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8년 1월 11일, 네덜란드의 과학자•성직자 니콜라스 스테노 (Nicolaus Steno, 1638 ~ 1686) 출생
니콜라스 스테노 (Nicolaus Steno, 1638년 1월 11일 <그레고리력>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코펜하겐
~ 1686년 11월 25일 / 12월 5일 <그레고리력> 향년 48세,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 슈베린)는 덴마크의 지질학자, 해부학자이자 성직자로, 층서학의 기반을 다지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본명은 닐스 스텐센 (Niels Stensen)이다.
지사학의 5대 법칙 중 부정합의 법칙, 관입의 법칙을 포함하여 수평 퇴적의 법칙, 생물군 천이의 법칙 등을 처음 제시하였다.
또한 과학 혁명 시기에 과학적 방법론을 도입한 과학자 중 하나로, 책에 쓰인 내용을 그대로 믿기 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중시하는 경험론에 입각하여 이론을 수립하였다.
본디 루터교 신자였으나, 후일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 후 노르웨이 대목구의 주교 자리까지 오른다.
– 니콜라스 스테노 (Nicolaus Steno)
.본명: 닐스 스텐센 (Niels Stensen)
.출생: 1638년 1월 11일 (그레고리력),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코펜하겐
.사망: 1686년 11월 25일 / 12월 5일 (그레고리력, 향년 48세),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 슈베린
.묘지: 이탈리아 피렌체 산 로렌초 성당
.국적: 덴마크
.직업: 학자, 성직자 · 주교
.분야: 해부학, 고생물학, 지질학
.학력: 코펜하겐 대학교 (졸업, 1657년 입학)
.경력: 노르웨이 대목구의 주교, 층서학 창시
.주요저서: Opera philosophica
.종교: 개신교 (루터회) → 가톨릭
.시복: 1988년 10월 23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함
.축일: 12월 5일
1659년 니콜라스 스테노는 책에 쓰여진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이론을 수립하였다. 니콜라스 스테노는 이러한 업적으로 과학 혁명 시기에 과학적 방법을 도입한 선구자 가운데 한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지층의 누적에 대한 이론을 발표하여 ‘층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니콜라스 스테노는 독실한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였으며, 1987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 생애 및 활동
니콜라스 스테노는 율리우스력으로 1638년 새해에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닐스 스텐센이며, ‘니콜라스 스테노’라는 이름은 라틴어 이름이다.
그의 아버지는 크리스티안 4세의 금세공사였으며, 루터교 신자였다.
니콜라스는 어렸을 적 알려지지 않은 병에 걸려 가족들과 떨어져 자랐다. 1644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어머니는 다른 금세공사와 재혼하였다. 1654년에서 1655년 사이에 니콜라스가 다니던 학교에는 흑사병이 돌아 240명의 학생이 사망하였다. 그가 살던 집 건너편에는 당시 덴마크의 부호 페데르 그리펜펠트가 살았다.
1657년 19살의 나이로 코펜하겐 대학교에 입학한 스테노는 처음엔 약학을 공부하였으며, 졸업 후 네덜란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을 여행하며 많은 과학자와 사상가들 (바뤼흐 스피노자, 르네 데카르트 등)을 만났다 (이후 이 경험은 그가 과학적 발견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 때의 공부를 통해 스테노는 기존의 신학이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을 이론 수립의 기반으로 삼게 되었다.
1671년 그리펜펠트는 니콜라스 스테노에게 코펜하겐 대학교의 교수직을 제안하였다.
프랑스 여행 후 1666년 이탈리아에 정착하는데, 파도바 대학의 해부학 교수로 들어간다.
이후 피렌체에서 스테노는 근육 수축과 관련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 종교관
니콜라스 스테노는 플랑드르에서 공부하면서 루터교 신앙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고 로마 가톨릭교회로 개종하였다. 1677년에 주교로 임명되었다.
○ 업적
- 지질학
1666년 메디치 가문의 토스카나 대공국의 대공 페르디난도 2세의 명으로, 토스카나 지방의 어부 두 명이 낚아 올린 상어를 연구하다가 상어의 이빨이 ‘glossopetrae’ (직역하면 ‘혀 돌’)라 불리던 돌 (현대의 상어 이빨 화석)과 유사하게 생겼다는 것을 발견한다.
단단한 암석층 안에서 단단한 상어 이빨이 나오는 것에 의문을 품은 스테노는 광물, 결정, 암맥, 암석의 층리 등을 연구하였고, 1669년 저서 “De solido intra solidum naturaliter contento dissertationis prodromus”를 발간한다.
니콜라스 스테노는 1669년 발간한 저서에서 해양성 침식물과 담수성 침식물을 구분하고 화석이 과거 지구상에 살았던 생물의 흔점임을 밝혔다.
니콜라스 스테노의 가장 큰 업적 가운데 하나는 지층이 유수의 침식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과 그에 따라 오래된 층 위로 새로운 층이 쌓여나간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또한 니콜라스 스테노는 지층에 포함된 화석을 지층 형성 시기 판별의 중요한 자료로 삼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저서에는 층서학의 기초가 되는 지사학의 5대 법칙 중 부정합, 수평 퇴적의 법칙, 관입의 법칙, 생물군 천이의 법칙 등이 담겨 있었다. 스테노의 이런 아이디어는 후일 ‘지질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임스 허턴에게 영향을 준다.
그는 광물 연구를 통해 면각 일정의 법칙을 제시한다 (때문에 이 법칙을 ‘스테노의 법칙’이라 부르기도 한다).
- 신학
루터교 신자였던 스테노는 본인의 신앙에 의구심이 들어 후일 가톨릭으로 개종하였고, 1677년 노르웨이 대목구의 주교로 임명된다.
○ 평가
현대 층서학의 기반이 되는 주요 법칙들을 주장하였기에 ‘층서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본인이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하는 경험론에 입각한 과학적 사고를 보여줬다.
2015 대한민국 개정 교육과정의 지구과학Ⅰ에도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