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8년 1월 7일, 미국 최초의 영국 식민지 제임스타운에서 화재 발생
1608년 1월 7일, 미국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제임스타운은 미국 최초의 영국 식민지다.
1606년 12월 혹은 1607년 초에 144명이 세 척의 배, 수전 콘스턴트 (Susan Constant) 호 (號) • 갓스피드 (Godspeed) 호 (號) • 디스커버리 (Discovery) 호 (號)에 승선하여 영국을 떠나 1607년 4월 26일 체서피크 만에 닿았다. 이 항해에서는 오직 104명만이 살아 남았다. 체서피크 만에서 제임스 강 (그들 스스로 이름지었다.)을 따라 올라갔다. 1607년 5월 24일 그들은 이곳에 정박하고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따서 제임스타운이라는 식민지를 지었다.
이 회사의 첫 아메리카 전진 기지였던 제임스타운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비록 그곳이 아메리카에서 성공한 첫 영국 식민지로 불리는 것이 옳을지라도, 그곳에서도 로어노크의 불운한 전철을 거의 다 겪었다. 제임스타운의 초기의 삶은 가혹했다. 그들은 원주민으로부터 안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내륙을 선택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 지역은 낮고 습한데다 주변에는 숲이 우거져 있었으며, 막강한 인디언 부족의 영역과 맞닿아 있었다. 결과적으로 최악의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는 곳이었다. 질병, 해충, 내부반란이 만연하였으며 식량과 보급품은 항상 부족해 겨울이면 잔인한 굶주림 때문에 고통받아야 했다. 1607년 5월 백여 명이던 제임스타운의 주민은 그해 9월에 반으로 줄어들었다. 1년 만에 정착인의 70%가 사망하면서 제임스타운은 실패한 전 식민지인 로어노크 식민지의 수순을 밟아가는 듯하였다.
1608년 1월, 런던의 보급품 배가 도착했을 때는 104명 중에서 38명만 살아 남은 상태였다. 여성은 한명도 보내지 않아 영구적으로 살 생각을 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가운데 1608년 1월 7일에는 제임스타운에서 화재까지 발생했다. 정착민들의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제임스 타운이 그런 상황 속에서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27살의 나이에 세계 여행가로 유명해진 존 스미스 선장이 노력한 결과였다. 식민지 지도층의 분열을, 스미스 선장이 이끈 결과 (강제 노역과 인디언의 식량 습격조 편성) 두 번째 겨울을 나는 동안 죽은 사람이 열둘을 넘지 않았다.
1609년 12월 제임스타운의 영국인은 220명이었지만, 이듬해 봄이 찾아왔을 때 생존자는 60명에 불과했다. 식량 부족이 주원인이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한 남자가 아내를 잡아 먹은 일도 있었다. 나중에 그는 화형에 처해졌다.
취락지는 14,000명의 원주민을 가진 포우하탄의 영토인 체나코마치로 알려진 정치 단체의 영토 내부에 위치하였다. 원주민들은 처음에는 식민지 사람들을 연회와 담배 의식을 통해 환영을 했으며, 중요한 식량과 식민지 주민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존 스미스 대위의 지휘 아래 정착인들은 인디언들에게 담배 재배법을 배워 경작, 영국에 수출하여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새로운 이주민들과의 관계는 꽤나 빨리 틀어져 3년간 전쟁으로 파스파헤 종족은 멸족되었다.
제임스 타운이 설립되고 1년 이내에, 버지니아 회사는 취락지를 발전시키기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폴란드 인과 네덜란드 인들을 식민지로 데려왔다. 1619년 서류로 기록된 최초의 흑인 노예들이 제임스타운으로 끌려왔다. 현대 미국에서의 노예 제도라는 개념이 시작된 것은 1660년부터이다.
식민지가 건설된 12년 후, 제임스타운에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버지니아 회사가 신세계에 생존이 가능한 식민지를 건설하는 데 우선적으로 힘을 쏟은 결과였다. 회사는 1619년 처음으로 배 한 척에 모두 90명의 여성을 싣고 왔다. 오랫동안 여성과의 관계를 원해 온 이주민 총각들은 한사람당 약 60킬로그램의 담배를 내고 앞 다투어 이들을 아내로 데려갔다.
1634년 그 식민지가 원래 8개의 버지니아 샤이어가 되었을 때, 제임스타운은 제임스 시티 샤이어에 위치하게 되었다. 런던 회사의 두 번째 개척지인 버뮤다의 세인트조지스는 영국이 신세계에서 개척한 가장 오래된 도시 터로 주장하고 있으며, 뉴런던으로 1612년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그에 반해 버지니아에 있는 제임스 요새는 1619년이 되어서야 제임스 타운으로 전환되었으며, 게다가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도 않다. 1699년 수도가 제임스 타운에서 오늘 날의 윌리엄스버그로 이전되었으며, 그 이후 정착지로서의 기능은 중지되었고, 오늘날에는 유적지만 남아 있다.
제임스타운의 성공은 많은 영국인들에게 새로운 경제적 기회로 비춰졌으며, 이후 약 백여년 동안 많은 영국인들이 북아메리카 동남부로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제임스타운과 이후 그 근처에 건설된 식민지의 대부분은 북부의 청교도 정착지들과 달리 경제적인 목적을 위해 건설되었기 때문에 후에 미국 북부 사람들과 문화적인 마찰을 빚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오늘날, 제임스타운은 버지니아 식민지 역사 삼각지를 구성하는 세 곳 중의 하나이며, 나머지는 윌리엄스버그와 요크타운을 일컫는다. 제임스타운 유적지는 제임스타운 국립 유적지 (국립 식민지 역사 공원의 일부로)와 프리저베이션 버지니아 공동의 노력으로 제임스타운 섬 위의 사적지로 만들어졌다. 살아있는 역사 해설지인 제임스타운 거주지는 제임스타운 요크타운 재단과 버지니아주 합동으로 운영된다.
- 정착 (1607 ~ 1705)
비록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신세계의 거점을 빨리 세우려고 재빨리 움직였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은 더 천천히 움직였다. 존 캐벗이 탐험을 마친 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영국은 식민지 설립을 시도했다. 초기의 노력들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1590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로어노크 식민지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 도착과 초창기 (1607 ~ 1610)
1606년 후반기, 런던 버지니아 회사의 인허가권을 가지고 신세계에 식민지를 설립하기 위해 영국의 회사들이 항해를 시작했다.
○ 제임스타운 (버지니아주)
제임스 타운 (Jamestown)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 (영국)이 북아메리카 버지니아 식민지 내에 건설한 최초의 영구 식민지이다. 1607년 5월 24일 런던 회사에 의해,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따서 제임스 요새로 설립되었으며, 로어노크 식민지를 포함한 초기의 여러 번의 실패 이후에 1610년 잠깐 버려졌다가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제임스타운은 1616년부터 1699년까지 83년간 식민지의 수도 역할을 하였다. 현재의 행정구역 상, 버지니아주에 속한다.
– 기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는 제임스타운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다만, 역사적 오류를 지적하자면 포카혼타스는 존 스미스 대위가 아닌 존 롤프와 결혼하였다. 포카혼타스와 존 롤프가 살아있는 동안 인디언 부족들과 제임스타운은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였다.
영화로는 ‘뉴 월드’가 있다.
○ 영화 ‘뉴 월드’ (The New World)
감독) 테렌스 맬릭 / 주연) 콜린 파렐, 코리안카 킬처, 크리스토퍼 플러머, 크리스찬 베일 / 2005년
‘뉴 월드’ (The New World)는 2005년 공개된 미국 영화이다. 테런스 맬릭이 감독했고 각본을 썼다. 콜린 패럴, 코리안카 킬처, 크리스토퍼 플러머, 크리스천 베일 등이 출연했다. 포카혼타스와 존 스미스 선장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물이다.
.북미 대륙 개척 초기 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테런스 맬릭 감독의 2005년작으로 제78회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후보작이다
북미 대륙 개척 초기가 배경인 역사 멜로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포카혼타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콜린 패럴이 존 스미스, 코리언카 킬처가 포카혼타스,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캡틴 뉴포트, 크리스천 베일이 존 롤프의 배역을 맡았다.
17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내디딘 영국의 탐험가이자 군인인 존 스미스는 인디언 포와탄 족의 공주 포카혼타스 (인디언 말로 ‘포카혼타스’는 작은 장난꾸러기란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와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인디언들이 자신들의 땅에서 떠나지 않는 영국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스미스는 왕의 명령으로 영국으로 소환되기에 이른다. 그 사실을 모르는 포카혼타스는 스미스가 죽었다고 여기고, 결국 지속적인 청혼을 해오던 부유한 청년 실업가 존 롤프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
그녀와 그녀의 동족인 인디언들의 자연에 대한 지식이 담배농사를 잘 지을 수 있게끔 하였기에, Jamestown에서는 존 랄프 만이 거의 유일하게 담배농사를 성공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 존 랄프는 이교도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굉장히 죄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포카혼타스는 세례를 받고 레베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은 그리 행복했던 것 같지는 않다.
영국왕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간 영국에서 그녀는 신대륙을 개척하는데 일조한 그녀의 공을 인정받아 훈장을 받게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는 22살의 어린 나이로 죽게된다. 아마도 그녀는 당시 영국에서 창궐했던 천연두와 폐렴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되는데 그녀는 그 둘 중 하나의 병에 걸려 죽은 것으로 보인다.
같이 영국으로 왔던 그녀의 남편 존 랄프와 아들 토머스 랄프는 신대륙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 남는다.
몇 년후 존 랄프는 재혼을 하고 여러 아이들을 얻게 된다. 나중에 그들은 다시 신대륙으로 돌아가는데, 포카혼타스와 존 랄프의 아들 토머스 랄프는 인디언 공주의 아들임을 인정받아 포카혼타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인디언 추장이 된다.
하지만 아버지인 존 랄프는 신대륙에서 살해당하는데 인디언과 백인과의 분쟁사이에서 인디언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장성한 토마스는 백인 여성과 결혼하여 딸을 낳았는데 여기서부터 핏줄이 이어져 현재까지 미국에는 포카혼타스의 후손들이 지금도 존재한다고 한다.
미국의 성공적인 최초의 정착지 Jamestown을 이룬 가문들을 First Families of Virginia (FFV)라고 하는데 이 가문중 하나를 이루게 되고, 여러 유명인사를 배출하게 된다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등).
- 출연 / 스탭
.테렌스 맬릭 (Terrence Malick): 감독
.콜린 파렐 (Colin Farrell): 스미스 역
.코리안카 킬처 (Q’orianka Kilcher): 포카혼타스 역
.크리스토퍼 플러머 (Christopher Plummer): 뉴포트 역
.크리스찬 베일 (Christian Bale): 존 롤프 역
- 자연과 인간을 그리며 노래하는 영화
같은 얘기를 가지고 디즈니 스튜디오에선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를, 테렌스 맬릭 감독은 이렇게 사색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영적 층위와 현상적 층위에서 모두 해독 가능한, 자연과 인간을 그리며 노래하는 영화다.
이 영화가 미국 건국 초기 유럽인들의 신대륙 개척 혹은 식민화에 대한 영화일까? 사실 영화 초반엔 꽤 많은 부분을 영국에서 온 개척자들과 원주민들의 대립과 전투 묘사에 쏟고 있기도 하다. 작품을 정치적 알레고리로 접근해도 별 무리는 없을 듯싶다. 예컨대 영국인 스미스 선장 (콜린 파렐 扮)이나 존 롤프 (크리스찬 베일 扮) 두 남성을 유럽 식민국으로, 원주민 포카혼타스 (코리언카 킬쳐 扮)를 미지의 개척지로 환원하는 식의 해석도 합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허나 이제 막 아련한 느낌 몇 가닥 쥔 채로 감상을 마친 지금 시점에서 그렇게까지 작품을 난도질해가며 박제하고 싶지 않다. 이건 무엇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서로 혼 (魂)으로 소통한 두 남녀에 대한 애틋한 전설이다. 그들이 주고 받은 사랑이라는 의식과 기억에 대한 영화이고 우리가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잊혀진 태초의 기억, 그 노스텔지어에 대한 영화다.
표면적으론 가슴 아픈 사랑 영화다. 하지만 이 작품은 무엇보다 자연의 영화다. 작품 대부분을 인간을 품은 대지와 강, 바다, 나무와 하늘을 담는 데에 할애하고 있다. 여러 서적과 영화들로 전해져 우리가 알고 있듯, 여기 신대륙 원주민들 역시 세상사 모든 것을 자연과 영혼의 맥락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한다. 그런 순수하고 평온한 기운이 포카혼타스라는 여주인공의 시선과 독백을 통해서 영상에 고스란히 배어난다. 그녀가 삶을, 타자를, 세계를 마주하는 태도는 스미스나 존의 그것과 대비되면서 그들을 온전히 품어낸다.
이 영화는 또한 한 여인의 행적보다 그 내면과 외연에 치중한 시적인 일대기라고도 할 수 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스미스 선장과 마음의 대화로 사랑을 속삭이던 원주민 족장의 딸 포카혼타스에서 다른 남자 존의 아내가 되어 가정을 이룬 영국 부인 레베카로 살다 간 여인. 죽은 줄로만 알았던 스미스와의 재회, ‘당신과의 사랑이 한낱 꿈인 것 같았는데 그 사랑만이 진실이었다’는 그 앞에서 조용히 아쉬움을 묻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모든 주변 사물과 사람들을 포용하며 초연히 죽음을 맞게 되는 그녀를 카메라는 시종 자연의 품성과 연계하여 우리 기억 저편의 잊혀진 대륙, 신세계 아닌 본연의 ‘신세계’로서 두 시간 넘게 응시하고 있었다.
광활한 대지와 대기의 순환을 고즈넉하게 담아낸 영상이, 심금을 울리는 제임스 오너의 음악이, 배우들의 흔들리던 눈빛과 서로 마음으로 속삭이던 대화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같은 주제라도 내겐 트리 오브 라이프의 고양된 간증보다 뉴 월드에서 나지막히 속삭이는 사랑의 넋두리, 아련한 향수(鄕愁)의 읊조림이 더 간절히 와닿았다. 아직도 작품에서 전해지던 감정의 떨림, 그 여진에 가슴 먹먹하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