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2년 4월 22일, 아일랜드 출신의 여성 해적 앤 보니 (Anne Bonny, 1702 ~ 1782) 별세
앤 보니 (Anne Bonny, 1702년 3월 8일 ~ 1782년 4월 22일)는 카리브 해 일대에서 활동한 아일랜드계 해적이다. 메리 리드와 함께 기록상에 남은 유일한 여성 해적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그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매우 적다.

– 앤 보니 (Anne Bonny)
.별명: 애니
.유형: 캐리비안 해적
.출생: 1702년 3월 8일, 아일랜드 킨세일
.사망: 1782년 4월 22일, 불명으로 신대륙 모처
.소속: 캘리코 잭 해적단
.활동기간: ? ~ 1720년 10월
.활동근거지: 카리브해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으며, 젊어서 북아메리카로 이주했다. 개척민 생활은 매우 고되었다.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죽었고, 아버지는 변호사가 되려 했으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결국 상업에 뛰어들었고, 어느 정도 자산을 쌓았다. 보니는 붉은 머리카락을 가졌으며 성격이 괄괄했다. 이후 아버지의 재산을 노린 가난한 선원 제임스 보니와 결혼했다.
바하마로 건너간 보니는 그 지역 해적을 대상으로 하는 술집을 경영했고, 존 래컴을 만나 그 애인이 되었다. 보니는 쿠바에서 래컴의 아이를 낳고, 남편과 이혼한 뒤 래컴과 결혼했다. 보니 및 메리 리드가 포함된 래컴 해적단은 슬루프함 리벤지 호를 탈취하여 도주, 해적질을 했다.

○ 생애 및 활동
앤 보니 (Anne Bonny)는 1702년 3월 8일, 아일랜드 킨세일에서 출생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이주한 아일랜드계 변호사의 사생아로 어머니는 유명한 변호사의 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였으며, 아버지의 본처가 이를 알게 되었지만 본처는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라 보니의 어머니와 보니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소지품과 함께 캐롤라이나로 보냈다.
이 때 선원인 제임스 보니와 사랑에 빠져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할 것이라 생각해 몰래 결혼했다가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며, 1719년 5월에 선술집에서 존 래컴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었다. 래컴이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보니는 래컴의 친구집이 있는 쿠바로 갔다가 래컴의 설득으로 남자로 위장해서 제임스와 함께 뉴 프로비던스에서 해적이 되어 8월에 해적질을 시작한다.
해적선에 있는 동안에 메리 리드가 여자인 것을 알게 되고 리드와 함께 선원들에게 여자인 것을 밝혔으며, 해적으로 활동할 때는 헐렁하고 느슨한 옷을 입고 다니면서 용감하게 싸웠다. 전투가 없을 때는 잠깐씩 여자 옷을 입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1720년, 래컴 해적단이 해적 사냥꾼 조나단 바네트에게 나포되었다. 대부분의 선원들은 술에 취하거나 잠이 덜 깨서 저항 불능 상태였지만, 보니와 리드,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남자까지 세 명은 끝까지 격렬히 저항했다. 래컴 해적단은 모조리 자마이카로 송치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보니와 리드는 임신 중이었기에 사형이 유예되었다. 수감된 래컴을 본 보니는 “남자답게 싸웠다면 개처럼 목 매달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힐난했다.
리드는 출산 후유증으로 추측되는 열병으로 1721년 사망했지만, 보니는 죽었다는 기록도, 석방되었다는 기록도, 탈옥했다는 기록도, 사형당했다는 기록도 없고, 이후 존재가 증발한다. 아버지가 보석금을 내어서 석방되었다던가, 전남편에게 돌아갔다던가, 다른 이름으로 계속 해적 행위를 했다던가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옥스포드 인명사전》에 따르면 아버지에 의해 석방되어 래컴의 둘째 아이를 낳았던 사우스캐롤라이나로 돌아가 그 지역 남자와 결혼하고 점잖은 부인으로 살다가 1782년에 향년 80세로 사망했다고 한다.

○ 캐리비안의 여해적, 앤 보니와 메리 리드
해적의 세계는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캐리비언 해적들 중에 두 여성 해적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앤 보니 (Anne Bonny)와 메리 리드 (Mary Read)가 그들이다.
그들의 출생에 애매함이 있지만, 메리가 앤보다 10살쯤 더 많다. 두 여인은 서로 다른 생활을 하다가 카리브해에서 만나 함께 해적생활을 했다.
- 앤 보니 (Anne Bonny)
앤 보니 (Anne Bonny)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출생연도는 대략 1700년으로 파악된다.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생모는 그의 직원이었다. 아버지는 본처와 함께 런던으로 이사를 하면서 사생아에게 남자 옷을 입혀 사환이라고 속였다. 그런데 본부인이 눈치를 채고 남편의 재산을 모두 빼앗았다.
아버지는 빈털터리가 되어 앤의 생모를 데리고 영국령 아메리카 캐롤라이나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를 따라 아메리카에 온 앤은 얼마후 생모를 잃었다. 앤은 어려서 붉은 머리를 했는데, 성질이 괄괄했다고 한다. 앤은 제임스 보니라는 남자와 사귀어 결혼했다. 남편은 장인에게 땅을 달라고 하다가 거절당했고, 둘은 아버지에게서 쫓겨났다.
앤은 남편과 함께 바하마로 건너갔다. 당시 영국은 바하마 총독에 우즈 로저스를 임명해 카리브해 해적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남편은 해적들과 어울려 다니며, 그들의 소재지를 파악해 로저스에게 밀고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앤은 남편의 그런 행동을 못마땅해 했다.
앤도 바하마에서 해적들과 어울렸다. 그러던 중에 해적 두목 존 래컴(John Rackham)과 사귀어 애인이 되었다. 래컴은 앤의 남편에게 이혼하면 돈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남편은 거절했다. 하는수 없이 앤은 래컴과 함께 도망쳐 래컴이 이끄는 배의 선원이 되어 해적이 되었다.
- 메리 리드 (Mary Read)
메리 리드는 영국 출신으로 1685년 생이다. 선원이었던 아버지는 일찍이 바다에서 사망했다. 과부가 된 어머니가 혼외정사로 낳은 아이가 메리였다. 메리가 태어날 때 오빠가 일찍 죽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감추고 앤을 남장시켜 시어머니이게 양육비를 달라고 거짓말을 했다. 시어머니는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앤이 10살이 되도록 돈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메리는 남장을 한 채 선원이 되었고, 그후 군인이 되어 스페인 왕위계승전에 영국군으로 참여했다. 그는 전선에서 벨기에 남성과 눈에 맞아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남장을 하며 군에서 주는 혜택을 모두 받았다고 한다. 남편이 일찍 죽자, 그는 다시 군대 생활을 했지만, 승진 기회도 없어 전역하고 카리브해로 갔다.
메리는 서인도제도로 가는 도중에 그녀가 탄 배가 해적에게 체포되었다. 해적선에 잡힌 그녀는 자발적으로 해적이 되었다. 그후 해적단속반에 걸려 사면을 받아 사략선에 가담하기도 했지만, 다시 해적이 되었다.
그러던 중에 그녀는 존 래컴이 선장인 해적선을 탔고, 앤 보니를 만나게 되었다.
앤과 메리는 서로 여자임을 알아챘다. “너 여자지.” “그래”. “나도 여자야.”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전투에도 앞장서 용감하게 싸웠다. 둘이 붙어다니는 것을 래컴이 못마땅했다. 앤은 래컴에게 메리가 여자임을 알려 줬다. 앤과 메리가 여자임은 세 사람만 아는 비밀로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둘이 여성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래컴의 해적단에 붙잡혔다가 풀려난 도로시(Dorothy)라는 여인은 훗날 증언에서 “그들은 남자 상의에 긴 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수건을 싸맸다. 둘다 권총과 마체테(machete, 날이 넓고 무거운 칼)을 들고 다녔다. 남자 해적들이 나를 죽이려 하자 그들이 달려와 강하게 항의하며 보호해주었다. 나는 두 사람의 가슴을 보고 여자인줄 알았다.”고 말했다.
래컴의 배는 1720년, 해적을 추적 중이던 영국 단속선에 나포되었다. 단속반이 배에 올라오자 남자 해적들은 술에 취하거나 잠이 덜 깨서 저항하지 못했지만, 앤과 메리만 끝까지 격럴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그 배에 탔던 모든 해적들이 체포되어 영국령 자메이카로 끌려갔다.
재판에서 모든 해적에게 사형이 언도되었다. 다만 앤과 보니는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법령에 의해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
앤은 래컴이 사형되기 직전에 그를 만나 “남자답게 싸웠다면 개처럼 목이 매달릴 일도 없었을 거야”라고 힐난했다고 전해진다.
메리는 출산 후유증으로 추측되는 열병으로 1721년 사망했다. 하지만 앤이 죽었다는 기록이 없다. 앤은 출산후 감옥에서 나와 캐롤라이나로 돌아갔다는 설, 카리브해에 남아 해적활동을 재개했다는 설등이 있지만, 확인되지 않는다. ‘옥스포드 인명사전’에는 앤이 1782년에 향년 80세로 사망했다고 한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