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6년 9월 21일, 이탈리아의 수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 (Girolamo Cardano, 1501 ~ 1576) 별세
지롤라모 카르다노 (Girolamo Cardano, 1501년 9월 24일 ~ 1576년 9월 21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죽었다. 수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본업은 의사였다. 점성술사, 도박사, 철학자이기도 했다.

– 지롤라모 카르다노 (Girolamo Cardano)
.출생: 1501년 9월 24일, 이탈리아 파비아
.사망: 1576년 9월 21일, 이탈리아 로마
.국적: 이탈리아
.배우자: Lucia Banderini (1531년–1546년)
.자녀: 알도 바티스타, 지오바니 바티스타
.학력: 파비아 대학교, 파도바 대학교
.주요저서: 위대한 기술, 주사위 놀이에 대하여
.업적: 삼차방정식의 해법, 허수 개념의 도입, 확률론
오늘날까지도 그의 대수학에서의 업적은 널리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수학적업적으로 명성을 날렸다.
1545년 저술한 ‘위대한 기술’ (라: Ars magna de Rebus Algebraicis)에서 3차방정식의 근의 공식과 4차 방정식의 풀이법을 제시했다.
3차 방정식의 해는 니콜로 타르탈리아(Niccolo Fontana Tartaglia)가 발견해 혼자만 알고 있던 것으로, 카르다노에게 절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알려준 것이었다. 그래서, 이 때문에 카르다노는 타르탈리아와 기나긴 논쟁을 하게 된다.
그리고 4차 방정식의 풀이는 카르다노의 제자 로도비코 페라리가 알아낸 것이다.
이 사실은 책의 서문에 잘 쓰여 있다.책에서 그는 그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허수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명성이 높아지면서’최고의 불운아’라는 별명도 함께 얻었다.
그의 인간성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도 도박을 즐기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한다.

○ 생애 및 활동
– 출생과 유년기
아버지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친구였고, 수학적 재능이 있던 변호사의 사생아로 태어난다.
카르다노의 자서전에는 어머니가 그를 사산시키려 했다고 쓰여 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외에 3명의 자식을 전염병으로 잃고, 그를 낳은 직후 밀라노에서 파비아로 이주했다.
1520년 파비아 대학에 들어가 의학을 공부하고, 후에 파도바로 학교를 옮겨 약학을 공부한다.
그는 성격이 특이하고 배타적이어서 친구가 거의 없었고, 졸업 후 직업을 찾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당시 그는 의학을 전공해 의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결혼 후 그는 수학교사가 돼 수학과 물리학을 연구하기도 하고, 시골에서 의사생활을 하기도 했다.
1544년에는 밀라노 대학의 기하학 교수가 됐다.
카르다노는 재판관을 치료해 줌으로써 명망있는 의사가 되고, 돈을 많이 번다.
또한, 그의 소견은 재판장에서 신뢰를 얻는다.
그는 발진 티프스 (typhoid fever)를 처음 발견한 의사이기도 하다.
– 수학적 업적
.일반적인 3차방정식의 해법 발표 : 스키피오 델 페로 (Scipione del Ferro)는 2차 항이 없는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하였고, 니콜로 폰타나 타르탈리아 (Niccolo Fontana Tartaglia)는 1차 항이 없는 삼차방정식과 일반적인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후에 카르다노가 델 페로와 타르탈리아의 업적을 자신의 업적으로 인정하는 글을 실어 해법과 같이 책으로 발표한다.

부연하면 ‘Ars Magna’, 즉 ‘위대한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책에 삼차방정식의 일반적 해법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로인해 삼차방정식의 해법은 ‘카르다노의 공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름과는 다르게, 카르다노가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직접 발견한 것은 아니다.
타르탈리아는 카르다노에게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알려주었으나 카르다노가 다음해 논문으로 발표한다.
타르탈리아는 그에게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건 수학경기를 신청한다.
서로에게 문제를 내서 못푸는 사람이 지는 경기였는데, 카르다노의 제자 로도비코 페라리 (Lodovico Ferrari)가 카르다노를 돕는다.
페라리는 3차 방정식의 해법을 이용해 4차 방정식의 해법까지 구했었고, 그것을 알지 못하는 타르탈리아는 경기에서 지게 된다.
.허수 개념의 도입 : 3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다루던 도중 음수의 제곱근의 필요성을 느끼고 허수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확률론의 발전에 기여 : 카르다노는 확률을 주제로 최초의 저술을 한 사람이기도 하다.
주사위 도박을 즐겼던 그는 불리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의 수와 유리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의 수의 비율을 통하여 확률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도박을 좋아하여 확률에 관하여 연구하게 된 것이다.
확률에 관한 최초의 저서인 ‘주사위 놀이에 대하여’라는 책을 남겼다.
그가 즐겼던 주사위 도박에서 발견한 것이다. 16세기에 2×2 행렬식을 정의하였다.
– 역학 분야의 업적
‘천체를 제외하고는 영속적인 운동은 없다’는 주장으로 명성을 날렸다.
– 의사로서의 명성
천식 치료, 탈장 수술법 개발, 발진티푸스에 대한 최초의 임상 기록을 남겼다.

– 말년
카르다노가 살던 시대에는 수학경기가 있었는데 주어진 문제를 가장 빨리 푸는 사람에게 상금이 주어졌다고 한다. 카르다노는 상금을 혼자서 많이 갖기도 했다.
1570년에는 종교재판을 받고 몇달간 수감되기도 했다. 점성술을 퍼뜨린 죄였다.
카르다노는 점성술사이기도 해서 자신이 1576년 9월 21일에 죽는다고 하였고, 자신이 옳다고 증명하기 위해 그는 그날 로마에서 자살을 하였다.
또 카르다노는 영예를 누리며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카르다노의 말년 또한 행복하진 못했다.
아내를 잃고 사랑하는 아들이 처형을 당하는 상황을 견뎌야 했다. 수학자 카르다노는 말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아들의 파멸을 지켜보며 나는 결국 노름을 끊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학문보다 위대하다!”
○ 평가
그는 농아의 교육에 대해서 커다란 업적을 남기기도 했는데, 듣고 말하는 것과 읽고 쓰는 것은 분리가 가능하여 비록 듣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을 계승한 카르다노의 철학은 르네상스 철학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