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년 3월 7일, 로마제국 제15대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Antoninus Pius, 86 ~ 161) 서거
안토니누스 피우스 (Antoninus Pius, 86년 9월 19일, 이탈리아 라누비움 인근 ~ 161년 3월 7일, 로리움)는 로마 제국의 제15대 황제 (86년 9월 19일~161년 3월 7일)이다.
5현제 중의 한 명으로 꼽히며, 피우스는 ‘경건한 자’라는 뜻으로 원로원으로부터 주어진 존칭이다.

– 안토니누스 피우스 (Antoninus Pius, 86 ~ 161)
.출생: 86년 9월 19일, 이탈리아 라누비움 인근
.사망: 161년 3월 7일(74세), 로리움
.매장지: 하드리아누스 영묘
.가문: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
.부친: 친부)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부스, 양부) 하드리아누스 (135년 2월 25일 – )
.모친: 친모) 아리아 파딜라(Arria Fadilla), 양모) 비비아 사비나 (135년 2월 25일 -)
.배우자: 안니나 갈레리아 파우스티나
.자녀: 친자) 안니나 갈레리아 파우스티나, 양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루키우스 베루스
* 로마제국 제15대 황제
.재위: 138년 7월 11일 ~ 161년 3월 7일
.전임: 하드리아누스 (양아버지)
.후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루키우스 베루스( 양아들)
선제 (先帝) 하드리아누스의 정책을 계승한 그의 치세는 대체적으로 평온하였다.
단지 군사 원정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야만족의 발전을 허락하여, 후대에 화근을 남겼다고도 일컬어진다.

○ 생애 및 활동
아버지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모두 집정관 (콘술)을 지냈으며, 원래 갈리아 출신 집안 태생이었지만, 안토니누스는 로마와 가까운 라누위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외가의 조부 아미우스 안토니누스에 의해 양육되었다. 아미우스는 대 (大) 프리니우스의 친구였다.
안토니누스는 하드리아누스의 신임도 두터웠고, 아시아 속주 총독, 집정관 등 요직을 역임한 뒤, 이탈리아 반도 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하드리아누스에게는 아이가 없었으므로, 안토니누스가 후계자로서 그의 양아들이 되었다. 138년 2월 25일에 하드리아누스의 뒤를 이어 황제에 즉위, 양아들 아에리우스 베루스가 사망했기 때문에 아내의 남동생에 해당하는 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와 아에리우스 베루스의 아들 루키우스 베루스 두 명을 양아들로 삼았다. 이 두 사람이 훗날의 공동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와 루키우스 베루스이다.
아내인 대 (大) 파우스티나와의 사이에는 2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이 있었지만, 딸 소 (小) 파우스티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안토니누스 피우스가 황제로 즉위하기 이전에 사망했다. 소파우스티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내가 되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고결한 성품을 가진 황제였으며, 현군으로 추앙받게 될 양아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로마로부터 12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에트루리아의 로리움에서 열병 때문에 161년에 사망하였다.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또한,중국의 역사서에 최초로 등장하는 로마 황제이기도 하다. 로마제국의 상인들이 중국의 정치가인 손권을 만나서 고향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중국사람들은 대식국 (大植國, 로마를 한자로 옮겨쓴 이름)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