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1년 10월 30일, ‘북방의 사자’ • ‘설왕 (雪王)’ 구스타브 2세 / 구스타브 2세 아돌프 (Gustav II Adolf, 1594 ~ 1632)가 즉위하여 스웨덴 제국 성립
구스타브 2세 아돌프 (스: Gustav II Adolf, 1594년 12월 9일 ~ 1632년 11월 6일)는 스웨덴의 국왕 (재위: 1611년 10월 30일 ~ 1632년 11월 6일) 이자 구스타브 1세 바사의 손자이다.
스웨덴을 강국으로 만든 왕으로 ‘북방의 사자’ 또는 ‘설왕 (雪王)’이라 불렸다.
흔히 라틴어식 이름인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라: Gustavus Adolphus)로도 널리 불린다.
그는 근대적 전술의 선구자로서 유명하며, 혁신적인 복합 무기 체계와 획기적인 전술을 사용함으로써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지휘관들의 반열에 드는 것으로 흔히 일컬어진다.
그의 전술은 화기(火器)의 파괴력과 적에게 후퇴 및 재편성의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신속한 전투를 계속한다는 데에 중점을 두었으며 이러한 요소가 종합되어 싸움터에서는 항상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개발한 새로운 전술을 적군도 모방하게 되면서부터 스웨덴군의 전투력의 우위는 차츰 약화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계속된 전쟁으로 특징지어지는 시대에 16세의 구스타부스 아돌푸스는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던 세 개의 전쟁을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러시아와의 국경 전쟁, 덴마크와의 국경 전쟁 그리고 사촌인 폴란드 국왕 지기스문트 3세 바사와의 전쟁이 그것들이다. 이런 전쟁들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그는 30년 전쟁에 루터파로서 신교 측을 지원하며 참전함으로써 유럽의 종교적, 정치적 판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최고의 무기들, 잘 훈련된 장병들, 효과적인 포대, 전쟁 자금 조달에 능률적이었던 정부의 뒷받침을 바탕으로 1631년 브라이텐펠트 (Breitenfeld) 전투에서 혁혁한 승리를 거두고 일약 유럽의 주요 지도자로서 부상하였다.
그러나 일년 뒤인 1632년 뤼첸 (Lutzen) 전투에서 비록 스웨덴군을 중심으로 한 신교 측은 구교 측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지만 양측 모두 큰 손실을 입었으며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자신은 전사하고 말았다.
그의 시신은 스웨덴으로 송환되어 리다르홀멘 교회당에 안치되었다.
그의 치세동안 스웨덴은 발트해 연안의 지역 세력의 지위로부터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하였고 근대 초창기 정부의 모델이 되었는데, 널리 알려진 그의 군사적 업적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그의 행정 개혁과 경제의 육성이었다.
예를 들어 그는 행정 구역별 인구 조사를 시작했으며, 이는 중앙 정부로 하여금 더욱 효과적인 세금 징수와 인력 동원을 가능하게 하였다.
역사가 크리스터 요르겐센은 경제와 상업을 개혁하고 근대적인 관료제에 바탕을 둔 전제 정치를 도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 전장에서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의 개혁은 또한 거의 중세적 성격에 가까웠던 경제와 사회를 변환시켰으며 독일 원정과 스웨덴 제국의 존립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