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8년 5월 22일, 독일의 루터교 스콜라 신학자 요하네스 안드레아스 크벤슈테트 / 퀜스테트 (Johann Andreas Quenstedt, 1617 ~ 1688) 별세
요하네스 안드레아스 크벤슈테트 / 퀜스테트 (Johannes Andreas Quenstedt, 1617년 8월 13일 ~ 1688년 5월 22일)는 루터교 스콜라신학의 독일 루터교 교의학자다.
– 요하네스 안드레아스 크벤슈테트 (Johann Andreas Quenstedt)
.출생: 1617년 8월 13일, 독일 크베들린부르크
.사망: 1688년 5월 22일, 독일 비텐베르크
.배우자: 도로테아 퀜스테트
.지도 교수: Georg Calixtus, 크리스토프 노트나겔
.저서: Decanus Facult. theol. Jo. Andr. Quenstedt Lecturis S. in D. I.!

○ 생애 및 활동
요하네스 안드레아스 크벤슈테트 (Johann Andreas Quenstedt)는 1617년 8월 13일, 독일 크베들린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1637~43년 헬름슈테트 대학교와 1644년 비텐베르크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 후 그곳에서 지리학을 강의했다. 1646~49년 철학과 겸임교수, 논리학 및 형이상학 일반 교수 및 신학 부교수, 1649–60; 1660~88년 별세할 때까지 신학 교수를 역임했다.
요하네스 안드레아스 크벤슈테트 (Johann Andreas Quenstedt)는 루터교의 정통주의 형성에 반응을 나타낸다. 대학 강의에서 30년 동안 작업한 결과는 Theologia didactico-polemica sive systema theologicum(Wittenberg, 1685; Leipzig, 1715)로 출판되었다. 루터교 정통의 가장 엄격한 기준에 따라, 그의 스승인 Johann Friedrich König의 Theologia, positiva acroamatica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주제를 내부에서 발전시키는 대신 외부에서 독단화하는 것이 특징이며, 학문적 세련미가 풍부하다.
그의 다른 저서로 Ethica Pastorum et instructio cathedralis(1678), Dialogus de patriis illustrium doctrina et scriptis virorum (Wittenberg, 1654)과 논문집 Exercitationes de theologia in genere ejusque principio sancta scriptura(1677) 등이 있다.

○ 저서
De Germine Jehovae & Davidis, Christo Jesu
Wittebergae, 1700
Wittebergae : Wendt, 1670
De Passione Domini & Salvatoris Nostri Jesu Christi, Quaestionum Semidecas / Quam … Praeside Johan. Andrea Quenstedt … defendet M. Paulus Philippus Röberus Wittebergensis Saxo Theosophiae Studiosus. ad d. 2. Aprilis … (Wittebergae : Fincelius, 1656)
De persecutione verae ecclesiae dissertatio theologica Wittebergae, 1676
De Petitione Naamanis Syri, Dissertatio Theologica ex 2. Reg. V. vers. 18. (Wittebergae : Hake, 1670)
De Petitione Naamanis Syri, Dissertatio Theologica Ex 2. Reg. V. vers. 18. (Wittenbergae : Henckelius, 1678)
De Petitione Naamanis Syri: Dissertatio Theologica ex 2. Reg. V. vers. 18 (Hake, 1670)
De praecipuo S. Scripturae scopo, Jesu Christo, diss. theol (Wittebergae : Fincelius, 1654)
De puritate fontium Hebraei V. et Graeci N. T. exercitatio inauguralis (Wittebergae, 1675)

○ 시대적 배경
1577년 일치의 신앙고백이 만들어지고 1580년 일치의 책이 출판되면서 루터교의 정통주의가 형성되었다. 정통주의 신학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의 주요한 역사적인 특징으로서 신조주의 신학의 한 부분이다. 이는 지적인(지성주의) 경건과 신학을 온전히 동일시하고, 신앙고백서들의 표현들의 부동의 고수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고려하였던 하나의 신학의 방향이었다. “순수한 가르침”의 이러한 신학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칼빈주의 개혁교회의 공격에 대한 방어이었다. 교리의 체계 확립과 호교(변증)는 신학의 두 중심영역이었다. 루터교 정통주의의 교의학은 스콜라주의와 매우 근접하여 있으며, 심지어 17세기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통하여 전제되어졌던 부동의 형식주의와 교회의 가르침이 전승되어졌던 형태를 위하여 강력하게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였던 예수회-스페인의 신스콜라주의까지도 수용한다.
그것은 성경의 해석으로 나타났는데, 성경을 그것으로부터 루터교 가르침을 시작할 수 있는 하나님의 교리계시의 옛 사본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에 의하여 형성되어졌던 성경 영감설은 성경의 원본문의 문자적인 영감으로 히브리어 성경 자음아래 모음까지도 영감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프라키우스, 요한네스 게르하르트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대변하였다. 물론 루터교 정통주의의 본산은 비텐베르크이었다. 진정한 가르침을 위하여 싸웠던 루터로부터 철저하게 하나의 길이 루터교 정통주의로 이끈다. 칭의의 항목은 물론 루터교 정통주의 신학의 중심에 놓여 있다.
그러나 루터교 정통주의를 위한 주 통로를 준비한 사람은 필립 멜란히톤이다. 1521년에 그가 쓴 글 ‘신학사항들이나 혹은 신학개요의 근본개념들’ (loci communes)은 초기 루터교 정통주의의 주요저작들의 제목과 방법을 위한 전형이 되었다. 대표적인 신학자들로는 ‘신학개요’ (loci theologici) 를 집필한 마르티누스 켐니키우스 (마르틴 켐니쯔, 1522-1586), 루터교 정통주의의 중심저작으로 알려진 ‘신학개요’를 집필한 요한네스 게르하르트 (1582 ~ 1637)를 들 수 있다. 게르하르트는 1610년부터 1625년까지 이 글을 집필하였으며, 이 글은 오래토록 루터교회의 교리신학 교제로 활용되었다. 이들의 글들은 신학적 교리를 형성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의 적용 안에서 멜란히톤을 따르고 있다. 신학의 중심개념들이 논리적-수사적인 정리에 활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 루터신학에 유입된 것은 루터교 정통주의의 중심된 특징이다. 그리고 그것은 후기 인무주의 정신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정확한 개념으로 적대자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필연성과의 관계에서 생각할 수 있다.
루터교 정통주의 중기의 대표자들로는 요한네스 안드레아스 크벤슈테트 (1617 ~ 1688), 아브라함 칼로프 (1612 ~ 1686), 다비드 홀라쯔 (1648 ~ 1713)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신학을 전개하는데 분석적인 방법을 활용하였다. 이들에 의하여 신학은 구원의 길에 대한 실천적인 학문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초기의 개요-방법에 비하여 순수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인식 대상의 변화의 문제이었다. 신학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유입된 것과 나란히 성경에 대한 가르침은 루터교 정통주의의 하나의 포괄적 특징이었다. 성경의 원리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의 적용에서 성경원리에 대한 가르침이 생성되었다. 이들은 성경은 그것 자체로부터 진리가 나오고, 결코 다른 어떤 확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성경은 전권, 완전과 온전히 충분함, 명백한 명료성과 그리고 구원의 효력을 갖는다. 총체적인 성경은 각각의 철자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영감 되었다고 이해하였다 (문자적 영감설). 그러나 이런 논리적 정통주의 성경관의 확립은 성경에 대한 역사비평을 위한 침투의 문을 열어놓고 말았다. 이들은 성경에 대해 이성비평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이다.
루터교 정통주의 시대는 역시 경건문헌과 경건, 그리고 영적인 문학의 고전시대이었다. 1600년경 이러한 경건문헌들의 번영은 “경건의 위기”와 “경건의 변화”와 결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도움으로 점차 더욱 합리화 되는 신학은 신앙과 경건에 대한 필요에 어떠한 자극도 주지 못했다. 좀머는 종교개혁 3세대에서 신학과 경건은 특별히 강력하게 비켜섰다고 주장한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내면화와 구체화, 개별화를 위하여 고대, 중세 중기와 후기의 신비주의를 모방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경건운동의 가장의미 있는 글은 요한네스 아른트 (1555 ~ 1621)의 ‘참된 그리스도교에 대한 네 권의 책’이다. 이 글은 1605년부터 1610년 사이에 그에 의하여 쓰였고, 19세기까지 놀랍게 유포되었다. 아른트는 칭의론에서부터 출발하여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삶으로 변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발만은 요한네스 아른트를 경건주의의 창시자로 평가한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