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6년 4월 23일, 잉글랜드의 극작가 및 시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 윌리엄 세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 ~ 1616년) 별세
윌리엄 셰익스피어 / 윌리엄 세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년 4월 26일 ~ 1616년 4월 23일)는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이다. 잉글랜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런던으로 이주하고서 본격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일약 명성을 얻었고, 생전에 ‘영국 최고의 극작가’ 지위에 올랐다.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처럼 인간 내면을 통찰한 걸작을 남겼으며, 그 희곡은 인류의 고전으로 남아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다. 당대 여타 작가와 다르게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자연 그 자체에서 깊은 생각과 뛰어난 지식을 모은 셰익스피어는 당대 최고의 희곡 작가로 칭송받는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1564 ~ 1616)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극작가이자 세계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불멸의 거장이다. “한 시대가 아닌 모든 시대를 위한 작가”로 불린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읽히고 상연되며 늘 새롭게 해석되고 사랑받는다. 그의 작품들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문학은 물론, 세대와 분야를 불문하고 문화 전반에 방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1564년 잉글랜드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의 부유한 상인이자 유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586년 무렵 고향 스트랫퍼드를 떠나, 1589년 첫 작품 『헨리 6세』를 발표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그즈음부터 이미 왕실로부터 두터운 후의를 입을 만큼 천재적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계층을 가리지 않고 폭넓은 인기를 누렸다. 특히 1600 ~ 06년경에 ‘4대 비극’인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를 차례로 발표하며 세계문학의 위대한 걸작들을 남긴다. 1610년경 스트랫퍼드로 돌아가 『폭풍우』 등을 발표하며 지내다가 1616년 그곳에서 사망하고 묻혔으며, 평생 37편의 희곡과 154편의 쏘네트, 2편의 이야기시 등을 집필했다. 당대를 풍미한 극작가로서 천재적인 언어 능력과 사회를 꿰뚫는 통찰을 보여주었고, “만 사람의 마음을 지녔다”라고 일컬어질 만큼 인간에 대한 다각적이고 깊은 이해로 타계한 지 400년이 지나도록 최고의 작가로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 윌리엄 세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출생: 1564년 4월 26일, 잉글랜드 워릭셔주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사망: 1616년 4월 23일 (51세), 잉글랜드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직업: 극작가, 시인, 배우
.국적: 영국
.활동기간: 1587 ~ 1611년
.사조: 영국 르네상스 연극
.배우자: 앤 해서웨이 (1556 ~ 1623년)
.자녀: 수재나 홀, 햄넷 셰익스피어, 주디스 퀴니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는 영국 최고의 시인이자 극작가이다. 1564년 4월 23일 존 (John) 셰익스피어와 메리 아든 (Mary Arden) 사이에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 영국 잉글랜드 워릭셔주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서 존 부부의 첫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경과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셰익스피어는 11살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경과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어도 배웠지만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다.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제대로 교육받지는 못했지만, 자연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운 자연의 아들이자 천재였다.
1582년 앤 해서웨이와 결혼하여 딸과 쌍둥이 남매를 낳았다. 이후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겨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극작가로 성공했으며 희극 배우로도 활동했다. 후원자 사우샘프턴 백작의 도움으로 궁정에도 출입하며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1세에게 후대를 받아 1594년에는 궁내부장관 극단의 전속 극작가로 임명되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사업적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재산 관리에도 능숙해 상당한 부동산을 구입하여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다.
수많은 희곡 중 셰익스피어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무어인 장군 오셀로가 이아고의 간계에 빠져 사랑하는 아내를 질투하고 살해하는 비극을 다룬 『오셀로』, 자신에 대한 딸들의 충성을 시험하다 비극을 맞는 『리어왕』, 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비극을 초래하는 『맥베스』, 그리고 마지막이 이 4대 비극 중 가장 앞서 쓰였다는 『햄릿』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클로디어스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그렸다. 인간을 들여다보는 깊이 있는 시선은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에 길고긴 생명을 부여한다. 끊임없는 재해석이 그 방증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인물들을 파고들고 해석하는데, 문학에서 찾아낼 수 있는 모든 가치를 그의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1590년 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작가 셰익스피어 작품의 인기는 더해갔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 (John Dryden)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했다. 1610년경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셰익스피어는 대저택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다, 1616년 4월 23일 52세의 나이로 서거하여 성트리니티 교회에 안장되었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극작가로서, 대표 작품으로는 『공연한 소동』, 『12야 (夜)』, 『자 (尺)에는 자로』, 등의 희극과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맥베스』, 『오셀로』, 『리어 왕』,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의 비극을 비롯해 『베니스의 상인』, 『한여름 밤의 꿈』, 『헨리 4세』, 등 10편의 비극 (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비너스와 아도니스』, 등의 시집 및 『소네트집』도 남겼다.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 생애 및 활동
– 유년기
셰익스피어는 잉글랜드 중부의 전형적인 소읍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에 있는 작은 마을 스트랫퍼드에서 존 아든과 메리 아든 부부의 맏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는 비교적 부유한 상인으로 피혁가공업과 중농 (中農)을 겸한 데다가 읍장까지 지낸 유지로, 당시의 사회적 신분으로서는 중산층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풍족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577년경부터 가세가 기울어 학업을 중단했고 집안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서와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11세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는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서와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스어를 배우기도 하였지만 그리 유창하지 않았다. 동시대 극작가 벤 존슨은 “라틴어에도 그만이고 그리스어는 더욱 말할 것이 없다.”라고 하면서 셰익스피어를 조롱하기도 하였다.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 ‘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고등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 결혼
셰익스피어는 18세에 여덟 살 연상인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다. 우스터의 성공회관구 교회 법정은 1582년 11월 27일에 혼인 허가를 내주었고, 해서웨이의 두 이웃은 결혼 막을 아무런 장애 요인이 없음을 보증하는 보증서를 다음 날 보냈다. 두 사람은 1583년 5월 23일에 딸 수재나 (Susanna)를 낳았다. 셰익스피어가 연상인 아내를 그리 사랑한 것 같지 않다. 셰익스피어는 모종의 이유로 1585년에 햄닛 (Hamnet, 1585~1596)과 주디스 (Judith)라는 쌍둥이가 태어난 후 곧장 고향을 떠나 7~8년간 떠돌아다닌다. 이 유랑기 행적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 런던과 극작 활동
1580년대 후반, 또는 1590년경 수도 런던에 도착한 셰익스피어는 눈부시게 변하고 있는 런던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 (1558 ∼ 1603)이 통치하던 이 시기 런던은 많은 농촌 인구가 유입되어 몹시 붐비고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여 도시는 지저분해지고 수많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런던의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경제 활동, 각양각색 문화 활동과 행사, 특히 대중의 여흥을 위해 빈번히 열린 연극은 셰익스피어가 성장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동시대 극작가 로버트 그린의 기록을 보면, 셰익스피어는 적어도 1592년 런던에서 유명한 극작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린은 셰익스피어가 ‘대학도 안 나온 주제에’ 품격 떨어지는 연극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셰익스피어는 1594년부터 당시 런던 연극계 양대산맥 가운데 하나인 궁내부장관 극단 전속 극작가가 되었다.
1599년 템스강 남쪽에 글로브 극장을 신축한 궁내부장관 극단은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승하하고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국왕 극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셰익스피어는 이 극단에서 조연급 배우로서도 활동했으나 극작에 더 주력하였다. 그리고 이 기간을 전후해서 시인으로서의 재능도 과시하여 《비너스와 아도니스》(1593)와 《루크리스》(1594) 등 장시 (長詩) 두 편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활동한 기간은 1590년 ∼ 1613년까지 대략 24년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 희·비극을 포함하여 작품을 총 38편 발표하였다. 1590년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다. 특히 《헨리 6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도 안 나온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유명세는 날로 높아져만 갔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 “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은 셰익스피어를 “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비극 (로마극 포함) 10편, 희극 17편, 사극 10편, 장시 몇 편과 시집 《소네트》를 집필하였고,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이 시기 셰익스피어의 명성을 짐작케 하는 말로는 엘리자베스가 남긴 어록이 꼽힌다. “영국은 넘길 수 있어도 셰익스피어는 못 넘긴다.”
– 말년과 죽음
셰익스피어에 대한 첫 전기를 출간한 작가 니컬러스 로 (Nicholas Rowe)는 셰익스피어가 죽기 몇 년 전 고향인 스트랫퍼드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1610) 그러나 당시에 모든 작품 활동을 그만두고 은퇴하는 일은 보기 드문 경우였고, 말년에도 셰익스피어는 런던을 계속 방문하였다. 1612년에는 마운트조이의 딸 메리의 혼인 신고와 관련하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받았다. 1613년 3월에는 과거에 런던 블랙프라이어스 소 수도원 이었던 문루 (gatehouse)를 사들였다. 1614년 11월에는 내과 의사이자 사위인 존 홀과 함께 몇 주간 런던에서 지냈다.
1606년에서 1607년을 전후하여 셰익스피어는 몇 편 안 되는 희곡을 썼으나 1613년 이후에는 그의 창작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 마지막으로 쓴 희곡 세 편은 아마도 극작가인 존 플레처와 함께 창작한 것으로 보인다. 플레처는 셰익스피어의 뒤를 이어 왕의 수족을 위한 실내극을 창작하였다.
셰익스피어는 1616년 4월 26일에 아내와 두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맏딸 수재나는 내과의사 존 홀과 1607년에 결혼하였으며, 작은딸 주디스는 셰익스피어가 죽기 두 달 전에 포도주 제조 업자 토머스 퀴니와 결혼하였다. 수재나는 셰익스피어의 부동산을 물려받았는데, 유언장에 따르면 그녀는 그 재산을 온전히 보전하여 ‘그녀의 몸에서 낳은 첫 아들’에게 상속해야 했다. 둘째 사위 퀴니는 자식을 셋 두었으나 모두 결혼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홀의 외동딸인 엘리자베스도 두 차례 결혼하였지만 1670년에 자녀를 남기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나면서 셰익스피어의 직계는 대가 끊기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유언에서 당시 법에 따라 재산의 3분의 1을 상속받을 권리가 있었을 아내 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한 마디를 남겼는데, 그것은 자신이 그녀에게 “나의 두 번째 좋은 침대”를 물려준다는 것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언급한 침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난립하였다. 일부 학자는 그 침대가 실제 물건이 아니라 앤에게 모욕을 주려고 한 말이라고 보는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진짜 그런 침대가 있었고, 의미 있는 유산이었으리라고 믿는다.
셰익스피어는 고향의 성 트리니티 교회 (Holy Trinity Church)에 안장되었다. 그의 흉상 아래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판단은 네스터와 같고, 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 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 대지는 그를 덮고, 사람들은 통곡하고, 올림포스는 그를 소유한다.”

○ 작품 세계
셰익스피어는 각본을 총 36편, 14행시 (소네트)를 총 154편 썼다.
셰익스피어 희곡 전집은 1623년 극단 동료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셰익스피어는 생전에 이미 최대의 찬사를 받았고, 죽은 후에도 계속 숭앙의 대상이 되어 거의 신격화되었다.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이 “영국은 언젠가 인도를 잃을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위대한 인류의 유산이었다. 그는 ‘온화한 셰익스피어’라고 불리었지만, 인간에 대한 통찰력만큼은 그 누구에도 비할 수 없으며, 근대 영어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시극미 (時劇美)의 최고를 창조하였다라고 평가받는다.
– 희곡
르네상스 시대 대표적인 영국 극작가인 셰익스피어는 사극, 희극, 비극, 희비극 등 연극의 모든 장르를 섭렵하였고, 당대 각계각층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관객층에 대한 호소력으로 크리스토퍼 말로, 벤 존슨, 존 웹스터 등 동시대 탁월한 극작가를 뛰어넘는 성취를 이루었다.
*인물
특히 유럽 본토에 비해 다소 늦게 시작된 영국 문예부흥과 종교개혁의 교차적 흐름 속에서 그가 그려낸 비극적 인물들은 인간 해방이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상의 가장 심오한 극적 구현으로 간주된다. 1580년대 말로의 주인공들이 중세적 가치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상승적 에너지의 영웅적 면모를 구현하고 있고, 1610년대 웹스터의 주인공들이 인문주의적 가치의 이면에 놓인 어두운 본능의 세계에 함몰되는 추락의 인간상을 대변한다면, 1590∼1600년대에 등장한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은 중세적 속박과 르네상스적 해방이 가장 치열하게 맞부딪히는 과도기의 산물로서 그러한 상승과 추락의 변증법을 극명하게 체현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극은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문제를 가장 밑바닥에 깔고 있다. 셰익스피어에게 인간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 없었다면 그의 극이 이처럼 재미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초시대성을 획득하는 극소수의 작가 반열에 드는 것은 특정한 시대정신의 명징한 관념적 표상이 아니라 무한한 모순의 복합체로서의 인간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조화롭게 통합된 존재가 아니라 분열적으로 모순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르네상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화와 문예를 혁신하는 원동력이었다면, 그러한 인식의 비등점을 이룬 낭만주의, 모더니즘,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활발히 탐구되고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고전임을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표현
셰익스피어의 탁월함은 그의 문학적, 연극적 상상력과 감칠맛 나는 표현력에서도 드러난다.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속한 극장의 구조를 십분 활용하면서 구조의 제약을 뛰어넘는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관객과 독자를 매혹한다. 같은 이야기 소재라도 셰익스피어의 손에 들어가면 모든 이의 정서에 공감을 줄 수 있는 보편성을 갖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시공을 초월하여 거의 모든 삶의 영역을 탐구해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 심지어 현대의 경영학자들이나 정치가들에게도 셰익스피어는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또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유명한 대사처럼 셰익스피어는 감히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숱한 명대사를 남겼다. 작품 속 표현 한 마디 한 마디가 관객들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만들고, 교묘하고 신비로운 표현은 그 속에 인생의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오늘날 영어의 풍부한 표현력은 셰익스피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그의 작품이 가져다 주는 문학적 향취에 취해 감탄하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대사에는 운문과 산문이 혼재되어 있다. 절대 다수는 운문이지만 극적 필요에 따라 산문으로 대사를 쓰기도 했다.
*창작 시기에 따른 작품 구분
셰익스피어의 37편의 희곡 작품들은 상연 연대에 따라 대개 4기로 분류된다.
.제1기 : 습작기
1기는 습작기 (1590∼1594)로 이 기간 동안 주로 사극과 희극을 집필했다.
이 시기는 옛 작가의 모방과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한 모색의 과정이었다. 우선 <헨리 6세>의 3부작, <리처드 3세>의 사극과 병행하여 세네카풍 복수비극 <타이투스 안드로니쿠스>에서 출발하여 이 시기의 기조는 플라우투스풍의 <실수연발이>, 이탈리아 코믹풍의 <사랑의 헛수고>등 젊은 정열을 발산시키는 경쾌하고 밝은 희극의 세계에 있다. 전체적으로 고전극의 영향이나 말로, 릴리 등 선배의 영향을 받아 엇비슷한 것이 많으며 습작기의 영역에서 완전히 탈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침 페스트의 대유행으로 인한 극장 폐쇄기(1592 ~ 94)와 겹쳐 <비너스와 아도니스> (1593), <루크리스의 능욕> (1594) 등 일련의 서사시를 발표, 극작가로서 대성하기 전에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확립시킨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1기말에서 제2기에 걸쳐서는 그린, 말로, 키드, 피일 등 선배의 죽음이 계속되고 릴리도 사실상 극작의 붓을 놓기 시작한 시기였으므로 라이벌이 없어진 셰익스피어는 행운의 극작가로서 자기 길을 걷게 된 셈이며, 초기 낭만비극의 걸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바로 이 무렵에 탄생, 서정과 낭만성이 신인만이 갖는 청신함과 함께 곁들여져 있는 작품으로 천재 극작가로서의 편린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제2기 : 성장기
2기는 성장기 (1595∼1600)로 전기 (前期)의 희극세계가 더욱 확대되었다. 1595년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낭만 희극을 상연하여 호평을 받으면서 습작기를 벗어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 《12야》 등과 《베니스의 상인》 등으로 목가적 분위기나 희비극적 요소가 가민된 낭만희극의 걸작이 속출하는 한편, 《헨리 4세》 1부와 2부 같은 역사극과 《줄리어스 시저》라는 로마극이 상연되었으며, 본격적인 비극으로는 첫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상연되었다. 이를 통해 비극과 희극과 사극이라는 모든 장르에 탁월한 극작가로서 명성을 쌓게 된다. <햄릿>의 싹이 엿보이는 <리처드 2세>나 폴스타프의 개성창조, 극작술의 진보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재능이 훌륭하게 개화하여 인기 독점의 시대에 이른다. 인간적 관찰의 눈이 뚜렷해지고 기법이 숙련되어 당시의 극단에서 뛰어난 존재가 되었다. 이 시기의 그의 희극은 낭만적 희극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화려한 낭만이 온화한 해학에 감싸여 아름다운 언어로써 독특한 세계를 형성한다.
.제3기 : 원숙기
제3기는 원숙기 (1601∼1607)다. 희극의 계통으로서는 <윈저의 쾌활한 아낙네들> (폴스타프에 마음이 흡족해진 여왕의 요청으로 <사랑하는 폴스타프>를 테마로 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기 (前期)까지의 발랄한 명랑함이 자취를 감추고 ‘다크 코미디 (어두운 희극)’라고 불리는 문제 희극 3편, 즉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비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지>, <이척보척 (以尺報尺)> 밖에 없으며 ‘로마극’이라고도 하는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코리오러너스> 등 위대한 비극들이 집중적으로 창작되던 시대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심각함과 비극으로서의 장대함은 일찍이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시기에 씌어진 희극도 끝은 행복한 결과로 맺어졌으나, 매우 음울하여 앞 시기의 작품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제2기에서 제3기에의 이 커다란 변화는 양친의 죽음을 포함한 신변의 불행뿐만 아니라 여왕의 만년과 죽음을 둘러싼 사회정세의 불온, 정치 · 종교상의 혼란으로 인한 음모사건 (예컨대 1601년에 있었던 에세크 백작의 반란과 처형) 등에도 원인이 있겠으나, 이러한 비극은 ‘개인’의 성격비극인 동시에 ‘국가’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는 우주적 규모를 지닌 장대함으로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채프먼, 마스턴 등 신진작가들의 대두와 벤 존슨의 눈부신 활약이 있기는 했으나, 그래도 그들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셰익스피어의 창작력은 뛰어난 것이었다.
이 기간 중 4대 비극작품인 《햄릿》, 《오셀로》, 《리어 왕》, 《맥베스》가 상연되었다. 셰익스피어를 세계 문학사에서 불후의 명성을 지닌 작가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제3기에 집필된 극작품들일 것이다. 이들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는 깊은 인생 통찰을 보여주고 있음과 동시에 걸출한 등장인물들을 창조하고 있다. 《햄릿》에서는 우유부단한 주인공 햄릿을 통해 복수에 관련된 윤리성, 삶과 죽음의 문제, 정의와 불의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오셀로》에서는 무어인 장군 오셀로와 베니스의 귀족 여성 데스데모나, 그들 사이에서 이간질을 일삼는 이아고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신뢰와 질투의 문제를, ≪리어왕≫에서는 리어왕과 그의 세 딸인 코델리어, 거네릴, 리건의 이야기를 통해 효와 불효, 말과 진실, 외양과 실재의 문제를, ≪맥베스≫에서는 야심에 찬 맥베스와 그의 아내가 자행하는 찬탈의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문제를 심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가 상연된 것도 이 시기이다.
.제4기
제4기 (1608∼1613)에 들어 셰익스피어는 비희극이란 새로운 장르를 시험하는데, 당시 희비극의 장르에서 인기가 절정이었던 보먼트와 플레처에게 자극을 받아 쓴 것이 <심벨린>, <겨울밤 이야기>, <태풍> 등 일련의 로맨스극이으로 이 시기 동안 대중들의 감상적인 기호에 부합하는 네 개의 비희극이 상연되었다. 집안의 이산 (離散), 오랜 세월의 방랑을 거친 재회, 화해, 속죄를 테마로 하는 희비극의 세계는 파란으로 가득찬 20년 창작생활의 종막답게 폭풍 뒤의 고요와도 흡사한 안정된 기분으로 통일되고, 인생의 희비 · 명암의 전부를 보아온 작자의 달관된 심경마저 엿볼 수 있다. 원래 비극이어야 할 이야기가 그의 체념과 화해의 심정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결과로 맺어졌으므로, 보통 로맨스라 불린다.
이 시기에 상연된 《폭풍우》는 셰익스피어의 달관된 인생관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이제 연희는 끝났고, 지구의 삼라만상은 마침내 용해되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인간은 “꿈과 같은 물건이어서, 이 보잘것없는 인생은 잠으로 끝나는 것” (4막 1장)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무대에 대한 셰익스피어 자신의 고별사로 받아들여진다.
셰익스피어의 세계는 엘리자베스 왕조 연극의 다면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의 위대함은, 고전작가를 비롯하여 선배와 후배들의 여러 가지 요소를 흡수하면서, 뛰어난 재능과 정교한 극작술로써 모든 장르를 완성하고 동시에 자신의 독자적 세계를 창조했다는 점에 있다. 특히 르네상스적 인간상의 한 전형인 폴스타프의 활약으로 성공한 <헨리 4세>, <헨리 5세>에서의 사극과 희극의 융합, <리처드 2세>나 <로마극>에서의 사극과 비극의 융합은 각각 그린과 말로에게서 그 싹을 볼 수 있다고는 하나 다른 누구에게서도 달성될 수 없었던 영역이었다. 엘리자베스 왕조 연극의 위대한 완성자로서 영국 연극 뿐 아니라 세계 연극의 발전에 공헌한 공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라 하겠다.
– 시
1593년과 1594년에 페스트의 유행으로 극장들이 문을 닫게 되자 셰익스피어는 사랑을 주제로 삼은 두 권의 서사시를 출간했다.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레티아의 능욕》이 그것이다. 《비너스와 아도니스》에서 순수한 아도니스는 비너스의 성적인 접근을 거절한다. 반면에 《루크레티아의 능욕》에서는 덕있는 아내인 루크레티아가 호색한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에 의해 강간을 당한다. 이 시들은 통제되지 않는 정욕 때문에 죄와 도덕적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두 시 모두 인기를 얻었고 셰익스피어 생전에 재출간되곤 하였다.
– 소네트
1609년에 출간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출판한 책 중에서 연극적이지 않은 작품을 담은 마지막 책이었다.

○ 셰익스피어와 그의 시대
셰익스피어가 활동을 시작했던 16세기 후반의 영국은 한마디로 전환기였다. 어느 시대인들 전환기가 아닌 시대는 없겠지만, 이 기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역사적 사건들에서뿐만 아니라 그 밑에 흐르는 이념의 작동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던 분명한 전환기였다. 봉건 체제에서 근대국가 체제로의 전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와 유럽 열강으로의 편입, 상업주의의 부상, 다양한 문화 산업의 번성 등이 눈에 띄는 것이라면, 그 저변에 젠더에 대한 인식의 변화, 인종 문제의 부상, 사회의 유동화에 따른 계층의 와해조짐 등 이념적 변동 양상이 흐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라는 것은 이러한 사회변동 양상을 선구자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배하던 영국의 16세기 후반은 문예 부흥기일 뿐 아니라 국가적 부흥기였다. 동시에 사회의 제반 양상들이 요동치고 변화하는 전환기이자 변혁기이기도 했다. 성숙한 문학적 또는 문화적 분위기, 역동적인 사회가 던져주는 풍부한 소재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곳곳에 녹아들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문학작품 이상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참고서 역할까지 하게 된다.
그가 극장가에서 두각을 나타낼 무렵에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의 극작가들이 많이 활동하였는데 이들 중 극작가 로버트 그린은 셰익스피어를 향한 질투심에서 그의 학식이 낮은 사실을 이용하여 “라틴어는 조금밖에 모르고 그리스어는 더욱 모르는 촌놈이 극장가를 뒤흔든다”고 은근히 비꼬았다. 그러나 후대인들은 그들을 ‘대학 출신 재간꾼 (University Wits)’ 정도로 부르는 데 반해 셰익스피어는 ‘대가 (Master)’라고 불러 위대한 예술적 정신에 대한 예우를 하고 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게 된 데에는 운 좋게도 문학적 자양분을 풍부하게 제공하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점도 한몫 한다.
○ 작품 목록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서 셰익스피어가 살아있을 때 출판된 것은 19편 정도이고, 1623년에 작품집이 간행되었다. 이 전집은 이절판 (folio)의 대형판이다. 1623년 출판된 셰익스피어의 작품집에는 희곡이 서른여섯 편 있다. 작품집에 들어 있는 희곡은 희극과 사극과 비극으로 분류되어 있다.
– 희극
끝이 좋으면 다 좋아
뜻대로 하세요
실수연발
사랑의 헛수고
자에는 자로
베니스의 상인
윈저의 즐거운 아낙네들
한여름 밤의 꿈
헛소동
페리클레스
말괄량이 길들이기
템페스트
십이야
베로나의 두 신사
두 귀족 사촌 형제
겨울 이야기
– 사극
존 왕
리처드 2세
헨리 4세 1부
헨리 4세 2부
헨리 5세
헨리 6세 1부
헨리 6세 2부
헨리 6세 3부
리처드 3세
헨리 8세
–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코리올레이너스
타이터스 앤드로니커스
아테네의 타이먼
줄리어스 시저
맥베스
햄릿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
리어 왕
오셀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심벌린
– 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리스의 능욕
정열의 순례자
불사조와 산비둘기
연인의 불만
– 소실된 작품
사랑의 결실
카르데니오
–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희곡들
페버샴의 아덴
메를린 출신
로크린
런던의 탕자
청교도
두 번째 비극
올드케슬의 존 경
토머스 크롬웰
요크셔의 비극
에드워드 3세
토머스 모어

○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명언
Good name in man and woman, dear my lord, Is the immediate jewel of their souls: Who steals my purse steals trash; ’tis something, nothing; ‘Twas mine, ’tis his, and has been slave to thousands; But he that filches from me my good name Robs me of that which not enriches him And makes me poor indeed.
신이시여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명예란 그들 영혼을 직접 빛내주는 보석이나 같습니다. 만약 누가 내 지갑을 훔쳐간다면 그건 쓰레기를 가져가는 셈입니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한 때는 제 것이다가 이제는 다른 이의 것이며 수많은 이들의 손을 거치는 노예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누가 내 명예를 빼앗아 간다면 비록 그사람을 부유하게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저는 참으로 초라하게 될 것입니다.
There is a tide in the affairs of men Which taken at the flood, leads on to fortune; Omitted, all the voyage of their life Is bound in shallows and in miseries.
인간사엔 기회라는 것이 있는 법, 기회를 잘 타면 성공에 도달하지만, 놓치면 인생 항로는 여울에 박혀 불행하기 마련이오.
In a false quarrel there is no true valour.
엉터리 싸움에 진짜 용기는 필요치 않다.
We are advertis’d by our loving friends.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들에 의해서만 알려진다.
Frailty, thy name is woman! (Frailty, your name is woman!)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
If all the year were playing holidays; To sport would be as tedious as to work.
만약 매일매일이 휴일과 같다면 노는 것도 일하는 것 만큼이나 지루할 것이다.
Love is a gross exaggeration of the difference between one person and everyone else.
사랑이란 한 사람과 다른 모든 사람들 사이에 있는 차이를 심각하게 과장한 것이다.
How poor are they who have not patience! What wound did ever heal but by degrees.
인내하지 못하는 자는 얼마나 불행한가? 천천히 아물지 않는 상처가 어디 있단 말인가?
I must be cruel only to be kind; Thus bad begins, and worse remains behind.
내가 친절하자면 잔인해져야 해요. 그래서 나쁜 짓이 시작되고 더 나쁜 일은 뒤에 남습니다.
Our doubts are traitors, And make us lose the good we oft might win By fearing to attempt.
의심은 배반자이다, 의심하면 시도하는 것이 두려워져 얻을 수 있는 좋은 것을 얻지 못하게 만든다.
Glory is like a circle in the water, Which never ceaseth to enlarge itself, Till by broad spreading it disperses to naught.
영광이란 수면에 퍼지는 파문과 같은 것, 점점 넓게 퍼져 사라질 때까지 계속 커지지.
How far that little candle throws his beams! So shines a good deed in a weary world.
저렇게 작은 촛불이 어쩌면 이렇게 멀리까지 비쳐 올까! 험악한 세상에선 착한 행동도 꼭 저렇게 빛날 거야.
My words fly up, my thoughts remain below: Words without thoughts never to heaven go.
나의 기도는 하늘로 비상하나 나의 마음은 지상에 머물러 있구나. 진정한 마음이 담기지 않은 기도가 어찌 천국에 다다를 수 있으랴.
Be not afraid of greatness: some men are born great, some achieve greatness and some have greatness thrust upon them.
위대함을 두려워 말라. 어떤 사람은 위대하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위대함을 성취하며,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위대함을 떠맡긴다.
When griping grief the heart doth wound, and doleful dumps the mind opresses, then music, with her silver sound, with speedy help doth lend redress.
고통스러운 슬픔으로 가슴에 상처를 입고 슬픔에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음악은 은빛 화음으로 빠르게 치유의 손길을 내민다.
Life is as tedious as a twice-told tale, vexing the dull ear of a drowsy man.
인생은 같은 얘기를 또 듣는 것과 같이 나른한 사람의 흐릿한 귀를 거슬리게 한다.
In peace there’s nothing so becomes a man as modest stillness and humility.
평화로울 때에는 조심스러움과 겸손함만큼 남자답게 만드는 것이 없다.
The peace of heaven is theirs that lift their swords, in such a just and charitable war.
천국의 평화란 진정 정의롭고 자비로운 전쟁에서 칼을 드는 자들의 것이다.
There are more things in heaven and earth, Horatio, Than are dreamt of in your philosophy.
호레이쇼, 천지간에는 자네의 철학으로 상상하는 것보다 많은 것들이 있다네.
I thank God I am as honest as any man living that is an old man and no honester than I.
저는 저보다 정직하지 않은 그 어떤 노인보다도 정직하다는 것을 신께 감사드립니다.
The fool doth think he is wise, but the wise man knows himself to be a fool.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가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어리석다는 것을 안다.
Knowing I lov’d my books, he furnish’d me From mine own library with volumes that I prize above my dukedom.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그는 내가 내 공작의 작위보다 더 소중히 여길 책들로 내 서재를 채워 주었다.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 By any other name would smell as sweet.
이름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장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져도 똑같이 향기로울 게 아닌가?
This bud of love, by summer’s ripening breath, May prove a beauteous flower when next we meet.
이 사랑의 꽃봉오리는 여름날 바람에 마냥 부풀었다가, 다음 만날 때엔 예쁘게 꽃필 거예요.
Cowards die many times before their deaths; The valiant never taste of death but once.
겁쟁이는 죽기 전에 여러 번 죽지만, 용사는 한 번밖에 죽지 않소.
How sharper than a serpent’s tooth it is To have a thankless child!
고마워할 줄 모르는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뱀의 이빨보다 얼마나 더 날카로운지!
The better part of valor is discretion, in which the better part I have saved my life.
신중함은 용기의 일부이니, 나는 용기를 발휘해서 생명을 구한 것이다.
Life is a tale told by an idiot —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인생은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와 같다. 시끄럽고 정신없으나 아무 뜻도 없다.
But love is blind and lovers cannot see The pretty follies that themselves commit; For if they could, Cupid himself would blush To see me thus transformed to a boy.
그러나 사랑은 눈 먼 것이라 연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은 짓을 알지 못해요. 만약 알 수 있다면, 큐피드도 나를 보고 얼굴을 붉히며 평범한 소년으로 변해버릴 거예요.
Silence is the perfectest herald of joy: I were but little happy, if I could say how much.
침묵이야말로 기쁨을 전하는 최고의 전령이지요. 말로 할 수 있는 정도의 기쁨이라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지요.
Let me not to the marriage of true minds Admit impediments: love is not love Which alters when it alteration finds. 진실한 사람들의 결혼에 장해를 용납하지 않으리라. 변화가 생길 때 변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로다.
Some rise by sin, and some by virtue fall.
죄를 짓고 잘되는 사람도 있고, 덕을 베풀고 망하는 사람도 있다.
We know what we are, but not what we may be.
우리는 오늘은 이러고 있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요?
I wasted time, and now doth time waste me.
나는 때를 놓쳤고, 그래서 지금은 시간이 나를 낭비하고 있는 거지.
Truth is truth To the end of reckoning.
심판이 끝나도 진실은 진실입니다. (진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I understand a fury in your words, But not the words.
당신 말 속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어요.
What’s gone and what’s past help Should be past grief.
지난 일은 어쩔 수 없는 바 슬퍼한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Love all, trust a few. Do wrong to none.
모두를 사랑하되, 몇 사람만 믿으라. 누구에게도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Have more than thou showest, speak less than thou knowest.
보이는 것보다 많이 가지고, 아는 것보다 적게 말하라.
Love is a smoke made with the fume of sighs, Being purged, a fire sparkling in lovers eyes, Being vexed, a sea nourished with lovers tears. What is it else? A madness most discreet, A choking gall and a preserving sweet.
사랑이란 한숨으로 일으켜지는 연기, 개면 애인 눈 속에서 번쩍이는 불꽃이요, 흐리면 애인 눈물로 바다가 되네. 그게 사랑 아닌가? 가장 분별 있는 미치광이요, 또한 목을 졸라매는 쓰디쓴 약인가 하면, 생명에 활력을 주는 감로이기도 하네.
If music be the food of love, play on; Give me excess of it, that, surfeiting, The appetite may sicken, and so die. That strain again! it had a dying fall: O, it came o’er my ear like the sweet sound That breathes upon a bank of violets, Stealing and giving odour!
음악이 사랑을 살찌우는 양식이라면 계속해다오. 질리도록 들어 싫증이 나버리면 사랑의 식욕도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 아니냐. 다시 한 번 들려다오. 아스라이 사라지는 선율, 귓가에 감미롭게 들린다. 흡사 제비꽃 피는 언덕 위의 미풍이 몰래 꽃향기를 훔쳐 싣고 오는 것 같다.
The rest is silence.
남은 것은 침묵 뿐이로다.
Things won are done; joy’s soul lies in the doing.
얻은 것은 이미 끝난 것이다. 기쁨의 본질은 그 과정에 있으므로.
Brevity is the soul of wit.
무릇 간결은 지혜의 본질이요.
Thought is free.
생각은 자유다.
Pray you now, forget and forgive.
이제 기도해 잊고 용서하라.
You, too, Brutus!
브루투스, 너마저 (나를 죽이려고 들다니).
No legacy is so rich as honesty.
정직만큼 풍요로운 유산은 없다.
Men of few words are the best men.
말 적은 이가 제일 좋은 사람이다.
He that dies pays all debts.
죽으면 만사 청산이다.(죽으면 모든 빚이 저절로 청산된다.)
He hath (has) eaten me out of house and home.
저 자는 내게서 집과 가정을 앗아갔다.
Love looks not with the eyes, but with the mind.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 거지.
Your hearts are mighty, your skins are whole.
두 분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대용사가 된 셈이오.
He wears his faith but as the fashion of his hat.
그의 믿음은 그가 쓰는 모자의 유행처럼 변한다.
Farewell! God knows when we shall meet again.
잘 있거라!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원래 좋고 나쁜 것은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For they are yet ear-kissing arguments.
그것들은 여전히 귀를 간지르는 개살구같은 논쟁이기 때문이다.
Our bodies are our gardens to which our wills are gardeners.
우리의 몸은 정원이요, 우리의 의지는 정원사다.
Every man has his fault, and honesty is his.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기 마련이지. 그분의 경우는 솔직하다는 게 결점이야.
Though I am not naturally honest, I am so sometimes by chance.
내가 본래 정직한 건 아니지만 가끔 우연히 정직할 때도 있다.
Every man has business and desire, Such as it is.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일과 원하는 것이 있다, 비록 보잘 것 없을 지라도
They have been at a great feast of languages, and stolen the scraps.
그들은 위대한 언어의 향연에 초대 받아 찌꺼기만 훔쳐왔다.
The worst is not So long as we can say, “This is the worst.”
지금이 제일 비참하다고 할 수 있는 동안은 아직 제일 비참한 게 아니다.
O, how this spring of love resembleth The uncertain glory of an April day!
아, 이 사랑의 봄은 사월 어느 날의 변덕스런 영광을 닮았구나!
The better part of valour is discretion.
용기의 핵심 부분은 신중함이다.
Yet do I fear thy nature; It is too full o’ the milk of human kindness.
그러나 나는 당신의 성품이 걱정됩니다. 당신은 인정이 너무 많아요.
Blow, blow, thou winter wind. Thou art not so unkind, As man’s ingratitude.
불어라 불어라 겨울바람아. 너는 배은망덕한 사람만큼이나 무정하구나.
How use doth breed a habit in a man!
인간이란 습관들이기 나름인가보다!
We have some salt of our youth in us.
우리 안에는 활기와 강력한 욕정이 자리잡고 있다.
Love is merely madness.
사랑은 그저 미친 짓이예요.
What a deformed thief this fashion is.
이 패션은 뒤틀어진 도둑이로구나.
Strong reasons make strong actions.
강력한 이유는 강력한 행동을 낳는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는냐. 이것이 문제로다.
It is a wise father that knows his own child.
자기 자식을 알면 현명한 아버지이다.
A friend should bear his friend’s infirmities.
친구라면 친구의 결점을 참고 견뎌야 한다.
Suspicion always haunts the guilty mind.
죄 지은 이는 항상 의심을 버리지 못한다.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