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년 5월 2일, 프랑스의 스페인 점령에 대항해 스페인 반란군의 봉기 시작
1808년, 나폴레옹은 에스파냐를 침공했다. 나폴레옹이 내세운 명분은 에스파냐 민중들의 해방이었으나 기실은 대륙봉쇄령을 지키지 않는 포르투갈을 공격하려는 가운데 아예 에스파냐까지 정복해서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통합하자는 나폴레옹의 계산에 따라 이뤄진 전쟁이었다.
국왕 카를로스 4세와 재상 고도이의 학정에 시달리던 에스파냐 민중들은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을 해방군으로 반겼으나 곧이어 나폴레옹의 원수 조아킴 뮈라가 이 기회를 통해 카를로스 4세, 왕세자 페르난도를 모두 망명시키고 자신이 에스파냐의 왕이 되려고 하자 에스파냐 민중들의 프랑스군에 갖는 호의는 순식간에 적의로 돌변하게 된다.
결국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에서 대규모 반프랑스 시위인 도스 데 마요 봉기가 열렸고 뮈라 휘하의 프랑스군은 5월 3일 이를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마드리드 곳곳에서 학살이 벌어졌다.
고야의 그림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 (El 3 de mayo en Madrid)은 5월 3일 새벽에 프린시페 피오 언덕에서 벌어진 프랑스군의 양민학살을 그리고 있다.
정작 이 사단을 일으킨 장본인 조아킴 뮈라는 에스파냐 왕이 되지 못한다. 에스파냐 민심의 이반을 걱정한 나폴레옹은 자신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호세 1세로 에스파냐 국왕에 봉했으며, 대신 뮈라는 나폴리 국왕에 봉해진다. 그러나 에스파냐 민중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지지하던 페르난도 왕세자가 왕이 되지 못한 사실에 분개하고 있었으며, 이 결과로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 촉발된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