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1년 9월 26일, 프랑스의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 (Théodore Géricault, 1791 ~ 1824) 출생
테오도르 제리코 (Théodore Géricault, 1791년 9월 26일 ~ 1824년 8월 31일)는 프랑스의 화가이다.

– 테오도르 제리코 (Théodore Géricault)
.출생: 1791년 9월 26일, 프랑스 루앙
.사망: 1824년 1월 26일, 프랑스 파리
.국적: 프랑스
.직업: 화가
.제자: Joseph Simon Volmar
.부모: Louise-Jeanne-Marie Caruel, 조르주 니콜라스 제리코
.자녀: Georges-Hippolyte Géricault
.사조 : 낭만주의
.주요작품 : ‘돌격하는 샤쇠르’, ‘A Horse Frightened by Lightning’, ‘메두사호의 뗏목’
.전시 장소: J. Paul Getty Museum,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찬틸리 성 등
고전주의에서 해방된 낭만파의 선구자이다.
그는 루벤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며, 1816년 이탈리아에 유학하였다.
들라크루아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 화가는 짧은 생애에 그 시대를 회오리 바람처럼 치달아 빠져갔다.

○ 생애 및 활동
테오도르 제리코 (Théodore Géricault)는 1791년 9월 26일, 루앙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과 기마(騎馬)에 정열을 쏟아 질풍처럼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회화는 다비드 풍으로만 신중히 그린 게랭에게 배웠는데, 동문 (同門)으로 후배에 유명한 들라크루아가 있다.
게랭은 천재를 구속하지 않았다.
제리코는 21세에 〈엽기병 (獵騎兵)의 사관 (士官)〉을 출품했는데, 그것은 전장의 호쾌함을 실감있게 전했고 그로에 이어 정열적인 색채로서 강한 감동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그 후 시대의 변동으로 그는 이탈리아에서 배웠으며 특히 로마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天障畵)에 감명을 받았다.
미켈란젤로처럼 웅위 (雄偉)한 제작을 염원하여 일시 화풍을 바꾸었으나, 귀국 후 제재를 찾는 중에 메듀즈 호 (號)의 비극을 알고, 1819년에 그 대작을 발표했다.
그러나 평판은 의외로 좋지 않아 그는 그 대작을 가지고 영국을 순회했는데, 일찍부터 폐를 앓은 그는 영국의 기후로 병이 더욱 악화되었고,

귀국 후에는 〈질그릇 굽는 가마〉 등을 제작했으며, 낙마 (落馬)하여 병이 더욱 악화, 불행한 투병끝에 31세로 요절했다.
그의 대표작은 1점에 불과하지만, 그는 자성 (資性) 웅대함에 프랑스 회화가 낳은 가장 대형의 천재였다.
루벤스에게 영향을 받고 외젠 들라크루아에게 큰 영향을 끼친 낭만주의 회화의 선구자 ‘테오도르 제리코’는 1824년 1월 26일, 프랑스 파리에서 33세에 요절했지만, 짧고 낭만이 있는 삶을 보내고 떠났다.
제리코의 대표작 〈메두사호의 뗏목〉 (1819)은 대담한 구도와 명암의 강한 구성 등으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메두사호의 똇목>은 메두사호 난파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다. 1816년 당시 프랑스 식민지 세네갈로 향하던 메두사호는 바위에 부딪혀 좌초 위기에 빠졌다.
선장과 세네갈 총독을 포함한 고위 공무원, 장교 등이 6개밖에 없는 구명보트를 탔고, 나머지 150명이 급하게 만든 거대 뗏목에 탔다. 처음에 구명보트와 똇목은 밧줄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똇목의 무게로 보트가 앞으로 나가질 못 하자 구명보트에서 밧줄을 끊어버린 것이다.
결국 버려진 똇목의 사람들은 낮의 더위, 밤의 추위 그리고 배고픔과 싸워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반란, 광기, 살인, 식인 등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고 13일 만에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에는 150명 중 15명만이 살아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실화를 들은 제리코는 충격에 빠졌고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
한편 제리코의 다른 작품으로 〈에프솜의 경마〉 (1821), 〈미친 여인〉 (1822) 등이 있다.

○ 제리코와 ‘말’ 관련 작품
제리코는 33세에 요절했지만, 짧고 낭만이 있는 삶을 보내고 떠났다. 그는 프랑스 루앙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귀족의 취미들을 누릴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말도 탈 수 있었으며, 그림도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다. 특히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의 제리코는 기마 (騎馬)에 정열을 쏟아 질풍처럼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열성적인 성격은 미술에도 드러났다. 때문에 제리코의 부모는 좀 더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의 선생님을 구했다. 다비드 풍의 고전주의를 고수하던 피에르나르시스 게랭 (Pierre-Narcisse Guérin)의 견습생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게랭은 천재성이 다분했던 제리코를 구속하지는 않았다. 고전주의만을 고집하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도록 가르친 것이다. 참고로 게랭의 제자 중에는 훗날 낭만주의 역사화가 외젠 들라크루아도 있었다.
그렇게 기본적인 미술교육을 토대로 자율적으로 습작을 하던 제리코는 21살이 된 1812년에 처음으로 파리의 살롱전에 지원했다. 그리고 큰 호평을 받으며 살롱전 입상까지 하는데, 그 작품이 바로 ‘돌격하는 샤쇠르’다. 고전주의 게랭의 그림과는 딴판인 이 작품은 정열적인 색채와 섬세한 움직임 묘사로 마치 전쟁터의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생동감을 부여했다.
그가 이렇게 생동감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좋아했던 스포츠 승마에 있다. ‘돌격하는 샤쇠르’를 살펴보면 사실 인물보다는 타고 있는 말에 의해 생동감이 느껴진다고 볼 수 있다. 말에 대한 관찰력에서 나온 표현인데, 앞발을 번쩍 들고 있는 놀란 말의 행동, 동그랗게 커진 말의 눈, 거품을 물고 있는 입, 흥분한 코까지 말의 표정과 움직임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제리코는 입상작품 외에도 수많은 말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유명하다. 1814년 작품 ‘전쟁터를 떠나는 부상당한 기갑병’에서는 패잔병과 말의 절박한 표정을 담았고, 1815년 작품 ‘흰 말의 머리’에서는 말의 얼굴만을 크고 자세하게 그려 화제가 됐다. 이외에도 ‘두 말들 (Two Horses)’, ‘회색 말 (Gray Horse)’, ‘말 경주 (Horse Race)’ 등 말과 경주에 대한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렇듯 제리코의 말에 대한 애착은 남다른데, 유독 1821년 작품 ‘A Horse Frightened by Lightning’에 등장한 말은 지금까지 말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을 준다. 마치 ‘야생마’ 같다. ‘말의 해부학’이라는 책까지 썼을 정도로 제리코는 말에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도 훌륭한 승마선수였다. 물론 너무나 열정적이어서 잦은 낙마 사고로 부상과 합병증으로 고생을 해야만 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 그린 이 작품은 승마에 대한 열정과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더 이상 말을 타지 못 하는 아쉬움을 붉은색 말에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다시 파리 살롱전 입상으로 돌아가서, 21세라는 젊은 나이에 입상한 그는 곧바로 이탈리아 미술 정복에도 나섰다. 1816년 로마상 (Prix de Rome) 경연에 지원했으나 2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유학 기회를 날린 그는 자비로 이탈리아 여행을 떠났는데, 피렌체, 로마, 시에나, 나폴리 등을 여행했다. 여러 르네상스 걸작들 중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에 큰 감명을 받아 파리로 돌아와 그린 그림이 약간 그로테스크한 작품인 ‘기수 없는 말의 경주 (The Race of the Riderless Horses)’다.

○ 주요 작품
메두사호의 뗏목
Bust of a Black Man, 1808 (Ajuda National Palace)
Wounded Cuirassier Leaving the Field of Battle, 1814
Horse Head, 1815
Riderless Racers in Rome, 1817 (The Walters Art Museum)
The Capture of a Wild Horse, 1817
Portrait of Laure Bro, 1818
Portrait of a young man 1818
Heroic Landscape with Fishermen, 1818
Portrait Study of a Youth, ca. 1818–1820
Horse in the Storm, 1820–1821
The Derby of Epsom, 1821
The Kiss, charcoal, sepia wash and white gouache on paper, ca. 1822
White Arabian Horse, before 1824
Nude, Musée Bonnat (Bayonne)

- Les Monomanes (Portraits of the Insane)
Edit
Portrait of a Kleptomaniac, 1822 (Museum of Fine Arts, Ghent)
The Woman with a Gambling Mania, 1822 (Louvre, Paris)
Man Suffering from Delusions of Military Rank, 1822 (Collection Oskar Reinhart am Römerholz, Winterthur)
La Monomane de l’envie (Insane Woman), 1822 (Museum of Fine Arts of Lyon)
A kidnapper, 1822–1823 (Museum of Fine Arts, Springfield, Massachusetts)
The Melancholic Man, [Unknown Year], (Ravenna, Emilia-Romagna, Italy)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