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년 11월 6일, 벨기에의 음악가이자 색소폰의 발명가 아돌프 삭스 (Adolphe Sax, 1814 ~ 1894) 출생
아돌프 삭스 (프: Adolphe Sax, 1814년 11월 6일 ~ 1894년 2월 4일)는 벨기에의 음악가로, 색소폰의 발명가로 알려져 있다.
– 아돌프 삭스 (Adolphe Sax)
.출생: 1814년 11월 6일, 벨기에 디넝
.사망: 1894년 2월 7일, 프랑스 파리
.묘지: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묘지
.국적: 벨기에
.학력: 브뤼셀 왕립음악원
.부모: 찰스 조셉 삭스, 마리 조셉 마송
.자녀: 아돌프 에두아르드 삭스
아돌프 삭스 (Adolphe Sax, 1814 ~ 1894)는 벨기에의 음악가이자 색소폰의 발명가로 유명하다. 특히 삭스는 무엇보다도 불운한 생애를 보냈으며, 이 때문에 주민들로부터 ‘저주받은 유령’이란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
그가 겪어왔던 불운한 사건들을 서술해보자면 1)3층 높이에서 돌바닥으로 추락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던 때가 있음. 2) 세 살때 끓는 황천수를 마시고 핀을 삼키기도 했음. 3) 화약이 폭발하며 심한 화상을 입음. 4) 밤에 유독성이 퍼지는 침실에서 자다 중독되어 질식사할 뻔함. 5) 강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남음. 6) 날아온 돌에 갑자기 맞기도 했다.
○ 생애 및 활동
1814년에 벨기에 디낭에서 태어난 알돌프 삭스 (Adolphe Sax, 1814년 11월 6일 ~ 1894년 2월 4일)는 벨기에의 음악가 겸 삭스폰의 발명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평소처럼 놀다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떨어지고 만다.
건물 3층에서 돌로 된 바닥으로 떨어진 그는 그 후 사경을 헤맸다.
다행히도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나 목숨을 구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불꽃축제에서 잘못발사된 화약 한발이 그에게 날아와 심각한 화상을 입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게 된다.
그후에도 불운한 사고들은 아돌프를 따라 다녔다.
실수로 황산이 섞인 물을 마시는가 하면 화약 약품에 중독돼 질식사 할 뻔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거리를 걷던 중 느닷없이 날아온 돌을 머리를 맞기도 했다.
이후 사람들은 아돌프 삭스를 ‘저주받은 유령’이라며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벨기에의 200프랑 지폐에 얼굴을 새겨넣었다. 200프랑은 100프랑에 이어 두번째로 작은 액수의 지폐로, 100프랑에는 화가 제임스 앙소르가 새겨져 있다.
아돌프 삭스는 는 사람들이 그를 피함에 따라 늘 혼자였다.
하지만 삭스는 관악기 제조사인 아버지 밑에서 어릴 적부터 다양한 악기를 접하며 자랐다.
때문에 쉽게 악기 만드는 일과 친해질 수 있었고, 어느 날 금관 악기와 목관 악기의 장점을 한 데 모은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 내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목관 악기의 음색과 금관 악기의 풍부한 음량을 가진 삭스폰이었다.
처음 만들어진 삭스폰은 클라리넷처럼 12음계로 복잡하지 않은 대신 배음을 이용해 옥타브 음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옥타브 음을 내려면 관 자체가 클라리넷보다 커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무보다 쉽고 편한 금속으로 원추형의 큰 관을 만들었다.
이후 나무를 깎아 만든 리드를 끼운 것이 ‘베이스 삭스폰’이 됐다.
삭스가 파리로 가 삭스폰 대중화를 시도하자, 기존의 악기 제작사들이 한데 모여 그에게 공갈협박을 일삼기도 했다.
급기야 ‘삭스폰 특허권 청구’를 반대하고, 삭스폰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되지 못하도록 반대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아돌프는 총 세번의 파산하고, 입술암으로 1894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이후 1900년대 들어 이 삭스폰은 브라스 밴드등을 통해 퍼지며 오늘날에 재즈 등 다수의 음악에서 사용되는 악기로 널리 퍼지게 됐다.
2014년, 그의 탄생 200주년에는 기념주화가 발행되는가 하면 매년 그의 고향 디낭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기념대회가 열린다.
참고 = 위키백과, 나무위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