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3년 7월 30일, 프랑스 루이 14세의 왕비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 / 마리테레즈 도트리슈 / 오스트리아의 마리 테레즈 (Marie-Thérèse d’Autriche, 1638 ~ 1683) 별세
오스트리아의 마리 테레즈 (프: Marie-Thérèse d’Autriche, 1638년 9월 10일 ~ 1683년 7월 30일)는 프랑스의 왕비로, 루이 14세의 아내이다.
같은 이름의 프랑스 공주 마리 테레즈는 그의 7대손녀가 된다.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전적 질병을 간파한 프랑스 왕실 고문 쥘 마자랭 추기경은 루이 14세와 마리 테레즈의 결혼을 배후에서 성사시켰고, 그녀의 손자인 필리프 당주 공작은 장애인이었던 마리의 이복 남동생 스페인 왕국의 왕 카를로스 2세가 자식이 없자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 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사 / 마리테레즈 도트리슈 / 오스트리아의 마리 테레즈(Marie-Thérèse d’Autriche)
.출생: 1638년 9월 10일, 스페인 산로렌소데엘에스코리알 엘 에스코리알
.사망: 1683년 7월 30일, 프랑스 베르사유 베르사유 궁전
.배우자: 루이 14세 (1660년–1683년)
.자녀: 루이 드 프랑스, 마리테레즈 드 프랑스, 안 엘리자베트 드 프랑스 왕녀, 더보기
.부모: 펠리페 4세, 엘리자베트 드 프랑스
.형제자매: 카를로스 2세, Philip Prospero, Prince of Asturias
오스트리아의 마리 테레즈 (프: Marie-Thérèse d’Autriche, 1638년 9월 10일 ~ 1683년 7월 30일)는 1638년 9월 10일, 스페인 산로렌소데엘에스코리알 엘 에스코리알에서 출생했다.
펠리페 4세와 첫 아내 엘리자베트의 6자녀 중 막내딸로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의 왕비이다.
루이 14세 태양왕은 그의 남편이자 외사촌 오빠였다.
초상화 속의 외모와는 달리 실제로는 작은 키와 뚱뚱한 체구이며 주걱턱이었다 한다.
일설에 의하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빵이 없으면 케이크라도 먹지”라는 발언은 마리 테레즈가 했던 말이 악의적으로 왜곡된 것이자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뒤집어씌워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 때, 케이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생크림 케이크 종류가 아니다. 원문에선 ‘브리오슈’라고 칭했으며, 이는 버터가 더 들어간 빵의 한 종류이다).

결혼 후 23년간 줄곧 외로운 프랑스 궁정에서 평생을 보냈으나 죽을 때만큼은 루이 14세가 곁에서 임종을 지켰다.
그녀가 사망했을 때 루이 14세는 “그녀가 처음으로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voilà le premier chagrin qu’elle me cause).”라 말했다고 한다.
- 기타
흑인 노예와의 불륜으로 사생아를 낳았다는 설이 있다. 루이즈 마리 테레즈 (Louise Marie-Thérèse)라는 이름의 이 흑인 여성은 베네딕토회의 수녀였으며, 생전에 마리아 테레사의 사생아라는 의심을 받았다. 원래대로라면 평범한 수녀로 살다 세상을 떠났겠지만, 그녀를 둘러싼 소문 때문에 그녀는 역사 속에 이름을 남겼다.
루이즈 마리 테레즈가 왕비의 사생아로 의심받은 것은 왕비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부터였다. 루이 14세는 마리 테레즈 왕비가 사망한 1683년으로부터 2년 후인 1685년 6월 경 루이즈 마리 테레즈에게 300 파운드의 금과 ‘그녀가 평생 동안 기거해온 수도원 또는 앞으로 기거할 곳에 이 금을 지불한다’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루이 14세의 이와 같은 행동에 수상함을 느낀 프랑스 궁정에서는 이후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바로 루이즈 마리 테레즈가 왕비의 사생아라는 것이다. 상당히 유명한 소문이었는지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회고록에 언급되었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