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7년 3월 16일, 영국의 공주•프로이센 왕국의 왕비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 (Sophie Dorothea von Hannover, 1687 ~ 1757) 출생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 (Sophie Dorothea von Hannover, 1687년 3월 16일 ~ 1757년 6월 28일)는 프로이센의 왕비로,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아내이다.
조지 1세와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의 딸이다. 아버지는 하노버 선제후 게오르크 (Georg Ludwig. 1714년에 그레이트브리튼의 하노버 왕가의 시조가 된 조지 1세)이며, 오빠는 조지 2세이다.

– 하노버의 조피 도로테아 (Sophie Dorothea von Hannover)
.이름: 조피 도로테아 (Sophie Dorothea)
.출생: 1687년 3월 16일, 칼렌베르크 공국 하노버
.사망: 1757년 6월 28일 (70세), 베를린 몽비주 궁전
.부모: 조지 1세,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형제: 조지 2세
.배우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1706년 결혼 / 1740년 사망)
.자녀: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빌헬미네, 프리드리히 빌헬름, 프리드리히 2세, 샤를로테, 프리데리케 루이제, 필리피네 샤를로테, 루트비히, 조피 도로테아, 울리케, 아우구스트 빌헬름, 안나 아말리,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프로이센 왕국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왕비이자 프리드리히 대왕의 어머니이다.
1687년 하노버에서 선제후 게오르크와 그 아내 조피 도로테아 폰 첼레 (Sophie Dorothea von Celle)의 외딸로 태어났다. 1707년 고모 조피 샤를로테의 아들이자 고종사촌인 프로이센의 왕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성격이 전혀 달랐고 사이도 좋지 않았으나 사이에 7남 7녀를 낳았다. 조피는 예술과 학문에 조예가 깊었고 그녀의 이러한 성향은 아들 프리드리히 2세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 생애 및 활동
- 어린 시절
1687년 3월 16일 하노버의 게오르크와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의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위로는 3살 터울의 오빠 게오르크가 있었으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 1694년 부모님이 이혼하여 할머니 팔츠의 조피 밑에서 자랐다.
- 왕세자비
1706년 11월 28일 고종사촌인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왕세자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종종 만난 적이 있었는데 조피 도로테아는 프리드리히 빌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나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피 도로테아와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성격이 너무나 달랐고 결혼 생활도 어려움에 직면했다. 조피 도로테아는 예술, 과학, 문학, 패션 등에 관심이 있었던 반면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폭력적이었고 군대에 관심이 많았다.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불륜을 하거나 애첩을 들인 것은 아니었으나,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아내에게 자주 폭력을 일삼았고 그녀를 구타했기에 조피가 결혼한 지 1년만에 이혼을 고려할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1707년 첫 아이이자 후계자인 프리드리히 루트비히가 태어났다. 프로이센 왕국은 왕세손의 탄생에 기뻐했지만 프리드리히 루트비히는 생후 6개월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조피 도로테아는 불임 판정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몇 명의 자녀들을 더 낳았고, 1712년에 후계자 프리드리히를 출산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7남 7녀의 자녀들이 태어났다.

- 왕비
1713년 시아버지 프리드리히 1세가 사망하고 남편이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로 즉위하여 조피 도로테아도 프로이센 왕국의 왕비가 되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즉위 당시 프로이센은 스웨덴과 전쟁 중이었는데 조피 도로테아는 임신중인 몸인데도 불구하고 남편과 동행했다고 한다.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신하들에게 조피 도로테아와 항상 상의하고 그녀의 승인 없이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조피 도로테아는 학문에 조예가 깊고 야망있는 여성이었으나 남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순종적이지 않은 아내를 항상 못마땅하게 여겼다. 또 연극과 무용, 음악 등에 관심이 있었던 조피 도로테아를 경박하고 사치스럽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조피 도로테아는 남편이 관심있어 하는 군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또한 성격이 거칠고 난폭한 남편으로 인해 결혼 생활 내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자식들을 매우 아꼈는데 남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에게 학대를 받았던 장남 프리드리히 왕세자와는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부자간의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프리드리히 왕세자의 편을 들었으며, 이에 대해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자식들과의 관계를 나빠지게 한다며 조피 도로테아를 비난했다. 또 자신이 없을 때 조피 도로테아와 아이들이 만나게 하는 것을 금지했다. 결국 조피 도로테아는 몰래 아이들을 만나야 했으며,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예상치 못하게 조피 도로테아의 방에 들어왔을 때에는 아이들이 몰래 숨기도 했다.
조피 도로테아는 프로이센 왕국과 영국간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장남 프리드리히가 아멜리아 공주와 결혼하고 장녀 빌헬미네가 프레더릭 왕세자와 결혼하길 바랐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프리드리히는 브라운슈바이크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와, 빌헬미네는 브란덴부르크바이로이트의 프리드리히와 각각 결혼했다. 빌헬미네가 결혼한 이후에도 조피 도로테아는 자녀들을 영국 왕실로 시집보내는것을 포기하지 못했는데, 4녀 필리피네 샤를로테 공주, 6녀 루이제 울리케 공주를 프레더릭 왕세자에게 시집 보내려다 결국 실패했다. 필리피네 샤를로테 공주는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공작 카를 1세와, 루이제 울리케 공주는 아돌프 프레드리크와 결혼했다.
- 왕대비
1740년 5월 31일, 남편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드디어 사망하여 왕대비가 되었다. 장남 프리드리히 2세는 조피 도로테아와 사이가 매우 좋아서 항상 어머니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했으며, 아무도 그녀를 비난하지 못하게 했다. 며느리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와는 초반에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한다. 조피 도로테아는 사망할 때까지 아들의 효도를 받다가 1757년 6월 28일에 눈을 감았다.
○ 가족관계
부모: 조지 1세,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형제: 조지 2세
배우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1706년 결혼 / 1740년 사망)
자녀: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빌헬미네, 프리드리히 빌헬름, 프리드리히 2세, 샤를로테, 프리데리케 루이제, 필리피네 샤를로테, 루트비히, 조피 도로테아, 울리케, 아우구스트 빌헬름, 안나 아말리,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페르디난트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