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9년 5월 17일, 영국의 의사로 우두법 발견한 ‘천연두의 대부’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 1749 ~ 1823) 출생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 1749년 5월 17일 ~ 1823년 1월 26일)는 영국의 의사이다.

–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
.출생: 1749년 5월 17일,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글로스터셔 주 버클리
.사망: 1823년 1월 26일 (73세),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글로스터셔 주 버클리
.국적: 영국
.직업: 의학자, 동물학자
.학력: 세인트 조지 대학교,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종교: 기독교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는 ‘천연두의 대부’이기도 하다.
우두법의 발견자이다.

○ 생애 및 활동
에드워드 제너 (Edward Jenner, 1749년 5월 17일 ~ 1823년 1월 26일)는 글로스터셔 주의 버클리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제너는 우턴인더에지와 시렌세스터에서 공부를 하고, 1761년에 소드베리에서 일하던 외과 의사 대니얼 러들로의 견습생이 되었다.
1770년부터 2년간, 런던 대학 세인트 조지스 병원의 유명한 외과의사인 존 헌터 밑에서 의학을 배우고, 그들의 우정은 헌터가 1793년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제너는 런던에서 동안 박물학자 조지 뱅크스 밑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뱅크스는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 (1728 ~ 1779)이 첫 번째 남반구 탐험에 나섰을 때 박물학자로 승선해 항해하였다.
1788년에 캐서린 킹스코트와 결혼했다.
1792년,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773년에 고향 마을에서 개업의가 되었으나, 1775년 무렵에 천연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이 지방에서는 우유 짜는 부인이 소의 천연두(우두)를 경험한 뒤에는 사람이 앓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제너는 이러한 사실을 의학에 응용하여 1778년에 그의 관찰을 모았으며, 1796년 5월 14일에 제1회의 종두 (種痘)를 그 지방 소년에게 행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798년까지 23번의 실험을 실시하여 그 결과를 왕립 협회에 보고했다.
그리고 제너는 자신의 논문을 개인적으로 ‘천연두 백신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의 진가가 인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제너는 라틴어로 암소를 바카 (vacca)라고 하는데 이 단어로부터 백신 (vaccine)과 백신 접종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1803년, 런던에서 백신 접종을 촉진하기 위해 왕립 제너 협회가 설립되었다.
제너는 이 실험을 계속하여 마침내 프랑스에서 받아들이게 되어 전 세계로 퍼졌다.
우두법은 유럽 각지, 그리고 이어서 미국 등지에서 인정되어, 1800년까지 6000명 가량의 사람이 접종했다.
정부는 제너의 연구를 원조하기 위하여 1802년과 1807년의 2회에 걸쳐서 도합 3만 파운드의 조성금을 내놓았다.
런던 명예시민으로 추대된 그는 1814년에 생애 최후의 런던 방문을 하였으며, 1823년 1월 26일 뇌졸중으로 고향 마을에서 사망했다.
천연두는 그로부터 200여년 후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 백신의 선구자 에드워드 제너
영국의 의사이자 과학자인 에드워드 제너는 세계 최초의 백신인 천연두 백신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만연했던 천연두에 대한 예방법으로 우두법을 제시하면서 전 세계 그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백신은 현대 면역학 분야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놓았으며, 이로 인해 면역학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에드워드 제너는 1749년에 영국 글로스터셔 버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때 치핑소드베리 지역의 의사인 대니얼 러들러의 견습생이 돼 7년 동안 교육을 받았다.
1770년에 교육을 완료한 이후에는 런던 세인트조지병원의 외과의사 존 헌터 밑에서 해부와 수술을 배웠다. 이후 1772년에 버클리로 돌아가 의사로 활동했다.
제너는 대부분의 환자가 농부인 농촌 사회에서 일했다. 18세기에 천연두는 가장 치명적인 병원성 질환이었는데, 종두법은 천연두 예방법으로 이미 알려져 있었다.
영국에서 종두법은 1721년에 메리 워틀리 몬터규가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종두법은 건강한 사람의 정맥에 상처를 내고 천연두 환자의 농포에서 채취한 소량의 물질을 접종하는 인두법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천연두가 전염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었다.
제너는 소의 젖을 짜는 여성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천연두와 비슷하지만 덜 치명적인 질환인 우두를 경험한 사람으로부터 채취한 고름이 천연두를 막을 수 있다는 가정을 세웠다.
그는 1796년에 8세 소년에게 우두를 앓는 사람의 고름을 주입하는 방법을 시험했다. 이 소년은 접종 이후 미열이 발생했는데 본격적인 감염이 일어나지 않고 수일 뒤에 건강을 되찾았으며 나중에 다시 시험했을 때도 감염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
제너는 라틴어로 소를 의미하는 vacca에서 Variolae vaccinae(우두)이라는 단어를 고안했으며 vaccine 및 vaccination은 여기서 파생돼 만들어졌다. 그는 백신 접종에 대한 연구를 계속 수행하면서 연구 결과를 영국 왕립학회에 보고했다.
이러한 연구의 전체 결과는 1798년에 발표됐다. 우두법은 초창기에 반대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곧 인정을 받아 유럽과 미국에서 시행됐다.
이후 제너는 평생 동안 전 세계에 우두 물질을 공급하고 관련 과학적 문제를 논의하는데 주력했다. 영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인정해 1802년에 1만 파운드, 1807년에 2만 파운드를 수여했다. 제너는 1821년에 조지 4세의 특별 주치의로 임명되기도 했다.
제너는 1823년에 뇌졸중으로 인해 사망했다. 영국 정부는 1840년에 우두를 이용한 예방접종을 무료로 시행했으며 1853년부터 의무 예방접종을 시작했다.
에드워드 제너가 천연두 백신을 만든 후 200년 가까이 지난 1980년에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 종식을 선언했다. _ 의약뉴스, 2019.10.14
○ Publications
1798 An Inquiry Into the Causes and Effects of the Variolæ Vaccinæ
1799 Further Observations on the Variolæ Vaccinæ, or Cow-Pox.
1800 A Continuation of Facts and Observations relative to the Variolæ Vaccinæ 40pgs
1801 The Origin of the Vaccine Inoculation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