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0년 4월 19일,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 필리프 멜란히톤 (Philipp Melanchthon, 1497 ~ 1560) 별세
필리프 멜란히톤 (독: Philipp Melanchthon, 본성: 슈바르츠에르트·Schwartzerdt, 1497년 2월 16일 브레텐 ~ 1560년 4월 19일 비텐베르크)은 독일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이다.

– 필리프 멜란히톤 (Philipp Melanchthon)
.출생: 1497년 2월 16일, 팔츠 선제후국 브레텐
.사망: 1560년 4월 19일, 작센 선제후국 비텐베르크 .사상: 종교개혁
.종교: 루터교
.영향받은 인물: 마르틴 루터
.영향을 준 인물: 수많은 개신교 신학자들
필리프 멜란히톤은 마르틴 루터의 동료로서 독일 종교 개혁을 주도한 루터교회 신학자였다. 그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은 루터교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 생애 및 활동
필리프 멜란히톤 (Philipp Melanchthon)은 1497년 2월 16일, 팔츠 선제후국 브레텐에서 출생했다.
인문주의 교육을 탁월하게 받고, 인문주의자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독일의 인문주의자이자 증조부인 로이힐린 (Johannes Reuchlin, 1455 ~ 1522)의 추천으로 멜란히톤은 비텐베르그대학 (University of Wittenberg)의 헬라어 교수로 가게 된다.
비텐베르그에서 루터(Martin Luther, 1483 ~ 1546)를 만나 종교 개혁적 복음을 듣고 종교개혁자로 서게 된다.
루터는 멜란히톤에게 원어와 교부에 대해서 강의를 듣고, 대화하는 가운데, 비텐베르그 대학의 동료가 된다. 루터의 종교 개혁 운동의 동료로서 종교개혁운동을 통한 복음주의의 확립을 위하여 투쟁하였다.
1519년 루터와 함께 라이프치히 논쟁에도 참석하였다.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개신교 신학의 기초를 세우는 데 노력하였다.
신학자들의 신학적 차이를 화해시키는 관용적 인물로 종교개혁 신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저서로는 《신학 강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 고백》 등이 있다.
멜란히톤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순수한 그의 신앙을 보여준다.
“나는 죄와 신학자들의 분노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만나 우리가 왜 창조되었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이 어떻게 연합하는지에 대한 신비도 알게 될 것이다”.
또 멜란히톤의 사위가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을 묻자, 그는 “하늘나라 외에는 아무것도 묻지 말아 달라”고 답했다.
1560년 63세를 일기로 임종한 멜란히톤은 비텐베르크교회 안치된 루터의 무덤 옆에 안장됐다.

○ 신학
그는 <신학 강요, 1535/36>에서 1521편과 대조적으로 율법의 세가지 용도에 대하여 저술하였는 데, 그것은 시민법 (모든 자에게 적용), 교육적 (사람의 죄악을 드러내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기능), 규범적 (이신칭의함을 얻은 자들이 어떠한 선행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가를 알려줌) 이었다. 존 칼빈의 신학은 이 면에서 만큼은 멜란히톤의 신학을 인용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반박하였다.(1549년) 이것은 개혁주의자들 가운데서도 아직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아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평가
마르틴 루터는 《탁상담화》에서 멜란히톤에 대해 “양심이 선한 분이어서 매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인물”로 높이 평가했다.
종교개혁은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했고, 멜란히톤의 공헌으로 종교개혁은 체계적으로 지속해서 확산할 수 있었다.
그는 아우구스부르그 신앙고백 (Augsburg Confession)으로 개신교 신앙의 대변자가 된다. 루터가 죽은 후 고루터주의자들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아서 루터교 (Lutheran Church) 내에서 약해지기도 하였으나, 그의 저작과 제자들을 통한 영향력은 증가 했다.
멜란히톤은 칼뱅 (Jean Calvin, 1509 ~ 1564)과의 지속적인 교제로 개 혁파 신학의 형성에 크게 공헌한다.
멜란히톤의 제자들 가운데 루터파 신 학자들과 개혁파 신학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멜란히톤 신학에 큰 빚을 졌다.
그는 유럽의 스승으로 불릴 정도로 교육과 대학조직과 저술과 학문에 있어서 개신교 인문주의자로서 대대에 선한 영향을 주었다. 멜란히톤에 대한 정당한 이해를 통해 한국 개신교의 신학과 학문적 체계와 개혁파 신학의 이해가 더욱 깊어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 격언
종교가 없으면 시민을 도덕적으로 고양시킬 수 없다. 또한 법리는 대부분 종교적 교리에 의해 형성된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