비시켜 고찰케 함으로써 회의와 판단전환을 도입하여, 선입견을 물리치고 객관적인 견지에서 진실을 발견하도록 해 독자 스스로가 검증과 탐색의 길로 들어서도록 이끈다. 몽테뉴는 지식을 체계화하지 않고 사고와 판단력의 자유로운 활동만을 중시, 그 실현을 매력 있는 문장표현으로 이루어냈다.
그는 ‘몽테뉴 수상록’에서 프랑스 모럴리스트 전통을 구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17세기 이래의 프랑스 문학, 유럽 각국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 주요저서 ‘수상록’ (1580)
‘수상록’ (Essais)은 미셸 드 몽테뉴의 유일한 저서로, 길거나 짧은 여러 장(章)으로 구성된 산문 수상집이다.
집필초기에는 독서의 여록(餘錄)과 같은 성격의 짧은 장이 많았으나 차차 충분한 이론을 전개한 것이 나오게 된다. 그의 사상도 초기의 극기주의적 사상, 중기의 회의주의적 사상, 후기의 쾌락주의적 사상으로의 ‘발전’을 볼 수 있으나 최후의 지점은 그때까지의 사상을 모두 내포한 인간의 한계를 깨달은 데서 그것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고도의 시사(示唆)이다. 더욱이 거기에는 가혹한 종교전쟁의 시대에 있으면서도 그 시대를 넘어 미래의 신뢰를 잇는 몽테뉴의 한없이 깊은 인간애를 읽어 볼 수 있다.
“남들이 자기에 대하여 자신과 포부를 가지는 것을 보면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나는 미리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수단이나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다. 결과를 보고나서 밖에는 내 역량을 알지 못한다. 다른 모든 일에도 그렇지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래서 어쩌다가 내가 하는 일이 잘 되는 수가 있으면 그것은 내 역량이라기보다는 운수가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떻든 나는 모든 일을 되어가는 대로 조마조마한 생각으로 계획한다. 철학 자체도 아무것도 결론 내리지 못하며 근거가 박약하고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인정할 때 가장 잘하는 일로 보인다. 사람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가장 그릇된 사상을 가꾸게 되는 주요한 요인은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데서 온다고 본다.” _ 몽테뉴 수상록중
○ 저서들
‘자연신학’ (自然神學), 역서 (1569년)
‘인생 에세이’ (2권, 1580년)
‘여행기 Journal de voyage’ (1774년)
‘수상록’ (1586년)
‘수상록’ 증보 (3권, 1588년)
– 한글 번역서
.몽테뉴 수상록 (문예출판사)
.에세 (인폴리오)

○ 주요저서 ‘수상록’
다시 본다, 고전 – 500년 전 글이지만 통통 튀는 문장은 여전히 유효 _ 박연준
‘고전’을 읽는 묘미는 그 안에서 훌륭함을 찾아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옛 사람의 생각을 엿보고 시차를 뛰어넘어 공감하는 데 있다. 약 500년 전에 태어난 몽테뉴(1533~1592)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수상록’이란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을 뜻한다. 몽테뉴는 이 책에 역사, 문화, 윤리, 성(性) 같은 큰 주제부터 인간의 영광과 명성, 자만심, 욕망, 독서, 대화, 결혼과 사랑, 질병, 죽음, 취미, 여행, 세간살이까지, 삶을 이루는 거의 모든 요소를 톺아보며 자기 생각을 담아냈다. 순서에 상관없이 끌리는 주제를 골라, 하루에 한 챕터씩 읽기에 좋다.
“나는 아무 장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놓는다”고 쓴 몽테뉴에겐 지식을 뽐내거나 가르치려는 태도가 없다. 그는 16세기 후반 ‘에세(essai)’라는 문학 형식을 만들었다. 우리가 쓰고 있는 수필 형식을 최초로 고안해낸 사람이 바로 몽테뉴다.
“여기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말한다. 그것으로 내가 사물들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을 내놓는 것이다. (중략) 그러니 내가 내놓는 재료를 보지 말고 내가 내놓는 방식에 유의할 일이다.”(136쪽)
그의 재능은 솔직함과 거리낌 없는 태도에 있다. 자신을 높이 두지도, 과소평가도 하지 않으며, ‘척’과 ‘체’가 없이 자기 생각을 말하기.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책을 읽다 여러 번 박장대소한 것도 소탈한 그의 성정 때문이다. 책 곳곳에 ‘명언’이라 할 수 있는 문장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그의 말은 박제된 아포리즘이 아니다. 통통 튀는 문장, 여전히 유효하며 살아있는 문장이다. 그가 고전에서 찾아 인용해놓은 문장을 보는 즐거움 역시 크다.
“나는 사람의 비위를 맞출 줄도, 즐겁게 해줄 줄도, 아첨할 줄도 모른다. (중략) 내게는 진심으로 말하는 재간밖에 없다.”
“앉아있으면 생각들이 잠든다. 다리가 흔들어주지 않으면 정신이 움직이지 않는다.”(143쪽)
“큰 재산은 큰 노예 생활이다.(세네카)” (144쪽)
“나는 젊어서는 남에게 자랑하려고 공부했다. 그 뒤에는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했다. 지금은 재미로 공부한다. 무슨 소득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145쪽)
“우리는 결혼하지 않고는 못 견디면서도 그것을 멸시한다. 그래서 우리가 새장에서 보는 일이 일어난다. 밖에 있는 새들은 거기 못 들어가서 애를 태우고, 안에 있는 새들은 똑같은 정도로 밖에 나가려고 애쓴다.” (164쪽)
“쾌락에 대한 욕망은 추구해도 안 되고, 피해도 안 된다. 그 욕망은 그냥 받아들인다. 그리고 기꺼이 자연의 경향을 따르련다.” (224쪽)

○ 미셸 드 몽테뉴의 명언들
가난과 부유는 각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부는 권세와 건강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가진 사람이 느끼는 아름다움과 기쁨에 따라 다르다. 사람은 마음 먹기에 따라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하다.
가장 명백한 지혜의 징표는 항상 유쾌하게 지내는 것이다.
건강은 유일무이(有一無二)의 보배이며, 이것을 얻기 위해서는 생명 자체까지 내던진다.
건강은 참으로 귀중한 것이다. 이것은 실로, 사람들이 그 추구를 위하여 시간뿐 아니라 땀이나 노력이나 재능까지도, 아니 생명까지도 소비할 값어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러니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 주의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배려해 주어야 한다.
결혼은 새장 같은 것이다. 밖에 있는 새들은 함부로 들어오려고 하나, 안의 새들은 함부로 나가려고 몸부림친다.
결혼이라는 지혜로운 거래에서, 욕망은 그렇게 큰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욕망은 불길한 것이 되고, 더욱 감퇴해 버린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자신을 위해 결혼하지 않는다. 우리는 후손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결혼한다. 따라서 이처럼 소중하고 신성한 혈연에게 터무니없는 사랑을 요구한다는 것은 일종의 근친상간이 아닌가?
결혼이란 경건하고 신성한 결합이다. 그러므로 거기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은 억제되고 진지하며 조심스럽고 양심적인 쾌락이어야 한다.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은 쾌락도 주지 않는다.
국가간의 전쟁 역시도 우리가 이웃과 다투는 것과 같은 이유로 시작되는 것이다.
기도는 하늘의 축복을 받고, 노동은 땅에서 축복을 파낸다. 기도는 하늘에 차고, 노동은 땅에 차니, 이 둘이 당신의 집에 행복을 실어다 준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타인의 지식에 의해 박식해질 수는 있으나 지혜로운 자가 되려면 자기 자신의 지혜가 있어야 한다.
탐욕은 일체를 얻고자 욕심 내어서, 도리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한 가정을 원만하게 다스린다는 것은 한 나라를 통제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학식도 미덕도 건강이 없으면 퇴색한다.
현명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이 현명한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많다.
나는 오직 내 자신을 연구하고 고찰할 수 있을 뿐이며, 설령 내가 내 밖의 어떤 것을 연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그것을 내게 적용시키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인내하는 데에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욕심을 부리는 데에는 마음을 둔하게 하고 있다. 다만 내가 구할 수 있는 방향에서 손에 닿는 것을 구할 뿐이다.
나와 나 사이에는 나와 타인과의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것만큼 큰 차이점이 있다.
내가 무엇을 아는가.
내가 이제까지 관찰한 바, 매의 효과는 그저 사내아이들을 겁쟁이로 만들거나 고집불통으로 만드는 것 뿐, 나는 그 이외의 효과를 본적이 결코 없다.
내가 종교적으로 나 자신에 대해 고백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최상의 미덕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악덕의 기색이 섞여있는 것을 깨달았다.
노쇠는 얼굴보다는 마음속에 더 많은 주름을 남긴다.
누가 자기의 돈을 남에게 맡기겠는가? 그러나 자기의 시간과 생명을 남에게 맡기고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많다. 우리는 한 푼 돈에는 인색하면서도 시간과 생명을 한없이 낭비하고 돌아보지 않는다. 돈에 인색한 만큼 시간과 자기 생명에 대하여 인색하다면, 그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며 칭찬할 만한 일이다.
독서만큼 값이 싸면서도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기보다 침묵하는 쪽이 차라리 그 관계를 해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만약에 내가 또 다시 이 인생을 되풀이해야 한다면 내가 지내왔던 생활을 다시 하고 싶다. 과거를 후회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가르치는 측의 권위가 배우고자하는 측의 방해가 된다.
모든 덕 가운데서 가장 강하고 고결하고 자랑스러운 것은 진정한 용기다.
부귀도 명예도, 그리고 지식도 미덕도 사랑도 건강이 없으면 모두 낡고 사라져 버린다.
부부 사이는 항상 같이 있으면, 오히려 소원해진다.
분노는 기묘한 사용법을 지닌 무기다. 다른 무기는 사람이 사용하지만 분노라는 무기는 반대로 우리를 사용한다.
사람들은 행복과 불행은 모두 운명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운명은 우리에게 그 기회와 재료와 씨를 제공할 따름이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기질이 있고, 자기가 살아 나가는 방법이 있다. 한 마디로 그 사람마다 자신이 가진 습관과 개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자신의 습관을 너무 고집하고 우겨대는 폐단이 있다. 사람의 생활이라는 것은 자신 혼자만이 아닌 여러 사람과 어울려 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경우가 뒤엉켜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꼭 한 가지 방법만으로 살아 나아간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생활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단 한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생활을 하는 것은 자유지만, 단 한 가지 방법에 매여 있는 것은 도리어 자기 자신을 노예화하는 결과가 된다. 절대적으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없는 법이니, 때와 경우에 따라서 방법을 달리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방법에 애착이 심하여 그 테두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사람은 항시 모든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해야만 하는 것은 마음 깊숙이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사람의 영혼의 가치라는 것은 높이 올라가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바르게 행동하는 점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학문이다.
사랑은 규칙을 알지 못한다.
설사 헤어셔츠(죄를 덜기 위해서나 회개의 고행을 위해 입는 옷)를 입었다 해도 그것이 육체의 순결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찌하면 내가 진정 나다와질 수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세상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더라도 아내나 하인이 보면 아무 것도 탁월한 면이 없는 사람이 있다.
소유물의 부족은 개선할 수 있으나 영혼의 가난은 해결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습관은 제 2의 자연으로서 제 1의 자연에 비해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
식탁에서 나누는 잡담의 상대는 학식있고 근엄하며 성실한 사람보다는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사람이 좋다. 또한 잠자리에서는 마음 착한 여자보다는 예쁜 여자가 좋다.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