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7년 3월 26일, 영국의 지질학자 ‘동일 과정설의 제창자’ 제임스 허턴 (James Hutton, 1726 ~ 1797) 출생
제임스 허턴 (James Hutton, 1726년 6월 3일 ~ 1797년 3월 26일)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지질학자이다.

– 제임스 허턴 (James Hutton)
.출생: 1726년 6월 3일, 영국 에든버러
.사망: 1797년 3월 26일, 영국 에든버러
.묘지: 영국 에든버러 그레이프라이어스 커크야드
.국적: 스코틀랜드
.부모: 윌리엄 허튼, 사라 발포어
.자녀: 제임스 스메튼 허튼
.학력: 레이던 대학교 (1794년), 파리 대학교, 에든버러 대학, 더 로열 하이 스쿨
지질학적 변화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는 ‘동일 과정설의 제창자’이다.
화성암의 성인에 대하여 연구했으며, 그의 지질학적 업적은 ‘근대 지질학의 기초’가 되었다.

○ 생애 및 활동
1726년 상인의 아들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한 후 파리 대학교, 레이던 대학교에서 의학, 화학을 배운다.
한때 아버지가 남긴 농장에서 농장 경영을 하기도 하였지만, 1768년 에든버러에서 연구 생활에 들어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북부, 프랑스, 네덜란드 여행을 통해 각지의 지질을 관찰한다.
1795년 《지구 이론》(Theory of the Earth)을 출판했으나,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는 그다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1802년에 에든버러 대학교 수학 교수이자 허턴의 친구인 존 플레이페어가 《허턴 지구 이론 해설》을 발간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된다.
허턴은 현재의 자연 현상을 바탕으로 과거의 지질 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지하 불 작용을 중시하고, 발열의 팽창력이 대지를 융기시켜 지층을 변화시키고, 이 과정으로 지각에 균열이 생겨 마그마가 진입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화산은 광역적인 대지 상승의 안전판으로 간주했다.
베르너가 수성기원을 생각했다면 허턴은 화강암을 화성기원으로 간주하여 화성론자의 대표자로 간주되었지만, 그는 2차암층의 형성 등에 관해서 물의 작용도 중시했다.
허턴의 논제는 라이엘에게 높이 평가되었다.

○ 업적
제임스 허턴은 영국 스코틀랜드의 지질학자로, 흔히 ‘지질학의 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근대 지질학 정립에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대표적으로는 동일 과정설의 제창과 창조론과 수성론이 주류였던 학계에 화성론을 던지며 화성암의 성인을 연구한 것이 있다.
- 동일 과정설
그는 ‘현재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과거 자연계에서 일어난 일을 설명할 수 있다’는 의미의 동일 과정설을 주장하였다.
당시 학계에 만연했던 격변설 (Catastrophism, 과거에는 현재와 다르게 엄청난 규모의 지질학적 사건이 있었다는 주장)과 전혀 반대되는 설이었다.
물론 현재 지질학에서는 두 설을 모두 채용하고 있지만, 큰 틀은 허턴의 동일 과정설을 따른다.
현대에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시에는 창조론과 수성론이 우세했던 시기인지라 대홍수에 의해 현대의 대륙 분포가 생겼다는 식의 주장을 비롯하여 과거는 현재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허턴 이후 연구를 거듭한 끝에, 동일 과정설은 찰스 라이엘에 의해 지질학 연구의 기본 원리로 정립되었다.

- 화성론
18세기엔 모든 암석이 태초의 바다 하부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는 베르너를 필두로 하는 수성론이 대세였다.
나름의 논리적 구조도 타당했고 자연을 잘 설명해냈으며, 수성론에서 설명하는 결정 구조는 지구상 어딜 가나 발견되는 반면 마그마는 극히 지구상의 일부 부분에서만 나타나므로 수성론이 보다 지지받았다.
더군다나 성경의 노아의 홍수 기록과도 일치하여 많은 학자가 믿었고, 수성론은 18세기까지 학계 주류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허턴은 지각 밑에서 있는 운동에 의해 암석이 형성된다는 화성론을 주장했다.
그는 물체가 가열되며 팽창하듯, 지각 하부에서 가열된 암석이 융기되어 균열을 만들며 이곳을 통해 마그마가 뿜어져 나온다고 주장했다.
부정합이나 단층, 습곡 같은 지형이 마그마에 의한 운동으로 형성된다고 주장한 셈이다.
또한 지표의 물질들이 풍화와 침식에 의해 바다로 흘러가면 부족한 무게를 채우기 위해 지각이 융기한다는 조산운동의 개념의 기초적인 발상 또한 제시하였다.
19세기에 프랑스 중부에서 화산 활동의 증거가 발견되며, 화산 분화구의 연구를 통해 과거 물에서 광물이 침전되어 형성된 것으로 보던 현무암이 마그마가 굳어 형성된 것임이 밝혀졌고, 무엇보다 제임스 홀에 의해 녹은 현무암을 천천히 굳히며 보다 큰 조직이 형성되는 것을 보이며 화성론이 득세하게 되었다.
이후 허턴의 주장은 찰스 라이엘, 윌리엄 휴얼 등이 이어받아 현대 지질학의 계보를 잇는다.
물론 그렇다고 허턴이 수성론을 완전 무시했던 것은 아니며, 1차적으로 화성 작용에 의해 암석이 형성되지만 2차적으로 물의 작용에 의해 암석이 생성된다는 입장에 가까웠다는 점에서 현대의 시각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화산을 비롯한 화성 활동의 중요성을 최초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평가
‘현대 지질학의 아버지’로 평가 받는다.
지질학적 변화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는 ‘동일 과정설의 제창자’이다.
화성암의 성인에 대하여 연구했으며, 그의 지질학적 업적은 ‘근대 지질학의 기초’가 되었다.
스코틀랜드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길이 있다
○ 저서
1785년 지구 시스템, 그 존속, 그리고 안정성에 대하여(Concerning the System of the Earth, Its Duration, and Stability)
1788년 《비 이론》(The theory of rain)
1788년 《지구 이론》(Theory of the Earth)
1792년 자연 철학의 다른 주제에 대한 논문들(Dissertations on Different Subjects in Natural Philosophy)
1794년 《화강암의 관찰》(Observations on granite)
1794년 빛, 열, 그리고 불에 대한 철학의 논문(A Dissertation upon the Philosophy of Light, Heat, and Fire)
1794년 과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지식의 원리와 이성의 과정에 대한 조사(An Investigation of the Principles of Knowledge and of the Progress of Reason, from Sense to Science and Philosophy)
1795년 《지구 이론》(Theory of the Earth), 증거와 삽화
1797년 농업의 요소(Elements of Agriculture)
1899년 《지구 이론》(Theory of the Earth); with proofs and illustrations, vol III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