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6년 1월 24일, 독일의 소설가•작곡가 E. T. A. 호프만 (Ernst Theodor Wilhelm Hoffmann, 1776 ~ 1822) 출생
에른스트 테오도어 빌헬름 호프만 (독: Ernst Theodor Wilhelm Hoffmann, 1776년 1월 24일 ~ 1822년 6월 25일)은 독일의 후기 낭만주의 작가이자 작곡가이다.
– E. T. A. 호프만 (Ernst Theodor Wilhelm Hoffmann)
.출생: 1776년 1월 24일, 쾨니히스베르크
.사망: 1822년 6월 25일, 독일 베를린
.직업: 작가, 작곡가
.배우자: Marianna Tekla Michalina Rorer (1802 ~ 1822년)
.자녀: 카칠리아 호프만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 (현재의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에서 출생하였으며 그림과 음악에 뛰어났고 대법원 판사를 지냈다. 그 후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공상적이며 마법적인 기괴한 것이 많으며 에드거 앨런 포를 비롯해 니콜라이 고골, 찰스 디킨스, 샤를 보들레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프란츠 카프카 등의 문학가들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로베르트 슈만, 자크 오펜바흐, 표트르 차이콥스키, 파울 힌데미트, 리하르트 바그너, 레오 들리브 등과 같은 음악가들이 작곡한 작품의 원천이 되거나 영감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문학가와 음악가뿐만 아니라 알프레드 히치콕, 잉마르 베리만, 길예르모 델 토로 등과 같은 영화 감독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정신분석학의 선구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그의 작품인 〈모래 사나이〉를 대상으로 논문 〈섬뜩함〉(독: Das Unheimliche)을 쓰기도 했다.
○ 생애 및 활동
E. T. A. 호프만 (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은 1776년 당시 독일 땅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던 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났다. 호프만이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서 자랐다. 이때 그는 음악에 심취하여 모차르트에 매료된다. 그래서 훗날 자신의 본명 Ernst Theodor Willhelm Hoffmann에서 Willhelm을 빼고 대신에 ‘Amadeus Mozart :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서 따온 Amadeus로 바꾼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E. T. A. 호프만’이 된 것이다.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쾨니히스베르크, 베를린 등을 거쳐 폴란드 지방에서 법관으로 일했다. 1806년 나폴레옹의 진군으로 관직을 잃은 호프만은 음악에 몰두하여 밤베르크와 드레스덴에서 지휘자, 비평가, 음악 감독으로 일했다. 이 시기에 오페라 「운디네」 등을 작곡하여 음악가로서의 평판도 쌓았다. 1809년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하였다. 그러나 문학적으로 성공을 거둔 것은 이후 수년이 더 지난 후부터였다.
1814년 다시 관직에 나선 호프만은 낮에는 법관으로, 밤에는 화가, 작곡가, 작가로 일하면서 열정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았다. 1814년 단편들을 모은 『칼로풍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822년 46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1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놀랄 만한 문학적 업적을 남겼다.
호프만은 『황금단지』(1814), 『악마의 묘약』(1816),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1816), 『모래 인간』(1817), 『클라인 차헤스, 치노버』(1819), 『브람빌라공주』(1820),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1821)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죽고 난 후 알렉상드르 뒤마가 각색한 작품을 토대로 러시아의 차이콥스키가 발레곡을 작곡해 세계적으로도 호프만의 작품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이 알려지게 되었다.
○ 영향
E. T. A. 호프만 (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 1776 ~ 1822)은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문학뿐 아니라, 음악, 미술 분야에서도 재능을 발휘하여 낭만주의의 ‘보편 예술’ 정신을 구현한 독보적인 인물로 꼽힌다. 생애 대부분을 법원 관리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1799년 징슈필 「가면」 작곡을 필두로 작곡과 평론 등 음악 활동으로 예술가의 길을 시작한다. 오페라단 단장직에서 해임당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기인 1814년에 그간 집필한 「황금 항아리」 등을 모아 펴낸 소설집 『깔로풍의 환상집』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문학계 유명인사로 자리 잡는다. 이후 8년간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가며 장편소설 『악마의 묘약』(1815 ~ 16), 「모래 사나이」 등을 수록한 소설집 『밤 풍경』(1816~17), 중편소설 「키 작은 차헤스, 위대한 치노버」(1819),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왕」 「스뀌데리 부인」 등을 수록한 소설집 『세라피온의 형제들』(1819 ~ 21)을 잇달아 펴낸다. 건강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매년 수백 페이지를 써내며 『브람빌라 공주』(1820),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1820 ~ 21) 같은 장편소설과 소설집의 후속권들을 쉼 없이 출간한다. 1822년 위중한 상태로 병석에서 『사촌의 구석 창문』을 구술로 마무리하고, 당국과의 마찰로 검열당한 『벼룩 대왕』을 출간하는 등 “죽기 전에는 살아 있기를 멈추지 않”으며, 온몸이 마비된 채 구술을 하던 중 생애를 마감했다. 환상문학의 전범이자 장르문학의 고전, 그로떼스끄의 대가, 심리묘사의 거장으로서 도스또옙스끼, 고골, 보들레르, 발자끄, 포 등 무수한 작가들을 매료했고, 음악계에서도 차이꼽스끼, 슈만, 오펜바흐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 주요 작품
- 문학
《숫고양이 무르의 인생관》(독: Lebensansichten des Katers Murr)
《밤의 풍경》(독: Die Nachtstücke)
〈모래 사나이〉(독: Der Sandmann)
〈적막한 집〉(독: Das öde Haus)
〈장자 상속〉(독: Das Majorat)
《제라피온 형제들》(독: Die Serapionsbrüder)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 대왕〉(독: Nussknacker und Mausekönig)
〈이그나츠 데너〉(독: Ignaz Denner)
〈팔룬의 광산〉(독: Die Bergwerke zu Falun)
이 밖에도 많은 작품이 있다.
- 음악
.합창
미사 라단조(1805)
미제레레 내림 나단조(1809)
.가곡
흘러내린 흰 식탁(1811)
.오페라
불멸의 약(1808)
운디네(1816)
.기악(관현악, 실내악, 피아노곡)
교회용 음악 서곡 라단조(1801)
다섯 개의 피아노 소나타(가장조, 바단조, 바장조, 바단조, 올림 다단조, 1805~8)
교향곡 내림 마장조(1806)
하프 5중주 다단조(1807)
대 삼중주 마장조(피아노 3중주, 1809)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