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9년 1월 25일,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의 방랑 서정시인 (작사가) 로버트 번스 (Robert Burns, 1759 ~1796) 출생
로버트 번스 (Robert Burns, 1759년 1월 25일~1796년 7월 21일)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의 시인이자 방랑 서정시인 (작사가)이다.
– 로버트 번스 (Robert Burns)
.출생: 1759년 1월 25일, 영국 앨러웨이 (Alloway)
.사망: 1796년 7월 21일, 영국 덤프리스 (Dumfries)
.장례일: 1817년 9월 19일
.묘소: St Michael’s Church, Dumfries
.직업: 작곡가 겸 작사가, 시인, 작가, 음악학자, 농부
.언어: 스코트어, 영어
.국적: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영국
.사조: 낭만주의
.배우자: Jean Armour
.자녀: Elizabeth Bishop (Burns), 맥스웰 번즈, James Glencairn Burns, 프란시스 월레스 번즈
.주요 작품: 작별, To a Mouse, Is There for Honest Poverty, Ae fond kiss, and then we sever…, Scots Wha Hae, Tam o’ Shanter, Halloween, The Battle of Sherramuir 등
○ 생애 및 활동
1759년 1월 25일, 스코틀랜드 가난한 농부의 일곱 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번스는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과 농사를 거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아버지에게 읽기와 쓰기, 산수와 역사, 성경공부 등의 기초교육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는 번스―그의 문학적 감수성은 순전한 독학에 의한 것이었다. 거기에 농부로서 또 사내로서의 생생한 인생체험들이 더해져서, 감미로운 음악처럼 아름다운 시들로 승화되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고된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시를 읽고 17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에이셔 (Ayrshire) 앨러웨이 (Alloway)의 가난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청년기에는 농장 품삯 일꾼이었고,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대를 이어 소작 농부가 됐다.
그는 농사에 운도 재능도 없었던 듯하다. 농사보다 구전 노랫말을 개사하고, 당시 유럽 구석구석 기운이 스미던 계몽주의적 사상을 버무려 창작도 하면서, 답답한 시절을 견뎠다고 한다. 그의 시는 처음부터 노래를 겨냥한 거였다.
번즈는 악평이 자자한 연애를 많이 했고 그의 엄마의 하인 사이에서 서녀 한명을 두기도 했다. 그리고 동네 채석공의 어린 딸인 진 아모르를 만났다. 매리 캠벨과의 짧은 연애에 이어 번즈와 진은 1786년 쌍둥이를 갖게 되었고 2년 뒤에 결혼을 했다. 막슬린 (Mauchline, 로버트 번즈는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의 미인으로 알려진 그녀는 번즈의 여러 시에 영감을 주었다.
1786년, 가난이 지겨워 신대륙 자메이카로 이민을 떠날 결심을 한 27세의 그는, 뱃삯을 마련하기 위해, 써 모은 시들을 ‘주로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쓰인 시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고, 그 시집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노랫말 같은 시들은 잉글랜드 중심의 도도한 고전풍 문학과 달리 서민들의 언어로 그들의 정서를 사실주의적으로 표현했다. 구애와 사랑의 서정시가 많았지만, 계몽적 박애와 자유를 노래한 시들, 계급 억압에 대한 저항의 노래도 적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농민들이 그의 시집을 읽었고, 귀족과 지식인들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자메이카 섬으로 이주하기 위한 뱃삯을 벌기 위해 쓴 시 ‘주로 스코틀랜드 방언에 의한 시집’ (Poems, Chiefly in the Scottish Dialect)으로 천재 시인이라 불리고 성공함으로써 이주할 필요가 없어져 시를 짓는 데 더욱 열중하게 되었다.
문화적 명사가 된 그는 이민을 포기하고 애든버러의 상류 계층민들과 어울렸지만, 그의 경제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징세 관리원으로 취직해 일했지만, 때는 프랑스혁명의 시기였다. 그의 시를 즐겨 읽던 이들도 혁명 이념을 찬양하는 그의 글은 못마땅해했고, 무엇보다 스스로도 세리인 자신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젊어서부터 술을 즐겨 건강이 썩 좋지 않았다는 그는 1796년 7월 21일 심장병으로 별세했다.
심장병으로 37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할 때까지, 번스는 스코틀랜드 민요의 수집과 편집, 복원과 개작, 스코틀랜드 전통곡조에 맞춘 노랫말창작에 열중하였다.
대표작에 ‘오두막집의 토요일 밤’이 있다. 그의 시 (그리고 노래)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은 종종 한 해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에 불린다.
○ 평가
로버트 번스 (1759 ~ 1796)는 간단히 방랑시인 (The Bard)로 잘 알려져 있고,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국민 시인으로 널리 간주되고 있다.
낭만파 운동의 기수였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창설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민요 멜로디에 그의 시로 가사를 붙인 새해의 노래 ‘올드 랭 사인’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혁명 사상의 선구자로서 모순에 찬 당시의 사회· 교회· 문명 일반을 예리한 필치로 비난하고, 정열적인 향토애로 스코틀랜드 농부와 시민의 소박한 모습을 나타내어 뒤에 작곡가들에 의해 그의 작품이 많이 인용되었다.
만년에는 과다한 음주로 건강을 해치고, 경영하던 농장까지 잃게 되어 불우하게 지냈지만 그는 스코틀랜드 국민 시인으로서 존경받고 있다.
18세기 말기 시풍의 개척자이며, 영국 방언 시인의 제1인자이기도 하다.
○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 그리고 ‘번스의 밤’
매년 송년의 밤, 스코틀랜드 의회는 여야 의원들이 함께 ‘올드 랭 사인 (Auld Lang Syne)’을 합창하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old long since’라는 의미라는 저 스코트어 노래는 하지만, 200여 년 전 처음 불린 이래 세계인의 작별의 노래가 됐다.
노랫말을 시로 남긴 이가 스코틀랜드 국민 시인 로버트 번스 (Robert Burns, 1759~1796)다.
‘Red red roses’ ‘A man’s a Man for A That’ 등 그의 시들은 모두 노래가 됐다.
올드 랭 사인은 번스가 한 노인의 노래에 착안해 1788년 지은 시로 작곡가 윌리엄 쉴드가 곡을 붙였다.
스코틀랜드 인들은 그의 생일인 1월 25일 지녁을 ‘번스의 밤’이라 부르며 지금도 국경일처럼 기린다.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